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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바쁜 황녀님-65화 (65/124)

?제65화. 8장. 소문 (11)

물론, 그래서 오래 걸리는 거일 수도 있지만…그래도 너무 오래 걸리지 않나? 창문을 열어 바깥을 확인하려고 하는데, 헤레이스가 나를 말했다.

“신경 쓰지 마세요. 곧 도착할 겁니다.”

그 말이 나를 말리는 것처럼 들렸다. 그리고 어쩐지 헤레이스가 당황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창문을 열어 바깥을 둘러봤다.

마차는 공작가로 향하고 있었다. 다만, 가는 길이 문제였다. 황궁에서 공작가로 향하는 길 중 가장 멀고 빙 돌아서 가야 하는 길을 지나고 있었다.

나는 마차 밖에 있는 앨버트에게 물었다.

“왜 이 방향으로 가는 거지?”

그가 창문 너머로 헤레이스를 잠깐 보는 것 같더니, 내가 물어본 질문에 앨버트가 아닌 헤레이스가 답했다.

“많은 사람에게 보여 주려면 최대한 돌아가야 하니까요.”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요…?”

“네. 그러려고 이러는 거지 않습니까.”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 레드 카펫을 깔고 황궁 앞에서 사람들 보란 듯이 이벤트를 벌였다. 그래서 일부러 돌아가는 길을 선택해 많은 시간 사람들이 보게 했다. 일부러 많은 사람에게 보라는 듯이.

“제가 구경거리가 됐군요.”

“그럴수록 새로운 소문이 힘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

“불편하십니까.”

사실 기분 좋은 것은 아니었다. 마치 사람들의 관심과 흥미를 끌기 위해 일부러 이런 이벤트를 해야 한다는 것은 썩 유쾌하지 못했다.

“그래야 한다면 감수해야죠.”

하지만 그걸로 나와 룩센 황태자의 스캔들이 사그라들고 사람들의 화제를 돌릴 수 있다면, 분명 헤레이스의 방법이 맞았다. 나는 소파에 등을 기댔다.

확실히 황궁에서 한참 떨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이 구경하고 있었다. 어차피 마차밖에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러니 분명 구경 인파는 공작가 앞까지 이어져 있을 것이다.

“도착했습니다.”

앨버트의 보고와 동시에 드디어 마차가 멈췄다.

헤레이스가 먼저 내려서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나와 헤레이스가 하는 행동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일단 맞춰 주는 게 낫겠지. 나는 헤레이스의 손을 잡고 마차에서 내렸다. 그와 다정한 모습으로 미소를 한껏 그린 채.

그런데 헤레이스는 저택으로 들어갈 생각이 없는지, 사람들을 보며 미소를 지은 채 가만히 있었다. 한껏 입꼬리를 끌어올리고 있던 나는 헤레이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나직하게 말했다.

“인제 그만 들어가죠.”

“네, 그래야죠.”

헤레이스는 대답만 그렇게 할 뿐, 움직이지는 않았다. 마치 이 순간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나는 이를 꽉 문 채로 다시 한번 말했다.

“지금 당장…! …이요.”

헤레이스가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그를 살짝 노려보았다. 당장 들어가지 않으면 나 혼자 들어가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면서.

헤레이스가 내 눈썹 사이를 꾹 눌렀다. 내가 인상을 쓰고 있었나 보다.

“들어가죠.”

헤레이스가 내 등을 부드럽게 돌리며 저택으로 향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와 헤레이스가 들어오자 그제야 공작가의 하녀와 시종들이 저택 앞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을 정리하고 돌려보내기 시작했다.

나는 저택으로 들어오자마자 헤레이스에게 한마디 했다.

“일단 맞춰 드리기는 했지만, 갑자기 이런 일을 벌이다니요.”

내가 화낼 것을 예상이라도 했는지, 그는 당황하지 않은 채 내 말을 가만히 듣기만 했다. 그리고 천천히 입술을 벌렸다.

“제가 하지 않았으면 소문은 점점 더 커졌을 겁니다.”

“…….”

“부인, 제발 이번 한 번만 저를 믿어 주세요.”

헤레이스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원래라면 그가 어떤 제안을 해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룩센 황태자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제국의 외교 문제를 위해서라도 소문을 잠재워야 했다.

헤레이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제가 이 소문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워 버리겠습니다.”

사실, 이미 나와 루이스가 여러 방법으로 손을 써 봤지만 소문을 잠식시키는 데는 무리였다. 나는 잠시 고민한 끝에 물었다.

“…확실한 방법인가요?”

내 물음에 헤레이스가 갑자기 씨익, 웃었다. 자신만만한 미소였다.

“확실합니다.”

헤레이스의 대답은 확고했다.

“…알겠어요. 믿을게요.”

헤레이스에게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스캔들이 터졌을 때도 그에게 해명하지도, 논의를 하지도 않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자존심을 내세울 때가 아니었다. 일단, 이 소문을 잠재우는 것에만 집중하자. 그렇게 생각한 내 대답에 헤레이스가 활짝 웃었다.

