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언데드 군주-93화 (93/134)

00093  4권

“어? 백우야. 웬 구두가 있지?”

“아? 이제 왔나보네.”

“이제 왔다니? 누구 말하는 거야?”

“누구긴? 네 미래의 마누라 될 사람이지.”

그 말을 듣고 태성이 깜짝 놀라기 시작했다.

“서, 설마 여동생? 그런 말은 없었잖아?”

“뭐 굳이 말할 필요성을 못 느꼈거든. 혹시나 네가 불편해 할지도 모르고 말이야.”

“나 지금 충분히 불편하거든? 그런데 네 여동생은 이런 사실을 알고는 있냐?”

일방적으로 일을 진행시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오히려 걱정이 되는 태성이었다.

“응. 당연히 알지. 이야기 하니까 한 번 보고 싶다고 그래서. 그냥 이번 기회에 같이 놀려고 어제 너랑 연락한 이후에 물어봤지. 백설아. 왔니?”

한백우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신의 여동생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태성은 떨리는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한 여성의 고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왔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들어보는 맑고 고운 목소리의 여성. 마치 천상의 목소리와도 같았다. 목소리만으로도 태성의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했고, 거실 쪽에서 하얀 원피스를 흩날리며 한백우의 여동생이 나타났다.

댕~ 댕~ 댕~!

태성의 귓속으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한백우를 향해서 걸어오는 그녀의 모습이 마치 슬로우 비디오처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인사해. 내 친구 태성이야. 그리고 여기는 내 여동생 한백설.”

한백우가 두 사람을 앞에 두고 서로의 이름을 밝혀주었다.

“아!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한백설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수줍은 듯, 태성을 바라보며 인사를 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태성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굳어 있는 상태였다.

“야… 뭐해?”

“아? 아! 신태성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태성이 급히 그녀를 향해서 인사를 건넸따.

‘태어나서 이렇게 예쁜 여자는 처음 본다. 여린이나 유화영도 예쁘긴 하지만… 이건 정말 비교 대상이 안 되는 것 같아…….’

한백설은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칠흑 같은 긴 생머리와는 다르게 피부는 너무나 백옥 같았다. 정말 이름이 백설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말이다. 168센티 정도의 큰 키에, 원피스를 입었지만, 몸매가 얼마나 날씬한지 여실히 보여주는 몸매 라인도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뭔가 이상하다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한백설이 자신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자 태성은 부끄러워 얼른 고개를 돌렸다.

“나 먼저 씻고 올게.”

“그래. 오랜만에 같이 씻을가?”

“헉? 됐거든? 그냥 나 좀 내비 둬라.”

함께 들어오려는 한백우를 겨우 말리며, 태성은 혼자서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를 하는 내내 한백설의 얼굴이 떠올랐다.

‘미쳤다… 미쳤어. 완전 내가 미쳐가는구나.’

이 같은 사실을 알고서는 한백우는 자신을 ‘처남’이라고 부르려고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왜 그렇게 한백우가 항상 자신 있게 여동생에 대해서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자식… 고맙다!!’

자신을 처남이라고 부르며, 다른 여자들과의 인연을 차단하던 그가 왜 이렇게 멋있고, 든든한지 알 수 있었다.

샤워를 마친 태성은 옷을 걸치고 나왔다. 하지만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태성아. 나와 봐! 밖에서 먹자!”

“어? 어. 알았어.”

태성은 준비해온 화장품을 대충 바르고 밖으로 나갔다. 밖에 나가니, 남매 둘이 그림과 같은 자태를 뽐내고 서 있었다. 그런 그들의 곁에 어설픈 표정으로 함께 자리한 태성.

“자! 오늘은 첫날이고 그래서 기념으로 바비큐파티~!”

“오? 언제 준비한 거야?”

“백설이가 사온거야.”

그 말에 태성의 눈이 또다시 한백설을 향했다.

‘젠장… 뭘 먹고 자랐길래 사람이 저리 예뻐? 보는 것조차도 미안해지네.’

