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5화. 11장. 반역의 전말 (2)
헤레이스는 보좌관과 함께 일당이 아지트로 삼는 식당이 잘 보이는 맞은편 식당에 들어가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보좌관을 통해 계속해서 듣던 보고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거리가 시끄러워지더니 헤레이스가 지켜보던 식당에 소란이 일어났다.
“근데 여긴 왜 이리 소란스럽지?”
“원래 그들이 있는 곳이라면 조용한 것이 이상한 일입니다.”
“…….”
“그들이 있는 곳은 언제나 화가 난 사람이 있고 쉴 새 없이 싸움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맞은편 그 식당에서 루이스가 붙잡힌 채로 안쪽으로 끌려가는 것이 보였다.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헤레이스는 한눈에 알아봤다.
“이게 무슨 일이지?”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한 보좌관도 당황한 나머지 멍하니 대답했다.
“글쎄요. 저도…….”
‘왜 여기에 황제가 있는 거지?’
아니, 그 이전에 어떻게 황제 루이스가 붙잡힐 수가 있는 거지? 차라리 황제 루이스가 이곳에서 행패를 부리고 있는 모습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았다.
헤레이스는 여전히 멍한 보좌관을 흘깃 바라보았다. 그제야 보좌관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루이스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것이 아무래도 방 안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헤레이스가 있는 식당에서 잘 보이는 맞은편 식당 홀은 어느새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헤레이스가 이곳에 온 목적인 일당과 루이스가 함께 있다. 우연인가. 하지만 그렇게 넘어가기에는 찜찜했다. 헤레이스는 보좌관이 돌아올 때까지 식당과 거리의 상황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런데 다시 거리가 좀 전과는 다른 분위기로 술렁이더니, 에일린이 식당 앞에 있었다. 어쩐지 상황이 점점 더 꼬여가는 것 같았다.
상황을 알아본다던 보좌관은 조금 늦게 돌아왔다.
“정확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지금 폐하께서 저자들과 시비가 붙은 것 같습니다.”
“…근데?”
“그래서 저자들이 폐하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고 하는데…사실 말이 하나도 되지 않아서 정확한 것은 파악하기가 힘듭니다.”
보고하는 보좌관조차 혼란스러워 보였다. 그 보고를 듣는 헤레이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시비가 붙을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서 루이스가 끌려왔다고? 그건 어떤 경우의 수를 대도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역시 다른 속셈이 있는 건가.’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더 높아 보였다.
“일단 안에 상황을 알아볼 수 있는 데까지는 계속해서 알아봐.”
“네. 알겠습니다.”
헤레이스는 끈질기게 기다렸다. 그리고 결국 저녁이 되어서야 등장한 소녀 덕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
“나중에 저 소녀가 어디로 가는지 조용히 지켜봐.”
“네.”
헤레이스는 보좌관에게 지시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금 전에 맞은편 식당에서 루이스와 에일린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장 공작가로 가서 마차를 가져오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헤레이스는 보좌관에게 마차를 가져올 것을 추가로 지시하고 나서 루이스와 에일린보다 앞서 움직였다. 그리고 두 사람이 가는 길목 앞에서 먼저 도착한 마차와 함께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루이스와 에일린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여긴 어떻게…….”
헤레이스가 마차에서 내리자 에일린의 놀란 얼굴이 가장 먼저 보였다. 그 안에 반가움이 없어서 아쉽기는 하지만…헤레이스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부인이 외출했다는 소식을 듣고 마중 나왔습니다.”
에일린을 향해 싱긋, 웃으면서도 헤레이스는 루이스의 얼굴을 살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황궁을 나와서 시비에 휘말린 거지? 정말 단순한 우연인 건가, 아니면 고의인 건가. 하지만 도무지 루이스의 의도를 파악할 수는 없었다.
귀족 연합의 뒤처리 담당이자 일대를 장악한 망나니 ?그리고 어처구니 없게도 잠시 루이스를 붙잡기도 했던- 그들이 어디로 향하는지 지켜보는 눈은 사실 두 쌍이었다. 하나는 루이스가, 다른 하나는 헤레이스가 보낸 것이었다. 루이스와 헤레이스의 명령이 모두 한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 * *
그들은 귀족들의 심부름을 하면서도 막대한 돈을 받지만, 그들의 진짜 수입원은 따로 있었다. 자신들이 하는 일의 뒷배가 필요하기 때문에 귀족들에게 붙은 것이 오히려 타당한 순서일지도 모른다.
부하 중 한 명이 정신이 나간 것처럼 뛰어 들어왔다.
“크, 큰일 났습니다…!!”
얼마나 뛰어왔는지 머리가 휘갈겨지고 얼굴도 꼴이 아니었다. “크하하하-!”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모두 크게 웃으며 그를 향해 한마디씩 했다.
“그럴 때가 아닙니다!!”
하지만 보통 이럴 때면 얼굴이 빨개지거나 대들기라도 했을 부하가 어쩐지 눈을 부릅뜨고 자신을 비웃는 자들을 노려보았다.
“지금 저희 사람들이 한 명씩 비명 횡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마치 불길함을 예고하는 것 같은 일들의 연속.
