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6화. 11장. 반역의 전말 (3)
루이스와 헤레이스가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역시 여기 있군.’
약속을 한 것도 아니었지만,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루이스는 헤레이스를, 헤레이스는 루이스를 만나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이었다.
루이스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어째 자꾸 마주치는군.”
루이스는 여기서 헤레이스의 목적을 확인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만약 이게 자신을 방해하기 위한 짓이라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마치 사냥감을 탐색하듯이 루이스는 헤레이스의 행동 하나까지 모두 훑고 있었다.
헤레이스 역시 의미심장하게 대꾸했다.
“그러게요. 어쩐지 자꾸 폐하와 제가 하는 일이 겹치는군요.”
두 사람 모두 서로를 떠보고 있었다. 상대방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인지. 목적이 무엇인지. 긴장감이 흘렀다.
“대체 요즘 뭘 하고 다니는 거지.”
무슨 짓을 하고 다니기에 내가 하는 것마다 끼어들어서 방해를 하는 거지? 루이스의 질문에 헤레이스가 여유롭게 대답했다. 마치 루이스가 최근에 하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는 듯이.
“폐하께서도 요즘 꽤 바쁘신 것 같습니다.”
루이스의 얼굴이 한순간에 일그러졌다. 하지만 헤레이스의 말이 그 뒤로 더 이어졌다.
“제가 하는 일마다 방해를 하시느라 말입니다.”
헤레이스의 말은 충분히 도전적이었다. 루이스가 자신을 방해하는 것에 대한 비난이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루이스는 그 말에 분노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순간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헤레이스의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헤레이스가 하려는 것마다 일부러 가로막는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런 식으로 방해를 받은 것은 루이스 자신이었다.
루이스의 눈썹이 위로 꿈틀거리며 올라갔다.
‘무슨 꿍꿍이지?’
루이스는 헤레이스가 지금 자신을 떠보고 있는 것인가 싶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 제발 방해하지 말아 주십시오.”
“대체 무슨 소리지?”
루이스는 헤레이스의 말을 끊었다. 아무리 봐도 헤레이스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는 건, 루이스가 느꼈던 답답함을 헤레이스도 그대로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내가 훼방을 놓는다라…그럼 그대는 대체 왜 그 일들을 한 거지?”
루이스는 지금 헷갈렸다. 정말로 헤레이스는 자신을 방해하려던 게 아니라, 따로 그들에게 목적이 있었다는 건가. 하지만 대체 왜?
‘설마…….’
앞으로 벌어질 반역의 흐름을 끊는 방법 중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것, 심지어 귀족 연합들마저도 반역을 막기 위해 한 일이라고는 의심하지 못할 방법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그들에게 붙잡히는 척까지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헤레이스도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니.
‘혹시…….’
헤레이스 역시 루이스의 반응이 심상찮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연히 자신이 하는 짓을 언제나 마음에 안 들어하는 루이스가 자신을 괴롭히기 위해 하는 행동인 줄 알았다.
헤레이스는 이전부터 그들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귀족 연합이 헤레이스가 그들을 처리하려는 것을 눈치챌까 봐 조심하면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움직이려고 할 때마다 루이스가 방해가 됐다. 그래서 확신했다. 자신이 그들에게 접근하려는 것을 깨닫고 중간에서 가로막고 있는 것이라고.
반역을 막으려고 하는 건데, 정작 루이스가 그걸 방해하다니 답답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건가.
루이스와 헤레이스는 동시에 의심을 품었다. 이미 회귀를 한 사람이 있었다. 그렇다면 꼭 한 명이라는 법은 없지. 루이스와 헤레이스의 시선이 얽혔다. 복잡한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루이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설마 전부 기억하는 건가.”
헤레이스의 미세한 표정까지도 살피느라 미간이 구겨졌다.
헤레이스는 침묵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루이스는 더더욱 확신했다. 두 사람이 서로 같은 의심을 하고 있다는 것도, 그것이 무엇인지도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루이스와 헤레이스는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루이스는 확신하며 말했다.
“기억하는군.”
헤레이스 역시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루이스도 회귀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 놀란 얼굴이었다.
루이스가 대뜸 물었다.
“기분이 어떻지?”
“…무엇을 말입니까.”
“공작 그대가 죽인 내가 이렇게 살아 있는 걸 보는 기분이 어떤가 싶어서 말이야.”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헤레이스는 진심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살아계시기에 부인도 지금 살아 있는 것이니까요.”
루이스가 살아 있지 않으면 그에겐 기회 따위 생기지 않는다. 그것을 이미 한 번 뼈저리게 깨달았다.
“독은…이제 괜찮으십니까.”
“신경 꺼라.”
