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2 4권
한 번의 켈리브로크와의 전투를 통해서 어느 정도 파악을 해둔 상태였다. 하지만 여전히 전투는 힘들 수밖에 없었다.
강력한 뿔 박치기에 다크 나이트와 듀라한은 순식간에 박살이 나버릴 정도였고, 물어뜯는 위력에 구울이나 좀비는 종잇장처럼 으깨졌다.
“저녀석 보통이 아니야! 이거 완전 네이믇 한 마리 잡는 느낌이잖아?”
너무나 강한 몬스터. 켈리브로크. 그렇ㅎ다고 녀석을 피해서 되돌아가는 것 또한 말도 안되는 상황.
그에게 있어서 오로지 전진 밖에는 답이 없었다.
그렇게 켈리브로크를 잡는 동안 이틀이라는 시간이 흘러가야만했다. 그리고 게임만 하던 태성에게 운명의 순간이 다가 왔다.
아이템과 레벨에 열중을 하며 지내는 동안 드디어 검정고시의 날이 밝아 온 것이다.
태성은 검정고시를 3일 앞두고 일체 게임에 접속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자신만만한 검정고시라도 무턱대고 게임만 마음 편히 할 수는 없었다.
뚜르르르~!
검정고시 당일 집으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태성 오빠?
목소리를 듣고 태성은 대상이 누구인지 곧장 알 수 있었다.
“어? 백설이니? 어쩐 일이야?”
-오늘 검정고시 보는 날이죠?
“부끄럽지만 맞아.”
-부끄럽긴요! 아무튼 힘내세요. 오빤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래! 응원 고마워. 나중에 검정고시 끝나고 셋이서 같이 만나도록 하자.”
-네. 알겠어요.
응원의 메시지를 남겨주며 전화를 끊은 백설. 그런 백설이 점점 마음에 드는 태성이었다.
“태성아. 준비는 다 했니?”
“네.”
“그래. 마음 편하게 먹고 실수 없이 시험 보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다녀올게요.”
집의 현관문을 열고나서는 태성 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여어~?”
상대는 바로 한백우였다.
“아침부터 어쩐 일이야?”
“어쩐 일이긴? 내 친구 검정고시 장까지 데려다 주려고 그러는 거지.”
“이야… 이거 고마운데? 차를 가진 친구가 있어서 늦을 것 같진 않네?”
“짜식! 고마우면 되는 거야. 자자, 어서 가자. 오늘 같은 날 늦을 수야 없지!”
한백우는 태성을 이끌고 자신의 차로 이동했다. 그리고 시험장으로 거침없이 악셀을 밟았다.
시험장 앞에 도착한 한백우가 말했다.
“정말 잘 할 수 있는 거지?”
끄덕.
태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너무 기고만장한 거 아니냐?”
“후후, 나중에 결과를 보면 알 수 있을 거야.”
“그래. 그럼 난 잘 본다고 생각하고! 나중에 백설이 데리고 나올게!”
“그래. 고맙다! 태워다 줘서!”
태성은 차량에 탑승하는 한백우를 지켜보려고 했지만, 오히려 한백우는 태성이 사라질 때까지 차에 탑승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먼저 등을 돌리며 교장으로 향하는 태성이 사라지고 나서야, 한백우도 차를 타고 사라졌다.
검정고시의 합격자 발표는 당일 날 바로 배출이 된다. 예전처럼 전산의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고, 용지만 컴퓨터에 집어넣으면 곧장 합격자 발표가 나오기 때문이었다.
태성은 시험을 모두 치르고, 30분 정도를 기다렸다.
합격자 통보는 휴대폰으로 모두 전송이 되기 때문에, 그는 떨리는 마음으로 휴대폰만을 쥐고 있었다.
‘휴… 왜 이러지? 잘 봤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결과를 앞에두니 떨리는구나…….’
띠링~!
그리고 떨리고 있는 심장이 한순간 덜컥 내려앉을 메시지 음이 들려왔다.
검정고시에 자신이 있다고 말한 태성이었지만, 막상 문자가 전송되어오자, 그것을 제대로 확인도 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였다.
