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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바쁜 황녀님-121화 (121/124)

?제121화. 17장. 결혼 (1)

결혼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결혼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낸 것뿐인데 나와 헤레이스의 관계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관계가 되었다.

혼자 짝사랑해서 열렬히 구애하고 일방적인 결혼을 한 것. 결국, 서로를 믿지 못하고 불안한 마음을 끌고 살았던 시간들. 그 시간 중 어디에도 지금과 같은 순간은 없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전부 처음이었다. 서로의 마음을 알고 받아들이고 함께 미래를 꿈꾸기로 한 순간들.

“정말 결혼하는 겁니까.”

“네. 해요.”

이번이 31번째 확인이었다. 헤레이스는 결혼하겠다는 내 대답을 들은 후에도 생각날 때마다 뜬금없이 물어보고는 했다. 헤레이스는 내게 몇 번이나 확인을 거듭 받아 냈다.

“곧 황궁에 가서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그래야지요. 내일이라도 바로 갈까요.”

내 말에 헤레이스는 내일 당장 황궁에 갈 기세였다.

황궁에 가서 루이스와 올리비아에게 우리의 결혼 소식을 알려야 했다. 다른 사람의 입으로 들었다가는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내가 헤레이스에게 말했다.

“그럼 내일 가요.”

보고는 빠를수록 좋다. 그럴 거면 마음먹었을 때 바로 가는 게 좋겠지. 앞으로 이런 일들이 계속 생길 것이다. 뭔가를 해야 할 때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결정하고. 내일 황궁에 가는 것은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일단 그 전에 해야 할 말이 하나 더 있었다. 나는 헤레이스와 함께 저녁을 다 먹은 후에 말했다.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어딜 말입니까?”

나는 오늘 지난 몇 년 동안 내 거처였던 저택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황궁도 공작가도 아닌 그저 평범한 저택.

헤레이스의 몸은 이제 완전히 괜찮아졌다. 바로 얼마 전에 헤레이스와 결혼을 결심하기는 했지만, 그건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이었다. 그와 결혼을 하기 전까지는 내 저택으로 돌아가는 것이 맞았다.

그래서 헤레이스에게 말할 상황을 보고 있었다. 이제 내일 황궁에 가서 보고를 하고 나면, 빠르든 느리든 결혼 준비가 시작될 것이다. 그 전에 저택으로 돌아갈 생각으로 나는 말했다.

비록 바로 앞에서 헤레이스가 당혹스러워하는 것이 보이기는 하지만.

“이제 저도 돌아가야죠.”

“결혼하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역시나 헤레이스는 결혼하기로 한 순간부터 내가 이곳에서 계속 지낼 것이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결혼 전까지 오히려 조심할 생각이었다. 한 번의 결혼과 한 번의 반역, 그리고 이혼까지. 이미 나와 헤레이스의 이야기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이번에 우리가 다시 결혼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는 순간, 사람들 모두 우리의 결혼 과정에 하나부터 열까지 관심을 보일 것이 분명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직 하진 않았으니까요.”

아직 결혼하지 않은 내가 공작가에서 이미 너무 오래 머물렀다. 헤레이스가 괜찮아졌는데도 불구하고 지내는 것은 말이 나오기 좋았다.

“어차피 곧 할 거잖습니까.”

헤레이스는 그러면서 가지 말라고 나를 붙잡았다. 어차피 곧 결혼을 하면 같이 살 건데, 지금부터 지내는 게 무슨 문제냐는 뜻이었다.

나는 헤레이스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어차피 곧 결혼하면 다시 돌아올 거예요.”

결혼을 하면 다시 돌아올 것이다. 잠시 참고 지냈다가 결혼을 하고 난 후에 함께 지내면 된다는 뜻이었다.

내가 계속 단호하게 말하자, 헤레이스는 상처받은 것처럼 축 늘어졌다.

“별로 저와 함께 있고 싶어 보이지 않습니다.”

헤레이스는 마치 차이기라도 한 것처럼 상심한 모습이었다. 아니, 삐친 건가. 그 모습에 순간 마음이 약해진 나는 헤레이스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그를 불렀다.

“헤레이스.”

최대한 달콤한 목소리로 그의 귀가 간질거리게.

“잠시 떨어져 있는 동안 저와 연애해 줘요. 함께 살면 하지 못하는 것들, 알지 못하는 감정들을 알려 줄래요?”

나는 헤레이스를 지그시 바라보며 미소를 머금었다. 헤레이스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몇 번 헛기침을 하더니 어느새 귀가 붉어졌다.

“헤레이스…….”

“알겠습니다. 결혼 전에 연애…하죠.”

헤레이스가 고개를 무한정으로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더 늦으면 해가 완전히 질 것 같네요.”

헤레이스도 달래 주었겠다 내가 돌아섰을 때였다. 헤레이스가 내 새끼손가락을 살짝 잡았다.

“그래도 오늘은 여기서 잤다가, 내일 황궁에는 함께 가요.”

“…….”

“황궁에는 가야 하지 않습니까.”

헤레이스의 귀는 여전히 붉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만큼은 올곧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 그렇게 해요.”

나는 결국 공작가에서 하룻밤 더 머물렀다.

그리고 다음 날, 헤레이스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고 황궁으로 향했다. 미리 연락을 받은 루이스와 올리비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희 결혼하려고 합니다.”

루이스와 올리비아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나와 헤레이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순간 긴장이 되었다.

