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도 바쁜 황녀님-63화 (63/124)

?제63화. 8장. 소문 (9)

사람들은 거리와 사람들의 함성 때문에 나와 헤레이스의 대화 내용까지는 듣지 못했다. 그저 우리 두 사람의 움직임을 볼 뿐이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헤레이스의 어처구니없는 프러포즈에도 불구하고 그가 내게 다가왔다는 이유만으로도 더 큰 함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사람들이 우리의 대화 내용을 듣지 못한 것과 달리, 나에게는 사람들의 감탄과 함께 그들이 나누는 대화가 얼핏 들렸다. 흥분한 그들이 속닥거리지 않고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다시피 말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공작 부인께서 대단한 사랑을 받으시는구먼.”

“저렇게 사이가 좋은데. 역시 소문은 말도 안 되는 거였어.”

“부럽네. 부러워. 우리 남편도 나한테 저렇게 해 줬으면.”

“내 마누라가 황녀 전하 같은 분이었으면 더한 짓도 하지, 암.”

그들은 소문의 진실 여부 따위는 상관없이 지금 이 상황에 감탄하고 있었다. 설사 이 중에 야유를 던지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압도적인 환호성에 파묻혀 사라질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환호성으로 가득 찬 소리만을 기억하겠지.

나와 헤레이스가 함께 있는 모습은 그 내막이 어떤지와는 상관없이 많은 사람의 머릿속에 강하게 기억될 것이다.

* * *

에일린과 룩센 황태자와의 스캔들이 터지고도 벌써 며칠이 지났다. 그동안 에일린은 남편인 내게도 별다른 말이 없었다. 내게 어떤 변명을 하지도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고 오로지 혼자 해결하겠다는 것처럼. 나는 하는 수 없이 스캔들에 관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괜히 에일린에게 오해를 받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심란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럴수록 업무에 몰입했다. 괜한 생각을 하지 않도록. 새로 시작하는 사업들로 인해 직접 확인하고 처리해야 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만큼 책상 위세 쌓여 있는 서류 역시 많았다.

하지만 집중이 될 리 없었다. 보좌관들 역시 내 눈치를 보며 말을 걸지 못하는 것이 보였다. 에일린과 룩센 황태자의 스캔들이 빠른 속도로 제도 내에 퍼지고 있었다.

두 사람이 어린 시절 인연이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룩센 황태자는 어린 시절부터 제국을 몇 번이고 방문한 적이 있으니까.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룩센 황태자가 황궁 연회 때 제국에 온 뒤 머무르고 있긴 해도, 에일린과 따로 만난 적은 없었다. 황궁 연회가 있었던 날 공작가로 돌아왔으니까.

그러니 지금의 스캔들은 분명 누군가가 목적을 가지고 퍼트린 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에일린에게 이런 소문이 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충격적이었다. 이런 일이 생길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에일린은 루이스의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추문은 다른 것들과 성질이 다르다. 더럽고 치졸한 수를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걸 루이스와 에일린이 잡아내려고 한다 해도 분명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내게는 소문이 언제나 따라다녔다. 소문에는 사실도 있었고 거짓도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질이 나쁜 소문은 진실을 교묘하게 섞은 가짜 소문이었다. 이번 에일린과 룩센 황태자의 스캔들이 그런 경우에 포함됐다.

이 소문을 최대한 사람들이 믿게 해서 타격을 주려고 하는 것이 분명하다. 일을 이 정도로 벌이려면 어느 정도 힘이 있는 계급의 소행일 것이다.

“이 소문으로 득을 보는 사람이 누가 있는지 일단 추려 봐.”

언제나 소문이 따라다녔기 때문에 나는 이런 소문들을 이용하며 살아왔다. 누구보다 이런 것들에 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소문으로 누군가에게 흠집을 내려 하는 경우에는 보통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게 아닐 수도 있어. 에일린, 혹은 황가 전체나 룩센 황태자에 관한 원한이 있는 사람들도 함께 정리해 놔.”

“네, 알겠습니다.”

스캔들이 터지고 저택에 도착한 후부터 에일린과 만날 수 없었다. 아무래도 그 부분이 신경 쓰였다.

“공작님. 현재 퍼지고 있는 소문은 어떻게 할까요?”

“정보상에게 가장 비싸게 파는 정보를 사 와. 소문은 더 크고 자극적인 소문으로 덮는 게 제일 빠르니까.”

“알겠습니다.”

보좌관이 나가고 앨버트가 들어왔다. 앨버트는 땀을 흘리며 눈치를 봤다. 저런 경우는 보통 저택 내에 문제가 생겼을 때고, 그중에서도 이사벨과 관련된 일인 경우가 많았다.

“또 무슨 일이지?”

이사벨이 또 무슨 일을 저지른 건가 묻는 말이었다. 앨버트는 내 물음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리고 더욱 당황했다.

“그, 그게…….”

이사벨에게 할당된 예산을 이사벨이 초과로 사용했고, 그로 인해서 에일린과 이사벨 사이에 싸움이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예산이 없어도 괜찮다고 했다고?”