일단 헤레이스에게 맡기고, 소문을 퍼트린 쪽을 찾자.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방금 전까지 환하게 웃고 있던 헤레이스가 진지한 얼굴을 하고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부인도 해 줘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헤레이스가 갑자기 조건을 걸었다. 내가 해 줘야 하는 일이라니, 나는 일단 들어 보고 여차하면 거절할 생각으로 물었다.

“그게 뭐죠?”

헤레이스가 나를 빤히 바라보며 대답했다.

“앞으로 부인과 저는 더더욱 화목한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

“그러려면 저 혼자가 아니라 부인께서도 맞춰서 해 주셔야 합니다.”

순간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가능성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가장 최악의 가능성은…… 설마, 오늘 같은 일이 또 벌인다는 것은 아니겠지?

왠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헤레이스의 시선과 자꾸만 마주쳤다.

“이전에 티파티 때처럼만 하면 되는 일입니다.”

“…….”

“다만 애매모호한 모습은 안 됩니다. 그러면 역으로 저와 룩센 황태자까지 얽혀 소문이 더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요.”

“부인께서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 줘야 합니다.”

더 나빴다. 오늘 같은 이벤트를 헤레이스가 아닌 내가 해야 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헤레이스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역시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어차피 고민은 의미가 없는 문제였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였다.

나는 헤레이스에게 다가갔다. 그의 바로 옆에 나란히 섰다. 그리고 그대로 헤레이스의 팔을 감았다. 자연스럽게 팔짱을 낀 채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헤레이스의 얼굴이 어쩐지 긴장한 것처럼 굳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고 행동을 이어 나갔다. 어느 사이좋은 부부의 모습처럼 헤레이스를 향한 다정한 시선과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이렇게요?”

“…네.”

헤레이스는 갑자기 목이 막혔는지 목소리가 갈라졌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 * *

공작가에 돌아온 후, 이번 스캔들에 관해 알게 된 정보들을 헤레이스에게 전달했다. 그 역시도 대부분 알고 있었던 듯했다.

“공작님께서도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모두 얘기해 주세요.”

“그러죠.”

나 역시도 헤레이스가 현재 알고 있는 정보들에 대해 모두 들었다. 어린 시녀가 봤다고 하는 여자는 초상화로 그림을 그리도록 지시했다. 내일이면 모든 것이 확실해질 것이다.

아마도 소문의 시작은 이사벨과 그레이스 영애일 것이다. 인제 와서 모든 것을 하나씩 돌이켜보니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편지에 관한 것은…….”

편지라는 말에 헤레이스가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이번 스캔들을 키운 것 중 하나가 바로 룩센 황태자가 내게 보냈다는 편지였다.

“룩센 황태자로부터 편지가 온 적이 딱 한 번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입니다. 편지의 내용 역시 통상적인 것에 불과했고요.”

헤레이스는 내 말에 안심한 것 같은 얼굴을 했다. 아마 그 역시도 편지에 관한 부분이 신경 쓰였었던 것 같았다.

“문제는 그 편지의 존재를 누가 어떻게 알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편지를 받은 것은 고작 한 번뿐이고, 심지어 나는 답장도 보내지 않았다. 그 존재를 알 수 있는 사람은 한정적이었다.

헤레이스가 말했다.

“내부인의 소행이겠군요.”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하고. 그리고 아마 내 방에 있던 편지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것은 저택 내부를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고, 내게 온 편지에도 손을 댈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 순간, 갑자기 기고만장해져 목소리가 커진 이사벨이 떠올랐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던 그녀의 모습들. 이 모든 현상을 편지로 연결하면 답이 나왔다.

저택에 편지가 왔을 때, 내게 도착하기 전에 이사벨이 편지의 존재를 먼저 알게 됐을 것이다. 내게서 주도권을 가져올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던 이사벨은 편지를 빼돌렸을 테지. 티파티에서 무시를 당하고 헤레이스와도 연락이 되지 않는 그레이스는 애가 달아 있었을 것이고. 나, 에일린 황녀라는 공공의 적이 있는 두 여자가 손을 잡는 것은 한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누가 먼저 손을 뻗었을까? 회귀 전에도…이사벨이 이런 식으로 다른 영애와 손을 잡은 적이 있었을까? 현재도 이러는데 과거에는 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도저히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사벨이 뒤에서 손을 잡고 나를 공격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회귀 전에 있었던 사건들을 하나씩 되돌아보았다. 그때도 소문으로 제국이 떠들썩했던 사건이 떠올랐다. 그때는 나에 관한 소문은 아니었지만, 그 소문으로 인해 내가 입은 타격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에밀.”

어딘가 닮은 구석이 보이는 사건이 갑자기 떠오른 것은 분명 우연이 아닐 것이다.

“카일라를 좀 데려와 줘.”

내 입에서 나온 뜬금없는 이름에 에밀이 의아해하며 다시 확인했다.

“설마. 프랫 자작가의 카일라 영애 말씀하시는 건가요?”

“응, 프랫가의 카일라. 아무도 모르게 데려와 줘.”

“알겠습니다.”

에밀은 더는 묻지 않았다. 납치를 하든 돈을 쥐여 주든, 에밀은 곧 카일라를 데려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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