그리고 그들은 치안을 불안하게 만든다는 명목으로 그들의 아지트와 모든 사업장을 수색당했다. 그 과정에서 불법 고리대금과 인신매매에 관한 문서가 발각되었다. 그걸로 그들은 끝이었다. 모두가 한 명도 빠짐없이 잡혀가고, 비밀리에 만들어 잡아 온 아이들을 가둬 놓던 공간도 발각당했다.
처음에 그들은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지하 감옥에 나타난 루이스를 보는 순간 모든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조금이라도 편하게 죽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지.”
“그게 뭡니까. 무엇이든 말하겠습니다…!”
“너희가 취급하는 독에 대해 모두 말해라.”
“그, 그건…!”
“왜 아직도 용기가 필요한 건가.”
루이스가 음산하게 말하며 다가갔다. 루이스가 그들에게 주는 ‘용기’라는 것은 뻔했다.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이 오로지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하게 만들어 주는 것. 루이스의 의도를 알아차린 순간, 그들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외쳤다.
“말하겠습니다! 다 말하겠습니다!”
루이스가 씨익, 웃었다.
* * *
루이스는 지금 이 시간을 한번 살아 봤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반역이 일어난 후, 헤레이스의 손에 의하여 죽고 마지막 눈을 감기 전에 에일린이 괴로워하던 모습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과거로 회귀했다.
그는 과거에 딱히 잘한 것이 있는 것도, 엄청난 후회가 있지도 않았다. 다만 혼자 남았을 에일린이 걱정되기는 했다. 그래서 문제의 씨앗들을 조용히 정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시키기엔 애매한 일들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반역에 대한 것을 모두 알고 있다는 것을 누군가가 알게 된다면, 이 기억들이 쓸모가 없어졌다. 그렇기에 루이스는 최소한의 인원을 제외하고는 직접 모든 것을 처리했다.
루이스는 수도에서 인신매매를 하며 돈을 축적하고 귀족 연합의 뒷심부름을 하는 자들을 완전히 파괴했다. 이제 귀족 연합은 새로운 세력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때 루이스는 사람을 심어 넣을 생각이었다. 그들의 움직임이 모두 루이스에게 들어오도록.
그런데 루이스는 시종장으로부터 예상외의 보고를 들었다. 시종장이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루이스는 귀족 연합의 손발을 묶어 놓을 생각이었다. 분명 처음에는 생각한 대로 모든 것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계획이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했다.
루이스가 일부러 만들어서 소문을 흘리기 시작한 신흥 세력 외에 다른 집단이 생겼다.
그뿐이 아니었다. 루이스는 인신매매를 하는 자들에게 법에 알맞은 벌을 주었다. 그 말은 곧 살아남을 수 있는 자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루이스는 최소한의 인력만 남겨서 그들에게 그동안 귀족 연합의 명령으로 했던 짓들을 하나씩 털어놓도록 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그들에게 접근했던 자가 루이스 외에 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계속 방해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방해…?”
설마 누가 눈치라도 챈 건가. 만약 그런 놈이 있다면 방해꾼부터 처리하면 될 일이다. 루이스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형식적으로나마 물었다.
“그게 누구지?”
“헤레이스 공작입니다.”
생각하지도 못한 이름이었다. 아니, 어쩌면 아주 조금쯤은 예상했을지도. 루이스는 그날, 헤레이스가 에일린을 데리러 왔다며 마차를 대동한 채 나타났던 것이 떠올랐다.
“그때 그게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나.”
그런데 루이스와 헤레이스의 동선이 겹친 것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루이스가 뭔가를 하려고 할 때마다 거기에 헤레이스도 끼어들었다. 결국, 루이스가 참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직접 확인을 해 보지.”
일부러 끼어드는 건지. 아니면 어쩌다 보니 겹치게 되는 건지.
루이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대로 거침없이 황궁을 나가 헤레이스를 직접 만나기 위해 향했다. 시종장과 최소한의 호위가 따라붙었다.
* * *
하지만 이와 비슷한 보고를 받은 사람은 루이스뿐만이 아니었다. 공작가의 집무실에서 헤레이스 역시 보좌관에게 보고를 받고 있었다.
“왜 아직도 해결이 안 되는 거지?”
최근 헤레이스가 보좌관에게 지시한 것이 계속 늦어지고 있었다.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그게 뭐지.”
헤레이스의 물음에 보좌관은 난처해하며 대답을 머뭇거렸다. 하지만 헤레이스가 대답을 재촉하자 입을 열었다.
“황제입니다.”
헤레이스는 문득 루이스가 황궁을 나왔던 날이 떠올랐다. 그때 만약 루이스가 일부러 끌려갔다면 그건 무슨 속셈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거였나.
“설마…그때 에일린을 데리러 온 게 목적이 아니었던 건가.”
헤레이스가 혼잣말을 했다. 보좌관은 헤레이스의 얼굴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글쎄…….”
헤레이스는 한동안 고민했다. 하지만 황제가 방해가 된다면 헤레이스가 앞으로 하는 것마다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역시, 통하지 않더라도 직접 뚫어야 했다.
“어쨌든 황제를 한번 보러 가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