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8화. 14장.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고 있었다 (10)
나는 순간 아차, 싶었다. 루이스가 달콤한 말을 늘어놓으며 고백할 리가 없었다. 아무리 올리비아가 루이스를 좋아한다고 해도 저런 말을 하는데도 받아 줄까. 갑자기 불안해졌다.
루이스는 여전히 말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얼마 전에 있었던 반역이 언젠가 또 일어날지도 모르고.”
“…….”
“그래서 나는 황후의 자리를 절대 채우지 않을 생각이었어.”
루이스의 말에 놀란 것은 올리비아가 아닌 나였다. 루이스가 그토록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를 고집했던 이유가 그것이었나.
“내가 그대에게 해 줄 수 있는 약속은 하나뿐이야.”
올리비아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루이스가 긴장했는지 잠시 허공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다시 올리비아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그대를 지켜 주도록 하지.”
올리비아는 아무 말도 없었다. 심지어 표정마저도 별다른 변화가 없어서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힘들었다.
“그러니…….”
짧은 침묵이 흘렀다. 나도 덩달아 긴장되었다. 루이스의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나와 결혼해 주겠어?”
잔잔한 호수 같았던 올리비아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너무 놀라서 그대로 굳어 버린 것 같았다.
“갑자기 무슨…….”
올리비아의 목소리가 파들파들 떨렸다. 손가락 끝이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올리비아는 겨우 침착을 유지하려 애쓰는 것 같았지만, 도저히 그렇게 되지 않았다.
루이스는 올리비아를 향해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다시 한번 말했다.
“그대가 나의 황후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어.”
올리비아가 갑자기 고개를 숙였다. 그러더니 고개를 들지 않았다. 올리비아의 어깨가 잘게 떨렸다. 곧 그녀가 고개를 몇 번이나 끄덕였다.
“네…….”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그래서 혹시 잘못 들은 게 아닌가 걱정되었다. 하지만 루이스의 얼굴이 점점 환하게 변해 갔다. 그 모습에 올리비아의 대답에 확신이 갔다.
이미 환하게 웃고 있는 루이스가 올리비아에게 다가가며 다시 한번 물었다.
“정말인가.”
제대로 다시 듣고 싶은 얼굴이었다. 올리비아는 루이스의 기대에 보답하듯 활짝 웃으며 또박또박 힘주어 대답했다.
“정말요. 해 드릴게요, 폐하의 황후.”
올리비아는 루이스와 함께 돌아왔다. 그 모습을 많은 제국민들이 지켜보았다.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그런데, 루이스가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었다. 사실 올리비아는 청혼을 수락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미 정중하게 거절했던 것이다. 이번에 타국으로 향하던 것은 뉴튼 백작의 사업을 도와주기 위해서 방문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루이스가 나를 노려보았다.
“에일린…….”
하지만 어쩌겠어, 나도 정말 몰랐다는데. 나는 올리비아의 뒤로 숨었다. 올리비아가 나를 보호하며 앞으로 나섰다.
“덕분에 저를 잡으셨잖아요.”
올리비아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루이스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올리비아의 한마디에 루이스는 할 말을 잃은 듯 나를 노려보던 시선을 거두었다. 나는 루이스의 시선을 피해 올리비아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사실 이번 일은 루이스를 제외한 나와 올리비아, 그리고 헤레이스에 의해 만들어진 상황이었다. 모든 상황을 짠 것은 헤레이스였다. 심지어 그는 루이스가 올리비아의 결혼 소식에도 미동하지 않는 이유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루이스는 결혼 자체를 하지 않으려고 한 것이었다.
회귀 전에도 루이스는 언제나 적이 많았다. 그가 압도적인 황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그는 숱한 위기 속에서 살아남은 것이었다. 그렇기에 루이스는 안정감이란 게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다. 언제 어떤 위기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경계심이 있었다. 결국, 한 번은 독에 중독되기도 하고 반역에 의해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런 위태로운 상황에서 올리비아를 곁에 두는 것은 그녀 역시도 위험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헤레이스는 단언했다.
‘하지만 올리비아 영애가 정말 떠난다고 하면 상황은 달라질 겁니다.’
올리비아가 청혼을 수락하고 곧 결혼을 한다는 소문을 퍼트린 후, 떠날 것처럼 행동한다면 분명 루이스는 붙잡을 것이라고.
그리고 헤레이스의 예상은 적중했다. 끝까지 무심한 척 평정심을 유지하던 루이스는 올리비아가 완전히 떠나려고 하자 돌변했다. 결국, 올리비아를 붙잡은 것이다.
* * *
루이스와 올리비아가 서로 마음을 확인한 후부터는 모든 것이 일사천리였다. 물론, 그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올리비아와 루이스가 함께 황궁으로 가는 모습을 본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에 관한 소문이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소식을 접하고 가장 놀란 것은 뉴튼 백작과 백작 부인이었다.
