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1 1권.
태성은 이미 자유의 분수대에서 유화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킥킥.”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났고, 태성은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사람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파하하하! 나 도무지 못 참겠다!”
“캬하하하! 저 인간 진짜 웃긴다. 유화영. 네가 정말 자기를 좋아하기라도 한 줄 알았나봐.”
“아무리 찌질 해도 정도가 있지. 그렇게나 경멸했던 눈빛을 줬는데도 대체 여기에 오는 의도가 뭐란 말이야? 설마 저녀석 화영이 너를 좋아하는 건 아니겠지? 큭큭.”
갑자기 수풀 속에서 여러 명의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모두가 이진호와 유화영의 일행들이었다.
“너… 너!!”
태성이 화가 치밀어 올라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왜? 속아서 열이라도 받은 거야?”
“지금 장난쳐?”
“그럼 이게 진담으로 보였니? 아… 그동안 너무 놀릴 사람이 없었는데 오늘 정말 대박 아니니?”
아이들의 시선.
태성은 너무나 오랜만에 기분 나쁜 그 시선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자신을 사람 취급하지 않으며, 금방이라도 때릴 것 같은 표정과 시선들.
가엽다는 듯이 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더러운 벌레와 인간의 취급이 아닌 그저 못생긴 동물을 보고 있는 듯한 눈빛들.
“네놈들… 죽여 버린다!”
태성이 화가 나서 소리를 크게 질렀다. 지금까지 이러한 모습은 그에게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것과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논다는 것은 많은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 태성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심한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분노는 극에 달했고, 그것은 곧 그들에 대한 응징을 준비했다.
“푸하? 죽인다고? 대체 네가 얼마나 잘났기에 그런 개소리를 하냐? 하긴 뭐 게임이면 잘나고 못나고 무슨 상관이 있겠냐? 레벨이 장땡이지. 아참! 이거 하난 기억해. 레벨이 오를수록 강해지지만 말이야. 아이템도 무시할 순 없다는 걸!”
말을 하는 이는 이진호였다.
그의 아이템은 한눈에 보기에도 매우 값비싸 보였다. 광택 정도가 이미 다른 아이템들과는 남달랐던 것이다.
“저 녀석 미쳤나봐. 우릴 죽인데. 우리는커녕 진호랑 한판 대결이라도 펼칠 레벨이나 될지 몰라.”
“야야, 간만에 재밌는 장면 한 번 보겠는데? 큭큭.”
그들은 모두는 이진호가 태성보다 강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오히려 이런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좋아. 이쯤이면 결투를 신청하는 게 예의겠지? 너에게 대결을 신청한다.”
이진호가 태성에게 대결을 신청했다.
화가난 태성은 그 대결을 받아들이려 하였다. 그런데 어이없는 일이 발생했다.
-하늘기사님과 대결이 성립되었습니다. 패배자에게는 페널티가 주어집니다.
‘뭐, 뭐야? 내가 언제 대결을 받아들였다고 그래?’
순간 태성은 자동으로 대결이 성립되는 것에 놀라고 말았다. 대결을 신청한 이진호 조차도 어이가 없어 했다.
“뭐야? 이 미친놈. 진짜 대결을 받아들이네? 하긴… 받아들이지 않아도 널 죽이려고 마음은 먹고 있었지만 말이야.”
“저 인간 정말 무식하다. 진호의 대결을 받아들이는 녀석은 처음 봐.”
“완전 죽으려고 날 잡은 거지 뭐. 조만간 랭킹에 들어가는 진호인데 그냥 죽었다고 보면 돼. 어쩌면 진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니까 저런거지.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잖아?”
아이들 모두가 이진호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너 웬만하면 지금이라도 빌어. 진호는 너랑 차원이 달라.”
“맞아. 그냥 한방이면 죽을지도 모르지? 그냥 예전처럼 조금만 괴롭혀 줄 테니까 잘못했다고 싹싹 비는 게 나을 거다.”
친구들의 말에 태성이 입을 천천히 열었다.
“여기가… 학교인줄 아냐? 내가 왜 그렇게 해야 하지?”
괴롭힘을 당한이래, 처음으로 반문을 한 그. 그런 태성을 바라보며 아이들이 잠시 멍해졌다.
