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3화. 10장.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난다 (7)
내가 여전히 혼란스러워하자, 룩센 황태자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설명해 줬다. 루이스와 헤레이스는 주위를 마지막으로 정리하고 있었다.
“지난번에 잠시 제국에 왔었던 것 역시, 사실은 이번 일에 관한 논의를 위해 머물렀던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릴 수 없어 잠시 체류 중이라고 한 것이었는데, 저희 두 사람의 스캔들이 터지는 것을 보고 확신이 들었습니다.”
나와 룩센 황태자의 스캔들이 반역에 대한 확실한 단서를 주었다니. 대체 어떻게 알 수 있었다는 거지?
내가 룩센 황태자를 빤히 바라보자, 그가 말을 이어 나갔다.
“갑자기 스캔들이라니. 딱 봐도 시선을 분산시키려는 자의 농단이겠더군요.”
“!!”
“반역을 준비하는 동안 폐하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서 말입니다.”
룩센 황태자는 이미 스캔들이 터졌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는 말인 건가. 지금 알게 되는 모든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룩센 황태자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서 지난번에 떠나기 전, 폐하의 부탁을 수락했습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 지원하겠다고. 그리고 얼마 전에 서신이 한 통 도착했기에 이곳으로 왔습니다.”
룩센 황태자의 말에 의하면 루이스 역시 이미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시기상 내가 루이스에게 반역에 대해 전달한 것보다도 빨랐다. 루이스는 모든 것을 알면서도 태평한 척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하…저만 몰랐던 거군요.”
“모르게 하시고 싶었을 겁니다.”
허탈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혼자 전전긍긍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내 마음이 드러났는지 룩센 황태자가 위로하듯 말했다.
“사실 폐하께서는 그대를 꽤나 과보호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불쾌하다 여기지는 말아 주십시오.”
룩센 황태자의 친절한 말 때문에 속이 상했는데도 표현할 수 없었다. 룩센 황태자의 말이 맞을 테니까. 루이스는 내가 괜한 일에 휘말릴까 봐 모르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오라버니는 언제나 나를 괴롭히는 듯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나를 과보호하는 경향이 있었으니까. 그것을 룩센 황태자가 아는 것 역시, 어린 시절 제국에서의 생활하면서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룩센 황태자를 향해 미소 지어 보였다. 이렇게까지 됐으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룩센 황태자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뿐이었다.
“감사합니다. 과한 도움을 받았습니다.”
룩센 황태자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덕분에 저희 역시 폐하께 빚을 만들어 놨으니, 손해 보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루이스가 빚을 진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로 엄청난 일이었다. 룩센 황태자의 말이 빈말이 아닌 이유였다.
“저는 바로 돌아가 봐야 합니다.”
룩센 황태자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마자 자신이 끌고 왔던 병사들을 데리고 돌아간다고 했다. 잠깐의 여유도 없이 이동하는 것이었다.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
“저희 역시 인정으로 도운 것이 아닙니다. 이 한 번의 도움으로 저희가 얻을 것이 더 크기 때문에 한 일입니다.”
룩센 황태자는 철저하게 정치적인 얘기를 했다. 나에게 어떠한 마음의 빚도 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이번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물론, 저희 폐하께서요.”
룩센 황태자는 내 말에 피식, 웃으면서 답했다.
“네, 기대하겠습니다.”
룩센 황태자는 자신을 호위하며 여기까지 온 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힐끗 바라보았다. 이제 정말 가야 할 때인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그에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다음에 다시 제국에 방문해 주세요. 그때는 편안히 쉬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꼭 다시 오겠습니다.”
“그럼 조심히 돌아가세요.”
룩센 황태자는 자신이 데려온 자들을 이끌고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다. 그 모습이 위풍당당해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나는 그가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더 이상 시야에 보이지 않게 되자 돌아섰다. 방금 전까지 짓고 있던 미소를 지우고 정색을 한 채 루이스와 헤레이스를 바라보았다.
“어째서 폐하와 공작님이 함께 있는 겁니까.”
루이스는 별거 아닌 것처럼 대답했다.
“뭐. 필요에 의한 동맹 관계지.”
하지만 그런 말을 들었다고 해서 ‘아, 그렇구나.’ 할 수는 없었다.
“대체 언제부터요.”
설마 두 사람도 룩센 황태자처럼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고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던 건가? 내가 삽질을 하는 동안.
루이스가 말했다.
“그게 중요한가. 반역을 잘 막아 냈다는 게 중요하지.”
루이스가 대답을 피해가라는 것이 느껴졌다.
“아뇨. 저는 어떻게 됐는지도 알아야겠어요.”
회귀 전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반역이 일어났다. 그렇게 헤레이스에 의해서 루이스는 목숨을 잃고, 나 역시 모든 것을 잃었다.
그런데 회귀하고 또다시 벌어진 반역. 이번에도 내가 잠들어 있는 사이에 모든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과거에 서로 검을 겨누던 루이스와 헤레이스가 이번에는 한 편이 되어 있었다.
