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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바쁜 황녀님-52화 (52/124)

?제52화. 외전 1. 첫 만남 (에일린) (3)

“하아…하아…하……….”

점점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답답하다. 숨이 안 쉬어져. 나는 헐떡거리면서 숨통을 트이려 가슴을 두드리며 몸을 웅크렸다.

그때였다. 옆에서 조심스럽게 다가와 묻는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으십니까.”

나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손을 뻗었다. 뭐라도 붙잡아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것도 닿지 않는 허공에 손을 뻗으며 허우적거렸다.

“사…살려 줘…….”

눈앞이 캄캄해졌다. 어차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당장이라도 의식을 잃고 쓰러질 것 같았다.

‘안 돼. 버텨야 해.’

안간힘을 써 보았지만, 갑자기 찾아온 패닉은 내 의지대로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대로 바닥으로 몸이 쓰러지려는데, 아무리 팔을 뻗어도 허공밖에 없던 곳에 갑자기 뭔가가 잡혔다. 정확히는 뭔가가 나를 잡았다. 그가 내 팔을 꽉 잡고 내 몸이 쓰러지지 않게 받쳤다.

“숨을 천천히 들이쉬세요. 뱉고. 쉬고. 뱉고.”

“하아…하…아…하….”

하지만 바로 괜찮아지지 않았다. 호흡이 진정되지 않자, 헤레이스가 내 등을 규칙적으로 쓸어내렸다. 손길을 따라서 숨을 고를 수 있을 정도로.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괜찮습니다. 그러니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세요.”

“하아……. 하…하아….”

“쉬고-, 뱉고-, 후우-…하아-.”

“후…하…. 후우-하아-….”

헤레이스는 끈질기게 내 등을 쓸어내리며 호흡을 유도했다. 아주 조금이지만 호흡이 조금씩 가다듬어지고 있었다.

헤레이스는 내 등을 쓸어내리며 낮게 울리는 목소리로 끊임없이 속삭였다.

“괜찮으니 걱정 마세요.”

그 목소리가 마치 나를 구원하는 것처럼, 나는 조금씩 안정을 찾았다.

새벽이 되었을 쯤, 나와 헤레이스는 구조되었다. 내가 갇혀 있던 곳은 오랜 시간 방치된 창고였다. 쓰임새가 창고가 맞은 지는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나와 헤레이스를 찾으러 온 사람은 황녀궁 소속의 기사와 에밀이었다. 그 뒤에는 수색에 동원된 듯한 병사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아기씨!!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괜찮으십니까! 돌아오시지 않아서 찾아보길 망정이지,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감히 전하께 이런 짓을 한 놈들을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에밀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내 몸에 작은 생채기를 발견하기라도 하면 그 분노는 더욱 거세졌다.

나를 이렇게 찾아올 수 있었던 것은 에밀 덕분이었다. 내가 돌아오지 않자 걱정된 에밀이 황녀궁 소속의 기사들을 데리고 찾으러 온 것이었다. 황궁에서 나오기 전, 에밀에게는 어디를 갈지 대략의 경로는 알려 주었었다. 그 경로를 바탕으로 추적하다 보니 새벽이 되어 우리를 발견한 것이다.

에밀이 분노하는 동안, 주변 상황을 정리한 기사들이 내 주위로 모여들었다.

“죄송합니다! 범인을 생포하지 못했습니다!”

기습으로 뒤를 쳐서 납치를 했지만, 정작 나 혹은 헤레이스에게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납치범이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러니 기사들이 범인을 생포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를 납치한 데에는 아마 다른 목적이 있었을 테지.

“하아…….”

사방이 막힌 곳에서 벗어나자마자 크게 숨을 들이켰다가 내쉬었다. 겨우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에밀과 기사들이 한바탕하고 난 후, 뒤에 있던 헤레이스가 다가오며 물었다.

“이제 괜찮습니까.”

그는 다행이라며 안도했다. 하지만 그의 걱정을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제야 공포에 억눌려서 생각하지 못한 문제들이 떠올랐다.

헤레이스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방금 전까지 나를 도와줬지만, 그렇다고 해서 넘어갈 수는 없었다.

나는 폐소공포증이 있다. 이 사실은 루이스와 에밀, 그리고 극소수의 인원을 제외하고는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진 것이었다. 황족의 약점은 함부로 외부에 노출되어서 안 된다. 특히, 나는 루이스의 약점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의 약점을 누군가가 알게 되는 것은 곧 루이스에게 치명적이었다.

날 구하러 온 기사의 허리에 차고 있던 검집에서 검을 빼냈다. 그리고 그대로 헤레이스의 목에 겨누었다. 헤레이스는 놀라지도 않았는지 시선만 아래로 내려 자신의 목을 겨누고 있는 검을 바라보며 말했다.

“…밤새 지켜 드렸더니 돌아오는 게 위협인가요.”

“어떻게 알았죠?”

“고맙다는 인사 정도는 기대했는데 말이죠.”

헤레이스는 능글맞은 웃음을 흘리며 대답을 묘하게 피해 갔다. 능숙하게 피할수록 의심은 더욱 강해졌다.

나는 검 끝을 그의 목에 좀 더 가깝게 갖다 대며 그를 노려보았다. 주위에 들리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헤레이스는 갇혀 있는 동안 공황 상태가 온 나를 보고도 당황하지 않았다. 이미 내 상태를 알고 있었던 사람인 것처럼 침착해 보였다.

