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4화. 15장. 아직 끝나지 않았다 (2)
“…….”
“황궁을 나가더니 이젠 잘 찾아오지도 않고. 지금 생활이 좋은가 봐.”
올리비아가 서운한 내색을 비추었다. 순간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올리비아는 결코 서운한 일이 있어도 이렇게 드러내는 편이 아니었으니까.
“아, 알았어….”
“뭐? 진짜?!”
결국, 당황한 내가 올리비아가 원하는 대로 대답을 하자마자 올리비아가 재빠르게 확인했다. 나는 덩달아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나도 같이 갈게.”
“정말!? 와…생각만 해도 너무 좋아.”
올리비아가 너무 좋아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오랜만에 루이스와 올리비아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올리비아가 들뜬 모습으로 말했다.
“폐하. 에일린도 함께 가기로 했어요.”
“그래?”
루이스가 나를 바라보았다. 분명 나를 방해꾼으로 보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나도 올리비아의 제안을 계속 거절하기 힘들었다고! 내가 항의하며 루이스를 바라보았다.
“……?”
그런데 루이스는 오히려 웃고 있었다. ‘뭐지?’ 순간 당황했다. 루이스가 올리비아에게 말했다.
“잘됐군. 마음이 편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곁에 있으면 좋겠지.”
심지어 루이스가 먼저 제안까지 했다.
“별궁에 갈 때까지는 여기 머물거라.”
“네. 그렇게 할게요.”
내가 계속 미심쩍어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자, 결국 옆에서 지켜보던 올리비아가 웃음을 터트렸다.
올리비아는 출발하기 전날 밤, 함께 자자고 했다. 아무래도 그동안 힘들었었던 것 같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서 어린 시절처럼 오랜만에 올리비아와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잠들기 위해 함께 누웠지만,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에일린, 요즘 새삼 느껴.”
“…?”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올리비아는 자신의 부푼 배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냥 열 달 배에 품고 있는다고 되는 건 아니었구나 싶어서. 어머니가 자꾸 생각나.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백작 부인께서 그 말 들으면 굉장히 좋아하시겠네.”
“분명 그러실 거야. 어디 한번 너 닮은 자식 낳아 보라고 그렇게 얘기하셨으니까.”
“푸흡…맞아. 나도 몇 번이나 들었었는데.”
그렇게 나와 올리비아의 수다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 * *
별궁으로 향하는 인력은 생각보다 간소했다. 올리비아가 오로지 휴식에 전념할 수 있도록 최대한 조용히 움직이려는 것이다.
“출발하지.”
마차 안에는 올리비아가 좋아하는 과일이 준비되어 있었다.
“조금이라도 몸이 이상하다 싶으면 얘기해.”
“걱정 마세요.”
루이스는 계속 불안한지 올리비아에게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올리비아는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바람도 쐬고 하니까 많이 괜찮아진 거 같아요.”
확실히 올리비아의 얼굴이 한결 밝아져 있었다. 나도 루이스도 왠지 기분이 살짝 들떴다.
얼마나 갔을까. 창문을 열어 살짝 밖을 보니 산을 하나 넘어가고 있었다. 이 산을 넘어가면 곧 별궁에 도착할 것이다.
“별궁에 도착하면 거기 온천이 있는데, 들어갈까.”
“괜히 들떠서 황후를 무리시키지 말아라.”
“저도 오랜만에 움직이니까 좋아요.”
루이스는 괜히 나를 타박하는 척했지만, 올리비아의 기분이 좋아 보이자 미소를 지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루이스가 주위를 경계하며 말했다.
“잠깐…움직이지 마.”
루이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잘 가고 있던 마차가 갑자기 멈췄다. 갑자기 주위가 고요해졌다. 그런데 루이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저 조용한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이곳 어딘가 뭔가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집중을 해서 들으니, 희미하긴 하지만 인기척이 났다. 황제와 황후를 모시고 이동하는 황궁 행렬 아닌 외부인의 인기척. 그것도 살의를 띄고 있는 것이었다.
‘기습…인 건가.’
하지만 누가 무슨 목적으로? 하필 별궁으로 향하는 호위 기사의 수가 많지 않았다.
루이스는 한 치의 틈도 없는 호위를 하려고 했지만, 올리비아가 조용히 갔다 오고 싶다고 했다. 병력이 많이 동원될수록 아무래도 백성들의 이목을 끌 테니까 그것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나도 올리비아의 말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는데…….
심각한 분위기를 읽은 올리비아가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하지만 루이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럴수록 올리비아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가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배를 꼭 안았다.
“…괜찮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올리비아의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그녀를 진정시키는 것뿐이었다. 지금 바깥 상황이 정말로 괜찮은지, 아니면 그렇지 못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괜찮아야만 했다.
그때였다. 희마하게 느껴졌던 인기척이 이제는 둔탁하게 바닥을 치는 소리로 바뀌었다. 그것도 꽤 많은 수의 발소리.