대체 어떻게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거지? 정말 헤레이스를 믿어도 되는 건가? 혹시 다른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겠지?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시선을 옮겨 헤레이스를 바라보았다.
“공작님께서는 왜 얘기해 주지 않았나요.”
루이스와 이런 일을 계획하고 있었다면 나에게 한 번쯤은 언급할 수 있었을 텐데. 그는 철저하게 나에게 숨겼다. 내가 계속 그를 의심하도록.
“보안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비밀을 아는 사람이 한 명 늘어나는 것만으로도 그 증거는 수십 가지가 늘어나는 법이니까요.”
섭섭하지만 맞는 말이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지 않더라도, 분명 내가 알았다는 이유만으로 비밀은 새어 나갈 위험을 가지고 있었다. 하다못해 내 미세한 행동으로 의심을 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었다.
“…정말 끝난 건가요.”
갑자기 긴장이 풀리면서 힘이 빠졌다. 그럼 이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건가? 루이스는 앞으로도 안전한 건가?
루이스와 헤레이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 정말 끝났다.”
“전부 끝났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게 기쁜 건지 허무한 건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나와 루이스를 파멸로 이끌었던 반역은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게 마무리되었다. 물론,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과거에는 반역의 핵심이었던 헤레이스가 돌아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 * *
이번 반역 사건은 단 하룻밤의 소동이었던 것처럼 정리되었다.
한밤중에 벌어졌지만, 모두가 예상하고 대비하고 있었다. 헤레이스는 귀족들이 혹시 도망칠까 봐 황궁으로 유인했다. 반란은 일사불란하게 제압했다.
그 결과, 피해가 적은 상태로 아침이 되기 전에 상황을 모두 정리할 수 있었다. 만약 반역이 며칠이라도 길어졌다면, 수도에 있는 백성들의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을 것이다.
게다가 이번 반역은 뒤처리까지 확실했다. 혹시라도 제국을 빠져나가려는 잔당들을 차단하기 위해 국경선을 비롯한 항구 등 모든 곳을 사전에 막았다. 반역의 잔당 중 그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루이스가 헤레이스에게 말했다.
“덕분에 청소를 제대로 했군.”
헤레이스는 귀족 연합 중 반역에 가장 적극적인 귀족들을 따로 모아 두었다. 그걸로 루이스는 이번 반역에서 강경파들을 숙청할 수 있을 것이다. 반역에 대한 숙청. 그것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명분이 뒷받침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루이스는 귀족 연합에 속하지만, 반역보다는 이권에 관심이 많거나 가문의 입장 때문에 그들의 말을 따라야 했던 이들 중 회유가 가능한 자들을 따로 자비라는 이름으로 용서해 주었다.
병사들은 이른 아침까지 황궁의 시체를 치우고 황궁 안 경호를 강화했다. 사람들이 하루를 시작할 아침이 되었을 때는 밤사이에 있었을 반역 사건에 대한 간단한 내용을 설명하는 벽서를 수도 곳곳에 붙였다. 아무리 짧은 시간 내에 제압했다고 해도, 황궁으로 향하는 길목에 전투 흔적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빨리 공표를 하고 불안을 없애는 것이 우선이었다.
모든 것이 이미 준비해 놓은 것처럼 진행됐다. 이번 하룻밤의 반역 사건 때문에 루이스의 황권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졌고, 헤레이스 역시 루이스의 든든한 우호 관계가 되었다.
어느 정도 상황이 수습된 것을 확인한 후에야, 나와 헤레이스는 공작가로 돌아갔다. 그래 봐야 오후가 되면 다시 황궁으로 와야 하겠지만.
일단, 공작가로 돌아가서 헤레이스와 대화를 나눠야 했다. 하룻밤 사이에 벌어진 일은 어쩐지 현실감이 없었다. 그래서 이미 모두 정리된 일인데도 불구하고 얼떨떨했다.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헤레이스가 내 눈치를 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도저히 정리가 되지 않았다. 물어볼 것이 너무 많았다. 황궁에서 이미 어느 정도 설명을 듣긴 했지만, 그래도 찝찝함이 남아 있었다.
“이제 설명해 주세요.”
상황은 대충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다. 반역이 잘 마무리된 것은 다행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찝찝한 채로 지나갈 수는 없었다.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어떻게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있었는지. 헤레이스는 대체 언제부터 반역을 막을 생각을 했던 건지. 루이스는 어떻게 반역의 존재를 그렇게 빨리 알고 있었는지. 헤레이스가 관리하던 그 별장의 존재는 무엇인지. 모두 들어야 했다.
“언제 폐하와 그런 관계가 됐나요?”
“…폐하께서 외출을 하신 날을 기억합니까.”
루이스가 외출을 했던 날? 기억났다. 갑자기 황궁에서 나왔다가 시비에 휘말려서 사색이 된 시종장이 공작가로 달려왔던 그 날. 내가 기억났다는 듯 헤레이스를 바라보자 그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날 알게 됐습니다.”
역시 헤레이스와 루이스가 손을 잡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