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3 2권
그녀의 놀라운 말에 태성은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요? 난…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머리를 쥐어짜보아도 지금 앞에 있는 반여린이라는 여성처럼 섹시하고 아름다운 여자를 본 기억이 없는 태성이었다. 물론 학교를 다닐 때야 아이들에게 맞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매일 같이 땅을 보고 거닐던 그였지만, 아름다운 여자라면 누구에게나 눈에 띄기 마련이다.
‘아무리 봐도 그 망할 년 유화영 만큼 예쁜 여자를 모를 리가 없는데? 혹시 이 사람이야말로 나를 다른 사람이랑 착각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착각을 이름까지도 할 수 있는 건가?’
궁금증이 밀려올 무렵, 반여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 어쩌면 달라져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설마 외형 변경을 하셨나요?”
“아… 딱히 한 것은 아닌데, 이러면 알아보려나?”
그녀는 자신의 머리를 헝클기 시작하더니, 이내 앞머리로 얼굴의 반을 가려버렸다. 눈조차 보이지 않았고, 보이는 곳은 코의 끝부분과 입술과 턱선 뿐이었다.
“아?”
그제야 태성은 그녀의 현재 모습에서 낯설지 않은 느낌을 받을 수가 있었다.
반여린. 일명 반 존재감.
반에서 태성 다음으로 왕따를 당하고 있는 일명 여자 태성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태성의 경우는 완전한 따돌림과 왕따에 구타까지 당하고 있었지만, 반여린은 그렇지가 않았다.
철저하게 존재감이 없는 학생이었고, 언제나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다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얼굴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도 드물다고 할 수 있었다.
교복을 수선하지 않아서 그녀는 매우 펑퍼짐한 교복의 상의와 치마를 입고 다녔다. 그러니 그 누구를 막론하고 그녀에게 관심을 줄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너 원래 이런 얼굴과 몸매였니?”
“응.”
그 말을 듣고 태성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사람이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 절대로 속을 알 수가 없듯이, 그녀의 얼굴과 몸매 역시도 앞머리와 교복에 가려져 그 누구도 그녀의 실체를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네가 어떻게 여기에?”
두 눈을 크게 뜨며 아직까지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반여린을 바라보며 태성이 물었다.
“뭐 어떻게라기 보다는 나 역시도 게임을 시작하게 되어서 여기에 있는 거지. 그나저나 정말 우연이네. 반 아이들 중 일부가 남대륙의 안델리카 마을에 많이들 위치하고 있는걸 보고 있으니 말이야.”
“그렇구나…….”
그녀는 태성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 또한 안델리카 마을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우물쭈물하며,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는 태성에게 그녀는 오히려 더욱 편하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원래 난 게임을 하지 않았는데, 반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거든. 태성이 네가 레전드 오브 판타지를 하고 있다고 말이야.”
“그게 무슨 소리야?”
“너 전에 이진호한테 죽은 적이 있다면서? 유화영이랑 이진호 패거리들이 모여서 웃으면서 떠들고 있던데?”
“크윽…….”
태성은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이가 갈릴 지경이었다. 그리고 아직도 이진호에게 근접할 수 없는 자신의 상황이 한심스럽게만 여겨졌다.
“그 이야기를 듣고 반 아이들 몇 명이 게임을 시작한 이들도 있다고 들었어. 물론 나 역시도 그렇고 말이야.”
“그랬구나…….”
반여린은 게임을 한 이유를 듣게 된 태성은 저도 모르게 움츠려 들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어쩌면 반의 아이들은 태성을 찾기 위해서 게임을 하고 있다는 말도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렇게 만나서 반가워. 사실 항상 학교 다니면서 너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거든.”
“동질… 감?”
“응. 너도 알다시피 난 왕따 아닌 왕따를 당하고 있었으니까. 뭐 친구가 없으니 당연히 왕따라고 보면 되는 건가?”
그녀를 바라보며 태성이 조심스레 물었다.
