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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바쁜 황녀님-48화 (48/124)

?제48화. 7장. 반역을 막는 방법 (11)

그럼에도 사람들은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그들은 남의 불행을 즐거움으로 삼는 이들이니까. 갑자기 달라진 관계를 믿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그런데 좀 더 지켜보다 보니 어느새 나와 헤레이스가 달콤한 신혼을 즐기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그 일로 인해 지금 시끄러웠다.

결과적으로, 지금도 뭔가 있다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맞았다. 그 소문들은 의도해서 만들어진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올리비아는 다른 의미로 나와 헤레이스에 관한 소문을 의심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입안에서만 머물던 말을 했다.

“근데 왜 그런 편지를 보냈어?”

지금 나와 헤레이스에 관한 소문이 넘쳐나고 있을 때였다. 이 타이밍에 올리비아는 하필 그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처음에는 그녀의 말이 신경 쓰여서 헤레이스와의 거리를 두는 것에 신경 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의문이 들었다. 왜 하필 이런 타이밍에 올리비아는 갑자기 편지를 보낸 걸까. 그것도 나를 걱정하며 경고하는 듯한 내용의 편지를.

올리비아가 말했다.

“그 편지가 신경 쓰였어?”

당연히 신경 쓰일 수밖에. 올리비아는 잠시 말을 고르는 것처럼 몇 번이고 입술을 달싹였다.

“타이밍이 이상했어.”

올리비아가 나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소문은 계속 두 사람의 사이가 좋다는 내용이었지만…내가 더 좋아하는 사람이 휘둘리는 거라고. 그걸 이용하라고 한 날부터 네가 갑자기 공작님에게 적극적으로 변한 것 같았어. 그전까지는 공작님과 결혼하기 위해서 무슨 짓이라도 하던 네가 갑자기 쌀쌀맞게 변했던 것도. 그러더니 갑자기 두 사람의 소문이 나기 시작한 것도…왠지 이상했어.”

올리비아는 날카로웠다. 예전부터 눈치가 빠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몇 번의 대화만으로 내 행동들을 의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에일린,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공작님하고 어떻게 할 생각인 거야?”

올리비아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걱정하는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 마음이 고맙고 미안했다.

“헤레이스가…나를 완전히 믿으면…….”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젯밤에 헤레이스가 이중장부를 만들어 반역을 위해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 밤새도록 고민한 것을.

일단 지금까지 해 오던 것들을 계속할 생각이다. 그렇게 나와 헤레이스의 사이가 더 가까워지고 헤레이스가 나를 완벽하게 믿어서 아무런 의심도 하지 못할 때.

“이혼할 거야.”

그에게서 반역의 증거를 찾아서 모든 것을 끝낼 것이다. 그리고 그때 헤레이스가 과거에 내가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받았으면 했다.

“깊은 배신감을 느끼게 해 줄 거야.”

아니, 내가 느꼈던 것 이상으로. 그는 과거에도 이번에도 나를 속이려 했다. 과거에는 속았지만, 이번에는 절대 속지 않을 것이다.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이혼은 너무 쉬운 복수다. 그가 이제까지 내게 했던 모든 일을 갚기에는 이것도 아직 부족했다. 나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올리비아는 놀란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것이 분명한 내 생각이었다. 내 뒤에서 나와 루이스를 배신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헤레이스에게.

“그때까진 지금 소문처럼 지낼 거야.”

내가 씨익, 웃었다.

이제 더 이상 헤레이스의 진심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헤레이스가 조금이라도 방심하도록. 나는 연기를 계속할 것이다.

“달라지는 건 없어.”

지금처럼 다정한 부부로 위장한 채 그의 반역 준비를 감시하는 것이다.

에밀에게서 자금의 흐름을 알아보라고 한 후, 혹시 중간에 그레이스 영애의 가문과 만나는 곳이 없는지도 확인할 것이다. 지금 반역의 준비는 어느 정도 되어 있고, 공모자는 어느 정도 규모인지. 과거와는 달리 아직 포섭되지 않은 자들은 내가 먼저 만나 설득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헤레이스가 갑자기 달라진 이유는 내게 자금을 얻기 위해서도 나를 정말로 좋아하기 때문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의 반역에 내가 방해가 되지 않도록 나를 방심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과거에는 굳이 그가 그러지 않아도 헤레이스에게 빠져 있으니 이럴 필요도 없었던 거겠지.

몇 번을 되돌아와도 헤레이스는 똑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나 봐.”

“?”

헤레이스를 막을 수 없다면 루이스가 성군이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반역을 막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변하지 않으면 루이스도 변하지 않으려나. 문득 그런 걱정이 들었다. 루이스만큼은 꼭 성군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는데.

“올리비아.”

올리비아가 나를 바라보았다. 내 말을 전부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무슨 의도로 하는 말인지는 감을 잡은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보니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나는 올리비아를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공작님을 믿을 수 없어.”

