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12 5권
“도련님. 태성 군 주변에 이상한 사람들이 얼씬거리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네? 태성이 주변에요? 왜요?”
“글쎄요? 정확한 것은 모르지만, 태성군을 감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녀석들은 이진호라는 아이와 연관이 있는 것 같더군요.”
“훗… 그런가요? 결국은 해수욕장의 복수를 하려나 보군요. 흑나방파 녀석일 겁니다.”
“흑나방파요?”
이미 명성과 흑나방파에 관해서는 모든 것을 조사한 바 있었다.
“태성이 주변에 사람 좀 심어두세요. 태성이가 눈치 못 채게요. 혹시나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전에 제가 이야기 한 자리는 알아 보셨나요?”
“네. 신화 건설 본사 쪽에 자리를 하나 만들어 두었습니다. 기존에 태성의 아버지가 다니던 곳보다 연봉도 세며, 직급도 한 단계 높였습니다.”
“고맙습니다. 당분간 그 자리는 공석으로 비워두세요. 차차 태성이나 그의 아버지를 만나서 이야기를 드려야 할 것 같네요.”
비서가 나가고 한백우는 잠시 고민을 하는 듯 보였다.
‘흠… 왜 그녀석이 태성의 주변에 얼씬대는 거지?’
태성과 이진호는 이제 별다른 연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태성의 주변에 이진호가 얼신거리는 이유는 아직까지도 파악이 되지 않고 있었다.
***
“그녀석이 화영이를 만난 적은 아직 없단 말이죠?”
“그래. 아무래도 네가 너무 착각하는 것 아니냐?”
“나도 착각이라고 생각하고 싶은데… 왠지 신경이 쓰인단 말입니다. 그때 화영이가 그 녀석을 보는 눈빛…….”
해수욕장에서 유화영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다.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던 유화영의 눈빛이 그 이후 계속 이진호의 가슴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유화영이가 설마 녀석에게 반했을 리는 없을 텐데…….’
유화영은 현재 연예인 소속사를 통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흑나방파의 정보대로 유화영이 태성을 만나고 다닐 시간은 없다고 보면 된다. 그럼에도 이진호는 불안하기만 했다.
혹시나 그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자식을 그냥 예방차원에서 다시 한 번 밟아놔?’
이진호는 급기야 예전의 생각을 떠올리며 다시금 태성에게 보복할 생각만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왜 자신이 태성에게 약간의 질투와 열등감을 느껴야 하는지를 생각했다.
자신은 집안도, 돈도, 주변 배경도 월등히 상위 출신에 속한다. 그렇지만 왜인지 요즘의 태성을 생각하면 자신보다 더 높은 위치에 올라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고 있었다.
‘그래… 다 필요 없어. 게임으로 나에게 복수를 하겠다고 다짐했다지?’
이미 유화영과 친구들에게 전해들은 바 있는 태성의 복수.
‘현실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니까 게임에서나마 나에게 복수를 하고 싶은가본데… 좋아. 어디 한 번 해볼 테면 해봐라. 현실이 아니라 게임에서도 네 놈이 나의 밑바닥에서 엎드리게 만들어 줄테니까.’
이진호 역시도 그 길로 넷룸을 향했다. 복수라는 태성의 공격에 당하지 않게끔, 자신의 레벨도 상승시키기 위함이었다.
***
“그런데 스승님. 저는 매일 이것만 해야 합니까?”
“왜? 싫으냐?”
“싫은 건 아닌데… 좀 지루하기도 해서요.”
“모름지기 기초는 다 지루한 법이다. 하지만 천인진기를 계속 수련을 하면 단전에 기가 쌓이게 되고, 이후 그것을 토대로 강력한 힘을 발휘 할 수가 있게 된다. 애초에 너는 단전 자체가 텅 비어 있다보니 이 방법 밖에는 없다. 지루하더라도 참고 계속 해라. 아참! 집에서도 하고는 있냐?”
그 말을 듣고 뜨끔한 태성이 입을 열었다.
“아, 아뇨… 아버지가 항상 제 방에 계셔서…….”
“음… 그래. 이런 건 아무도 없을 때 하는 것이 좋다. 천인진기를 운용하는데, 누군가가 건드리면 오히려 너에게 득이 될 것은 없으니까 말이다.”
