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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바쁜 황녀님-116화 (116/124)

?제116화. 15장. 아직 끝나지 않았다 (4)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루이스는 그때 피를 쏟아 내고는…죽었다. 만약 이게 회귀 전의 일과 연결되는 거라면, 헤레이스도…그렇게 되는 건가.

아니다. 언제나 결과는 달라지곤 했다. 반역이 일어났어도 그 반역은 막았고, 나와 헤레이스가 결혼을 했어도 결국 이혼을 했듯이. 그러니까 이번에도 다를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러니까 헤레이스가 살아 있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얼굴을 좀 보고 싶은데…….”

“지금은 치료 중이라 뵙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앨버트는 완곡하게 거절했다. 왜 안 된다는 거지?

“치료가 어느 정도 되면, 그때 만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앨버트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헤레이스의 상태가 그만큼 좋지 않다는 뜻이었다. 그의 몰골도 치료 과정도 옆에서 지켜보기 힘들 만큼.

어떻게 해야 할까. 갈피를 잡을 수가 없을 만큼 아찔했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그 전에 내내 궁금했던 것을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그 전에 기사단장을 좀 만나고 싶은데.”

“바로 불러오겠습니다.”

앨버트가 기사단장을 부르러 가고 얼마 있지 않아 그가 들어왔다.

“무슨 일로 찾으셨습니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몇 가지 있어서 부탁했네.”

나는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물어보기로 했다.

“아까 그곳에는…어떻게 왔던 거지.”

우리가 습격당한 곳에 분명 헤레이스는 그곳에서 습격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온 것이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던 거지?

“반역이 일어났을 당시에 도중에 도망친 잔당들이 몇 있었습니다. 공작님은 지난 몇 년 동안 그들을 계속 추적해 오고 있었습니다.”

“추적하다니…?”

지금 기사단장이 하는 말은 모두 처음 듣는 것이었다. 헤레이스가 그동안 계속 추적해 오고 있었다니.

“공작님께서는 단 한 명까지도 모두 찾아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어째서…?”

이미 모두가 끝난 일이었다. 그런데 헤레이스는 어째서 그런 일을 계속해 왔던 거지? 그것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남모르게.

“아주 작은 가능성도 남겨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자칫 흘려넘긴 불씨가 큰 산불을 일으킨다고도 하셨고요.”

“…….”

“다만, 확실하지 않은 일로 다른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심을 필요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몰래…….”

기사단장은 머뭇거림 없이 대답했다.

“네.”

“그럼 이번에도…?”

“이번이 마지막 잔당 세력이었습니다. 그동안 흔적이 전혀 잡히지 않아서 죽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처음부터 이럴 작정으로 몸을 숨기고 세력을 키우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헤레이스는 지금까지 몇 번이나 잔당 세력을 찾아내어서 처리해 오곤 했던 것이었다.

‘나도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헤레이스는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 덕분에 이번에도 기습을 알아차리고 올 수 있었던 것이었고.

기사단장이 분하다는 듯 말했다.

“좀 더 빨리 갔어야 했는데…그랬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여기서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때였다. 앨버트가 노크와 함께 들어왔다.

“황녀 전하. 치료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지금 만나 보시겠습니까.”

“…….”

앨버트가 나를 다시 불렀다.

“황녀 전하…?”

하지만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치밀어 오르는 눈물 때문에.

* * *

올리비아는 황궁 주치의의 진료를 받았다. 황궁 주치의는 많이 놀라서 쓰러졌을 뿐, 큰 이상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그러고도 반나절 동안 깨어나지 못했다. 그만큼 충격이 컸다는 뜻이었다.

“정말 괜찮은 건가.”

올리비아가 의식을 차리지 못할수록 루이스는 초조해졌다. 이제 해산일로부터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보통의 상황이라면 괜찮은 거겠지만, 지금의 올리비아에게는 무리일 수도 있었다.

“곧 깨어나실 겁니다.”

황궁 주치의는 괜찮다는 말을 하며 루이스를 달래 보았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루이스는 올리비아가 깨어날 때까지 곁을 지켰다. 그리고 한밤중이 되어서야 올리비아가 의식을 차렸다.

“올리비아…! 괜찮은 건가. 주치의를 부를 테니, 잠시만…!”

루이스가 주치의를 부르려 문 쪽으로 몸을 돌리는데 올리비아가 그의 옷깃을 붙잡았다.

“폐하, 괜찮으신 건가요…?”

“나는 괜찮으니 그대 걱정만 해.”

루이스는 속이 타들어 갔다. 이제야 정신을 차린 올리비아가 본인의 몸이 아닌 자신을 걱정해서.

“폐하.”

“그래. 왜 그래?”

올리비아가 자신을 부르자 루이스는 다급하게 대답했다. 혹시 불편한 것이나 필요한 것이 있을까 전전긍긍했다.

“헤레이스 공작은요…? 어떻게 됐나요…?”

하지만 올리비아가 한 것은 그녀가 마지막 순간에 본 헤레이스에 대한 걱정이었다.

루이스는 대답할 수 없었다. 헤레이스에 대한 경과는 계속 보고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 긍정적인 내용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걸 지금 올리비아에게 말했다가 그녀의 상태가 더 안 좋아질 수도 있었다.

