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화. 10장.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난다 (5)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멍청하게도 그때까지 몇 번이나 신호가 있었을 텐데, 전혀 눈치채지 못했었다. 어쩌면 내가 내 눈을 스스로 감고 있었던 건지도…….
에밀이 다급하게 달려왔다.
“반역이 일어났습니다!”
내가 헤레이스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제국에는 반역이 일어나고 있었다. 헤레이스가 중심이 된 귀족 연합이 루이스를 끌어내기 위한.
생각해 보면 헤레이스가 내게 저녁을 함께하자고 했던 것은 그저 내 발을 묶기 위해서였을 뿐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마냥 좋아했었지.
“지금 황궁에 폐하께서…!”
에밀의 당황한 모습만으로도 무슨 일인지 알 것 같았다. 루이스가 위험하다!
“어, 어서…어서 가자!”
이미 헤레이스는 황궁에 있었고, 귀족 연합 역시 황궁으로 모두 향했을 것이다. 내가 뒤늦게 거리로 뛰어가려고 할 때였다. 시녀와 시종들이 나를 가로막았다.
“비켜라.”
“공작님께서 절대 나가지 못하도록 명하셨습니다.”
“내가 우습나 보군.”
내가 에밀에게 눈짓을 하자, 그녀가 앞으로 나섰다.
그들은 처음에 에밀이 앞에 서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래 봐야 그들에게는 내 유모에 불과할 테니까.
하지만 그녀가 작위를 받을 만큼 수많은 첩보 활동을 무사히 해낼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그녀가 치밀하고 냉철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첩보 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위기 상황에 빠졌고, 목숨을 건 싸움을 몇십 번이나 해 왔다. 그리고 에밀은 언제나 살아남았다.
“먼저 가세요. 곧 따라가겠습니다.”
“부탁할게.”
시종들이 에밀을 둘러싸며 다가왔다. 하지만 곧바로 나가떨어지는 쪽은 시종들이었다. 에밀은 거침없이 그들을 쓰러트렸다.
그 순간, 에밀이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 가라는 뜻이었다. 지금은 시간을 지체할 때가 아니었다. 나는 에밀을 믿고 그대로 저택의 현관문을 향해 달렸다. 뒤에서 어떤 소리가 나도 절대 돌아보지 않을 각오로.
현관문까지 거의 다 도착했을 때였다.
“아기씨…!”
뒤에서 에밀의 외마디 비명과 함께 나를 불렀다. 그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시리도록 차가운 검이 에밀을 관통했다. 곧바로 에밀이 입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에밀은 어느새 내 앞까지 와서 정확히 나를 노린 검을 대신 막은 것이다. 그 순간에도 에밀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라도 나를 해치지 못하도록 자신의 뒤에서부터 앞을 관통한 검의 끝을 양손으로 꽉 잡은 채로.
“에밀…!”
“…아기씨….”
에밀의 목소리는 이미 힘을 잃어 가고 있었다. 언제 의식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에밀…괜찮아? 말할 수 있겠어?”
에밀을 찌른 사람은 이름도 알지 못하는 무명의 기사였다. 나를 구하려고 몸을 던지지 않았다면, 에밀이 절대 당할 리 없는. 에밀을 찌른 기사는 오만한 얼굴을 한 채 쓰러진 에밀을 조롱했다.
“뭐, 별거 아니군.”
그는 에밀을 비웃으며 그녀의 몸에서 검을 빼내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크읏…! …뭐야!”
에밀은 의식을 잃어 가는 와중에도 검 끝을 붙든 채 놓아주지 않았다. 기사의 얼굴이 빨개졌다. 에밀의 몸을 발로 밀어내기도 해 봤지만, 그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에밀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게 이 말을 전하기 위해.
“…어서…가세요…….”
“…에밀….”
에밀은 힘겹게 말을 이어 갔다. 내가 아직 가지 않아서 쓰러지지 못하는 것처럼 억지로 버티면서.
“어서요….”
‘에밀, 미안해.’
나는 떨리는 손으로 겨우 에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응. 알았어.”
나는 쏟아지려는 눈물을 머금고 에밀을 뒤로한 채 황궁을 향해 달렸다. 그제야 에밀의 몸에서 검을 빼내었는지 기사가 욕설을 내뱉는 소리가 들렸다. 에밀이 피를 토하는 것 같은 소리도 들렸지만, 나는 확인하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는 순간 잡힐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려야만 했다.
뒤늦게 나를 붙잡으려는 시녀들을 뿌리치고, 그녀들이 잡아당겨 옷깃이 찢어져도 멈추지 않았다. 넘어져도 곧바로 일어나 다시 달렸다.
황궁으로 향하는 길은 끔찍했다. 이미 이곳에서 한 차례 싸움이 있었는지, 곳곳에 핏자국과 시체가 나뒹굴었다. 하지만 그런 것에 시선을 둘 시간 따위 없었다. 나는 무조건 황궁에 도착할 때까지는 절대 멈추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달렸다.
가는 길에 귀족 연합의 병사로 보이는 자들을 몇 번 마주칠 뻔했지만, 그럴 때마다 어찌어찌 숨어서 피할 수 있었다. 어느새 황궁 앞까지 도착했다.
하지만 바로 들어갈 수 없었다.
