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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바쁜 황녀님-98화 (98/124)

?제98화. 13장. 돌아온 황녀 (3)

‘사람이 많은 곳은 아무래도 위험하지.’

그 많은 사람이 보는 와중에 루이스가 무슨 돌출 행동을 할지 몰랐다. 그래서 최대한 사람이 없는 곳에서 조용한 나들이를 보내는 게 좋았다.

“누가 그 장소를 선정한 거지?”

내 물음에 시종장의 어깨가 순간 움찔했다. 그것만으로 답은 나왔다.

‘역시 오라버니야.’

루이스는 언제나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뭔가 하는 걸 좋아했다. 그렇다고 사람들의 관심을 즐기거나 하지는 않았다.

‘단지,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남들처럼 있으면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자신도 느끼게 된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그래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사람들이 많고 사방이 개방되어 있는 곳은 호위가 힘들어요. 또, 그만큼 많은 인력이 필요하고요. 나들이는 최대한 조용히, 최소한의 인력으로 움직일 겁니다.”

“하지만 폐하께서…….”

시종장이 아무 힘없는 변명을 시작하려고 했다.

“폐하께는 비밀로 하세요. 어차피 나들이를 가는 게 중요한 거니까요.”

한마디로 내가 대신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었다. 그 말에 시종장이 고개를 숙이며 뜻을 따르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사실 시종장과 나의 이런 식의 대화는 한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니었다. 결국, 명분을 위한 요행에 불과했다.

“그럼 나들이에 호위 인원은 몇이지?”

“곁에서 지키는 이들로 오십. 떨어져서 주위를 살피는 자들로 이백 정도입니다. 그 외에도…….”

“그건 물론 호위총관이 정한 거겠군.”

“그분은 폐하보다 더 완강하셔서 쉽게 마음을 바꾸시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루이스보다 더한 고집이었다. 하지만 나들이를 가는데 그 숫자는 지나쳤다. 오히려 백성들에게 위압감을 느끼게만 할 것이다. 그래서는 나들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하지만 나들이 장소를 옮기면 호위에 필요한 조건도 달라지지 않은가.”

시종장이 확신에 가까운 우려를 표했다.

“그래도…호위의 수에 큰 변화가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대는 폐하를 보여 주기 식으로 지키는 건가. 폐하의 나들이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호위를 완벽하게 할 방법을 찾도록.”

“…!!”

“호위총관에게 이렇게 전하게.”

“하, 하지만…그것은…….”

호위총관을 무시하는 발언이다. 시종장은 그 말을 하고 싶은데 차마 내 앞에서 직접적으로 하지는 못하겠어서 말을 더듬고 있었다.

“걱정 말고 전하게. 그러면 분명 호위의 숫자를 줄일 테니.”

그는 자존심이 강한 인물이었다. 그보다 낮은 위치의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바로 그의 칼날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을 한 사람이 누구도 아닌 나였다. 황제의 하나뿐인 동생. 그런 내가 하는 말이 처음에 자존심이 상해 분할지언정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실력을 보여 주기 위해서 더 강한 정예 기사들로 호위를 재단장할 것이다.

나들이에 갔을 때 가장 중요한 건 그 두 가지였다. 일단 시종장에게 얘기를 해 뒀으니, 나들이 가기 직전에 다시 한번 확인하면 될 것이다. 그럼 이제 문제는 하나 남았는데.

“우리가 나들이 갔을 때 황궁 안은 어떻게 할 계획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나들이를 간 동안 비어 있는 황궁이 걱정되었다. 언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아무리 반나절의 외출이라고 할지언정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두고 싶었다.

“우선은 재상께서 황궁에 머무시면서 급한 일을 처리해 주시기로 했습니다.”

보통 황제가 자리를 비었거나 직무를 볼 수 없는 상황일 때, 그다음 황위 계승자가 일을 대신하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루이스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동생인 나는 함께 나갈 예정이었다. 그러니 그다음 순서인 재상이 황궁에 있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었다.

“뭐. 그건 그렇게 하도록 하지.”

그 외에도 자잘한 부분에 대해 시종장에게 지시한 이후 그를 돌려보냈다.

황궁 안에 루이스에게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가장 피곤한 사람이 바로 시종장이었다. 루이스와 나 사이를 오가면서 의견을 조율해야 했다. 그 때문에 루이스에게 시달리고 나에게도 시달렸다. 그런 그에게 동정심이 생기긴 한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물어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루이스가 어느 지점에서 내가 상상하지 못할 어처구니없는 지시를 할지 몰랐다.

회귀 전에 루이스에게 이런 일로 뒤통수를 맞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번에는 부디 안전하게, 무사하게, 어떤 사건도 없이! 돌아오고 싶다.

* * *

준비는 나름 완벽하게 됐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루이스와 올리비아와 함께 나들이를 가는 날.

먼저 기다리고 있던 루이스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왜 이렇게 늦어.”

“…….”

“왜 삐졌냐.”

루이스가 나를 도발하는 게 느껴졌다. 내 반응을 기다리며 빤히 바라보는 게 느껴져서 지지 않고 루이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일부러 더 활짝 웃으며 그의 도발에 화답했다.

‘누가 넘어갈 줄 알고.’