천인진기를 계쏙해서 수련하던 태성을 향해 유의천이 말했다.
“시간이 되면 대모를 한 번 찾아가 보거라.”
“대모요? 그때 그 짜리몽땅한 할머니요?”
“이놈이? 키가 좀 작기로서니 짜리몽땅 이라니? 나에게는 그래도 대모이시다. 이제부터는 너 역시도 대모님이라고 불러라.”
“알겠습니다. 그런데 대모님은 왜 만나러 가라고 하시는 건가요?”
유의천은 잠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너에게 도움이 될 만한 말을 해주실 게다.”
“도움이 될 만한 말이요?”
“그래. 대모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계신다. 허니 도움을 주시는 게 당연하지.”
유의천의 이런 당부에 태성은 3일 뒤 대모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대모는 지리산 산기슭에 위치한 별장에 살고 있었다. 혼자 살기에는 너무나 큰 별장처럼 보였고, 3층 구주로 되어 있었다.
‘이건 뭐 별장이 아니라 완전 대궐이구만? 그런데 이거 왠지 좀 으스스 한걸?’
사람의 목소리가 전혀 들려오지 않는 집.
바람 부는 소리와 나뭇잎들 부딪치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왔느냐?”
“헉! 예. 저 왔습니다.”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란 태성. 하지만 그것이 대모라는 것을 알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그런데 여기는 대모님 밖에는 살지 않는 건가요?”
“그래. 난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엔 맞지 않는 체질이라서 말이다.”
태성이 조심스럽게 대모의 안내에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사부님이 한 번 가보라고 해서 왔습니다.”
“그래? 시키지도 않는 짓을 했군. 그놈이…….”
태성의 자리에 앉아있고, 대모는 어디론가 가더니 차를 꺼내어 왔다.
“차를 마실 줄 아느냐?”
“네? 아… 마실 줄은 알지만, 예절에 관한 것은 전혀 모르는데요.”
“차란 예절도 중요하지만, 차를 마심에 있어서 그 차에 대한 모든 것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대모가 무슨 말을 하던 태성은 아직까지 제대로 된 이해를 할 수 없었다.
“하나만 물어보자. 너는 옳고 그름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글쎄요? 정확하게 보면 가치관의 차이일 테고, 현실적으로 보면 법에 대한 차이일 테죠.”
“홀홀, 그럼 법이 없는 곳에서의 옳고 그름은 어떻게 따질 테냐?”
“음… 제가 생각해서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그에 맞게 행동하면 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 맞다. 인간은 본디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지. 하지만 알면서도 틀린 행동을 하는 이들이 많다. 너는 지금 네가 한 말을 잘 기억해야 할 것이다.”
“네…….”
차를 마시며 태성을 바라보던 대모가 한 마디 했따.
“자, 이제 차를 마셨으면 일을 해야지?”
“예? 일이라뇨?”
“요즘 들어 손님들이 없어서 말이다. 집이 아주 개판이구나. 옜다. 이걸로 집안 곳곳 좀 닦아라.”
걸레 하나를 던져주며 태성에게 집을 치우기를 요청하는 대모를 바라보며 잠시 손님이었던 자신을 생각했다. 하지만 130살 먹은 노인을 생각한다면 이런 노동은 당연히 자신이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태성은 그때부터 줄곧 온 집안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걸레를 물에 빤 횟수만 해도 120번. 터무니없이 넓은 집은 태성을 녹초가 되게 만들기 충분했다.
“휴… 드디어 끝났다!!! 1층이…….”
아직 2층과 3층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현기증이 나기 시작했다.
3층으로 된 집을 청소하는데 걸린 시간만 해도 하루 종일이었다.
“난… 죽어도 이런 큰집에 살진 않을 거야. 만약 산다고 하더라도 청소할 가정부는 들여놓고 살아야지. 어떻게 이런 집에 살고 계시는 거야? 헉헉.”
집 자체가 통풍이 너무나 잘되고 앉아만 있어도 바람이 산들산들 불었지만, 현재 태성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저녁 7시 무렵 청소가 끝나자 대모가 다가와 말했다.
