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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바쁜 황녀님-79화 (79/124)

?제79화. 10장.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난다 (3)

“다 정리할 수 없다니요…?”

그럼 그들이 반역을 일으킬 때까지 가만히 있겠다는 건가.

그건 안 된다! 루이스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다 해도, 반역이 다시 일어나는 모습만큼은 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루이스를 다시 설득하기 위해 다급하게 그를 불렀다.

“폐하. 하지만…절대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루이스는 여전히 담담하게 나를 불렀다.

“에일린. 진정해.”

그럴수록 나는 초조한 마음만 커져 갔다. 내가 다시 한번 루이스를 설득하려고 할 때였다. 순간 마주친 루이스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담담한 사람의 눈빛이라고는 할 수 없을 만큼.

루이스는 결코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분명한 목표를 노리고 잠시 발톱을 숨기고 있을 뿐. 그제야 초조한 마음이 사라지고 침착하게 루이스가 하려는 말을 기다릴 수 있었다.

“…알고 계셨던 겁니까.”

“뭐, 대충.”

루이스는 반역이 일어날 것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도 회귀 전과는 달랐다. 아니, 회귀 전에도 루이스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알고 있었다면…왜 당한 거지?’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가능성이 떠올랐다. 순간 또다시 불안함이 나를 덮치려고 했다. 하지만 루이스의 흔들림 없는 눈빛을 본 순간, 떨림이 멈췄다. 루이스는 언제나 나에게 가장 든든하고 흔들리지 않는 기둥이었으니까.

회귀 전에는 루이스도 어쩌지 못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던 것이겠지. 하지만 지금 루이스는 내게 반역에 대해 알고 있다고 얘기했다. 그건 곧 반역을 막을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아니, 반역을 막는 게 당연하다는 의미였다.

“반역은 일어날 것이다.”

“오라버니…!”

루이스의 한마디에 나의 믿음이 무참히 깨질 뻔했다. 순간 루이스가 싱거운 미소를 짓지 않았다면. 루이스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들이 황궁에 쳐들어오는 순간에 한꺼번에 제압할 것이다. 가담한 자라면 그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그때는 황궁이 전쟁터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반역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면 황궁은 전쟁터가 될 것이다. 순간 회귀 전 반역이 일어났을 당시 황궁 곳곳에 불이 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나 나의 걱정과는 반대로 루이스는 오히려 여유롭게 말했다.

“전쟁터가 아니라 쥐덫이다.”

“…?”

“쥐를 잡는 커다란 덫인 거지.”

얼마든지 정리할 수 있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다 역습이라도 당하시면…!”

그래서 루이스는 한순간에 몰락했다. 그 과거를 나는 이미 보았고, 그때의 고통이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루이스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말했다.

“내가 당할 거라고 생각하나.”

나는 곧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그를 믿는다면 당하지 않을 거라고, 루이스가 의도하는 대로 될 거라고 말했야 했다.

‘그렇지만…….’

회귀 전을 떠올린다면 아주 작은 가능성마저도 배제 시킬 수 없었다. 만약 그렇게 했다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급소를 찔리게 된다면…그럼 회귀 전의 일이 그대로 반복되는 것이었다.

내가 불안한 얼굴을 하자, 루이스가 나를 달래듯이 말했다.

“괜찮아.”

어린 시절, 혼자 구석에 숨어서 울고 있을 때마다 어떻게 내가 있는 것인지 알고 찾아온 루이스가 어설프게 나를 달래 주었던 것처럼. 여전히 어색하고 어설픈 말투였다.

“처리할 수 있어. 그것도 한 방에.”

루이스는 씨익, 입술 한쪽을 끌어올리며 미소 지었다. 역시 루이스는 오만할 정도로 자신만만한 모습이 잘 어울렸다. 루이스가 말을 이었다.

“오히려 어설프게 쳤다가 잔당을 남기는 쪽이 더 위험해. 잔당들은 언제 어디서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거든. 물론 힘이 그만큼 없어져 아무것도 못 할 수도 있지만, 돌아갈 곳이 없는 놈들은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으니까.”

오로지 반역을 막는 것에만 전념하느라 내가 미처 하지 못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모두 일리 있었다.

“처음부터 확실하게 한 번에 해결할 것이다.”

나는 루이스의 말에 수긍하며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반역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막는 것은 분명 위험 요소가 있었다. 하지만 잔여 세력을 차단하고 빠져나갈 구멍을 막기에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그 전에 반역이 일어나도 최소한의 피해로 끝낼 수 있도록 하면 되겠지. 어차피 반역이 일어난다는 사실도, 그들의 세력도 알고 있으니까. 이미 가지고 있는 정보로 반역이 일어났을 당시 있을 수 있는 변수를 제거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일 수도 있었다.

“에일린. 너도 그때까지는 평소대로 행동해.”

루이스가 내게 당부했다. 이대로 공작가로 평소처럼 지내라고.