“넌 왕따를 당할 이유가 전혀 없을 것 같은데? 성적도 반에서 중상위권 아니었던가?”
“뭐 성저이야 그렇다 치지만, 사교성이 없는 왕따의 가장 큰 문제 아니겠어?”
그녀의 말에 태성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말았다.
“후후, 그렇긴 하지. 넌 사교성이 없어도 너무 없었지. 분위기도 어두워서 성격 고약한 애들도 너에게 말을 걸지 않았을 정도니까.”
“그런가? 내 분위기가 그만큼 어두웠구나…….”
반여린은 자신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저 남들이 말을 시켜주지도 않았고, 사교성이 없는 자신으로 인해서 지금까지 외톨이 생활을 하고 있는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지금 이 모습처럼 학교 갈 때 해봐. 아마 남녀불문하고 너에게 말을 걸어올걸? 그리고 교복 좀… 너무 크게 입지 말고. 이제 고3이잖아. 졸업하면 땡인 교복도 졸 줄여서 타이트하게 입어. 아마도 여자들 중에서 교복을 수선하지 않고 그대로 입고 다니는 애는 너 밖에 없을 걸?”
“그랬던가? 아하하하. 난 그런 걸 전혀 몰라서…….”
“하긴 모를 수밖에 없겠지. 아이들과 대화를 안 하니까… 정보조차도 알 리가 없고…….”
태성이 이런 말을 그녀에게 해주는 이유는 하나였다. 어차피 끝난 학교생활이다. 그렇다고 반여린에게 앙심을 품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런 말 한마디 못해 본 그녀에게 조금 더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조언을 해준다는 것은 그가 할 수 있는 동급생으로써의 도리라 여겼다.
‘안타깝네… 이런 예쁜 얼굴에 몸매를 지니고 있으면서 친구하나 제대로 없다니… 최소한 진면목을 보이게 되면 유화영 못지않은 인기를 얻게 될 텐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반여린이 자신에게 물었다.
“그런데 레벨이 얼마야?”
“응? 난 이제 50레벨이야.”
“와? 정말 대단하다. 난 이제 11레벨인데…….”
“후후, 하다보면 금방 레벨업은 되겠지.”
태성은 섣불리 그녀에게 파티를 권할 수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만약 그녀가 자신과 어울리는 것이 들키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녀가 학교에서 어떠한 일을 당할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아무런 해를 가하지 않은 반여린에게 후에 있을 위험을 만들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또 다른 문제는 생각보다 너무나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고 있었기에, 사실상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위화감도 존재했다.
“자, 휴식을 취했으니 다시 사냥을 해보자고요.”
반여린의 파티원 중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하자, 그녀의 시선이 그들을 쫓았다.
“아… 이제 가봐야 하는 것 아니야?”
“응? 아… 가봐야지.”
그녀는 아쉬운 듯한 표정으로 땅바닥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후… 정말 그렇게 시선을 내리면 안 돼. 내가 왕따를 당해봐서 아는데 말이야. 언제나 당당하게 앞을 주시해야 해. 땅바닥만 바라보고 있으면 왕따의 길로 빠져 들게 되니까 말이야.”
그 말에 반여린이 얼른 얼굴을 치켜들었다.
“미안해.”
“나에게 미안할 건 없지. 아무튼 난 간다. 사냥 잘해.”
“으응…….”
그녀는 태성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내 갑자기 그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저기요! 어디가세요?”
파티원 하나가 그녀의 돌방행동에 급히 불러 세웠다.
“잠깐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파티원들에게 양해를 구한 그녀는 태성의 등 뒤에까지 달려와 있었다.
“저, 저기!”
등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태성이 고개를 돌렸다.
“응? 파티 사냥은 안하고 왜 온 거야?”
“다름이 아니고… 우리 또 볼 수 있을까?”
그녀의 말에 태성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답했다.
“볼 수야 있지. 그게 뭐가 어렵다고? 그런 말을 하려고 뛰어 온 거야?”
