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0 1권.
“주문을 원하시면 다시 불러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예상외로 친절한 그녀의 말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여성에게 이렇게 친절함을 받아보긴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어디 보자… 뭘 먹을까? 하하, 별의 별개 다 있구나. 게임속이어서 그런가? 식당 하나에서 이런 수많은 음식들을 만들 수가 있다니 말이야.”
수많은 메뉴는 한식, 중식, 일식, 양식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1골드가 넘어가는 음식들도 꽤 많네? 아! 그러고 보니 음식을 먹으면 버퍼가 생기는구나!”
음식 이름 옆에는 각기 음식에 맞는 버퍼 효과가 적혀 있었고, 그 효과가 높을수록 음식의 가격도 비싼 듯 했다.
“후후, 당장 내가 먹을 건 값만 싸면 되니까. 어디보자… 쌀국수를 먹어볼까? 여기요~!”
그의 목소리를 들은 종업원이 곧장 올라왔다.
“네. 주문하시겠어요?”
“쌀국수 하나만 될까요?”
“호호. 네 알겠습니다. 다른 건 필요하신 건 없으신가요?”
“네. 아… 저기 궁금해서 그런데 왜 저에게 친절하신 건가요?”
태성의 말을 들은 그녀가 오히려 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내 미소지어 보이더니 한 마디 했다.
“호호, 왜 그런 질문을 하세요? 손님에게 친절하면 안 되나요?”
“그건 아니라… 대부분 NPC들은 저에게 불만이 가득하거든요.”
그녀는 ‘싱긋’ 웃어 보이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가요? 이거 어쩌죠? 저는 NPC가 아니라 아르바이트 유저거든요.”
“네? 아르바이트요?”
“네. 유저도 이렇게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답니다. 뭐 당장 레벨도 안 되고, 그렇다고 사냥에 큰 흥미도 없고 해서 이렇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도 벌고, 인맥도 만들어가는 거죠.”
그녀는 간단하게 설명을 마친 뒤 메뉴를 들고 사라졌다.
‘유저들이 아르바이트를 한다니? 큭큭. 웃기는군.’
창밖을 바라보던 태성은 간만에 즐기는 한가로운 시간에 숨통이 탁 트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후 그 숨통을 다시 조여 오는 일이 발생했다.
또각또각또각.
2층 계단을 오르는 신발 굽소리가 들렸다. 태성은 소리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시선을 계단으로 향했다.
세 명의 여인이 2층으로 올라왔을 때, 그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 어떻게 쟤들이?’
그녀들의 모습을 보고 너무 놀라고 말았다. 그녀들은 태성도 잘 아는 얼굴들. 바로 고등학교에서 그를 괴롭히던 인물들과 자주 어울리는 이들이었던 것이다. 자신을 심하게 괴롭히지는 않았으나, 그들에게 동참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제길! 학교도 안 가나?’
지금의 시간은 아직 학생들이 학교에 있을 시간이다. 그런데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 이상했다. 공교롭게도 그녀들은 태성의 맞은편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개교기념일이라는 게 일주일마다 있으면 얼마나 좋아?”
“그러게 말이야. 주 5일 학교도 너무 힘든 것 같아. 그렇지 않아?”
“하갯ㅇ들을 위해서라도 조금은 시간을 좀 줄이던지, 아니면 수업시간을 2시에 끝마치던지 하면 얼마나 좋아?”
그녀들의 말을 들으면서 태성은 개교기념일로 그녀들이 학교에 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진호는 아직 접속 안한데?”
“응. 아마 조만간 들어올 거야. 친구들이랑 뭘 좀 사러 갔나봐.”
“뭐야~? 여자 친구인 너를 놔두고 다른 친구들이랑? 설마 우정이 더 중요하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호호, 내가 귀찮아서 그냥 가기 싫다고 했거든.”
웃으면서 말하고 있는 그녀는 이진호의 여자 친구인 유화영이었다. 얼굴도 매우 예쁘고, 몸매도 날씬하다. 하물며 키도 170센티에 가까워 모델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또한 피팅 모델을 용돈 벌이삼아 한다는 소문이 돌 뿐만 아니라, 현재는 연예인이 되기 위해서 유명 소속사의 연습생으로 들어가 있다는 정보도 있었다.
