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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바쁜 황녀님-111화 (111/124)

?제111화. 14장.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고 있었다 (13)

‘이제 나도 내 자리를 찾아야지.’

나는 곧바로 수도에 최근에 나온 저택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수도를 떠나 다른 영지나 해외로 나가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수도에 머물기로 했다.

새로 머물 곳이 정해질 때까지는 사람들에게 얘기하지 않고 에밀과 단둘이 황궁을 나와 직접 돌아보았다. 며칠이 지날 동안 마땅한 곳을 찾지 못했는데, 마침 오늘 괜찮은 곳을 발견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이곳으로 하지.”

* * *

황후궁에서 루이스는 올리비아와 함께 침대에 누워 있었다. 루이스는 올리비아에게 팔베개를 해 주고 올리비아는 루이스의 가슴에 손을 올려놓았다. 올리비아가 루이스에게 물었다.

“에일린에게 왜 그러시는 거예요?”

“뭐가.”

“정말 저 때문에 그러세요?”

올리비아는 자신 때문에 루이스가 갑자기 에일린에게 그렇게 대하는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하기 힘들었다. 루이스는 시스터 콤플렉스라고 할 정도로 에일린에 대한 걱정이 남달랐다. 그 걱정이 줄어들 수는 있어도, 이렇게까지 달라졌다는 것은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폐하, 만약 저 때문이라면 앞으로는 그러지 마세요.”

그리고 만약 자신 때문이라면 그건 에일린에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루이스를 설득할 생각이었다.

올리비아의 걱정이 무엇인지 알아차린 루이스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올리비아의 얼굴이 어두웠다. 알게 모르게 마음이 쓰였던 것이다. 루이스가 천천히 입을 뗐다.

“그 애도 이제 제대로 살아야지.”

하지만 올리비아는 루이스의 말을 바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에일린은 비록 이혼하기는 했지만, 결코 불행하거나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황궁에서 걱정 없이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루이스는 제대로 살아야 한다고 하는 거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루이스가 말을 덧붙였다.

“그만 과거는 잊어버리고.”

루이스는 에일린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후에도 어쩐지 에일린을 볼 때마다 불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귀 전의 기억으로 인해 언제나 에일린에게 중요한 것이 루이스의 안전과 모두의 평화였다. 그것을 이루고 난 에일린은 원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과거에 비록 실패하기는 했지만, 에일린은 의지가 강하고 원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오랜 시간 외면당하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지킨 것이었다.

루이스는 에일린이 정말로 행복해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황궁에 있는 것이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이제 자신은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원하는 것을 찾아서 마음껏 하길 바랐다. 그래서 에일린에게 괜히 방해가 된다는 듯이 대한 것이었다.

어차피 과거로 회귀했다. 이제 기억 속에 있는 것들은 모두 일어나지 않는 신기루가 되었다. 하지만 에일린은 그 기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럴수록 에일린은 황궁에서 머무르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일부로 떨어트리려고 하는 건가요?”

“일단 에일린은 나에 대한 죄책감이 큰 것 같으니까.”

루이스는 에일린이 자신과 멀어지는 것이 과거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번 기회에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고 황궁을 벗어나게 할 생각이었다.

이번에는 루이스가 올리비아를 걱정하며 다정하게 말했다.

“그러니 앞으로도 계속할 거야. 그때마다 너무 마음 쓰지 마.”

올리비아의 이마에 살짝 입술을 맞추었다. 올리비아가 배시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

갑자기 루이스가 짓궂은 미소를 씨익, 지었다. 루이스가 이불속에서 올리비아의 허리를 감았다. 두 사람의 몸이 밀착되었다. 루이스가 올리비아의 코가 서로 맞닿았다.

루이스가 올리비아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내가 낮에 찾아갈 때마다 두 사람이 같이 있는 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건 아냐.”

“…!”

“나는 황후가 혼자 있었으면 좋겠어.”

“폐하…….”

‘내가 가면 단둘이 있게.’ 루이스는 올리비아의 귀에 속삭였다.

올리비아는 순간 움찔하며 긴장했지만, 곧 입술을 말아 올리며 한쪽 다리를 루이스의 다리를 감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다시 한번 맞닿았다.

* * *

괜찮은 저택을 발견하자마자 루이스에게 말했다. 그러자 루이스는 당황한 듯 되물었다.

“떠난다니.”

내 말에 깜짝 놀란 것은 올리비아도 역시나였다. 하지만 이미 모두 결정을 내린 후였다.

“에일린. 폐하께서는….”

“알아.”

혹시나 지난 며칠 동안의 루이스의 행동에 기분이 상했는지 걱정하는 올리비아를 향해 내가 먼저 웃어 주었다. 나도 루이스가 내게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가려는 거야.”

내 말에 올리비아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도 안에서도 괜찮은 곳으로 골랐습니다.”

루이스가 툭하고 내뱉듯이 물었다.

“거기서 뭐 할 생각이냐.”

나 역시 별 고민 없이 답했다.