“아니… 꼭 그런 건 아니고. 다른 사람들을 보면 말이야. 게임에 들어오면 서로 연락을 통해서 만나곤 하잖아? 우리도 그러면 안 되나 싶어서 묻는 거지.”
그녀의 말에 문득 한 가지가 생각이 났다.
“아… 친구 등록 말하는 거야?”
“어? 어! 맞아. 그거.”
친구 등록은 기존에 알던 사람들의 합의하에 친구 등록을 맺게 된다. 이후 ‘친구 목록’ 이라는 말로 누가 접속을 해 있는지 확인을 할 수가 있게 되며, 쉽게 귓속말을 통해서 서로의 위치를 확인 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알았어. 친구 등록하고 서로 있는 걸 확인하게 되면 귓속말을 하면 되겠네. 아이디가 뭐야?”
“나? 반여린.”
“허? 이름을 그대로 쓴 거야?”
“응… 처음 게임을 하다보니 뭘 잘 몰라서 이렇게 만들게 되었어.”
“그럼 내가 신청할게. 반여린 친구등록.”
태성의 말이 전해진 후에 메시지가 반여린에게 전달이 된 듯 했다. 이후 확답이 왔다.
-반여린님과 친구가 등록 되었습니다. 친구는 친구 목록에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을 확인한 반여린이 물었다.
“저기 그런데 친구를 확인하는 방법은 뭐야?”
“그건 ‘친구 목록’ 이라고 말을 하면 한 번에 확인할 수가 있을 거야.”
“아… 그럻구나. 고마워.”
“고맙긴 뭘. 어서 사냥하러 가. 사람들 기다리겠다.”
반여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파티원이 있는 장소로 달려갔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태성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에 열이 홖느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하… 사람이란 게 역시 어떻게 꾸미느냐에 따라서 확실하게 달라지는구나. 그나저나 유화영은 아주 열 받겠는걸? 만약 여린이가 저 모습으로 학교를 가게 된다면 말이야…….’
태성은 문득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만약 반여린의 저런 외모가 아이들에게 들통이 나게 된다면 일반적으로는 인기와 호감을 얻게 되겠지만, 문제는 유화영이 질투나 시기를 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녀와 연관이 있는 이진호를 감안한다면 절대로 반여린에게 좋은 일은 아니게 될 것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태성은 그녀에게 귓속말을 넣었다.
가온누리@ 여린아.
하지만 반여린에게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가온누리@ 귓속말 대답은 그냥 머릿속으로 하면 돼.
반여린@ 어! 미안. 몰랐어. 귓속말은 처음이라. 그런데 왜?
가온누리@ 다름이 아니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너 그냥 학교 다닐 때는 이전 너의 모습 그대로 가는 게 낫겠다. 지금처럼 가면 아마 문제가 좀 많아질 거야.
반여린@ 왜?
그녀의 말에 태성은 자신이 생각한 바를 이야기 해주기 시작했다.
가온누리@ 내가 볼 때 넌 학교에 가면 분명 인기가 많아질 거야. 많은 사람들의 시선에도 들 거고. 그러면 당연히 유화영이 너를 가만두려하지는 않을 거야. 알지? 유화영이 자신의 외모에 얼마나 자신감에 가득 차 있는지 말이야. 모든 인기는 자신이 독차지하려는 성격이 강하거든.
반여린@ 그렇구나. 그런 것까지 신경을 써줘서 너무 고마워.
가온누리@ 걱정은 뭐… 다 나를 위… 아, 아니고. 아무튼 즐겁게 사냥해.
태성은 그렇게 마짐가 인사를 나누고 귓속말을 끊었다.
‘내가 왜 이러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부분까지 신경을 쓰고 있고 말이야… 나 지금 반해버린 건가?’
태성은 뒤로 돌아 멀리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파티원들과 함께 사냥에 열중하고 있었다.
작품 후기
추천은 작가에게 힘이 됩니다...T_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