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7화. 11장. 반역의 전말 (4)
헤레이스로부터 루이스에게 서신이 왔다. 공식적으로 보낸 서신도, 서신에 헤레이스 공작이 보냈다는 표시도 없었지만, 몇 번이고 서신이 오고 갔다.
헤레이스는 귀족 연합군의 상황에 대해 짧게 알려 왔다.
[실행일이 조금 앞당겨질 것 같습니다. 그때가 되면 다시 신호를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귀족 연합군 측에서도 의심하는 사람이 생긴 것 같았다. 그렇기에 위험 요소가 더 늘어나기 전에 빨리 거행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헤레이스로부터 갑자기 서신이 왔다. 그 안에는 짧은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모든 준비가 되었습니다.]
서신을 확인한 루이스는 슬슬 시작하기 위해 일어났다.
모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은 헤레이스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귀족 연합군들이 반역을 실행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 오늘 밤에 반역을 일으킬 것이라는 뜻이었다.
* * *
황궁 안에서는 병사들이 오늘 밤을 대비해서 비밀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겉으로는 평소와 같은 모습이었지만, 그 안에 감도는 긴장감은 엄청났다.
한편, 루이스는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오늘 밤을 대비하기 위해 직접 상황을 지휘하고 있었다. 평소에 일정을 취소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갑자기 모든 일정을 소화하는 것보다 취소하는 것이 루이스에게는 더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루이스가 병사들을 진두지휘하다가 갑자기 한곳을 바라보며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왔군.”
루이스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룩센 황태자가 있었다.
귀족 연합군의 숫자는 꽤 많았다. 황궁에 있는 근위대들로 감당하기에는 단번에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 루이스는 압도적인 승리를 원했다. 그들이 쳐들어오는 순간 한 번에 압살할 수 있는 압도적인 결과. 그래서 다시는 이런 짓을 생각할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그래서 룩센 황태자가 연회에 참석했을 때 제안했다. 룩센 황태자가 도와준다면 병력적인 지원 외에도 국경 밖으로 새어 나가는 반역의 잔당들을 차단할 수 있었다.
‘나중에 빚을 갚을 생각을 하며 귀찮기는 하지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나중에 그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한 번 도와주지, 뭐. 루이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룩센 황태자는 연회 참석을 핑계로 제국에 방문한 뒤에 돌아가지 않은 채 머무르고 있었다. 그때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발생하기는 했지만. 덕분에 양국의 협의는 순조로워졌다.
룩센 황태자가 루이스에게 말했다.
“늦지 않은 것 같군요.”
룩센 황태자는 소수 정예만 데리고 비밀리에 황궁에 왔다. 그가 데리고 온 나머지 병력들은 수도 외곽에서 대기 중이었다.
모든 준비가 되었다. 이제 밤이 될 때까지 기다리면 됐다. 헤레이스가 보낸 서신에 의하면 반역은 오늘 밤에 일어나는 것이 확실했다.
곧 해가 지고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결전의 시간이 점점 다가온다는 뜻이었다.
어느새 밤이 되었고, 황궁엔 침묵이 감돌았다. 이제 곧 반역이 일어날 걸 공기마저도 아는 것 같았다.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시종장이 달려와서 루이스에게 보고했다.
“시작되었습니다!”
루이스가 옆에 있는 검집을 잡아 들고 천천히 일어났다. 여전히 여유가 넘쳐흐르는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날카로웠다. 반역을 일으켜 루이스를 황위에서 끌어내리려는 귀족 연합군과 그들을 저지하기 위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황궁으로 들어오는 것은 덫 안에 스스로 들어오는 쥐새끼와 마찬가지였다. 루이스는 살기 띤 미소를 지으며 황궁 안으로 의기양양하게 쳐들어오는 자들을 지켜보았다.
“그나저나 방어만 하니 지루하군.”
루이스의 말에 시종장의 어깨가 경직되었다. 그 말은 결국 나서서 직접 싸우겠다는 뜻이었다.
철저하게 방어하고 역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승리할 수 있는 싸움이었다. 하지만 루이스는 그 정도의 승리는 너무 약하다고 생각했다. 루이스는 그들을 향해 중얼거렸다.
“마음껏 날뛰어 봐라.”
루이스는 마치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것 같았다. 과거에 그가 폭군이라는 악명을 떨치게 했던 그 날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타인의 피로 온몸을 뒤집어쓰고도 웃는 루이스의 모습이.
이미 철저하게 방어 체계를 구축해 놓은 상황이었다. 귀족 연합군은 이를 쉽게 뚫고 나갈 수 없었다. 그 한가운데에서 누구보다 가장 날뛰고 있는 사람은 루이스였다. 루이스는 사실상 지금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피가 튀고 사람들의 비명이 흐르는 지옥 같은 현장에서.
룩센 황태자는 움직임 하나하나가 절도 있었다. 감정을 마음껏 발산하며 적을 무찌르는 루이스와는 달리, 룩센 황태자는 모든 감정을 죽이고 오로지 이기기 위해서 검을 휘둘렀다.
귀족 연합군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당황한 듯 무력하게 쓰러져 갔다. 그들의 중심에는 헤레이스가 있었다. 헤레이스는 귀족 연합군과 함께 황궁에 입성했다. 그리고 황궁 근위대와 마주치는 순간, 헤레이스와 공작가의 기사들은 황궁의 편에서 귀족 연합군을 상대했다.
