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언데드 군주-88화 (88/134)

00088  4권

{훗. 웃기는군. 보따리나 쓰고 다니다니? 수치스러운 놈!}

말을 잘 안하기로 유명한 고스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레이스를 보며 비웃고 있는 것이다.

{어이가 없군. 최소한 유령 흉내를 내려면 좀 그럴싸하게 하던지? 이건 뭐 애들 장난도 아니고, 보따리나 뒤집어쓰고 말이야. 누가 보면 처녀귀신이 머리만 빼고 이는 줄 알겠군!}

{응? 머리? 내 머리는 여기 있는데?}

듀라한이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고스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런 고스트에게 다크 나이트가 한 마디 했다.

{신경 끄시게.}

고스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유유히 주변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드디어 레이스인건가? 후후, 기대되는군. 조금은 고스트보다 좋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말을 들은 고스트가 급히 태성을 향해 날아왔다.

{지금 그 말은 우리 고스트들을 무시하는 발언으로 봐도 좋나?}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니고. 내가 볼 땐 너희들도 대단해. 물리 공격력이 아예 먹히지 않으니까. 단지 내 소망은 점점 더 강한 소환수를 거느리면 좋다. 이 뜻이지.”

{흥! 욕심도 많군. 그저 누워서 떡먹기로 우리 고스트들을 부려먹고 있으면서 말이야.}

“누워서 떡먹기라니? 최소한 너희들을 얻기 위해 고생했던 나를 잊어 먹은 건 아니겠지? 이건 일종의 계약이야. 계약.”

레이스와의 조우. 그리고 그렇게 퀘스트는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드디어 첫 사냥이 시작되려는 상황.

레이스들은 고스트와 마찬가지로 허공을 날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사냥을 하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저걸… 어떻게 잡지?”

“그러게요. 궁수나 메이지. 그리고 고스트가 아닌 이상 사냥을 하긴 좀 힘들 것 같은데요?”

“그렇지. 우리들 중에 제대로 된 마법사나 궁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미안하지만 가온누리 네가 고생을 좀 해야겠다.”

“네. 알겠어요. 어차피 퀘스트 때문이라도 이 녀석들을 잡아야하니까요.”

태성의 말을 들으며 그들은 의아한 듯 물었다.

“퀘스트?”

“네. 새롭게 받은 퀘스트인데 레이스를 잡는 퀘스트거든요. 던전을 발견 했을 때 얻게 되었어요.”

태성의 곁에 서 있던 엔젤이 대답했다.

“그렇구나. 던전을 최초로 발견하면 그런 퀘스트도 주어지는구나… 그럼 혹시나 모르는 일이니까 나는 여기 서서 네가 위험하면 힐이라도 넣어줄게.”

“후후, 고마워요. 그런데 그러지 않으셔도 되요. 어차피 스컬 실드도 있고요.”

“어머? 지금 미인의 호의를 거절하는 거야?”

“파하하하하!”

그때 한곳에 앉아 있던 세이야가 큰 소리로 웃었다.

“미인? 누가 미인인데? 큭큭큭.”

“오빠… 그러다 죽는 수가 있다?”

“왜? 사실이잖아? 누가 미인이야? 하긴. 네 캐릭터만 보면 정말 미인이지.”

“이익! 감히 그런 말을!”

왜인지 실물이 거론될 것 같은 분위기에 태성이 말했다.

“에이, 신경 쓰지 마시구요. 그냥 편히 앉아계세요.”

태성의 말을 듣고서야 엔젤은 그들과 나란히 앉아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표정은 세이야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대략적으로 짐작할 수 있는 태성.

‘저 누나… 못 생겼나봐…….’

그러면서 엔젤의 외형 자체가 변형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하늘을 무수히 날아다니며, 대략 5미터 정도에 있는 대상을 공격하는 레이스.

그들의 공격 방식은 흩날리는 레이스에서 나오는 희뿌연 물체였다. 언뜻 봐서는 그냥 도망만 다니는 것 같지만, 그들이 지나가는 방향에는 항상 희뿌연 물체가 날아들었다. 그리고 5미터 앞에 있는 대상에게 초승달 모양의 희뿌연 물체가 닿게 되면 마치 칼날에 맞은 것처럼 베이거나 잘려져 나갔다.