“아휴… 고생 많았다. 우선 씻고 밥을 먹으러 오거라.”
샤워를 하면서 태성은 계속해서 눈이 잠기는 것을 느꼈다.
‘와… 미치겠다. 이렇게 중노동을 해본 건 태어나서 난생처음이다.’
특이한 것은 이집에는 비누도 없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걸레를 빨면서도 수십 번을 문질러야 땟물이 겨우 빠졌다.
그런데 샤워를 하는 와중에 비누가 없다는 것에 태성이 큰 소리로 외쳤다.
“여기 비누 없나요?”
그러자 잠시 뒤 대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이놈아. 이런 지리산에서 비누 같은 거 쓰면 환경 오염된 다는 거 모르냐? 거기에 보면 꽃잎이 있을게다. 그걸로 씻어라.”
“예? 꽃잎이요?”
목욕탕 주변을 살펴보자 큼지막한 통이 보였고, 그곳에는 정말로 가지각색의 꽃잎들이 있었다.
손으로 꽃잎을 들어 향기를 맡아보니 지금까지 맡아보지 못한 향긋한 내음이 났다.
‘정말 이걸로 샤워를 해야 하는 건가?’
태성은 할 수 없다는 듯이 꽃잎을 머리와 몸에 문지르기 시작했다.
‘아… 찝집해. 샤워를 하는 것 같지도 않아.’
대충 꽃잎을 몸에 두르고 태성은 샤워를 끝마쳤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향긋한 냄새가 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외로 좋은 향기가 강하게 나는구나.’
자신의 몸에서 나는 향기를 ‘킁킁’대며 식탁으로 향했다.
“와… 많이 차리셨네요? 그나저나… 모두 풀떼기군요.”
“때로는 이런 풀로만 생활을 해봐라. 몸이 청결해질 것이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서 청결해질 필요가 있나요? 차라리 몸을 소독하는 게 낫죠.”
“이놈이 말 장난을 하려는 것이냐?”
“아닙니다. 잘 먹겠습니다!”
태성은 대모가 차려 놓은 밥과 반찬을 먹기 시작했다.
“음! 생각보다 맛있네요!”
“그럼 풀 맛만 날 줄 알았더냐?”
“오! 향기도 상큼하니 괜찮고! 이런 건 처음 먹어보네요.”
의외로 모든 풀 반찬들이 마음에 들었다. 하나하나가 입에서 자극을 주고 있었고, 맛과 향을 음미할 수가 있었다.
대부분의 풀 반찬들은 소금과 참기름으로 간을 하기 때문에 고소한 맛이나 짠맛을 토대로 먹게 되지만, 지금 차려진 풀 반찬들은 하나 같이 독특한 향과 맛을 풍기고 있었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어떠하니?”
“예? 설마 진심으로 물어보시는 건 아니겠죠?”
“그럼 이 나이에 너랑 농담이라도 하려고 한 질문으로 들리느냐?”
“하루 종일 그렇게 부려먹기만 하시더니 그런 질문을 하신다면야…….”
문득 태성은 말문을 닫고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생각해보았다. 비록 온종일 청소에만 시달렸지만, 자연 속에서 살아간다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뭐 크게 나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홀홀, 그러냐? 그럼 잘됐구나. 이런 것이 싫지 않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말이다.”
“예?”
“아니다. 어서 먹자꾸나.”
그렇게 대모와의 하루가 지나가려 하였다. 이불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하려는 태성.
주변에서 들려오는 바람 부는 소리와 각종 벌레들 울음소리가 귓가를 적시며 피곤한 몸으로 서서히 잠에 빠져 들었다.
다음날이 되어 태성이 눈을 뜨자, 아침밥을 차려주고는 그대로 태성을 내보내버린 대모. 그렇게 태성은 대모에게 작별을 고했다. 대모는 유의천의 말과는 달리 태성에게 그 어떠한 조언 같은 것도 해주지 않았다.
‘대체 날 여기로 보낸 이유가 뭔지 원… 설마 집 치울 사람이 필요해서 그랬던 건 아니겠지?’
하루 종일 일만하다 가는 기억뿐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작품 후기
추천은 작가에게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