“폐하와 함께 나들이를 간다는 생각에 너무 설렜나 봐요.”

“뭐…?”

“제가 너무 들떠서 준비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결례를 용서해 주세요.”

루이스의 얼굴이 조금씩 어두워졌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었나 보다.

루이스가 굳어 있는 사이, 내가 먼저 마차에 탔다. 루이스에게 등을 보이고 있을 때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씨익.

“그런데 폐하.”

“?”

“업무는 다 하셨나요.”

“그게 무슨 소리냐. 내가 자리를 비워도…….”

“설마 재상께서 할 거라고 미루신 건가요.”

루이스가 순간 움찔했다. 분명 모든 업무를 재상에게 떠넘긴 거다.

“폐하.”

‘왜 자꾸 일을 안 하세요.’라는 말을 함축적으로 담았다. 평소라면 이런 내 호소도 무시했을 루이스였지만. 내가 한 번 죽었다가 되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는 차마 무시하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내 부탁을 들어주는 것도 아니지만.’

내가 루이스를 계속해서 빤히 바라보자, 시선을 회피하던 루이스가 화제를 돌렸다.

“올리비아는.”

뻔한 화제 돌리기에 잠시 고민했지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니까.

“아직 안 왔나요.”

그러고 보니 올리비아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 같았다. 늦을 리가 없는데. 어떻게 된 건지 알아보라고 지시하려는데, 멀리서 다가오는 사람이 보였다.

“어머. 제가 제일 늦었나 보네요.”

올리비아가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루이스와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저게 다 뭐야.’

올리비아는 마치 성대한 연회가 있는 것처럼 화려한 차림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뒤를 따라오는 하녀들의 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짐들이 한 아름씩 있었다.

루이스 역시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며 물었다.

“뭘 챙겨온 거야?”

“하나씩 챙기다 보니 챙길 게 계속 나와서요.”

그녀의 기준에서는 이것도 부족한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올라간 입꼬리는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건 분명 ‘…들떴다.’ 올리비아는 누가 봐도 신나 보였다.

마차가 멈추고 시종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착했습니다.”

내 의견을 반영하여 변경된 나들이 장소는 한적한 공원이었다. 그 뒤에는 산이 있었는데, 황궁 소유의 사냥터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곳이었다.

올리비아가 하늘을 바라보며 싱그럽게 웃었다.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

그녀는 마차로 이동 중에도 쉬지 않고 얘기를 했다. 루이스가 퉁명스럽게 답했다.

“뭐, 나쁘지는 않군.”

하지만 루이스 역시 기분 좋은지 입가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나들이 필수품인 도시락은 나와 올리비아가 준비했다. 그러지 않아도 황궁에서 일하는 주방장이 알아서 잘 준비했겠지만. 올리비아의 도시락은 일품이었다. 음식의 맛뿐만 아니라 색감까지도 살아 있었다.

내 도시락 역시 정성 가득했다. 아침 일찍부터 에밀과 함께 만들었다. 내가 계속 실패해서 에밀이 거의 다 만들다시피 하긴 했지만, 내 정성도 들어가긴 했다.

루이스가 왠지 두려운 얼굴로 나와 올리비아를 봤다.

“여기 독 들어간 건 아니겠지.”

“제가 대신 먹어 볼까요.”

올리비아가 루이스를 대신해 먼저 하나를 집어 먹으려고 했다.

“그럼 제가 다 먹죠.”

하지만 올리비아의 입속에 들어가기 전에 내가 재빠르게 하나 집어서 먹어 버렸다. 나는 짧은 비명을 터뜨렸다.

“앗.”

“역시…….”

루이스가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루이스를 흘깃 보았다가 올리비아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너무 맛있어…….”

“그럼, 누가 만든 건데.”

올리비아가 뿌듯한 얼굴을 하며 집고 있었던 음식을 입안에 쏙 넣었다.

“정말 괜찮은 거냐.”

루이스는 지금 진심이었다. 독이라도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다만 그가 의미하는 독이 일부러 넣은 맹독이 아니라, 독을 먹은 것처럼 지독하게 맛이 없을 거라는 확신이라는 게 조금 달랐지만.

루이스는 여전히 미심쩍은 얼굴로 한입 먹었다. 올리비아가 눈을 빛내며 반응을 기다렸다. 나 역시 루이스의 반응이 조금은 궁금했다.

“어떠세요.”

“어때요.”

우리의 시선을 한 몸에 받던 루이스가 입안에 있던 음식을 꿀꺽 넘겼다. 그러고는 우리를 빤히 보았다. 올리비이가 의기소침한 목소리로 물었다.

“벼, 별로에요…?”

설마. 올리비아가 만든 도시락은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입안에 들어가자마자 녹아내리는 그 맛이란…….

그때까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던 루이스의 굳어 있던 표정으로 입술을 살짝 열었다.

“뭐. 먹을 만하네.”

“정말이세요?”

올리비아가 활짝 웃었다.

“맛있으면 맛있다고 솔직하게 얘기해 주세요.”

내가 재촉했지만, 루이스는 끝까지 맛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도시락을 다 함께 먹은 후에는 다 같이 산책을 하기도 하고, 올리비아가 준비한 차를 마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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