“설마….”

올리비아의 눈이 떨렸다. 최악의 상황이 떠올랐는지 어느새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죽은…건가요….”

올리비아가 망연한 얼굴을 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루이스는 깜짝 놀라 서둘러 대답했다.

“아, 아니다! 죽지 않았어. 아직 살아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정말인가요.”

“그래, 죽지 않았어.”

“…다행…이에요.”

올리비아는 그대로 다시 눈을 감았다. 루이스는 깜짝 놀라 주치의에게 어찌 된 일인지 물었다. 혹시 몸에 무리가 온 것은 아닌지.

“잠드신 겁니다. 여러 가지 일로 놀라서 피로가 몰려온 것입니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나시면 괜찮을 것이옵니다.”

“정말인가.”

“네, 폐하.”

올리비아는 단순히 잠을 자는 것이다.

루이스는 겨우 안심했다. 그제야 의자에 걸터앉을 수 있었다. 그리고 헤레이스를 떠올렸다. 그는 올리비아에게 말한 대로 죽지 않았다. 아직 살아 있었다.

‘살아만 있는 것뿐이지만.’

헤레이스는 간신히 숨만 부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너무 많은 피를 흘려서 치료를 하고 있지만,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끝난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너무 방심했나.’

올리비아를 맞이하고 그녀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정말로 모든 것이 충만했다. 이대로 행복한 일밖에 남아 있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회귀 전의 일은 기억의 끄트머리에서도 밀려났었다.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루이스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기습을 펼친 자들은 몇 년 전, 루이스와 헤레이스가 손을 잡고 저지했던 반역에서 겨우 살아남은 잔당들이었다. 그들이 루이스를 노린 것이었다. 어차피 실패할 것을 알면서. 마지막 발악이었던 것 같았다. 그들은 이번 기습에서도 실패하자 대부분 그 자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 *

올리비아가 안정될 때까지 지켜본 루이스가 그다음에 한 일은 습격을 당했을 때 목숨만 살려 놓고 데려온 자들을 보는 것이었다. 루이스는 그들을 결코 편하게 보내 줄 생각이 없었다.

화가 난 루이스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자 중에서 한 명을 억지로 살려 냈다. 아무리 죽으려고 해도 죽을 만큼의 고통만 주고 목숨만큼은 살려 놓았다.

루이스가 자비롭게 말했다.

“죽고 싶으면 모두 토해 내.”

그리고 그자는 정말로 조금이라도 덜 괴롭게 죽기 위해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했다. 아쉽다는 듯이 피를 토하며.

“…죽일 수 있었는데…….”

그들은 반역이 일어나던 당시 국외로 도망치지 않았다. 대신 시골에 숨어들어 그곳에서 몸을 숨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과거에 살던 지위를 다시 회복할 수도, 해외로 완전히 빠져나갈 수도 없었다.

결국, 루이스를 죽이지 않으면 비참한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되든 안 되든 다시 한번 루이스를 노리기로 했다.

올리비아가 무방비한 상태였다. 루이스는 하는 수 없이 올리비아를 막고 자신의 몸은 그대로 노출되었다. 그때 갑자기 헤레이스가 나선 것이었다.

그것만 아니었으면 루이스를 죽일 수 있었을 텐데. 그럼 다시 한번 기회가 생겼을 텐데. 그들은 아쉬워했다.

“숨만 쉬면서 살았어야지. 이딴 짓 할 생각하지 말고.”

모든 것을 실토한 그를 루이스는 소원대로 죽여 주었다. 하지만 죽게 해 주었을 뿐, 편하게 죽을 수 있도록 하지는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고통으로 하루에 걸쳐 지치게 만들어 죽였다. 그럼에도 루이스는 분이 풀리지 않았다.

“그랬으면 지금도 숨은 쉬고 있었을 텐데.”

루이스가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이미 숨을 끊고 축 늘어져 있는 시체를 보면서.

“너는 이제 죽어서도 편하지 못할 것이다. 시체가 편히 땅에 묻힐 거라곤 기대하지 마.”

루이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루이스는 잔당을 모두 처리했는데도 불구하고 분이 풀리지 않았다. 자칫 잘못했으면 올리비아는 물론이고 뱃속에 있는 아이를 잃을 뻔했었다. 그 생각을 하면 이가 갈렸다.

그런 루이스를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모두 두려워했다. 그가 즉위 당시처럼 다시 폭주할 것 같아서. 그의 모든 행동이 그때와 비슷했기에 더더욱.

“폐하. 화를 누그러뜨리세요.”

그것을 막은 사람은 올리비아였다. 그녀 역시도 루이스가 분노에 사로잡힌 상태라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불필요한 살상은 하지 마세요.”

올리비아의 말에 루이스는 아무것도 대답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의 얼굴조차도 바라보지 않았다. 올리비아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는 루이스는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분명 엄청난 피를 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올리비아는 루이스를 붙잡고 강경하게 말했다.

“이제 곧 아이가 태어납니다. 그 아이가 피에 물든 채로 태어나지 않았으면 해요.”

결국, 루이스는 고집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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