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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바쁜 황녀님-104화 (104/124)

?제104화. 14장.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고 있었다 (6)

지금까지 관심 없다는 투로 건성건성 말하던 루이스의 눈빛에 이채가 감돌았다. 갑자기 흥미가 생겼다는 듯이. 반쯤은 짓궂은 얼굴, 반쯤은 샅샅이 관찰하는 얼굴이었다.

불안하게 왜 저러는 거지?

“계속 도망만 다니더니. 이제는 직접 찾아오는 건가.”

“!!”

나는 황급히 루이스를 불렀다.

“폐하.”

이건 명백하게 올리비아를 놀리는 것이었다. 올리비아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루이스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짓궂은 입꼬리가 한층 더 높이 올라갔다.

또 무슨 말을 하려는지, 루이스의 입술이 천천히 열릴 때였다. 방금 전까지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던 올리비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변했다. 당당한 시선. 꼿꼿한 자세. 거기에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모습에 순간 루이스와 내가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는 지겹도록 찾아뵙게 될 것 같습니다.”

올리비아가 입꼬리를 더욱 끌어올리며 환하게 웃었다. 방금 전 루이스가 지었던 미소였다.

“그때는 부디 저처럼 도망 다니지 말아 주세요, 폐하.”

루이스가 한 방 먹었다. 올리비아는 그대로 당하지 않고 루이스를 상대로 오히려 도발적으로 나왔다.

“푸훗.”

결국 참지 못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루이스가 바로 노려봤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웃음 나와 버린걸. 나는 이어서 나오려는 웃음만은 어떻게든 새어 나오지 않게 참으며 고개를 돌렸다.

‘역시 잘 어울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올리비아의 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 * *

이후, 지원 사업은 속전속결로 진행되었다.

뉴튼 백작가의 새로운 사업은 제국의 백성들과 상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고, 그 후원을 루이스가 한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당연하게도, 회의에 안건으로도 상정되었다.

이전에 독점 사업권을 뉴튼 백작가가 가져갔다는 것과 함께 황제가 한 가문의 사업을 지원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속출하였다. 하지만 이번 지원은 루이스의 개인 자산으로 진행되는 것이었다. 결국, 그들이 어찌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회의에 참석한 루이스가 한 말 때문에 귀족들에게서 불만이 더는 나올 수 없었다. 물론, 속으로는 여전히 불만투성이겠지만.

“뉴튼 백작가와 같이 조건에 충족한 가문은 언제든지 지원하도록 하지. 단, 그 돈을 빼돌리거나 착취하거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게 내 눈이든 귀에 걸린다면 감히, 황제의 돈을 함부로 사용한 책임을 져야 할 거다.”

루이스가 눈을 번뜩이며 귀족들을 한 명씩 찬찬히 둘러보았다. 그들은 회의가 끝날 때까지 더 이상 그와 관련한 말은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올리비아의 말은 짓궂은 농담이 아니었다. 그녀는 하루가 멀다 하고 루이스를 찾아갔다.

하루는, 올리비아가 올 때쯤에 루이스가 찾아왔다. 루이스는 점심이나 같이 먹자고 찾아온 거라고 하지만, 아무리 봐도 올리비아를 피해 도망친 것이었다. 하지만 황녀 궁에 오는 것은 사실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루이스를 만나고 난 후, 올리비아는 황궁을 바로 나가지 않고 황녀 궁에 들리곤 했으니까. 황궁에 들어왔는데 루이스를 보지도 못했으니 올리비아가 내게 찾아오는 것은 당연했다.

“…폐하께서 왜 이곳에 계십니까.”

결국, 황녀궁에서 루이스와 올리비아가 사업에 관한 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말이 회의지, 사실은 올리비아의 일방적인 보고였다. 루이스는 듣는 둥 마는 둥 할 뿐이었다.

“황제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아나.”

“…….”

“나는 이런 것까지 신경 쓸 시간이 없다. 네가 충분히 잘 할 것이라고 믿으니, 스스로를 믿고 잘 해 보거라.”

올리비아가 당돌하게 대답했다.

“폐하께서는 이것 말고는 아무것도 안 하시잖아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루이스에게 당황하고 놀림 받다가 겨우 한 번 맞받아치던 모습과는 달랐다. 이제는 루이스의 웬만한 말엔 당황하지도 않고, 루이스의 말을 거침없이 받아쳤다.

그런 올리비아의 모습이 루이스 역시 익숙한 듯 그녀의 말에 별다른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역시.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두 사람의 관계도 달라지는 걸까. 그 변화가 가능성으로 보였다.

하지만 올리비아의 일방적인 사업 얘기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결국 질려 버린 루이스가 돌아갔다. 올리비아는 루이스가 돌아가는 마지막까지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사업에 관한 얘기를 쉬지 않았다.

“에일린, 알고 있는 거지.”

‘내가 뭘 알고 있다는 건데?’ 이것이 미리 생각해 둔 대답이었다. 그런데 막상 올리비아가 빤히 바라보며 물어보니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지금 일부러 폐하랑 나를 만나게 하는 거잖아.”