마음을 가라 앉히고 조심스럽게 휴대폰의 문자를 확인한 태성.
[XX-375번 응시자. 시험에 합격하였습니다.]
“아자!!”
합격의 문구를 확인하자마자 큰 소리로 외치며 점프 하듯 높게 뛰었다.
‘다행이다! 정말 심장 떨려 죽는 줄 알았네!’
그제야 태성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시험장을 나설 수가 있었다.
“야, 어떻게 됐냐?”
시험장 밖에서는 한백우와 한백설이 나란히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됐을 것 같아?”
“표정을 보아하니 굴욕은 면한 것 같은데?”
“흐흐… 맞아. 합격 됐다.”
“자식! 잘했다. 어차피 떨어질 거라고는 기대도 안했지만 말이야!”
한백우가 태성의 머리를 잡고 열심히 흔들어 보이며 함께 축하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 그의 곁에 한백설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오빠, 정말 축하드려요.”
“어? 어… 고마워!”
한백설의 축하 한마디가 그렇게나 가슴 떨릴 수 없었다.
“좋아! 합격 기념으로 이 형님이 크게 한턱 쏘마!”
한백우가 자신의 가슴을 치며 당당하게 말을 했다.
“아… 나도 그러고 싶긴 한데, 그래도 합격 소식을 부모님께 먼저 알려드려야지?”
“흐흐, 그래? 그럼 이번 기회에 같이 부모님을 봽도록하지 뭐. 어차피 1차 상견례라고 하면 될 것 아냐?”
“헉? 야, 누구 마음대로?”
뜻하지 않게 큰소리를 치며 반문한 태성은 ‘아차’ 싶어 하는 마음으로 한백설을 바라보았다.
“호호, 1차 상견례… 그거 좋다.”
그런데 한백설은 오히려 기분이 좋은 표정으로 얼굴이 약간 상기 되어 있었다. 태성의 부모님을 만나 볼 수 있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약간은 기쁜 상황인 것 같았고, 셋 모두는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았다.
한백우의 차를 타고 집에 도착한 태성의 일행. 그런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부모님들이었고, 이후 한백설에게 관심이 쏠리고 있었다.
“어머? 네가 백우 동생이니? 어쩜 이리도 예쁘게 생겼을까?”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당연한 말을 했을 뿐인걸. 그래. 남자친구는 있고?”
그 말에 한백설의 얼굴이 붉게 닳아 올랐다.
“어, 엄마는 무슨 그런 말을!”
“하하, 그래. 아직 성인도 안 된 아가씨한테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자자, 오늘은 즐겁게 먹고 노는 거야.”
모두가 모인 자리는 태성의 축하파티로 한창이었다. 그리고 그때 태성의 휴대폰이 다시 한 번 울렸다.
“여보세요?”
-태성이니?
전화 속으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다소 놀란 그였다.
“어? 여린이니?”
태성의 입에서 여성의 이름이 흘러나오자, 한백설이 곧장 반응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전화를 하고 있는 태성이었기에, 내색은 하지 않았다.
“네가 나의 연락처는 어떻게 알았데? 그런데 어쩐 일이야?”
-호호, 연락처야 학교에서 대충 뒤져보면 알 수 있는 거잖아. 그리고 너 오늘 검정고시 본 날이지? 어떻게 됐어?
“어? 잘 봤지. 그거 때문에 연락을 한 거야?
-당연하지. 잘 봤다니 정말 다행이야!
검정고시를 치르고 난 이후, 자신의 앞에 있는 이들 이외에 누군가가 자신에게 축하를 해줄 것이라고는 전혀 기대도 못한 태성. 그래서인지 여린의 축하 메시지는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하하, 그래. 정말 고마워. 이렇게 신경을 다 써주고 말야.”
-이런 날 축하라도 해줘야하는데, 오늘 시간 있으면 만나지 않을래?
“아… 지금은 가족 모두가 집에 모여 있거든. 그래서 좀 나가기가… 괜찮다면 집으로 오지 않을래?”
-지, 집에? 흠… 알았어. 내가 갈게. 집이 어디야?
