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도 바쁜 황녀님-59화 (59/124)

?제59화. 8장. 소문 (5)

“다만 그 일로 부인이 신경 쓰는 것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도 싫습니다. 무슨 상황인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려 주시면…….”

헤레이스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째서인지 순간 그 모습이 애처로워 보였다. 헤레이스가 천천히 입을 뗐다.

“제가 돕겠습니다.”

헤레이스의 눈동자가 흔들림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헤레이스의 제안을 거절했다.

“괜찮습니다. 폐하께서 도와주고 계시니 곧 마무리될 겁니다.”

스캔들은 민감한 문제였다. 나를 좋아하는 척하면서 뒤에서 반역을 준비하고 있는 헤레이스다. 도와주는 척 뒤에서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헤레이스를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그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 * *

계속 정신없이 소문에 대한 정보들을 끌어모았다. 나는 에밀에게 이전에 부탁했던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소문의 출처는 어떻게 됐어?”

“그건 곧 알아낼 수 있을 듯합니다.”

“어떻게…?”

너무 많이 퍼진 소문일수록 그 출처를 찾는 것이 힘들었다. 많은 사람의 입에 묻혀 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에밀이 확신에 가까운 투로 대답했다.

“오늘 황궁에서 사람 하나를 보내왔습니다. 시종장께서 보냈다고 하는데, 확실하지는 않으나 소문이 퍼진 것이 황궁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합니다.”

“뭐…?”

생각하지도 못한 곳이었다.

황궁은 그 어느 것보다 보완이 철저한 곳이었다. 소문이든 사실이든 황궁에서 시작된 것은 쉽게 빠져나가지 않았다. 특히, 그로 인해 문제가 생겼을 때 루이스는 절대 봐주지 않았기 때문에. 황궁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라도 조심 또 조심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소문이 황궁과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니.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몰라도,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 소문은 생각보다 더 치밀하게 계획된 것인지도 몰랐다. 에밀이 덧붙였다.

“지금 황궁에서 은밀하게 알아보고 있다고 합니다. 곧 소식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황궁에서 그렇게 연통이 왔다면, 에밀의 말대로 곧 연락이 올 것이다. 하지만 만약 황궁에서 소문이 시작된 것이라면, 오히려 그것을 계획한 배후를 찾는 게 더 힘들지도 모른다.

‘대체 누가 무슨 목적으로.’

그 이유를 알면 해결책을 찾기가 더 쉬울 텐데. 그 대상이 나와 룩센 황태자인 것도. 일을 이렇게까지 벌이는 것도. 고작 치정극을 만들면서 이렇게까지 하는 목적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에밀이 내 눈치를 슬금슬금 보더니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아기씨, 헤레이스 공작님한테도 설명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왜?”

그보다 무슨 설명을 해야 하는 거지? 내가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자 에밀이 말을 이어 나갔다.

“혹시라도 오해를 하실 수도 있으니…….”

에밀은 이번 스캔들로 나와 헤레이스 사이에 오해가 생길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에밀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에밀은 원래 헤레이스를 싫어했다. 과거에는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하지만 내가 헤레이스에게 일부러 이것저것 요구하며 사이좋은 부부 연기를 한 것을 알고 있는 그녀마저도 나와 헤레이스의 연기에 넘어가 관계가 나빠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다른 사람들도 일부러 퍼트린 소문을 믿고 있었다. 나와 헤레이스의 사이가 무척 좋으며, 헤레이스가 에일린 황녀, 나에게 빠져 있다는 가짜 소문. 그것을 믿었기에 이번 스캔들이 더더욱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럴 수가.’

생각해 보니 이번 스캔들로 가장 치명타를 입은 것은 나와 헤레이스에 관한 소문이었다.

이제 나와 헤레이스의 관계에 대한 관심은 모두 나의 스캔들을 떠올리며 하는 상상들이었다. 헤레이스가 알고 있었을지. 알고 보면 지금까지의 소문이 모두 연기였는지. 나와 헤레이스는 파경을 맞이하는 것인지.

‘설마…!’

그걸 노린 건가. 나와 헤레이스의 관계를 무너뜨리는 것. 그것이 목적이었던 건가.

하지만 그것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해야 나와 헤레이스 사이에 불화였다. 고작 그것을 위해 이렇게까지 판을 크게 벌려야만 했나.

‘하지만 공작가와 황가의 관계 악화를 원하는 거라면.’

그렇다면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나와 헤레이스의 관계가 좋아질수록 불안한 것은 그의 과거 내연녀들만 있는 것이 아닐 테니까. 그와 반역을 공모해야 하는 자들 역시 루이스와의 관계를 떠나 나의 존재를 거슬려 할 것이다. 거기에 내 평판을 떨어트릴 수 있으니 나쁘지 않았겠지.

* * *

루이스로부터 황궁에 들리라는 연락이 왔다. 이번 스캔들에 관한 얘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새로운 정보가 들어왔을지도 모른다.

나는 연락을 받자마자 곧바로 준비했다.

“바로 출발하자.”

“네. 준비하겠습니다.”

에밀과 함께 황궁으로 가려고 저택 앞까지 나왔을 때였다. 앨버트가 급하게 나를 찾아왔다.