“…….”

“아니, 믿지 않아.”

절대로. 이번만큼은 그에게 속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다짐했다.

혹시라도 헤레이스의 마음을 돌려서 반역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완전히 무너졌다. 오히려 그가 나를 이용해서 반역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앞으로 한마디라도 그에게 정보를 주지 않을지,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닐지 조심하자.

올리비아는 아무 말 없이 내 말을 듣더니 무겁게 입을 뗐다.

“네가 뭘 계획하더라도 그게 널 위한 일이었으면 좋겠어.”

“…응.”

“결국에 네가 행복하다면 나는 네가 뭘 해도 상관없어.”

이번에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를 위한 것도 내가 원하던 결말을 맞이할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끝났을 때, 마냥 행복할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나는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 * *

헤레이스는 기분이 좋았다. 최근 에일린의 태도에 변화가 있었다. 계속 단단한 벽을 두고 거리를 두던 에일린이 드디어 마음을 열기 시작한 것 같았다.

황궁에서 머물던 에일린이 공작가로 돌아오는 조건으로 그녀에게 잘하라고 했을 때, 그녀는 분명 헤레이스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에일린이 헤레이스에게 시킨 것은 다정한 부부인 것처럼 보이도록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녀에게 잘하는 척하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화를 내며 헤레이스를 곤란하게 하기 위한 것 같았다.

하지만 헤레이스는 그렇게라도 에일린에게 잘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래서 그녀가 말한 이상으로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다정한 부부 행세를 한다는 핑계로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때만큼은 에일린 역시도 헤레이스를 밀어내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헤레이스는 에일린이 다정한 부부로 보이도록 잘하라고 했던 것을 이용하기도 했다.

일부러 뉴튼 백작 부부를 사업 때문에 얘기를 나누고 싶다는 핑계로 초대를 하기도 했다. 에일린에게는 초대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뭐 나중에는 그 사실을 알게 된 것 같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올리비아 영애께서 방문하셨습니다.”

“그래?”

집무실에서 검토해야 할 서류를 확인하고 있는데 앨버트가 와서 보고했다.

올리비아 뉴튼. 그녀는 에일린과 절친한 사이였다. 나중에 식사라도 같이할까.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서류를 볼 때였다. 헤레이스가 서류를 덮고 일어났다.

원래 친구에게 잘해야 한다고 했다. 헤레이스는 그대로 에일린의 방으로 향했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았지만, 에일린과 관계가 좋아지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모든 것이 가벼워졌다.

‘다음에는 나들이라도 가자고 해 볼까.’

헤레이스는 내심 그런 상상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준비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오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방문 앞까지 도착했다.

시녀와 눈이 마주쳤다. 헤레이스는 입가에 검지를 올렸다. 자신이 직접 노크하고 들어갈 생각이었다. 시녀들이 물러났다.

헤레이스가 문 앞에서 노크하기 위해 손을 들었을 때였다. 에일린과 올리비아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헤레이스는 자신도 모르게 살짝 열린 문 앞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궁금했다. 에일린과 올리비아의 대화에서 나오는 자신의 얘기가. 에일린이 뭔가를 말하는 것이 들렸다.

“나를 완전히 믿을 때 이혼할 거야.”

헤레이스는 순간 온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에일린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깊은 배신감을 느끼게 해 줄 거야.”

에일린의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꽂혔다. 그랬었나. 갑자기 달라졌던 게 그런 이유였던 건가. 최근에 갑자기 달라졌던 에일린의 모습이 떠올랐다.

헤레이스는 그대로 돌아섰다. 지금은 에일린과 마주해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일단 지금은 멀리 떨어져야겠다는 생각에 걸음을 빨리 움직였다.

“공작님. 마님을 뵈러 가신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복도에서 마주친 앨버트가 물었지만, 헤레이스는 그를 보지도 듣지도 못한 것처럼 그대로 지나쳤다.

헤레이스는 한참을 에일린이 한 말을 몇 번이고 떠올렸다. 지난 며칠 동안 느꼈던 기분 좋은 충만감이 무참하게 깨졌다.

오늘 에일린의 말을 듣기 전에도 그녀가 자신이게 잘해 주는 것은 목적이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아는 척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이유가 무엇이든, 에일린은 결혼 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자신에게 달콤했으니까.

그 시간을 깨고 싶지 않았다. 헤레이스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저 웃었다.

‘모른 척 함께 있다 보면 나중에는 진짜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모두 자신 혼자만의 착각이었나 보다. 그녀는 자신에게 믿음을 준 뒤에 헤어질 것이라고 했다.

헤레이스는 저녁이 될 때까지 집무실에서 화석이라도 될 기세로 멈춰 있었다. 보좌관들마저 그의 눈치를 보며 자리를 피할 정도였다.

최근 에일린은 다정하게 변했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난 후,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게 모두 연기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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