검이 부딪히고 비명이 흘러나왔다. 마차가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나는 깜짝 놀라 올리비아를 붙잡았다. 혹시라도 넘어지거나 하지 않도록.
“여기 가만히 있어.”
루이스가 나에게 따로 시선을 보냈다. 올리비아를 잘 부탁한다는 뜻이었다. 나는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하세요!”
루이스가 마차 밖으로 나갔다. 나는 루이스에게 고작 조심하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루이스가 나가는 순간, 열린 문 너머로 바깥 상황이 얼핏 보였다.
상황은 생각보다 더 나빴다. 기습이라서 제대로 방어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생각보다 상대의 숫자가 많았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갑작스러운 기습에 방어하느라 그렇겠지. 게다가 나무가 많은 산의 특징 때문에 적이 숨어 있기에 좋은 곳이었다.
‘너무 방심했어…….’
원래라면 이렇게 쉽게 뒤를 내주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후회는 이미 늦었다.
나는 루이스가 부탁한 대로 최대한 올리비아를 안심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이미 검이 부딪히고 전투가 벌어진 것을 올리비아 역시도 알고 있었다. 그녀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 갔다.
올리비아는 루이스가 걱정되는지 계속 안절부절못했다.
“폐하…괜찮겠지…?”
“그럼. 오라버니가 당할 리가 없잖아.”
나는 그런 올리비아에게 루이스는 괜찮을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두 눈으로 확인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마차 문을 함부로 열 수 없었다. 올리비아는 임신한 상태였다. 이 상태로 조금이라도 무리를 하거나 충격을 받으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가능하면 바깥의 전투가 마무리 될 때까지 마차 안에서 몸을 피하고 있으면 좋을 텐데. 하지만 마차 안이라고 해서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콰앙-. 엄청난 소리와 함께 마차가 흔들렸다. 옆으로 넘어갈 것처럼 격렬하게.
“조심해!”
그리곤 곧바로 검날이 마차를 뚫고 들어왔다. 내가 직전에 올리비아를 잡아당기지 않았다면…검이 조금만 더 깊었다면…그대로 올리비아를 찌를 뻔했다. 검날이 마차 밖으로 나가더니 다시 안으로 더 깊게 들어오려고 할 때였다.
“꺼져.”
루이스의 목소리가 들리고 마차의 문이 열렸다. 그도 놀랐는지 당황한 얼굴이 역력한 채로 나와 올리비아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마차 안을 공격한 것이 분명한 자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더 이상 숨을 쉬고 있지 않은 채로.
“…괜찮아?”
“네. 괜찮습니다.”
방금 전까지 공포에 질려 있던 올리비아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담담한 얼굴로 답했다. 하지만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있는 내 손에 올리비아의 딱딱하게 굳은 몸이 느껴졌다. 루이스가 흔들릴까 봐 최선을 다해 버티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마차 안에 있을 수는 없었다. 이미 우리가 있는 것을 알고 집요하게 공격해 올 테니까. 결국, 나와 올리비아는 전투가 벌어지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나왔다.
가능하다면 여기서 멀리 도망가는 것이 좋겠지만, 올리비아는 만삭이었다. 산속을 뛰어가는 것은 너무도 위험했다. 올리비아가 말했다.
“저는 괜찮으니 가셔도 괜찮습니다.”
루이스는 나와 올리비아의 곁을 지킨 채 이쪽에 다가오는 자들만 막고 있었다. 루이스가 빠지자 전투는 점점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올리비아가 루이스에게 자신을 두고 가도 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루이스는 망설였지만, 지금 상황이 너무 나빴다. 지금 전투에는 루이스가 꼭 필요했다. 빨리 전투를 끝내지 않으면 교착 상태로 계속 시간만 흐를 것이다. 루이스는 하는 수 없이 돌아서며 말했다.
“그럼 여기 잠시만 있어.”
올리비아가 루이스가 걱정하지 않도록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네.”
“저도 있으니 걱정 마세요.”
루이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에 있는 기사 두 명에게 나와 올리비아를 지키라고 지시한 후, 다시 전투에 뛰어들었다. 루이스는 전투에 다시 참여하자마자 압도적으로 적들을 베어 나갔다. 상황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나와 올리비아는 그 모습을 초조하게 지켜보았다.
그때였다. 아직도 잠복하고 있는 자들이 더 있었는지, 적들과 같은 편이 분명한 자들이 산속에서 더 나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수적으로 너무 불리했다.
‘이제 어쩌지?’
정말로 여기서 이렇게 끝나는 건가. 말도 안 되는 상상이 현실이 될 것 같은 불안감이 덮쳤을 때였다.
산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적들의 지원군들이 하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을 쓰러트린 사람은 익숙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나서 적들을 베어 나가기 시작한 무리…아니, 공작가의 기사단이었다.
“헤레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