“내가…! ……막힌 곳에 있지 못하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물었어요.”

하지만 헤레이스는 결백하다는 듯 양손을 들어 항복의 제스처를 취했다. 자신은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을 하고서.

“몰랐습니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검 끝이 헤레이스의 목을 아슬아슬할 정도로 파고들었다. 검날이 선을 그으며 목에서 빨간 피가 살짝 보였다. 순간 피가 보이자 나도 모르게 흠칫했다.

헤레이스가 검을 살짝 밀어내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검 끝에 노려지고 있는 자신이 아닌 검집을 쥔 채 자신을 위협하고 있는 나를 걱정하는 말을 하면서.

“조심하세요. 검은 자칫 잘못하는 순간 쥐고 있는 사람에게도 해를 입히는 물건입니다. 그러다 황녀 전하 역시 다칠 수 있어요.”

“어디서 수작입니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내가 손에 힘을 주려고 하자, 헤레이스가 다급하게 들고 있던 양손을 살짝 흔들었다.

“워어, 조심하세요.”

“…….”

“정말 몰랐습니다.”

“…적당히 하세요.”

하지만 헤레이스는 끝까지 몰랐다고 우겼다. 내가 여기서 피를 보더라도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을 고집할 생각인 것 같았다.

그럴수록 그가 알고 있는 내 비밀에 대한 불안함이 커졌다. 어느새 내 얼굴은 험악해졌다.

“제가 당황한 티를 내면 황녀께서 더 안 좋아질까 봐 숨긴 겁니다.”

헤레이스는 좀 더 성의 있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나는 그 말 역시도 믿을 수 없었다. 극한의 상황에 몰렸을 때 나오는 행동. 그 상황에서 나오는 직감은 절대적이었다. 방금 전까지 그가 나를 대하던 모습은 결코 당황한 것을 숨긴 것이 아니었다. 나의 증상을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내가 호흡이 거칠어지자마자 반사적으로 반응했던 것이다.

내가 여전히 미심쩍은 얼굴을 하고 있으니, 헤레이스가 부드럽게 눈꼬리를 접으며 반달 눈을 만들었다.

“아무리 대단한 황녀라고 해도 깜깜한 곳에 갇히면 무서워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무서운 게 당연하다고요.”

“그럼요. 저런 곳엔 저도 있고 싶지 않습니다.”

헤레이스는 자신도 무서웠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헤레이스를 빤히 쳐다봤다. 그는 이번만큼은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헤레이스의 눈빛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어쩐지 방금 그 말만큼은 진심인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느 쪽이 진실이든, 헤레이스는 지금 내 발작 증세를 갇힌 공간에서 자연스러운 공포로 인한 당연한 반응이라고 감싸 주고 있는 것이다. 목숨을 구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 비밀을 지켜 주겠다는 뜻이었다.

순간 넘어갈 뻔했다. 아무것도 모른 척 다정하게 건네는 말에 혹해서. 그래서 아차 하며 헤레이스를 노려보았다.

“…이런 식으로 꼬시나요?”

“저는 오래 살고 싶습니다.”

“…….”

“황녀 전하를 함부로 꼬셨다가는 제 목숨이 남아나지 않을 거 같아서요.”

여전히 헤레이스가 제 목에 겨누어진 검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나는 그제야 검을 바닥을 향해 내려놓았다.

* * *

현장에서는 범인을 놓쳤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아 나와 헤레이스를 납치해 창고에 가둔 자들이 붙잡혔다.

온갖 복잡한 정치와 이권이 얽혀든 사건이라고 예상한 것과는 다른 허탈한 결과였다. 나와 헤레이스의 정체조차도 알지 못하는 자들의 돌발적인 범행이었다. 인적이 드문 거리에 누가 봐도 대단한 신분의 사람이 지나가고 있었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보석과 돈을 빼앗아 방치된 창고에 버리듯이 내팽개쳐놓고 도망친 것이다. 결국, 그날 있었던 납치 사건은 금전을 노린 자들의 소행으로 결론이 났다.

하지만 어쨌거나 제국의 황녀와 공작이 얽혀든 사건이었다. 특히나, 그 사실을 알게 된 루이스에 의해 그들은 차라리 죽음을 원하게 된다는 광산에 노역으로 끌려갔다. 금품을 노린 것치곤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루이스의 분노는 상상 이상이었다.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서이겠지.

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잘못한 것이 맞으니까.

내가 황궁으로 돌아올 때 뒤늦게 소식을 접한 루이스가 놀라서 황궁 입구까지 달려왔었다. 그때의 얼굴을 떠올리면 나는 백번이고 천 번이고 잔소리를 들어도 마땅한 죄인이었다.

“그리고.”

“네…?”

할 말이 아직도 더 남았나.

“네가 무슨 짓을 해도 나는 황후 따위 두지 않을 것이다.”

루이스는 내가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니고 있었는지 모두 알고 있었다. 하긴, 이런 일이 생겼는데 알아보지 않았을 리 없었다.

“그러니 더는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마.”

“…네.”

나는 힘없이 대답했다. 루이스가 저렇게 말하는 이상, 내가 무슨 짓을 해도 가망이 없었다. 지난 며칠 동안의 수고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결국, 루이스에게 어울리는 황후 후보를 찾는다는 계획은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날을 계기로 나에게는 작지만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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