하지만, 그건 잠깐이었다. 놀란 듯 잠시 멍했던 올리비아가 활짝 웃으며 그 누구보다 기뻐해 주었다.

“축하해! 너무 잘됐다.”

루이스는 여전히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입꼬리가 옆으로 늘어졌다. 나와 헤레이스의 소식이 반가운 것이다.

다행이다. 나도 두 사람을 보며 드디어 마음 편하게 웃을 수 있었다.

오늘은 나와 헤레이스 사이의 변화에 대한 것을 보고하러 왔을 뿐이다. 간단한 안부를 나눈 후 돌아가려고 할 때였다.

루이스가 무심하게 툭 내뱉었다.

“결혼식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앞으로의 진행 과정을 묻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결혼을 결심했을 뿐, 다른 것은 정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어차피 이미 한번 했던 결혼, 급하지도 서두를 필요도 없었다. 천천히 준비할 생각이었다.

“아직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정할……,”

“그게 무슨 소리야. 결심했으면 빨리해야지.”

“최대한 빨리할 생각입니다.”

헤레이스가 대뜸 대답했다. 내가 놀라서 그를 바라보는데, 그는 단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루이스는 헤레이스를 가만히 보더니 입을 뗐다.

“빨리는 하되…이번에는 성대하게 해.”

루이스는 이전에 내 결혼식이 지나치게 간단하게 진행됐던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 것 같았다. 이전에 했던 결혼식이 신경 쓰였는지 그 어느 때보다 성대하게 치르라는 말을 했다.

“아뇨. 불필요한 것은 생략하고 간단하게 하려 합니다.”

나는 최대한 조용하게 하고 싶었다.

결혼은 현실이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이것만큼은 달라지지 않는 불변의 진리다. 결혼을 결심한 순간,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는 것이었다. 결혼을 알리고 복잡한 절차에 따라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야 한다.

“어차피 두 번째이니 했던 것들을 또다시 하지 않아도 저는 괜찮습니다.”

나는 괜히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 받는 것도 이미 한 번 했던 결혼식을 또 다시 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그저 조용히 간단하게 끝내고 싶었다. 그래서 루이스를 설득하기 위해 말했을 때였다.

“안 됩니다.”

내 말에 단호하게 거부한 사람은 루이스가 아니라 헤레이스였다.

“저 역시 폐하처럼 그렇게 할 생각이었습니다.”

“네?”

“이번에는 전부 제대로 할 겁니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헤레이스가 루이스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하나부터 열까지 사사건건 맞는 것이 없었던 두 사람이 하필이면 이런 부분에서 의견을 통일했다. 헤레이스 역시 단호하게 제대로 된 -하지만 사실은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결혼식을 주장했다.

헤레이스는 완강했다. 절대 생각을 꺾을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루이스 역시 헤레이스의 말에 동조했다. 먼저 제안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결혼식을 해 주고 싶습니다.”

헤레이스 역시 회귀 전에 대부분을 생략하고 간소하게 치렀던 결혼식이 마음에 걸리는 것 같았다. 루이스와 헤레이스는 굽힐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게다가 올리비아마저 두 사람에게 손을 들어줬다.

내게는 그들의 고집을 꺾을 방법이 없었다. 심지어 제대로 된 결혼식을 하고 싶은 이유가 나 때문이라는데 거기에 더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제대로 된 결혼식이라.

확실히 회귀 전에 나와 헤레이스의 결혼식은 대부분의 것이 생략된 조촐한 결혼식이기는 했다. 일반 백성들만큼이나 생략된 결혼식은 황녀의 결혼식이라고 보기에도, 공작의 결혼이라고 보기에도 부족한 것이었다.

‘하지만…그럴 필요 없는데.’

그때 나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결혼식인지가 아니었다. 누구와 결혼하는지였다. 그 당시의 나는 헤레이스와 결혼한다는 사실 하나만이 중요했기에, 볼품없는 결혼식이었다 할지라도 기쁨에 충만했었다. 결코, 부족하거나 서운한 마음은 없었다.

그러니 지금도 결혼식의 규모는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헤레이스는 이것만큼은 물러날 수 없다며 고집을 부렸다. 나에게는 별것 아닌 부분이었지만, 헤레이스에게는 내내 짐처럼 마음을 쓰고 있었던 것 같았다.

결국, 그의 뜻대로 결혼식은 격식을 차리고 규모도 이전과는 다르게 하기로 했다.

* * *

‘근데 나 왜 여기 있지?’

황궁에서 돌아가는 길에 저택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나는 황궁에서 나온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공작가에 있었다.

황궁에서 나왔을 때였다. 헤레이스가 차라도 함께 하자며 제안했다. 어차피 낮이었다. 잠시 차를 마시고 돌아가면 된다는 생각에 순순히 따라갔다. 하지만 헤레이스와 결혼 준비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어느새 훌쩍 지나가 버렸다.

‘시간이 늦었습니다. 일단 여기서 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결국, 정신을 차려 보니 밤이었고, 나는 오늘도 저택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자고 일어나면 헤레이스와 함께 아침을 먹고 정신을 차려보면 다시 저녁이었다.

연애를 하자고 했으니 오늘은 데이트를 하자. 오늘은 어쩐지 몸이 이상한 것 같다. 지난번에 다쳤던 게 탈이 난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벌써 며칠이 지났다. 결국, 나는 지금도 공작가에 있었다. 그것도 헤레이스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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