사실, 회귀 전 루이스는 독에 중독된 상황이었다. 그것을 멍청하게도 너무 늦게 알아차렸다. 이 상황에서 반역을 막는다고 해도 루이스는 오래 살지 못했다. 결국, 루이스를 기다리는 것은 죽음밖에 없었다. 후계가 없으니, 루이스가 죽은 뒤엔 결국 귀족 연합들의 세상이 될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루이스는 헤레이스와 거래를 했었다.
반역이 일어나도 루이스는 그들을 막지 않을 것이다. 다만, 에일린의 안전만큼은 보장해 주는 것으로. 하지만 헤레이스가 뭔가를 하기도 전에 에일린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루이스는 자신이 죽은 후, 에일린이 어떻게 됐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이 회귀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다지 괜찮지 못했으리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루이스는 회귀를 한 후, 자신의 몸에 닿는 것, 입에 들어가는 것 모두 철저하게 관리했다. 다시는 그런 일에 당하지 않도록. 독에 중독되는 것 외에도 자신의 몸에 일어날 수 있는 것들을 철저하게 관리했다.
그러니 지금 헤레이스가 회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 순간,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루이스가 헤레이스에게 물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쩔 작정인 거지?”
서로 회귀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그게 독이 될지 약이 될지는 아직 모르는 것이었다.
헤레이스가 루이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덤덤한 듯 단호하게.
“폐하의 편이 되겠습니다.”
흔들림 없이 내뱉는 헤레이스의 대답은 루이스에게는 뜬금없는 말이었다. 그가 물어본 것은 앞으로 에일린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어본 것이다. 물론 그 안에는 반역 사건도 얽혀 있긴 하지만.
하지만 루이스가 죽고 그 이후의 일을 아는 헤레이스는 생각이 달랐다. 루이스를 지키는 것. 그것이 에일린을 지키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이제는 알았다. 그러니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루이스를 지키는 것을 우선으로 할 것이다.
헤레이스가 의미심장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이용당해 드리겠습니다.”
루이스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천천히 입꼬리를 한쪽으로 끌어올렸다.
“그렇다면 사양하지 않고 마음껏 이용해 주지.”
루이스 역시 맞받아치며 미소를 지었다. 어쩐지 이 순간만큼은 두 사람의 사이가 굉장히 친밀해 보였다.
하지만 서로 손을 잡는 것과 관계의 변화는 다른 것이었다. 두 사람은 그 후에도 여전히 대립하고 부딪히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그러다가도 두 사람은 결정적인 순간에 기가 막히게 합이 잘 맞았다.
* * *
하지만 앞으로 벌어질 일을 모두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헤레이스와 루이스뿐만이 아니었다. 그토록 원하던 결혼을 했는데도 루이스를 보자마자 눈물을 펑펑 흘리고, 헤레이스에게 철저하게 벽을 두었던 에일린.
한밤중에 그녀가 갑자기 루이스를 찾아왔다. 심각한 얼굴을 하고 혹시라도 누군가가 들을까 봐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헤레이스가 반역을 일으킬 겁니다. 이미 준비가 상당히 진행된 것 같습니다.”
에일린은 헤레이스를 필두로 한 귀족 연합의 반역, 그녀가 직접 눈으로 확인한 헤레이스의 별장까지 모든 것을 상세하게 말했다. 루이스는 에일린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들었다.
에일린이 돌아간 후, 시종장이 물었다.
“어찌하실 겁니까.”
하지만 루이스는 손가락만 까딱이며 생각에 빠졌다.
“글쎄.”
에일린이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회귀해서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에일린 혼자가 아니었다. 루이스와 헤레이스 역시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어차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그들이 반역을 실행하는 순간을 기다리면 되는 문제였다.
“헤레이스 공작에게 한 번 들리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일단 당부를 해 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헤레이스는 연락을 받자마자 루이스를 찾아왔다. 물론,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은밀하게.
“에일린이 모두 알고 있더군.”
“!!”
“전혀 눈치를 못 챈 건가.”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다.”
헤레이스는 내심 당황하고 있었다.
에일린의 달라진 행동에서, 헤레이스도 조금씩 의심하고 있긴 했다. 그녀가 회귀한 것이 확실하다 생각되면서도, 내심 헤레이스는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루이스의 말로써 분명해졌다. 에일린 역시 회귀했다. 그나 루이스와 마찬가지로.
“해명하지 마라.”
“…….”
“에일린이 의심할수록 다른 귀족 연합 역시 그대를 믿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루이스의 단호한 명에 헤레이스는 고개를 숙였다.
헤레이스가 귀족 연합군에 대한 정보를 루이스에게 전달해 왔다. 그렇기에 루이스는 누구보다 먼저 그들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비밀이었다. 누구에게도 누설되어서는 안 되는.
헤레이스는 에일린이 자신을 계속 주시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에일린이 아무것도 모르는 척 헤레이스의 곁에 있으면서 그를 감시한 것처럼.
그렇게 반역을 실행하는 날은 점점 더 가까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