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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바쁜 황녀님-103화 (103/124)

?제103화. 14장.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고 있었다 (5)

“사업 자체는 분명 그렇죠.”

“그런 사업은 단지 귀족들의 돈벌이 수단에 불과해. 귀족들 배 불리는 데 한 몫 거들 생각 따위 없다.”

“저도 그들의 배를 불려 줄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건 귀족들의 취미 생활을 이용해 백성들의 배를 불려 주려는 겁니다.”

“…그래?”

“네.”

루이스의 의미심장한 물음에 순간 불안해졌다. 루이스는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 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입을 뗐다. 마치 나를 시험하듯이.

“그게 왜 뉴튼 백작가여야 하는 거지?”

“때마침 뉴튼 백작가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고 하고, 그 사업이 지원 사업과 병행하기에 적합합니다.”

“다른 가문에서 하는 사업은 확인해 보고 하는 거냐? 그중에 더 적합한 것이 없다고 확신할 수 있나?”

“…….”

루이스의 말에 순간 허를 찔린 듯했다. 루이스는 거봐라 하는 듯이 웃고 있었다. 이대로 밀렸다가는 재검토는커녕 다시 지원 사업에 관해 입도 벙긋하지 못할지도 몰랐다.

나는 최대한 당황한 티를 내지 않으며 생각했다. 루이스의 지적에 할 수 있는 최선의 반론을. 나는 루이스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지원 사업은 뉴튼 백작가가 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익은 원해도 손해는 싫어했다. 그렇기에 다른 가문에 맡길 수 없었다.

“이런 사업은 믿을 수 있는 가문이 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이익이라는 달콤함에 덥석 물었다가도 시간이 지날수록 손해를 눈엣가시로 여기게 된다. 문제는 그때 발생한다.

그때부터 손해나는 부분을 어떻게든 줄이려 하게 된다. 그럴수록 원래의 취지는 무너지고 오히려 더 안 좋은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아무리 황실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라고 해도 한계가 있다. 얼마든지 빈틈을 노려 숨길 수 있었다.

“폐하께서 믿고 맡길 수 있는 가문이…뉴튼 백작가 말고 있으십니까.”

“…….”

‘없다.’ 루이스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보였다. 이때 밀어붙여야 했다. 이제 이 사업을 하게끔 루이스를 설득해야 했다.

“폐하, 지난번에 외출해서 만났던 어린 소녀를 기억하십니까.”

루이스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생각나지만 왠지 함부로 말하면 안 될 것 같다고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하지만 나는 루이스가 그 소녀를 기억하는 게 당연하다는 식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그 소녀를 폐하께서 구해 주신 일이 황도에 파다하게 퍼졌다고 합니다.”

루이스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누가 알기 원하지 않았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자신이 한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싫어했다. 그것도 극도로. 그가 누군가를 구하고 선의를 베푸는 것은 변덕에 가까웠다. 앞으로도 그런 행동을 할 생각이 없고 그 순간에도 딱히 없었지만, 그냥 했을 뿐일 확률이 높았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다음 말을 멈추지 않고 이어 나갔다. 그것도 루이스가 부담스러워할 만큼 한 음절씩 힘을 주면서.

“그 소녀가 그리 말하고 다닌다더군요. ‘폐하께서는 저같이 아무 볼품도 없는 존재까지도 모른 체하지 않고 손을 뻗어주시는 분’이시라고. ‘폐하께서 구해 주셔서 자신과 자신의 동생이 지금까지 살아갈 수 있는 거’라고.”

“어린애의 헛소리다.”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중요한 건 많은 사람이 이제 폐하를 그렇게 보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

“이런 것을 두고 코가 꿰었다는 표현을 쓴답니다.”

“…윽.”

루이스의 미간이 구겨졌다. 하지만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그것은 동의와 마찬가지였다.

내가 환하게 웃자 그 모습을 본 루이스가 고개를 훽, 옆을 돌려 버렸다.

* * *

뉴튼 백작가가 새로 시작하려고 하는 사업은 ‘향’과 관련한 것이었다.

사람들에게 의식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의식하게 되는 것. 그렇기에 매혹적인 것이 ‘향’이었다. 하지만 ‘향’이라는 것은 귀족들에게는 공기와도 같은 존재였다. 지금도 ‘향’과 관련된 제품들은 충분히 많았다.

단, 올리비아가 주목한 것은 ‘향’ 그 자체보다는 그 ‘향’을 대하는 방식에 있었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제품들로 사람들은 ‘향’을 자연스럽게 소비하고 있지만, 그것은 부수적인 것일 뿐이었다. ‘향’ 그 자체만을 전반적으로 내세운 곳은 아직 없었다.

“향이라는 것은 분명 존재하지만 잡히지 않으니까.”

“보이지도 않고.”

“그래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향일수록 그 사람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기도, 신비롭게 만들기도 하지.”

확인할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가까이에 다가갈수록 그 존재감을 더하는 것. 그것이 향이었다. 결국, 그 향을 가둬 둘 형체가 필요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향수였다.

“내가 어떤 향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다양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고, 그게 곧 이미지가 되는 건 굉장한 매력이야.”

“영애들이나 부인들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거군.”

“분위기란 꼭 사랑스럽기만 한 게 아니니까. 위엄이 필요한 순간에도, 냉정해 보이기 위할 때도 향은 그 분위기를 만들어 내.”