그녀는 학교에서 퀸카로 통하며, 동급생이나 하급생들로부터 많은 인지도와 사랑을 받고 있는 인물 중 하나였다.
“아… 요즘 돈이 궁해서 죽겠어.”
“나도! 화장품 좀 사고 나면 돈이 다 떨어져 버리니까.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여자 아이들은 한숨을 쉬며 멍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때가 좋았어…….”
“그때라니?”
“왜 있잖아. 태성이.”
“아~? 그 찌질이?”
“찌질이는 무슨… 그래도 생긴 건 반듯했었잖아? 제일 중요한 건 나의 용돈 줄에 보탬이 많이 되었었다는 거고 말이야.”
그 말을 듣고 있던 태성이 발끈했다.
최소한 학교 다니면서 그녀들에게 돈을 뺏긴 적은 없었다. 물론 이진호에게 돈은 빼앗겼지만, 차후 그 돈이 어디로 사라지는지는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진호야 돈이 궁하지 않으니까 그 돈이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온 거고 말이야.”
필요 없는 돈을 삥뜯어 자신들의 여자 친구에게 건네졌다는 사실에 태성은 기가 막혔다.
“화영이 너야 진호가 용돈도 주잖아? 더군다나 피팅 모델도 하면서 돈 벌이는 알아서 잘하고 있고 말이야.”
“호호, 나름 능력 아니겠어?”
“그래~! 이 지지배야. 얼굴 예쁜 것도 요즘은 사회를 살아가는 능력이지! 잘났다. 잘났어!”
그런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던 중 유화영이 태성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맞은편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시선을 돌리더라도 어쩔 수가 없는 현실이었다.
“얘들아. 저 사람 그 찌질이 닮지 않았어?”
“누구? 어디?”
유화영의 시선을 따라간 그녀들은 곧 태성과 눈이 마주쳤다.
“어머? 그러고 보니 많이 닮은 것 같은데? 약간 다르긴 하지만 말이야.”
“뭐 얼굴 다른 거야 바꿀 수가 있잖아? 안 그래?”
“하긴… 그렇긴 하지. 그런데 태성이가 왜 여기 있겠어? 자퇴하고 유학 갔다는 소문도 있던데?”
“모르지. 어차피 게임이야 외국에서도 가능하니까 말이야. 내가 가서 말 걸어볼게.”
그때 유화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큰일 났다. 뭐 하지만 발뺌하면 될 문제지!’
태성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가만히 앉아 있었지만, 떨리는 다리는 어쩔 수가 없었다.
‘이 빌어먹을 다리는 아직도 무서워하는 거냐? 이제 왕따의 시절은 잊어간다고 생각했건만… 몸은 기억을 하고 있는 거야?’
떨리는 다리를 손으로 움켜진 그때 2층으로 또 다른 누군가가 올라섰다.
“여~? 나왔어.”
세 명의 남자가 2층으로 올라섰다.
‘이진호!!’
태성은 이진호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그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즉각 식당을 빠져나갔다.
‘제기랄! 왜 아직도 내가 무서움에 떨어야 하냔 말이야! 이젠 저 녀석과 나는 상관도 없는데! 왕따를 당할 일도 없는데!! 복수만 하는 되는데 말이야!!’
그는 무척이나 두려워하고 있었고, 그런 자신이 너무나 바보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도망쳐 나온 본인이 한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홀로 길을 걷던 그에게 누군가가 큰 소리로 태성을 불렀다.
“야! 신태성!”
누군가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밝은 후광에 감싸진 한 여성이 태성을 향해 머릿결을 흩날리며 사뿐히 달려왔다.
마치 한 폭의 그림자처럼 선녀가 자신의 앞에 다가와 있는 듯 했다.
‘뭐, 뭐야? 이거? 내가 미쳤나?’
태성은 깜짝 놀라 고개를 다시 돌려버렸다.
“역시 태성이 맞네? 그치?”
그녀는 다름 아닌 유화영이었다.
“사, 사람 잘못 봤습니다.”
“잘못보긴 뭘 잘못 봐? 그럼 방금 내가 이름을 불렀을 때 왜 쳐다 본 건데?”