또한 이 공격은 마법 공격이었기에 고스트가 상당히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이거 진짜 마법 방어력을 높이던지 해야지… 너무 마법에 취약하군.”

한참을 그렇게 사냥하던 중 드디어 첫 레이스를 잡게 되었다. 태성으로서는 기쁜 일이었지만, 이어 들려오는 메시지에 표정을 구기고 말았다.

-‘레이스를 굴복시켜라’ 퀘스트는 파티 진행은 불가능합니다.

‘이런 젠장! 이건 또 무슨 헛소리야? 파티 진행이 불가능하다니? 그럼 애초에 이 던전은 나 혼자 들어와야 한단건가?’

태성의 이런 표정을 본 것일까? 세이야가 물었다.

“무슨 문제 있어?”

“아? 아닙니다.”

얼른 고개를 돌려 자신의 표정을 숨기는 태성.

‘휴… 지금 이 상황에서 파티 탈퇴를 하는 것은 너무 비매너적인 행동이니…….’

그는 어쩔 수 없이 이번만큼만 사냥을 지속하기로 했다. 단지 파티 사냥이 빨리 끝나기만을 생각하며, 레이스를 상대할 뿐이다.

세이야가 이끄는 천마살 길드.

그들과의 파티 사냥은 4시간 동안 진행이 되었다. 하지만 그동안 태성은 레벨만 올렸을 뿐, 그 어떠한 이익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래… 어차피 궁극적인 목적은 레벨이었잖아?’

아이템이 전혀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왠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태성은 자신이 얻은 경험치로만 만족을 해야 했다.

그의 레벨은 87이 된 후, 파티는 해산이 되었다.

그 와중에도 그들은 계속해서 태성에게 길드 가입을 권유했지만, 태성은 극구 사양을 했다.

그들이 모두 떠나고, 태성은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참에 길드나 만들러가자.”

길드를 만드는 것은 각 마을마다 존재하는 길드 사무소로 가면 된다.

“계십니까?”

문을 열고 들어서자, 길드 사무소를 지키고 있던 노인 하나가 나타났다.

“무슨 일인가?”

“길드를 하나 만들려고요.”

“음… 그래. 길드 이름은 무엇으로 할 텐가?”

“리벤지로 하고 싶습니다.”

태성의 말을 듣고 길드 목록을 한참을 뒤져보던 노인. 아마도 같은 길드 이름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여보이더니, 이내 손으로 무엇인가를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그래. 다 했네. 합이 10골드일세.”

“생각보다 비싸군요… 여기 있습니다.”

길드를 만드는데 돈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게 된 그였다.

-리벤지 길드를 창설하였습니다.

-리벤지 길드의 마스터가 되었습니다.

골드를 건네주자 길드가 창설되었다는 메시지가 들려왔다.

조금은 뿌듯하지만 앞으로 다른 길드원들을 모집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조금은 아쉬운 생각도 들었다.

“어? 그런데 뭔가 좀 허전한데?”

길드를 만들었음에도 뭔가 빠졌다는 생각을 하게 된 태성. 그러다 문득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

갑자기 생각이 난 그는 노인에게 물었다.

저기 죄송한데, 왜 저에겐 길드 마크가 없는 건가요?“

“길드 마크? 그건 뭐 공짠 줄 아나? 난 당연히 아는 줄 알았지.”

“아? 길드 마크도 돈을 주고 만들어야 하는군요? 얼만가요?”

“20골드네.”

“헉? 길드 창설 비용보다 비싸군요?”

“그거야 당연하지. 길드 창설이야 그저 이름만 써재끼면 되지만, 길드 마크는 수작업이잖아?”

“수작업이요?”

의아하게 생각하던 그때, 노인은 여러 색의 펜들과 종이 하나를 들고 왔다.

“길드 마크를 지금 만들거면 구체적으로 나에게 설명을 해보게.”