‘문제는……. 어떻게 황궁 안으로 들어가느냐인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황궁 앞을 귀족 연합이 차지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불행은 바로 황궁 앞에서 황가 기사단과 귀족 연합의 기사단이 싸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지나가지?’
빨리 루이스를 찾아야 하는데, 들어가지는 못하고 초조했다. 게다가 싸움은 팽팽했다. 어느 한쪽의 승리이든 쉽게 결론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지.’
눈에 안 띄기를 바라면서 최대한 몰래 접근해서 들어가는 수밖에.
나는 최대한 외곽으로 돌아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대략 20명 정도가 황궁 앞에서 싸우고 있다는 것도 다행이었다. 아마 대부분이 황궁 안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불행이지만.
그들은 서로를 겨누고 막는 검에 신경 쓰느라 주위를 돌아볼 여력이 없는 것 같았다. 이때 빨리 들어가야 한다. 나는 어느 정도 일정 거리 안에 들어서자 무작정 달렸다.
“…!!”
그리고 나는 황궁에 들어왔다. 미친 듯이 달렸더니 어느새 들어와 있었다.
“이제 오라버니가 있는 곳으로 ….”
가야 하는데…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황궁 밖에서 본 것과 차원이 달랐다.
이미 반역은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귀족 연합의 병사들이 이미 승리하고 있었다. 그게 내 눈에 선명하게 보였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황궁에 오기만 하면 루이스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힘든 상황일지라도 루이스는 분명 무사할 것이다. 그러니 일단 만나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런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어쩌면 오라버니…폐하께서도…….’
무사하지 못할 수 있다. 살아 있지…않을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여기서 뭐 하시나요.”
너무 정신을 놓고 있었다. 누군가 나를 알아본 자가 다가왔다. 어떻게 해야 하지. 도망쳐야 하나. 수십 가지의 생각이 스쳐 지나갔을 때였다.
“폐하를 만나러 온 거라면 제가 안내하죠.”
나는 곧바로 몸을 들려 내게 다가온 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를 본 순간 경악에 물들었다.
“그레이스 영애…….”
“여기까지 용케도 오셨네요. 꽤나 위험한 길이었을 텐데.”
그레이스는 내가 방금 전에 들어온 황궁 입구를 흘깃 바라보았다. 내가 저곳에서 뛰어오는 것을 모두 지켜본 것이다.
그녀가 “풋.” 하는 소리를 내며 웃음을 터트렸다. 틀림없이 나를 비웃는 것이었다.
“…안내해 줘.”
자존심도 바닥에 떨어진 지 오래였다. 비참했다. 하지만 지금 그런 게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루이스를 만날 수만 있다면, 그 누구에게도 무릎을 꿇고 부탁할 수 있었다.
“그러죠. 따라오세요.”
이미 황궁 안에는 전투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대부분 귀족 연합이 압도적으로 상황을 정리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레이스는 유유히 그곳을 지나갔다. 모두가 그레이스가 지나가면 자리를 비켜 주었다.
“저는 여기까지만 안내하죠. 그럼 마지막 인사라도 잘하세요.”
그레이스는 그대로 뒤로 왔던 방향으로 돌아갔다.
나는 앞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바닥에 쓰러져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루이스와 그 앞에 서 있는 헤레이스가 있었다.
“이건…!”
나는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미 반역에 성공하고 나서야 도착한 것이다.
* * *
루이스를 구하겠다는 생각에 잠시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회귀 전, 반역이 일어났을 때 에밀은 나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잃었었다.
“에밀…고마워…….”
이번에는 그 누구도 희생시키지 않을 것이다. 루이스도 에밀도 모두 구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절대 늦으면 안 된다. 반역이 일어나기 전에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아기씨…?”
에밀이 내 행동에 의아해했지만, 나는 에밀의 손을 꼭 쥐었다. 이번에는 지켜 낼 거야.
그동안 에밀의 도움을 받으며 증거를 하나씩 착실하게 모았다. 이제는 증거를 가지고 먼저 귀족 연합을 쳐도 될 만큼.
‘얼마 남지 않았어.’
에밀이 보고 온 별장의 상황. 만약 반역이 며칠 안으로 일어나는 게 맞다면…….
‘내일이구나.’
헤레이스의 집무실에서 봤던 불에 반 이상 타 버린 종이가 떠올랐다. 그 종이에서 얼핏 보였던 숫자. 그 숫자가 정말로 일자를 뜻하는 거라면…그건 내일이었다. 그렇다면 반역은 내일 밤, 혹은 그 넘어가는 새벽에 일어날 확률이 높았다.
순간 손이 떨렸다. 그게 맞다면 지금 바로 황궁으로 가서 알려야 했다. 하지만 지금 내가 갑자기 움직인다면 헤레이스에게 의심을 살 수 있었다.
그렇다면 계획을 변경하겠지. 하지만 종이 같은 곳에 기록을 남겨서 루이스에게 보낼 수도 없었다. 전달되는 과정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니까.
역시 에밀에게 부탁해야 하나. 그리고 나는 내일 오전에 황궁으로 향하자. 그래서 루이스에게 자세히 설명하자. 반역이 일어나는 날짜와 그들이 짜 놓은 계획을 가지고.
‘그리고 아마…공작가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지.’
그렇다면 오늘 밤이 마지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