아군이 갑자기 적으로 돌변하자 귀족 연합군은 당황했고, 배신감에 분노했다. 하지만 분노가 싸움에서 이기게 해 주지는 않았다.
헤레이스는 상황을 어느 정도 정리한 후에, 뒤늦게 합류했다. 루이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헤레이스를 발견한 루이스가 무심하게 물었다.
“에일린은?”
하지만 실은 굉장히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헤레이스가 대답했다.
“일찍 잠들었습니다.”
에일린이 자고 일어났을 때는 모든 것이 끝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에일린이 오늘은 유난히 피곤해서 일찍 잠들도록 조치를 취했다. 헤레이스 역시 에일린이 잠든 것까지 확인한 후에 공작가에서 빠져나와 움직였다. 최대한 에일린이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하도록.
헤레이스와 마주친 루이스가 말했다.
“감회가 새롭군.”
그의 말은 농담 같기도 하고 뼈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헤레이스도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이번엔 폐하와 같은 편입니다.”
피식, 루이스가 비웃었다. 하지만 헤레이스는 생글생글 웃었다. 루이스는 순간 미간을 확 구기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루이스와 헤레이스가 처음부터 손을 잡은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은 각자의 기억을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미래로 바꾸기 위해 움직였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의 동선은 계속해서 겹쳤다. 결국, 두 사람의 목적은 같았다. 과거의 비극을 없애고, 에일린을 지켜 내는 것. 이를 위해서 두 사람은 손을 잡았다.
그러기 위해 조직한 것이 별장에서 훈련하던 사병들이었다. 그들은 이번에 귀족 연합군의 후미에서 공격해 그들의 행렬을 저지하는 데 일조했다.
어느새 핵심 세력이 붙잡혔다. 근위대장에 의해 루이스의 앞에 무릎이 꿇린 채 엎드렸다. 루이스는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나를 죽이고 나면 누굴 내 자리에 앉히려고 했지?”
그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실패한 반역이었다. 대답은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루이스는 그들을 향해 피식, 비웃었다.
“에드문드?”
고작 그런 놈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냐는 조롱이기도 했다.
“나를 죽이고 나면 그놈을 앉혀서 허수아비로 만들려고 했나.”
루이스의 뒤에서 지키고 있는 헤레이스는 왠지 식은땀이 흘렀다. 루이스의 조롱은 헤레이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과거에는 그가 한 일이었으니까.
루이스의 조롱은 더욱 적나라해졌다.
“어쩌지. 그렇게 안 돼서.”
그럴수록 붙잡힌 귀족들은 이를 악물었다. 그들이 루이스를 죽일 듯이 노려본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들이 자신들을 누르고 있는 발의 압력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루이스를 이길 수 없었다.
갑자기 붙잡힌 귀족들 중 한 사람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말 이긴 것 같나.”
여전히 루이스를 이길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처럼.
“네 몸에 뭐가 흐르는지도 모르고 잘난 척하기는.”
귀족의 말에 루이스는 실소를 금치 못하며 말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 그 독이 누구의 몸에 흐르고 있는지.”
귀족들이 눈에 띄게 동요했다. 루이스가 독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다. 귀족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믿고 있던 구석, 그것은 루이스의 몸에 있을 독이었다. 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공을 들여 루이스가 독을 먹도록 해 왔다.
하지만 루이스는 그런 귀족들을 비웃으며 그들을 향해 차갑게 내려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에겐 재판도 없을 것이다.”
루이스는 슬쩍 눈짓을 하자, 지키고 있던 근위대장이 검을 빼며 나섰다. 하지만 근위대장은 그들을 베지 않았다. 그들이 꼼짝할 수 없도록 위협을 할 뿐이었다. 그들이 어리둥절해 하자, 주위를 지키고 있던 병사들이 작은 병에 있는 독을 억지로 먹이기 위해 다가왔다.
“서, 설마…!”
그들이 독을 보고 놀랐다. 병사들의 손에 있는 독은 위험하긴 하지만 치사량은 아니었다. 하지만 루이스의 말을 떠올려 보면 달랐다. 자신들의 몸에 쌓여 있는 독이 있다는 것이었다. 저 작은 병에 있는 독을 먹는 순간, 치사량을 넘기는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어떻게든 독을 먹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지만, 결국 입안으로 독이 흘러들어와 넘어갔다. 그 순간, 피가 사방에 튀었다. 그들이 입에서 뿜어낸 피로 인해.
즉결처분. 그들은 어떤 변명이나 협상의 기회도 얻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루이스는 무표정하지만 냉기 어린 얼굴을 유지했다.
상황이 모두 마무리되어 가고 있을 때였다. 여전히 좋은 관계라고 할 수는 없지만, 오늘만큼은 루이스와 헤레이스는 굉장히 합이 잘 맞았다.
“황녀 전하께서 황궁에 오셨습니다.”
“뭐? 어떻게?”
분명, 깊은 잠에 빠지도록 했을 텐데. 루이스와 헤레이스가 모두 놀란 눈이 되었다. 본능처럼 바로 에일린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