그 말을 들으며 잠시 생각에 빠진 태성. 그리고 자신이 생각한 것들을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음… 그러니까 전형적인 외형은 투구를 뒤집어쓴 해골 모양의 얼굴로 하고요. 그리고 눈동자가 빛나는 황금 모양으로 만들어주세요.”

태성의 말에 그가 열심히 밑그림을 그리며 색칠을 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완성된 그림을 보여주는 노인. 그것을 보며 태성이 깜짝 놀랐다.

“우와… 제가 생각했던 이미지와 똑같네요.”

“그런가?”

“감사합니다. 여기 20골드요.”

“고맙네.”

스스스슥~!

그러자 그가 그렸던 그림이 종이에서 사라졌다.

“엇? 그림이 사라졌는데요?”

“그래. 사라졌네. 대신 자네의 가슴팍에 있지.”

그 말을 듣고 보니, 어느새 태성의 가슴에는 황금 해골 마크가 뚜렷하게 나타나 있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태성은 그곳을 빠져 나왔다.

‘후후, 이것으로 이제 더 이상 유저들이 나를 귀찮게 하는 일은 없겠지.’

환한 웃음을 머금고 태성은 그렇게 로그아웃을 했다.

“캬~! 오늘 이 애비가 말이다. 45레벨이 되었다는 것 아니냐?”

“허? 정말요? 빨리 오르셨네요. 조만간 2차 전직을 하시겠어요.”

“큭큭. 그렇지? 아마 2차 전직을 하고 나면 더 강해질 거다.”

“하하, 당연히 그렇겠죠.”

두 부자가 사이좋게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태성의 어머니는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태성의 아버지가 일을 그만 둔 이후, 그의 어머니는 계속 안색이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일을 하지 않는 입장에서 돈에 대한 걱정으로 심적 부담을 느끼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런데 아버지.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글세… 우선 인터넷으로 여기저기 서류를 넣어보긴 했는데 잘 모르겠구나. 솔직히 이 나이 때의 사람을 받아 줄 곳도 없는 것 같고… 차라리 그냥 남들처럼 게임을 해서 돈을 벌어 볼까도 생각하는데, 네 생각은 어떠냐?”

“헉? 아버지. 그런 생각은 절대 하시면 안 돼요.”

“허허. 그렇겠지? 아무리 그래도 이 나이 먹고 게임을 해서 돈을 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니까 말이다.”

사실태성은 아버지가 일을 하지 않거나 못한다고 하면 그가 직장을 구할 생각이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차라리 그는 게임 속에서 모은 골드를 팔아서 생활에 보태볼까도 생각을 하고 이었다. 하지만 당장 생활이 그렇게 어렵고 궁핍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상황을 감안하며 현재를 주시하고 있는 그였다.

‘이제 돈도 아껴 써야겠구나. 너무 자주 넷룸에 가기엔… 아니지. 차라리 잘됐다. 이번 기회에 용돈은 받지 말고, 내 스스로 벌어서 쓰자.’

아버지의 일로 인해서 용돈을 받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워졌다. 사실 아버지나 어머니에 비해서 캐릭터도 상당히 육성이 된 상태였다. 이 상태라면 노력을 조금만 더 한다면 얼마든지 한달 생활비 정도는 거뜬히 벌수도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따져서 누가 게임으로 먹고 살려고 하겠는가? 미래가 불확실한 게임으로 먹고 살기엔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았다.

‘여차하면 가지고 있는 모든 골드를 팔아버리는 거야.’

지금까지 그가 열심히 모아둔 골드는 대략 2천 골드가 넘어가고 있었다. 아직 이렇다 할 대박 아이템을 얻은 적이 없었고, 언데드들의 회식비나 간식으로 많은 돈이 지출이 되다보니 골드 역시도 많이 모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만약 그가 생계를 생각한다면 언데드들의 회식이나 간식은 일체 적용시키지 않을 생각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게임의 소환수일 뿐.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도 볼 수가 있었다.

태성의 아버지는 웃고 있었지만, 하루하루를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 역시도 그런 남편의 모습을 알기 때문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웃는 얼굴로 남편을 대할 뿐이었다.

작품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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