올리비아는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게 확인하고 있을 뿐이었다.

“요즘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바로 들켰었네.”

올리비아의 추측은 모두 맞았다. 왠지 할 말이 없었다. 그런 내 침묵은 충분히 긍정으로 해석되었다. 올리비아가 나를 보며 옅게 미소 지었다.

“고마워.”

“올리비아…….”

“그런데 인제 됐어. 더 이상은 이러지 마.”

올리비아는 루이스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 이상 어떻게 할 생각이 없었다. 올리비아의 얼굴은 그 말을 하고 있었다. 무엇도 바라지 않는 마음. 어쩌면 체념.

“어째서…….”

좋아한다면. 당연히 함께 있고 싶은 게 아닌 걸까.

비록 루이스가 황후를 들일 생각이 없다고 해도, 올리비아는 가족이 나를 제외하고 루이스가 편하게 여기는 유일한 영애였다. 그녀가 황후가 되기로 마음먹는다면, 그녀의 가문과 내가 도울 것이다. 그렇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째서, 올리비아는 이토록 단호하게 거부하는 것일까.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올리비아가 말했다.

“좋아한다고 모두 함께하지는 못하는걸.”

“…….”

“게다가. 나는 이번 사업을 잘해 내서 이걸 계기로 내 영역을 만들어 갈 생각이야. 남편의 작위로 내 신분이 결정되는 게 아니라, 내 힘으로 작위를 얻을 거야.”

올리비아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몰랐다.

하지만 회귀 전 그녀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이 말은 하루 이틀 고민하고 결론 낸 것이 아닐 것이다. 분명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이겠지.

그런데 어째서 올리비아의 말에 자꾸만 이상한 기시감이 드는 것일까. 그녀의 말이 꼭 남 일 같지 않게 들렸다. 또한, 어째서 올리비아의 말에 순간적으로 헤레이스가 떠올랐을까.

‘설마. 나 때문에 그런 건가.’

내 불행한 결혼이 올리비아에게 영향을 미친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올리비아가 유난히 내 결혼생활과 나의 행복에 연연해 한 것들이 이제야 눈에 밟혔다.

어째서 헤레이스는 이혼 후에도 어째서 이토록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올리비아가 나의 행복을 그토록 바랐던 것. 거기에는 절친한 친구의 행복을 기원하는 것 말고도 더 있지 않았을까. 나와 헤레이스가 행복하게 산다면, 언제나 결혼 따위 하지 않겠다고 하는 루이스의 마음도 달라지고 그의 황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희망을 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결국 나는 헤레이스와 이혼했고, 그때 올리비아는 더 이상 그 마음을 간직하는 것을 포기한 게 아닐까.

기억해 보면 회귀 전에도 단 한 번이었지만, 루이스의 상대로 올리비아가 거론된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정치적으로 이해관계가 맞았기 때문에 나온 이야기였다. 그 역시 루이스가 단칼에 부정해서 없었던 이야기가 됐었지만.

올리비아가 황후가 될 가능성이 있었던 그 당시에 나는 두 사람이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단순히 정치적인 계산에 나온 다른 사람들의 욕심일 뿐이라고 흘려넘겼었고, 역시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가능성마저도 사라졌었다.

어쩌면 그 당시에도 올리비아는 이런 이유로 끝까지 비혼을 유지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루이스를 좋아했기 때문에, 그가 아닌 다른 사람과의 결혼 따위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결국 황후의 자리에 누군가는 있어야 해.”

“그래야겠지. 영원히 비워 둘 수는 없으니까.”

루이스가 결혼하지 않으면, 그를 대신할 선택지는 별로 없었다. 후계는 언제나 좋은 명분이 되어 주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황후의 자리는 상징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다.

황가에는 절대 떨칠 수 없는 숙명이 있다. 황가의 정통성을 유지하고 강한 황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 바로 후계였다. 또한, 그 후계가 적통일수록 황권은 힘을 가지게 됐다. 황제에게 유일한 책임이 있다면, 그것은 후사를 낳는 것이었다.

하지만 루이스는 황후를 맞이하지도, 다른 여인에게서 후사를 잇지도 않았다. 그것이 또한 정적들에게는 좋은 명분이 되었다. 황제의 뒤를 이을 사람이 없다는 것, 사람들은 그것만으로도 불안해하고 아무리 강하고 확실해 보이는 황권마저도 흔들었다.

루이스의 곁에 황후가 생기고 두 사람 사이에서 황태자가 될 아이가 태어난다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단단한 황권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위해 결혼을 강요할 수는 없지.’

그것도 내가 루이스와 올리비아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염치없는 짓이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고 해도…….’

루이스의 곁에 그를 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했다. 루이스가 외롭지 않도록.

실패한 사랑을 통해서도 깨달은 것은 아무리 애틋한 가족도, 절친한 친구도, 다 알지 못하는 모습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보여 준다는 것이었다. 가족과 친구에게서도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을 깨닫는다. 그 결과가 나쁠지라도, 그 순간에 느끼는 모든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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