사람들이 홀리는 게 바로 그런 지점이었다. 그렇기에 돈 있는 자본가들,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에 집착하는 귀족들이 달려들 것이 뻔했다. 귀족들과 소수 특권 계층의 전유물로.

하지만 향수가 만들어지기까지에는 백성들에게 착취한 많은 노동력이 들어갔다. ‘향’이 만들어지는 것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꽃과 허브였다. 거기서 향을 채집한 후에 여러 향을 배합해 만들어 낸다. 지금까지는 만들어진 향수를 수입해오거나 아니면 개개인이 만들어 판매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사업에 가장 많은 노동을 착취당하는 이들이 어린 소년, 소녀들이라는 점이었다. 그들은 값싼 노동력으로 엄청난 노동력을 착취당했다. 올리비아는 이 사업을 통해 뿌리 깊은 악순환을 조금이라도 해소시킬 생각이었다.

올리비아의 의도는 한편으로, 루이스와 일치했다.

루이스가 미쳐 날뛰던 시기에도 절대 건드리지 않은 존재가 어린아이들이었다. 루이스는 어떤 이유에서건 아이들만큼은 건드리지 않았고, 때로는 그들을 지켰다. 결국, 이 사업을 함께하는 것을 루이스가 거절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일단 루이스의 허락이 떨어졌다. 결국, 뉴튼 백작가와 황가의 협약은 다시 한번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사실, 황가에서 이 사업을 지원하는 배경에는 금전적인 이득은 중요하지 않았다. 루이스가 백성들에게서 얻게 될 민심, 그것이 진짜 목표였다. 게다가 그로서 뉴튼 백작가와 더욱 돈독한 관계가 된다면, 든든한 아군을 얻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루이스는 여전히 떨떠름해 보였다. 결국, 마지막 결정을 하기 전에 루이스가 올리비아를 불러들였다. 어쩌다 보니 나까지 참석한 삼자대면이 되었다.

“에일린이 제안한 내용을 알고 있겠지.”

내가 언질을 한 후였다. 올리비아는 최대한 담담하게 대답했다.

“네. 알고 있습니다.”

“내가 직접 나서게 될 거다.”

“…폐하께서요?”

올리비아의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다. 그 모습을 포착한 루이스는 마치 기회를 포착한 맹수가 먹이를 노리듯 눈을 번뜩였다.

“왜. 불만인가. 있으면 뭐든 말해 봐. 아주 너그러운 마음으로 들어 줄 테니.”

지금 올리비아는 혼란스러울 것이다. 루이스의 말이 진심인지 아니면 반어인지. 과연, 자신이 어떤 대답을 내놓는 게 정답인지.

루이스가 다시 한번 재촉했다.

“어려워하지 말고. 어서 말해 보라니까.”

조금 전보다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겁먹지 말라는 듯이. 하지만 그럴수록 올리비아는 더욱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폐하께서 직접 나서 주신다니, 저는 물론 가문에서 알면 영광스러워 할 것입니다.”

역시나, 올리비아가 택한 답은 이것이었다.

하지만 올리비아가 말하는 순간, 루이스의 얼굴이 그대로 구겨졌다. 그야, 당연했다. 루이스가 원했던 답은 그게 아니었을 테니까. 루이스는 올리비아가 불편해하는 기색을 드러내면 그것을 핑계로 이번 지원 사업에서 빠져나갈 구실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루이스는 웃는 얼굴로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것으로 유명했다. 올리비아가 루이스의 지나치게 환한 얼굴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위기감을 느낀 것은 당연했다.

올리비아가 예를 갖춰 인사했다.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폐하.”

루이스가 혀를 차는 소리가 아주 작지만 분명하게 들렸다. 이제 빼도 박도 못 하게 된 것이다.

올리비아가 돌아가면 뉴튼 백작가에 이 사실을 알릴 것이다. 그러면 황가에서 백작가에 공문을 보내야 했다. 그러면 저절로 귀족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 것이고, 회의에 안건으로 한 번은 등장할 것이다.

“그 내용을 전제로 계획서를 가져와. 그걸 보고 어떻게 할지 정하도록 하지.”

“최대한 빨리 준비하겠습니다.”

“또한, 이번 사업은 내가 개인적으로 지원하는 사업으로 할 것이다. 이게 제국의 정책 중 하나가 되면 시끄러운 회의에 올리비아, 너 역시 참석해서 시달려야 할 거다.”

그와 함께 루이스 역시 시달려야 할 것이다. 아무리 그들의 말을 무시하는 게 루이스의 일상이라고 해도 지긋지긋한 거겠지.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을 하면서 루이스가 나를 흘깃 쳐다보았다.

설마 내 의도를 눈치챈 걸까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여기서 흔들리면 안 된다. 그러면 루이스의 추측이 맞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줄 뿐이었다. 나는 흐트러짐 없이 입가에 살짝 미소만 걸친 채 루이스를 마주 보았다.

루이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뭐, 일단 하기로 했으니, 제대로 해야겠지.”

“…….”

“올리비아. 너의 첫 사업이기도 하니, 어디 한번 잘해 보거라.”

루이스 본인이 제대로 하겠다는 말은 결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싱긋 웃으며 다시 한번 예를 갖췄다.

“곧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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