설마, 이사벨에게는 따로 챙겨 놓은 비상금도 없었다. 선대 공작이 이사벨에게 따로 챙겨 준 재산들이 있었다. 그것은 공작가의 재산과는 별도로 이사벨의 사유 재산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모두 탕진한 것이 벌써 3년 전의 일이었다. 분명 몇 달간은 에일린의 눈치를 보며 자중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이러다니.

갑자기 이사벨이 당당해졌다는 것은 그녀를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이상하게 여길 부분이었다.

“이사벨이 예산을 초과로 사용한 게 언제지?”

앨버트가 장부를 빠르게 확인했다.

“닷새 전입니다.”

닷새 전이라, 애매한 시기다.

“근데 예산을 왜 더 지급한 거지? 분명 정해진 예산 외에는 절대 지급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앨버트가 우물쭈물하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이사벨 마님께서 급하다고 하시면서 이번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이런 부탁하지 않겠다고 하셔서.”

이사벨이 불쌍한 척 연기하며 사정을 하자 마음이 약해졌던 게 분명했다.

“그런데 갑자기 태도를 달리하며 공작가의 재산이니 내놓으라고?”

“네…….”

이사벨은 화려한 것을 좋아하고 사치가 심했다. 하지만 고집을 부릴지언정 막무가내는 아니었다. 믿을 게 아무것도 없는데 갑자기 뻔뻔해질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그런 이사벨이 달라졌다면,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갑자기 달라진 건 언제지?”

“이틀 전 저녁입니다. 외출하고 돌아오시더니 갑자기 막무가내로 내놓으라고 하셔서. 도저히 제 선에서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설마, 아닐 거다. 아무리 그래도 이사벨이 소문의 주모자일 리가 없다. 이런 소문을 낼 만큼 이사벨이 많은 정보를 알고 있지도 않고, 그것을 실행할 만큼의 힘도 없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찝찝하지.’

이사벨은 가끔씩 벼랑 끝으로 몰리면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할 때가 있었다. 그게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때, 얼굴이 낯익은 시녀 한 명이 문 앞에서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저어…공작님…….”

“뭐지.”

“공작님…그게…잠시 들어가도 될까요?”

아직 앳되어 보이는 시녀였다. 말을 하면서도 긴장했는지 목소리가 떨렸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시녀는 용기를 내서 안으로 들어왔다.

“그래. 무슨 일이지?”

“제가 심부름으로 밖에 나갔다가 이사벨 마님을 우연히 보았습니다.”

오늘따라 이사벨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오는군. 가장 먼저 그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시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단순히 보기만 한 거면 나한테 보고하지 않았겠지.”

“…네.”

시녀는 망설이면서도 어딘가 비장해 보였다. 굉장한 용기를 가지고 지금 말하는 것이었다. 어쩐지 그녀가 본 것이 생각보다 더 중요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본 걸 자세히 말해 봐.”

“이사벨 님께서…….”

목소리가 떨렸지만, 시녀는 최선을 다해 말을 이어 나갔다.

“굉장히 아름답고 신분이 높아 보이는 분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사벨 마님께서 그 영애 분에게 뭔가를 건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게 누구인지 모르나!”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이자, 어린 시녀는 깜짝 놀라 몸을 웅크리며 떨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잘 몰라서……. 어느 가문의 누구인지까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 이 어린 시녀가 무슨 잘못이 있나. 아무래도 이 소문은 이사벨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왜 나의 어머니는 에일린을 그냥 두지 못하는 걸까. 어린 시녀는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어쩐지 나는 이사벨이 만난 영애가 누구인지도 알 것 같았다.

시녀는 이미 잔뜩 겁을 먹고 있었다. 여기서 더 움츠러들었다가는 더 이상 제대로 된 말도 못 할 만큼 떨고 있었다.

나는 일부러 다정하게 시녀를 타이르듯이 말했다.

“그럼 그 여자의 얼굴이나 특징에 대해 최대한 기억나는 대로 말해 보거라.”

“…아, 아름다우셨습니다. 눈도 크고 콧날도……,”

“그런 것 말고 좀 더 특징적인 것은 없느냐.”

“트, 특징이요…?”

시녀는 잔뜩 얼굴을 구기며 고민했다. 그러더니 “아!” 하는 짧은 외침과 함께 눈을 커다랗게 떴다.

“머리가 길었습니다…! 그리고 으, 은발이었습니다!”

“…그렇군.”

“엇…이것도 도움이 안 되는 건가요…….”

내가 놀라지 않자, 시녀는 자신이 말한 것이 이번에도 자신이 실수한 것 같은지 눈치를 봤다. 나는 그런 시녀를 향해 눈을 살짝 접으며 웃어 보였다.

“큰 도움이 됐다.”

시녀의 얼굴이 기쁨으로 물들었다.

빈말이 아니었다. 은발에 긴 머리카락, 그리고 아름다운 외모. 그 모든 것이 가리키는 영애가 떠올랐으니까. 어째서 두 사람이 따로 만났는지는 앞으로 알아봐야겠지만.

* * *

이사벨과 함께 있었던 영애를 잡으려고 덫을 놔두었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보좌관이 정보상에게 가장 비싼 가격으로 사 온 정보로는 에일린의 스캔들을 덮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공작님, 소문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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