“글쎄요. 그냥 먹고 자고 그러렵니다.”

사실은 수없이 고민한 답이었다.

처음에는 무엇을 하면 좋을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차라리 외국에 갈까. 그래서 다시는 제국에 돌아오지 말까. 그런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결국 의미 없는 발버둥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는 모든 고민을 멈췄다.

더 이상 어떤 것에도 아등바등하지 않고 지내 보고 싶었다. 루이스도 이제 올리비아와 함께할 테니 걱정거리도 없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살아 보기로 했다.

올리비아가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에일린. 헤레이스 공작은…….”

“이미 지나간 인연입니다. 저와는 더 이상 상관없는 사람이지요.”

하지만 그는 이미 이혼까지 한 나와 더 이상 상관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올리비아의 말을 단칼에 잘랐다.

결국, 루이스와 올리비아는 내가 황궁을 떠나 저택으로 거처를 옮기는 것을 허락했다. 차라리 황궁 소유의 저택을 주겠다고 했지만, 그것은 거절했다. 이미 마음에 드는 저택을 봐 두었기도 했고,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한 발 뒤로 물러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황궁 소유의 저택에서 지내는 것은 결국 황궁에서 지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터였다.

이번에 구입한 저택의 정리가 끝나면 바로 들어가기로 했다. 언제라도 갈 수 있게 황녀궁에 있는 짐들을 차곡차곡 정리했다.

저택을 정리하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고, 내 짐을 옮기고 내가 저택에 들어가는 날도 금방 다가왔다.

올리비아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아쉬워했다. 하지만 루이스는 담담한 듯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래도 그 정도만 봐도 나는 루이스가 내심 서운해 하는 루이스의 표정을 알 수 있었다. 살짝 앞으로 나온 입술, 시선을 회피하는 눈동자가 그 증거였다.

“황궁에 자주 와야 해.”

“응. 그럴게.”

올리비아는 내 손을 꼭 붙잡고 황궁에 자주 놀러올 것을 몇 번이고 약속받았다. 그러고도 아쉬운지 잡고 있는 손을 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루이스는 평소와 다르지 않게 그저 잠깐 외출하는 사람에게 인사하듯 말했다.

“잘 살아라.”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나는 루이스와 올리비아를 향해 인사했다. 이제 정말로 황궁과는 마지막이었다.

황궁을 떠나 미리 구매한 저택으로 향하려고 하는데, 황궁 앞에는 익숙한 사람이 있었다. 헤레이스. 그는 내 소식을 얼마 전에 접했는지 다급하게 온 티가 역력했다.

“어디로 가십니까.”

“제가 그걸 공작님께 말해야 하나요?”

말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러자 헤레이스는 내 뒤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무시하고 갈 길을 갔다.

“좀 돌아서 가자.”

마차를 타기 전에 저택에 가는 길을 빙빙 돌아갈 것을 지시한 후에 그대로 무시했다. 하지만 한참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헤레이스는 여전히 내 뒤를 쫓아오고 있었다.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나는 살짝 열린 창문 사이로 헤레이스에게 말했다.

“대체 언제까지 쫓아오실 겁니까.”

“어디로 가는지 알 때까지 따라갈 겁니다.”

헤레이스는 끈질겼다. 도저히 꺾을 생각이 없는 것 같아 보였다. 어차피 언젠가는 내가 머무는 저택을 알게 될 것이다. 괜히 힘 뺄 생각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나는 그 말을 남기고 마차의 창문을 닫았다. 더 이상 헤레이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마차의 옆이나 뒤에서 따라오고 있을 것이다.

“에밀. 마부에게 더는 돌지 말고 저택으로 향하라고 전해 줘.”

“이대로요?”

“응.”

헤레이스를 따돌리려 일부러 몇 시간이고 거리를 빙빙 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에밀은 살짝 놀란 듯했지만, 이내 앞에 있는 문을 살짝 열어 마부에게 내가 한 말을 그대로 전달했다.

그리 멀리 떨어진 곳을 돌고 있던 것은 아니었는지 마차는 얼마 있지 않아 저택 앞에 멈췄다.

“도착했습니다.”

마부가 도착했음을 알렸다. 내가 마차에서 내리자 역시나 헤레이스가 있었다. 헤레이스는 어느새 저택과 그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들어가자.”

“네.”

나는 에밀과 함께 헤레이스를 지나쳐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자 헤레이스가 다급하게 말했다.

“찾아와도 됩니까.”

앞으로도 저택에 오겠다는 것이었다.

“찾아오는 것은 자유지만, 제가 만나 줄 일은 없을 겁니다.”

“…….”

“그럼 이만.”

나는 그대로 헤레이스에게 등을 돌린 채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저택에는 이미 모든 것이 갖춰져 있었다. 이곳은 이제 앞으로 내가 지낼 새로운 보금자리였다. 회귀 전에는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공간과 생활이기도 했다. 그 무엇도 예상할 수 없는 새로운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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