“마님. 잠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으십니까.”

“중요한 일이 아니면 나중에…….”

이미 나가려던 중이었다. 황궁에 다녀온 후에 들으려고 앨버트에게 말했을 때였다.

“중요한 일입니다.”

그대로 나가려던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앨버트를 바라보았다. 앨버트가 딱 잘라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분명 그럴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겠네.”

결국, 가던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 방으로 향했다. 앨버트가 품에 안고 온 문서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이사벨 마님께서 지급된 예산을 어떻게 사용했는지가 나온 내역서입니다.”

“아직 한 달이 안 지났을 텐데.”

이사벨의 예산과 사용 내역은 매달 보고를 받고 있었던 일이다. ‘이게 왜 급한 일이지?’ 하고 앨버트를 바라보자, 그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답했다.

“네. 그래서 급한 일입니다.”

앨버트의 난처한 표정을 보니 무슨 일인지 알 것 같았다. 기어이 이사벨이 사고를 쳤구나.

앨버트가 내민 내역서를 살폈다. 지급된 예산 또한 지금의 공작가에게는 과하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그래도 그 정도에서 만족하기를 바랐는데,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분명 내가 지급된 이상은 절대 주지 말라고 했을 텐데.”

내역서는 마이너스였다. 이사벨이 추가로 예산을 끌어다 쓰지 않고서는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없었다. 내가 이미 한 번 경고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앨버트는 이사벨에게 몇 번이고 예산을 내준 것이다.

앨버트가 난처해 하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막무가내로 나오셔서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손에 잡고 보던 보고서를 탁자 위에 내던지듯 내려놓았다. 그리고 굳은 얼굴을 하고 앨버트를 바라보았다.

“그럼 그때 바로 내게 보고했어야지. 왜 이제 가져오는 거지?”

“그게…….”

앨버트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아랫입술을 무는 모습이 말하기 곤란한 듯 보였다. 그렇다면 이유는 하나겠지.

“설마 이사벨이 또 예산을 맘대로 사용하려고 하는 건가?”

“…죄송합니다.”

내가 화났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앨버트가 쩔쩔매며 고개를 숙였다. 그 역시도 중간에서 이래저래 난처했을 것이다. 좀 더 주의를 주고 싶었지만, 앨버트가 이걸 보고하러 오면서 얼마나 고민을 많이 했을지 생각하니 안타까웠다.

“그래서 이번에도 이사벨이 그대에게 요구했다, 이건가.”

“네…그렇습니다.”

“이번엔 예산을 추가 지급하지 않은 상태인 거겠지.”

“네! 그 전에 보고해야 할 것 같아서 급하게 왔습니다.”

나는 다시 내역을 찬찬히 훑어봤다. 그녀가 생산적인 일에 돈을 쓸 거라는 기대는 애당초 하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건 해도 너무 했다.

“드레스에 보석이랑 향수까지는 알겠는데, 이것들은 대체 뭐지.”

내역 중간중간마다 지출은 있는데 사용처가 불분명한 것들이 보였다. 보통 이런 경우는 둘 중 하나인데.

“설마 이사벨 부인이…도박도 하나?”

“아, 아닙니다! 그건 절대로 손대지 않으십니다.”

“그럼 이건 뭐지?”

중간에 말도 안 되는 금액의 지출이 있었다. 갑자기 큰돈이 필요한 경우라니, 평소에 사치품에 돈을 쓰는 이사벨에겐 이럴 만한 금액이 나갈 곳이 없었다. 당연히 금액만 봐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왠지 불안한데. 순간 얼마 전에 본 이중장부가 떠올랐다.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돈의 흐름. 설마 이것도 거기서 나온 걸까.

“죄송합니다. 저희도 정확한 내역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다만…아마도 사기 투자 같은 데에 쓰시지 않았을까 추정하고 있습니다.”

“사기 투자라니…….”

도박보다 죄질이 나쁠 뿐이지 별다를 게 없지 않나. 제국에 있는 사기성 투자라고 하는 것들은 대부분 뻔했다. 엄청난 수익을 낼 수 있다며 투자를 받다가 나중에는 담보까지 잡는 식이다.

“혹시 이사벨 부인이 가지고 있는 토지 문서 같은 게 있는 건가?”

“없습니다. 가지고 있던 것들도 모두 정리했습니다.”

“그럼 다행이긴 한데.”

토지 문서 같은 것이 있었다면 분명, 이미 그것들도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갔을 것이다.

“앨버트. 앞으로 이사벨에게 지급할 예산은…….”

“저어…죄송하지만, 이사벨 마님에 대해 조금만 변명을 해도 될까요?”

이사벨에 대한 변명이라니. 솔직히 별로 듣고 싶지 않다. 듣는다고 해서 그녀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분명 이사벨 마님께서 하는 행동은 공작가에 큰 부담을 주고 계십니다.”

“…….”

“하지만 이사벨 마님은 과거에 살고 계십니다.”

“과거…?”

앨버트는 조심스러우면서도 신중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네. 선대 공작님이 살아 계시고 공작가가 위태롭지도 않아서 지금과는 다르게 모든 게 완벽한 것처럼 느껴지던 시기에요. 이사벨 마님께서는 아직도 그 속에 살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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