그건 나도 알고 있었다. 반역의 핵심인 헤레이스가 나의 남편이었으니까. 내가 흔들리지 않아야 헤레이스를 속일 수 있었다. 나는 루이스에게 씩씩하게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회귀하고부터 나는 계속 헤레이스를 속이고 있으니까.

“그럼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조심히 돌아가.”

나는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 공작가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왠지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폐하.”

나는 문밖으로 나서기 전 루이스를 돌아보았다.

“…혹시 모르니 그래도 조심하세요.”

“그래.”

루이스가 쉽게 당하지 않을 거란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 루이스가 아주 작은 위험도 당하지 않기를.

* * *

공작가로 돌아온 후에 나는 그동안 밀린 일 처리를 몰아서 하기 시작했다. 공작가에 관련한 전반적인 업무는 물론이고, 황궁 외부에서도 다룰 수 있는 것에 한해서 황궁에 관한 업무까지 보았다. 그러다 보니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갔다. 정신을 차리면 식사 때가 지나 있어서, 식당에도 가지 않고 적당히 챙겨 먹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3일이 지났다. 그동안 헤레이스에게 황궁에 간다고 한 후, 단 한 번도 그를 만나지 않았다.

‘이런, 의심하겠는데…….’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정말로 헤레이스가 내 방에 찾아왔다. 그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많이 바쁘십니까.”

나는 쌓여 있는 서류들을 한편에 미루며 답했다.

“아뇨, 대충 마무리했습니다.”

“그러면 차라도 잠깐 하시겠습니까.”

“그러죠.”

헤레이스는 차를 마시며 물었다.

“황궁은 잘 다녀왔습니까.”

“네. 폐하도 만나고 일도 몇 가지 처리했습니다.”

헤레이스가 걱정스레 물었다.

“황궁 일에, 공작가 일에. 무리하시는 건 아닙니까.”

지금 그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시시콜콜한 얘기가 아닐 텐데, 그는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지금 바쁜 이유는 헤레이스를 마주하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지, 일이 너무 많아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나는 대충 거절하려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말을 꺼내기 직전 마음이 바뀌었다.

“…그럼 공작님께서 도와주시겠습니까.”

“네…?”

“공작가의 일만이라도 좀 도와주시면 한결 편할 것 같습니다.”

“얼마든지요.”

헤레이스는 내 말에 고민 없이 바로 수락했다. 기꺼이 도와주겠다는 듯이.

내가 그의 말을 거절하지 않은 것은, 그에게 도움을 핑계로 자연스레 집무실에 출입하면서 반역에 대한 추가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루이스는 그들이 반역을 일으킬 때까지 기다린다고 했다.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반역이 일어난 순간에 제압할 것이다.

그렇다면 반역의 증거만큼이나 혹은 더 반역이 정확히 언제 일어날지 알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려면 헤레이스의 곁에 최대한 붙어 있어야 했다. 반역의 날짜가 정해지고 실행하게 될 때까지 분명 헤레이스에게 시시각각 정보가 들어올 테니까.

헤레이스가 물었다.

“그리고 다음에는 황궁에 함께 가는 게 어떻습니까. 폐하께 인사도 드릴 겸.”

순간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아무래도 회귀 전 마지막 모습 때문에 헤레이스와 루이스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는 게 거북했다.

하지만 지금의 분위기를 이어 가려면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나는 겨우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요. 같이 가요.”

나와 헤레이스가 황궁에서 만날 수는 있어도, 함께 황궁으로 가는 날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내 표정에서 드러났을까. 헤레이스는 갑자기 차를 마시지는 않고 찻잔 안에 있는 차가 흔들리는 것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나는 그가 뭔가 말을 할 때까지 가만히 그를 지켜보았다. 그제야 헤레이스는 고민 끝에 결정을 한 듯 머뭇거리며 천천히 입을 뗐다.

“부인…혹시 저한테 화난 게 있으면 얘기해 주세요.”

그는 내가 자신에게 화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일부러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짐작했나 보다. 생각을 조금만 더 정리한다는 게 나도 모르게 일에 몰입해 버리고 만 것일 뿐인데.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래도 괜찮은 척 연기하는 수밖에. 나는 미소를 머금은 채 헤레이스에게 말했다.

“아뇨, 그럴 리가요.”

그가 믿든 믿지 않든 어차피 상관없었다. 그런데 헤레이스는 미간을 좁히며 침묵했다. 그 모습이 화가 난 것보다는 속상해 보였다.

“저는 부인과 어떤 오해도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헤레이스의 눈빛은 언제나 절절했다. 그래서 진심이라고 깜박 속아 넘어갈 만큼. 헤레이스는 여전히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니 혹시라도 저에게 섭섭한 것이 있으면 얘기해 주세요.”

입안에서 자꾸 가시가 튀어나오려고 했다.

“그럼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얘기할 건가요.”

내 물음에 헤레이스는 단호하게 말했다.

“물론입니다.”

그럴수록 나의 의심은 증폭되었다.

“제가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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