한백설과 눈이 마주치자 태성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바비큐를 굽고 있는 한백우에게 말했다.

“내가 좀 도와줄까?”

“오우! 전혀 그럴 필요 없어. 저기 가서 앉아 있어. 준비되면 내가 가지고 갈 테니까. 우리 백설이랑 좀 놀아줘. 백설이가 얼마나 심심하겠냐? 안 그래? 처남!”

그 말에 태성의 얼굴이 빨개졌다. 오히려 그 빨개진 얼굴이 더 보기 좋은지 한백우는 ‘피식’ 하고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의 말대로 태성과 한백설은 나란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네…….”

두 사람은 그렇게 두 번째 인사를 나누었다. 하지만 무슨 말을 어찌 해야 할지 몰랐다.

오후가 되자, 태양이 서서히 노을이 지기 시작하며, 그늘 진 곳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녀의 머리가 바람결에 조금씩 흩날렸다. 마치 광고에서나 볼 법한 찰랑거리는 생머리.

‘응?’

그 순간 그녀가 머리를 쓸어 넘기는 모습이 사진처럼 촬영되기 시작했다.

‘이건… 마치 광고의 한 장면이잖아?’

한백설의 모습이 광고와 너무나 흡사한 상황에서 쉽게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는 태성.

“앗……!”

한백설은 자신도 모르게 태성을 바라보다 고개를 급히 숙였다. 태성 역시도 그 모습을 의식하고 또다시 허공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 맛있는 백우표 바비큐가 왔어요. 너희들은 미성년자니까 알콜이 전혀 없는 샴페인으로 하고! 나는 시원한 맥주 한 잔!”

그 모습을 본 태성이 말했다.

“야, 그런 게 어딨어? 나도 민증은 있다고!”

“야야, 민증 있다고 다 성인이면, 클럽은 죄다 19세만 있겠다? 잔말 말고 샴페인이나 드세요. 샴페인이 분위기 띄우는 데는 그만이니까.”

두 사람에게 샴페인을 한잔씩 따르는 한백우. 기포가 올라오는 모습을 보며, 은근슬쩍 한백설을 다시금 바라보게 되는 태성이었다. 그리고 태성은 자신도 알 수 없는 말을 한백설에게 하게 되었다.

“저기… 우리 만난 적 없어요?”

그 말을 들은 한백우가 마시던 맥주를 뿜었다.

“풉!! 이놈 작업 멘트 좀 보게? 야, 어디 80년대 살다 왔냐? 멘트가 무슨 그 따위야? 차라리 대놓고 ‘오늘부터 1일이다.’ 라고 말을 하던가. 너무 진부하지 않냐?”

“아니… 그게 아니라, 진짜 어디서 본 것 같아서 그래. 분명 오늘 처음 보는데… 왜 이렇게 낯이 익은지?”

그 말에 한백우가 미소를 지어보였다. 한백설 역시도 그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있을 때, 한백우가 너스레 입을 열었다.

“글쎄? 어디서 봤을까?”

그 말을 하던 한백우는 태성에게 다시 말했다.

“힌트! 당신이 파라다이스를 원하신다면 그곳에서 살겠습니까?”

“앗!!”

힌트를 듣고 난 후, 태성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한백설을 가리켰다.

“봤어! TV광고에서……!”

“큭큭, 이제 생각났냐? 말했잖아. 내 여동생 인기 많고 유명하다고.”

“야, 아무리 그래도… 이건 상식을 뛰어넘었잖아.”

한백설.

그녀는 이미 CF스타였다. 한백우의 아버지가 경영하는 신화 그룹의 주 모델로 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것 때문에 다른 광고까지도 꽤 많이 찍은 상태였다.

연예인으로 활동은 안하고 있지만, 이미 그녀의 팬 카페까지 만들어져 있었고, 대한민국 누구나 한 번쯤은 그녀의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정도였다. 화제의 CF는 보지 못했더라도, 그녀의 모습이 담긴 브로마이드를 보지 못한 이들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혹시나 하고 생각했는데… 진짜 그 CF 광고에 나오는 사람이구나…….”