“저거… 왜 저러냐? 자퇴했다고 눈에 뵈는 게 없나?”
“그러게 말이야. 자퇴하고 나서 심장수술이라도 했나?”
오히려 비꼬기 시작하는 그들에게 태성은 본때를 보여주리라 마음먹었다.
“그래…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지.”
태성의 말에 그들은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는 네가 짧은 걸 확인하고 싶진 않아.”
“아니? 내가 보여주고 싶어서 그래. 좀비 소환! 스켈레톤 소환! 스켈레톤 메이지 소환! 구울 소환!”
태성의 외침에 수많은 몬스터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진호는 그런 태성이 소환을 하는 모습을 놀라운 표정으로 지켜보고만 있었다.
“악! 뭐야? 이 썩은 내는?”
“미, 미치겠다! 어디 하수구터졌냐?”
“이게 무슨 하수구야! 완전 계란 썩은 내가 가득하구만!”
너나 할 것 없이 코를 막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이, 이게 대체 뭐야? 전부 네가 소환한거야?”
“잠깐… 이거 언데드 아냐? 그럼 흑마법사라는 소린데? 흑마법사가 이렇게나 많은 언데드를 소환 할 수가 있었어?”
아이들은 태성의 클래스를 대충 짐작하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여자아이들은 클래스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 짜증나! 흑마법사고 뭐고 빨리 죽여 버려! 냄새나서 내가 죽겠단 말이야! 좀비한테서 썩은 냄새 난단 말이야!”
유화영의 눈빛이 예전 학교에서 태성을 경멸하듯 바라보는 눈빛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눈빛을 태성은 다시 확인해야만 했다. 그녀에게 이진호는 달래듯 말했다.
“어이쿠. 우리 공주님께서 짜증이 나셨네. 기다려봐. 내가 금방 해치울 테니까.”
이진호가 양쪽 허리춤에 있는 검을 빼들자 매끄러운 금속음이 들렸다.
스릉~!
“긴장해라. 이진호는 정말 많이 강하니까.”
“뭐 긴장하고 자시고 할 게 있나? 순식간에 끝나버릴 텐데 말이야.”
아이들이 이렇게 이진호에 대해서 자신만만해 하는 데는 그만큼의 이유가 있었다.
레벨 99의 쌍검을 사용하는 검투사. 조금만 더 있으면 게임 내에 100위 안에 드는 실력자가 되는 것이 바로 이진호였다.
“전원 공격!”
태성의 목소리에 좀비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아… 짜증 난다. 정말 무슨 위협을 하나도 못 느끼겠냐?”
이진호는 검을 들고 위에서 아래로 한 번 그었다.
서걱~!
그에게 달려들 던 소환수가 단 한 번의 동작에 그대로 양단되고 말았다.
“헉?”
최강의 소환수라고 할 수 있는 구울이 한방을 버티지 못한다는 사실에 태성은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정말이지… 이런 것도 캐릭터라고 키우는 네놈이 정말 한심하다. 역시 왕따는 왕따에 맞게 생활을 하나 보네? 더러워서 검을 사용할 수가 있어야지…….”
스걱스걱!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의 검은 매우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소환수들은 줄기차게 바닥에 쓰러져 나가고 있다.
나름대로 태성은 레벨업을 하면서 많은 수의 언데드를 소환 할 수가 있었지만, 칼부림 몇 번에 이미 대부분 언데드들이 사라져버렸다.
“귀찮네. 올 거면 빨리 오지. 그냥 오지마라. 내가 한 꺼번에 쓸어 줄테니! 크로스 웨이브!”
사사삭!
이진호의 검에서 빛을 동반한 파공성이 들렸다. 그리고 그것은 낮게 깔리며 앞에 있는 소환수들을 덮쳤다.
순식간에 몇 십 마리의 소환수들이 한 번의 공격에 와해가 되어버리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고, 태성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존호는 오셍 묻은 찌꺼기들을 대충 털어내고 이미 전의를 상실해버린 태성의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지겹다. 난 또 자신만만해 하길 래 뭐라도 달라져 있을 줄 알았떠니… 너는 게임이나 현실이나 그저 패배자일 뿐이야. 죽어라. 냄새난다.”
촤악!
두 개의 검이 교차되었다.
-캐릭터가 사망하였습니다. 가까운 마을인 안델리카로 이동 할까요?