백작 부인이 올리비아에게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니?”
청혼도 거절하더니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외국에 가던 중에 갑자기 돌아왔다. 그러더니 갑자기 황제 루이스와의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올리비아가 조심스럽게 두 사람을 불렀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말을 몇 번이나 고르더니 천천히 입을 뗐다.
“저 폐하와 결혼하고 싶어요.”
올리비아의 고백에 두 사람은 너무 놀란 나머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말에 두 사람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황궁으로부터 청혼서가 도착했다. 청혼서를 두 눈으로 확인한 백작 부부는 그제야 현실을 인식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올리비아의 말은 진짜였다. 그리고 황제 루이스 역시도 같은 생각인 것 같았다. 여전히 그 사실은 놀라웠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되었다.
아무리 지금은 루이스에 대한 평판이 많이 누그러졌지만. 제국의 황제인 루이스는 제국 역사상 최악의 폭군이라고 불리던 존재였다. 게다가 지금까지 황후를 맞이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역시 괜히 자리에 욕심을 부리며 황후에 자신의 여식을 앉혔다가 무슨 결과를 맞이할지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백작 부부는 잘못된 선택으로 올리비아가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결국, 뉴튼 백작과 백작 부인이 황궁에 찾아왔다. 그리고 자신들의 걱정에 대해 조심스럽지만 물러서지 않고 얘기했다. 두 사람이 말하는 동안 루이스는 가만히 듣기만 했다. 그 모습이 경청하는 것처럼 보였다. 백작 부부의 말이 끝난 후, 루이스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뉴튼 백작, 그리고 백작 부인. 내가 잘하겠습니다.”
뉴튼 백작과 백작 부인 모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의 정중한 말투라니. 단 한 번도 상상한 적이 없는 모습이었다.
올리비아에게 고백한 후 루이스는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까지 루이스는 올리비아의 마음을 알면서도 외면해 왔었다. 내가 옆에서 그렇게 얘기를 하는데도 자신은 상관없는 일인 것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올리비아에게 고백한 이후에 그동안 참고 있었던 것이 폭발한 것처럼 루이스는 거침이 없었다. 올리비아에게 끊임없이 애정을 표현하고, 그녀와 관련된 사람이라면 잘 보이기 위해 그동안 한 적 없는 행동들을 스스럼없이 했다.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루이스의 돌발적인 행동에 놀라는 것은 상대방이었다. 지금도 역시나 도저히 거역할 수 없는 정중함이었다. 뉴튼 백작과 백작 부인은 얼떨떨한 채로 허락하고 말았다. 자신들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며 고개만 끄덕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돌아가는 길 내내 걱정을 멈출 수 없었다.
“이게 잘한 결정일까요?”
“하지만 어쩌겠소.”
“하긴 그렇네요. 어차피 올리비아도 폐하가 아니면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결국, 뉴튼 백작과 백작 부인은 모든 것을 체념하고 두 사람의 결혼을 응원했다.
어차피 두 사람이 좋다고 하는 결혼이었다. 게다가 황후라는 자리였다. 그동안 루이스가 쌓아온 악명을 무시한다면 영광스러운 자리임은 분명했다.
두 사람의 걱정을 무색하게 만들 만큼 결혼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보통 황제와 황후의 결혼은 수많은 단계를 거쳐서 신중하게 준비하느라 그 기간이 길었다. 하지만 루이스는 모든 과정을 파격적으로 생략했다.
“쓸데없는 짓 한다고 질질 끌지 마라.”
루이스가 한 말이었다.
대신 결혼식 자체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화려하도록 했다. 결혼이 결정되고 준비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사실상 막힐 것이 없었다. 루이스가 직접 신경 써서 준비를 했기 때문이다.
결혼식은 뉴튼 백작가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올리비아가 황궁 마차를 타고 제국민들의 축복을 받으며 황궁까지 행렬하면, 루이스는 황궁 앞에서 올리비아를 기다렸다가 그녀를 맞이한다.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을 제국민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다.
그 후에 황궁 안으로 들어가 몇 가지 의례적인 절차를 걸치게 된다.
‘그리고 첫날밤이지.’
어쩐지 그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오르지 않았지만, 두 사람이 온전히 부부가 될 것이다.
결혼 준비 과정에서 황궁 안에서 필요한 것들은 대부분 내가 해결했다. 내겐 가장 소중한 루이스와 올리비아를 위한 시간이었다. 그 무엇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었다.
* * *
제국 최대의 결혼식이 거행되는 날이었다.
황제의 결혼은 제국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었지만, 루이스의 결혼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깜짝 발표였다.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은 엄청났다. 사람들은 가장 잘 보이는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기까지 했다.
올리비아는 특별 제작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제국에서 가장 유명한 디자이너가 밤낮없이 만든 드레스였다. 올리비아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잘 어울렸다.
황궁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제국민들이 모두 올리비아의 모습을 보았다. 올리비아는 가장 높은 자리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