놀란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태성을 향해 한백우가 웃으며 물었다.

“흐흐, 내가 뭐랬냐? 솔직히 말해. 너 반햇지/”

“어? 어… 저기 그게 말이야…….”

“큭큭, 역시 거짓말을 못하는 녀석이야. 부끄러워하긴. 앞으로 자주 좀 봐. 그러면 부끄러움도 없어질 것 아니냐! 진작 소개 시켜주려고 했는데, 백설이가 하도 부끄러움이 많아서 말이야. 둘다 아주 얼굴에 불나겠다.”

언제부터인지 한백설과 태성의 얼굴은 둘 다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을 한백우는 계속 놀려대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에 점차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하는 태성.

“풉……!”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한백설이 처음으로 태성을 향해 말했다.

“왜… 웃으세요?”

“아, 아니에요. 실수에요.”

“웃는 건 실수로 하는 게 아니잖아요?”

“예뻐서 그랬어요. 예뻐서.”

어느 정도 긴장이 풀려서 이제 태성은 그녀를 조금씩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한백설은 여전히 붉은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야~! 이게 정말 얼마만이야. 진짜 꿈만 같다!”

시간이 흐르고 한백우는 만취상태가 되었다. 정원에서 맥주를 마시다 어느새 쓰러져 있는 상태로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정원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있는 한백우와 그의 곁에 나란히 앉아서 여전히 샴페인을 마시고 있는 두 사람.

어색한 정적을 간혹 취한 한백우가 술주정으로 깨뜨려주곤 했지만, 이후 잠에 빠져버린 한백우로 인해서 정적을 깨뜨려줄 사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태성은 그런 정적을 깨기 위해 용기 내어 말을 하려했다.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어릴 때부터…….”

그런데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한백설이었다.

“그런가요? 저도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그래요? 오빠가 저에 대해서 뭐라고 하던가요?”

“그냥… 예쁘고, 착하다고 칭찬 일색이었죠.”

“호호… 그렇군요. 직접 보니 어떠신데요?”

부끄러워하던 것과 다르게 같이 있던 시간이 꽤나 지난 상태였기 때문일까? 한백설은 곧잘 태성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직접 보니 어떠신데요?”

“백우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예쁘기도 하고… 착하기도 한 것 같고요.”

“고마워요…….”

“고맙긴요. 무슨…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그녀는 태성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 자신의 두 눈을 바라보고 있는 것 자체가 약간 부끄럽게 여겨지는 태성이었다.

“백우는 저에 대해서 뭐라고 하던가요?”

이번에는 그가 질문을 던졌다.

“정말 좋은 친구가 있다고요.”

“그래요? 녀석도 저에겐 정말 좋은 친구지요.”

“꼭 저에게 소개 시켜주고 싶다고 말했어요.”

“후후, 그래요? 아마 녀석에게 동생이 있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오히려 제가 보여 달라고 보챘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꼭 저의 남자로 만들어주고 싶다고 했어요.”

“컥…….‘

샴페인을 먹다가 사례가 걸린 태성. 잠시 두 사람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대체… 이 여자는 예쁜 건 둘째 치고,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할 수가 있는 거지? 혹시 브라더 콤플렉스라던지 그런 건가?’

단순하게 한백우를 따르기 때문에 자신에게 이러한 대우를 해주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태성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을 보고 있으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뭐 백우는 시스터 콤플렉스가 확실한 것 같은데…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고… 그리고 나를 이런 눈빛으로 볼 수가 있는 거지? 기분은 좋은데… 너무 노골적이라 부끄럽잖아!’

살짝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는 그녀의 따스한 시선.

편하게 말을 할 수도 없는 서로의 입장이었다. 한백우가 던진 한 마디에 두 사람의 분위기가 다른 누구보다 조심스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처남 만들기와 친구 장가보내기. 그리고 여동생 시집보내기를 이미 짜놓은 한백우. 그가 왜 이렇게까지 자신과 여동생을 연결해주려는지 이유도 알지 못하고 있는 태성이다.

작품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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