메시지가 흘러 나왔음에도 태성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고,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
“예…….”
-안델리카 마을에서 부활합니다.
-결투에서 패했기 때문에 경험치 50프로를 하락 시킵니다. 하락 된 경험치는 사냥을 통해서 복구 할 수 있습니다.
마을에서 부활 된 태성은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하… 정말 이리 살아야 하나? 그리고… 이것 밖에 안 되는 거였나?’
나름대로 복수를 하겠다고 노력한 결과는 고작 손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패배는 물론, 자신에게 굴욕까지 떠안게 만들었다.
의기소침하며 한숨을 내쉬며 부활한 태성은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저놈이다! 잡아라!”
그런데 그때였다. 난데없이 마을 경비병들이 태성을 향해 달려오더니, 그를 붙들었다.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경비병들에게 물었다.
“너는 마을에서 불법적인 대결을 펼쳤다. 그래서 너를 감옥으로 데리고 가려고 한다.”
마을 내에서 대결을 불법이다. 그것이 상대방이 대결을 성립시키던 말든 상관없었다. 오로지 대결이 성립이 되는 곳은 마을 밖이나 마을 내에 있는 결투장에서만 성립이 된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불법적인 대결이라뇨? 난 대결을 받아들인 적도 없단 말입니다.”
“흥! 도둑이 자기 입으로 도둑이라고 하는 걸 본 적 있나? 당장 끌고 가라.”
기가 막힌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잠깐만요! 그럼 나와 대결을 펼친 사람은 어찌 되는 겁니까?”
“그걸 말이라고 하는 소린가? 당연히 정당화 된 거니 우리가 제재를 가할 필요는 없다!”
“무슨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릴?”
자신은 불법이고, 상대는 정당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태성은 곧장 경비병들에게 이끌려 감옥으로 끌려갔다.
철컹!
경비병들이 태성을 집어넣고 그곳의 문을 닫아버리자 메시지가 다시 흘러나왔다.
-마을 내에서 불법적인 결투를 하였기 때문에 접속한 게임 시간으로 10일 간 이곳에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시간이 모두 채워지면 풀려날 수 있습니다.
“하? 정말 어이가 없구나…….”
체념을 한 듯 태성은 벽에 기대어 자리에 걸터 앉아버렸다.
흑마법사의 단점.
그것은 모든 유저들이 대결을 걸었을 때, 자동으로 수락이 된다는 것이다. 또한 마을 내에서 불법적으로 펼쳐진 대결은 언제나 흑마법사의 잘못으로 인정이 되어버리고 만다. 상대방이 대결을 걸던, 흑마법사가 대결을 걸던 법적인 조취는 언제나 흑마법사의 몫이었다.
‘내가 정말 미친놈이다… 유화영의 모습이 후광이 아니라, 그저 내 눈을 바보로 만드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까지 정시능ㄹ 못 차렸나보구나. 신태성…….’
태성은 스스로를 한탄하며 그렇게 감옥에서의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10일 동안 감옥에서 있으면서 태성이 생각한 것은 단 두 가지였다.
‘반드시 복수 한다. 반드시 강해질 테다! 이번 몫까지 합쳐서… 아주 두둑하게 빚을 청산해주마!’
가장 치욕적인 것은 이진호에게 죽었다는 것이 아니었다. 또한 경험치 50프로가 날아간 것도 그에게 별로 대수롭지 못했다.
그에게 큰 충격을 안겨준 것은 자신이 믿고 있던 소환수들이 순식간에 쓰러지는 허무함 때문이었다. 그것은 태성에게 자극을 주긴 충분했다.
‘소환수들은 나의 힘이다. 나의 힘이 이토록 허무하게 잘려나갈지는 꿈에도 몰랐어. 반드시 강해진다… 이진호 녀석에게 절대 한 방에 굴하지 않을 정도의 소호나수를 만들어내겠어!’
철컹!
태성이 이를 갈고 있을 때, 감옥의 문이 열렸다.
“나와라! 10일의 시간이 지났다. 썩 꺼져!”
경비병은 태성을 날카롭게 노려보고 있었다.
아무런 말도하지 않고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나 감옥을 나온 태성.
‘이제부터 시작이야… 그 전에 마나를 좀 사러 가볼까……?’
작품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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