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도 바쁜 황녀님-92화 (92/124)

?제92화. 외전 4. 하필 오늘이라니 (헤레이스 외전) (4)

문제는 그 후에도 벌어졌다. 그날을 시작으로 내가 상단에 접근하여 독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려고 할 때마다 루이스가 보낸 것이 분명한 황궁 소속의 기사, 시종들과 계속 부딪혔다. 서로 원하는 것이 같은 것처럼.

게다가 상단은 루이스에 의해 완전히 와해되고 있었다. 나는 당황했다. 그들이 완전히 와해되기 전에 독의 정보와 해독제의 존재를 알아내야 했다.

“계속 방해가 되는군.”

루이스가 하는 일이 내 일을 방해했다. 루이스를 살리려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서로 누가 먼저인지 싸우듯이.

“만나봐야겠군.”

하지만 황궁으로 찾아가지 않아도 될 것이다.

마침 아직 남은 잔당들이 수입해 오는 물건과의 거래가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게 마지막 거래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번에 그 현장을 꼭 잡아야 했다. 그리고 아마도 그곳에 루이스가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에일린이 회귀한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루이스 역시도 회귀했다고 해도 놀랄 일이 아니었다.

역시나 그 자리에 루이스도 있었다. 그리고 그는 나를 보자마자 알고 있냐고 물었다. 역시나 루이스도 회귀를 한 것이었다. 그럼 설마……. 나는 루이스에게 물었다.

“폐하께서도 알고 계십니까.”

루이스가 한쪽 눈을 살짝 찡그렸다. 무엇을 또 알아야 하느냐는 듯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내가 회귀했고, 루이스도 회귀했다. 그렇다면 루이스 역시 알고 있거나 아니면 적어도 의심하고 있을 것이다.

“부인 역시…….”

“네놈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모두 기억하고 있다는 거 말이군. 알고 있다.”

역시나 루이스도 에일린이 회귀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내가 회귀한 사실 역시 자연스럽게 눈치챘던 거겠지.

“언제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처음 에일린이 나를 보자마자 울었을 때.”

“!!”

“뭐지, 그 얼굴은. 설마 그때 그걸 보고도 몰랐던 건가.”

루이스는 나를 비웃듯이 비뚜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에일린이 그때 눈물을 흘린 것은 회귀 전, 자신의 앞에서 죽은 루이스가 살아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루이스는 그 모습만으로도 단번에 그녀가 회귀했음을 알아차렸고.

“근데 왜 아는 척하지 않으신 겁니까.”

분명 에일린은 루이스가 모든 걸 알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렇기에 혼자서 아등바등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말할 자격이 없지만, 루이스는 어째서 말하지 않은 거지.

하지만 루이스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런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까.”

그리고 내가 회귀한 사실을 알게 되었으면서도 여전히 에일린에겐 어떤 말도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 * *

나는 외진 곳에 위치한 공작가 소유의 별장에서 따로 사병들을 훈련 시켰다. 기사가 아닌 철저하게 용병들로 이루어진 사병. 그들은 귀족 연합의 눈을 피해 움직일 수단이었다. 혹시 모른 상황을 대비해 준비해 놓은 병력.

“아무래도 마님께서 다녀가신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군.”

침입자가 있었다는 보고는 없었다. 하지만 사라진 문서가 있었고, 흔적이 남아 있었다. 에일린과 에밀이 다녀간 것이 분명했다.

‘역시 계속 쫓고 있었군.’

에일린은 여전히 나를 의심하고 있었다. 내가 반역을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해서 내 행동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녀로서는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래도 가끔씩 마음 한 편이 쓰린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다. 곧 반역이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실패할 것이다. 그렇게 준비해 놓았으니까.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렇게 될 것이다.

“나는 여전히 네놈이 마음에 안 들어.”

나는 단번에 루이스가 왜 이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나는 여전히 네놈이 마음에 안 들어.’

그건 회귀 전, 루이스의 목숨이 완전히 끊기기 전에 했던 말이다. 그땐 내 손으로 루이스의 목숨을 끊었고 이번에는 그의 목숨을 지킬 것이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의 말에 피식, 웃었다.

“상관없습니다.”

내 말에 루이스의 눈썹이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저도 폐하가 좋아서 이러는 게 아니니까요.”

루이스를 위해서가 아니라, 에일린을 위해서 루이스를 지키는 것이니까. 우리는 이대로 서로 악연이라고 생각하면서 서로 지키고 싶은 사람을 지키면 되는 것이었다.

내 말을 이해했는지 루이스도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런 거지.”

나와 루이스는 손을 잡은 것은 오로지 반역을 막기 위해, 그래서 에일린을 지키기 위해 하는 수 없이 협력할 뿐이었다. 루이스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고 나 역시 그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어차피 우리의 목표는 명확하니까. 그것을 성공하기만 하면 될 뿐이다.

“에일린이 황궁에 오지 않도록 해.”

“그렇게 하겠습니다.”