보통 이럴 경우 상대방과의 약속을 다음으로 미루는 것이 정상이었지만, 태성은 사람과의 관계가 미흡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축하를 해주는 여린을 지금 자신의 집으로 그 누구의 허락도 구하지 않고 부르게 된 것이다.
전화를 끊자 한백설이 물었다.
“누구에요?”
“응? 전에 학교 친구야. 우연치 않게 게임에서 만나면서 좀 친해졌거든.”
“전화 한 이유는 뭐래요?”
“축하한다고. 그래서 집으로 오라고 했어. 밖에서 만나기에는 지금 상황이 아니잖아. 그렇다고 축하를 해주고 싶다는데, 다음으로 미루기도 그렇고 말야.”
이런 말을 하는 말을 하는 태성을 한백설을 제외한 세 사람이 굳은 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저 바보 같은 녀석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러는 거야? 내 동생을 앞에 두고? 질투심 유발이라도 해보겠다는 거야?’
‘아이고… 우리 아들. 카사노바 나셨다. 이런 예쁜 여자를 앞에 두고 또 다른 여자를 불러?’
‘대체 이놈은… 누굴 닮은 거야?’
각기 저마다의 생각을 하면서 한심한 눈으로 태성을 바라보는 그들. 그런 그들의 눈빛에도 아무런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고 태성이었다.
“축하해주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죠.”
한백설이 웃으며 말을 하고 있었고, 그런 한백설에게 맞장구를 치는 태성이었다.
“맞아! 행복은 나누면 두 배가 된 다고 했었어!”
바보처럼 웃으며 말하는 그런 태성을 세 사람은 더 이상 못 보겠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리고 한백설의 얼굴에는 평소의 자비로운 미소가 아닌, 약간은 어색한 미소가 걸려 있다는 사실을 태성 혼자만 모르고 있었다.
띵동~!
초인종이 울리고 문을 열고 들어선 사람. 바로 반여린이었다.
게임 속에서 봤을 때보다 더욱 화사하게 여겨지는 그녀의 모습. 태성의 조언대로 그녀는 앞머리를 눈썹 위로 잘랐다. 그로 인해 긴 생머리가 차분하게 어깨에 내려앉은 것이 청순한 이미지로 보였다.
“어서 와요.”
“안녕… 하세요.”
태성에게 대하는 것과는 다르게 그녀는 부끄러운 얼굴로 그의 어머니를 대했다. 이후 집안에 태성의 부모님 이외에도 다른 두 사람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조금 당황해 하는 모습을 보이는 반여린.
“인사해. 내 친구 백우와 그 동생 백설.”
“아! 안녕하세요.”
반여진은 백우에게 인사를 하고 백설에게서 시선을 데지 못했다.
“어? 어……?”
그 모습을 본 태성이 그녀에게 작가 속삭였다.
“응. 맞아. 네가 생각하는 그 한백설이야.”
“저, 정말?”
끄덕.
고개를 끄덕이는 태성의 모습에 반여린은 놀란 두 눈을 아주 크게 뜨며, 태성과 한백설을 번갈아 보기 시작했다.
“어떻게 한백설이 네 집에 있는 거야?”
“후후, 내 친구의 여동생이거든.”
반여진은 그와 동시에 한백우와 한백설을 번갈아가며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의 행동이 너무 경솔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얼른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
“죄송합니다. 너무 신기해서 그만…….”
그런 반여린을 향해 고운 목소리로 한백설이 대답했다.
“아니에요. 신경 쓰지 않으셔도. 그런데 태성 오빠와는 친한 사이 인가 봐요?”
“네? 아… 그렇게 친하진 않지만, 하나 밖에 없는 친구는 맞아요.”
“하나 밖에요?”
“네. 전 친구가 태성이 밖에 없거든요. 태성이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말에 오히려 더 놀란 것은 태성이었다.
“뭐야? 너 아직도 친구를 못 사귀었어?”
“어? 응…….”
사실 그녀는 게임 속에서 태성과의 만남 이후, 그의 말을 적극 반영하여, 외모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 많은 남자들의 대시를 받기는 했지만, 동성 친구들에게는 질투의 대상이 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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