“그, 그거야 누가 큰 소리를 치 길래 얼떨결에 봤을 뿐입니다.”
“호호… 정말 이러기야? 내가 아는 태성은 항상 거짓말을 할 때면 손을 뒤로 하고 땅을 바라보고 있더라고. 그런데 지금 네가 완전 그 모습을 그대로 하고 있짢아?”
순간 태성은 자신의 습성을 알고 있는 유화영이 이상하다고 느끼면서 얼른 다른 자세를 취했다. 그런데 그녀의 반응이 더 이상했다.
“정말 오랜만이야. 사실 너 무진장 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뭐 하지만 네 연락처를 아는 사람이 있을 리도 없고.”
“가, 갑자기 무슨 소리야? 넌 이진호의 여자 친구잖아?”
“호호, 그렇지. 그걸 우리 학교에서 모르면 간첩이지. 그래도 어차피 이진호랑 오래 갈 생각은 없어. 학교 졸업만하면 끝인걸 뭐? 나도 그만한 배경은 있어야 학교 생활하기 편할 것 같아서 말이야. 그런데 내가 왜 이런 변명을 너에게 해야 하는 거지?”
그녀의 말에 태성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가만 생각해보면 학교 다닐 때 유화영은 나를 딱히 괴롭힌 적은 없어. 매번 먼 곳에서 지켜만 보고 있었지.’
그런 생각이들자 지금 앞에 있는 유화영의 모습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실 네가 알고 있는 진 모르겠지만, 나는 너를 조금은 좋아했었거든. 뭐 성격은 별로 마음에 안 들지만, 외형은 조금은 내 취향이랄까?”
“지금 그 말을 날 더러 믿으라는 거야? 넌 내가 학교 다닐 때 벌레보다 못한 눈으로 나를 봐 왔었잖아?”
태성은 그녀가 자신을 얼마나 경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남들이야 그저 싫고, 짜증난다고 때리기만을 하지만, 그녀는 태성에게 손조차 대지 않았다. 이유는 불결하다는 것이었고, 언제나 벌레 취급으로 일삼았다.
“내가 아는 너는 절대로 나를 좋아할 리가 없어.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서 네가 하는 말을 날 더러 믿으라고? 그것도 단순한 말이 아닌, 나를 좋아한다는 그 말을? 내가 그렇게 바보처럼 보이나봐?”
“호호, 진짜 못 믿는 거야? 잘 생각해봐. 애들이 너를 심하게 때리거나 할 때, 내가 무슨 말을 했었는지.”
회상을 해보면 그러한 일들이 하도 많아서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그런 일들이 없지는 않았다.
간혹 태성이 심각하게 맞을 때는 그녀가 먼저 사태를 무마시키며 아이들을 해산시키곤 했다. 그게 과연 그녀의 진심어린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그도 아니면 상황을 크게 벌이기 싫어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 일들이 생각이 난 순간, 태성은 자신도 모르게 유화영의 말을 어느 정도 믿기 시작했다.
‘그래… 그때를 기억하면 내가 심하게 다칠지도 모르니 말렸었는지도?’
그러나 모든 상황을 종합해보면 아직도 믿기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난 지금 아이들이랑 함께 있어서 오랜 시간을 비울 순 없어. 만약 네가 내 말을 믿는다면 서쪽 자유의 분수대에서 기다려.”
유화영은 그 말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정말… 날 좋아한 거야?’
자신을 향해 미소 지어보이며 떠나는 유화영의 뒷모습에 수많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떠났음에도 아직까지 그녀가 곁에 있었던 여운을 잊지 못하고 있는 태성이었다.
“하하, 그럴 리가 없지. 당연히 장난이었을 거야. 암! 내가 그걸 모를 리는 없다고! 그런데 왜 나는… 여기에 나와 있는 거야!”
서쪽 자유의 분수대.
자유의 분수대에는 많은 석상과 화려한 분수대가 자리하고 있다. 음악과 함께 분수대가 맞추어 물을 뿜어내고, 주변은 음악소리와 물소리 외에는 거의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이다. 간간히 연인들이 이곳을 찾아와 데이트를 즐기며 ‘하하호호’ 웃는 웃음소리가 즐비하는 이곳.
작품 후기
추천은 작가에게 힘이 됩니다...T_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