에일린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모든 상황이 마무리되면 그때 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회귀 전에도 그러했듯이 에일린은 황궁에 왔다.

* * *

모든 얘기를 다 하고 난 후, 나는 에일린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좋아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나는 어떻게든 내 진심이 에일린에게 전달되기를 바라면서 말 한마디에도 마음을 꾹 눌러 담았다.

“회귀하기 전에도 회귀한 지금도…언제나 좋아했습니다.”

회귀를 하고도 한참이 지났지만, 이제야 겨우 하는 고백이었다. 처음 결심한 대로 반역을 막고 나서.

“지금까지의 실수를 이제라도 모두 돌리고 싶습니다.”

에일린은 아무 말 없이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어서 마음이 초조했지만, 나는 그래도 끝까지 말을 이었다.

“회귀한 사실을 알았을 때…그리고 그게 우리가 결혼한 날이라서…….”

“…….”

“많은 날 중에 하필 그날이라서…….”

“…….”

“다행이라고.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에일린을 지킬 수 있어서. 그녀와 나의 결혼생활에 한 번도 주지 못한 애정을 줄 수 있어서. 이번에도 내가 그녀와 부부여서. 정말 다행이라고, 회귀한 그 날 황궁에서 공작가까지 오는 내내 나는 주위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눈물을 쏟았었다.

12장. 하지만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1)

반역은 일어났지만 실패했다.

결국, 루이스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귀족 연합은 반역의 책임을 지면서 가문 자체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헤레이스는 이번 반역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 어쩌면 회귀 전에도 얻었을지도 모르는 부와 명예. 회귀 전에는 반역을 주도해 성공시켰기 때문에. 이번에는 반역을 저지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웠기 때문이었다.

반역은 그대로 일어났지만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한 번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것처럼 모든 것이 좋은 방향으로 흘렀다.

이대로 정말 다 괜찮을 걸까. 나는 여전히 마음을 완전히 놓지 못한 채 깊은 생각에 빠지곤 했다. 내가 생각에 빠진 채 아무 반응이 없자, 에밀이 큰 소리로 외쳤다.

“이제 준비하셔야 합니다.”

오늘 헤레이스와 외출하기로 했다. 반역을 정리하느라 그날 이후, 헤레이스를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헤레이스의 고백을 모두 들은 후, 이번이 처음으로 하는 외출이었다.

간단하게 외출 준비를 한 후, 현관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공작가의 마차와 함께 헤레이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출발하죠.”

헤레이스가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가 긴장한 모습이 보였다. 그가 내민 손 위에 내 손을 얹었다.

나와 헤레이스가 마차에 탑승하자 마차는 곧 출발했다.

헤레이스가 나를 데리고 도착한 곳은 황도 내에서 내가 결혼 전부터 관리하고 있던 공원이었다.

제국에는 아름다운 공원이 여럿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귀족들이 장악하다시피 해서 일반 사람들은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황녀이던 시절, 그런 사람들을 위해 만든 공원이 있었다. 의료 복지나 구휼만큼이나 사람들이 쉬고 싶을 때 즐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었다.

나를 본 제국민들이 다가와서 인사를 했다.

“덕분에 저희 애들이 너무 좋아합니다.”

“감사합니다.”

그곳에는 연인들도 있었지만, 어린아이들과 함께 오는 가족들이 많았다.

“왜 여기로 온 건가요.”

“부인이 만든 곳인데 한 번쯤 오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헤레이스가 걱정스레 물었다.

“혹, 불편한 것입니까? 사람들에게 자연스레 노출되면서 의미도 있는 곳이라 선택한 것인데.”

‘그럴 리가.’

물론 좋았다.

그때 이 공원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쓸데없는 곳에 예산을 쓴다고 얼마나 많은 욕을 먹었었다. 그래도 루이스가 지지해 준 덕분에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공원을 만들고도 내가 오면 괜히 일반 백성들에게 방해가 될까 봐 한 번도 온 적 없는 곳이었다.

“고맙습니다.”

이곳에 데려와 준 것만큼은 그에게 고마웠다. 이곳에 와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덕분에 찾아올 수 있었다. 내가 웃으며 말하자, 헤레이스가 멀리서 이곳을 신기한 얼굴로 쳐다보는 꼬마에게 인사하며 당연한 듯 말했다.

“아이들을 좋아하시지 않습니까. 폐하와 부인 모두.”

그때 마침, 헤레이스가 말하는 그 어린 소녀가 멀리서 동생의 손을 꼭 붙잡고 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 어린 소녀가 루이스가 황궁에 나왔을 때 소동이 일어난 원인이었던 바로 그 소녀라는 것을. 어떻게 저 아이가 여기에 있는 거지? 지금 이 상황이 어리둥절했다.

헤레이스를 보니, 그 역시 어린 소녀와 그 옆에 있는 소녀보다 머리 하나가 작은 남동생을 보고 있었다.

“저 아이를 만나게 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

“좋아할 것 같아서요.”

헤레이스가 내 눈치를 보는 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미소를 지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