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1 5권
뜻하지 않게 성주가 되면서 태성은 잠시 할 말을 잃고 있었다.
성주가 정확하게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떠한 일을 해야 하는지, 그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순간 태성의 눈앞에 화면과 메시지가 들려왔다.
-워랜시아 마을의 세율을 정해 주십시오.
“세율이라…….”
퍼센트를 높게 잡을수록 길드 마스터가 얻는 수익은 엄청나다. 하지만 NPC들이 그만큼 고생을 한다는 소리를 들은 바 있었다. 태성은 가장 낮은 세율로 10%를 조정했고, NPC들은 그런 태성을 칭송했다.
10%의 세율이라 하지만 일주일마다 거둬지는 세금은 태성이 상상도 못할 엄청난 금액이다. 하지만 그런 엄청난 그맹ㄱ을 태성은 만져 볼 수도 없었다.
태성이 공성전 동영상이 또 다시 파문이 되었다.
말도 되지 않는 사기 캐릭터라며 유저들의 빗발친 항의가 이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모든 캐릭터에는 밸런스가 맞게 조정이 된다는 것이 게임 회사 측의 답변이었다.
말이 밸런스지 그들로써도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밸런스이기도 했다. 이런 그들의 생각에는 태성이 한몫을 하기도 했는데, 바로 한때 마법사에게 몰살을 당했던 답변을 게임 측 관계자에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게임 측 관계자들은 애초에 빗발치는 항의로 인해서 태성의 밸런스를 조금 낮추고자 했었다. 하지만 언데드 군단이 메테오 한방에 초토화 되었다는 사실을 안 순간 그들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들도 미처 몰랐다. 설마하니 메테오를 시전 하는 마법사가 있을 줄이야?
그러니 태성의 캐릭터 역시도 사기는 아니라는 가설이 되는 것이다. 단지 다른 유저들 보다 조금 강한 캐릭터일 뿐이다. 그것이 게임 측의 발언이었고, 노력하는 유저들은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다는 말 또한 잊지 않았다.
개발자들도 모르는 이런 게임의 현상은 모든 것이 인공지능에 의한 것이었다. 개발진이 인공지능을 만들었지만, 게임의 세계관을 만들어가는 것은 바로 인공지능의 몫.
어느 날 새로운 아이템이 나오고, 새로운 몬스터가 나오며, 새로운 땅이 나오는 것. 그것 모든 것은 인공지능이 택한 일이며, 개발자들은 발 빠르게 프로그램을 받아들여서 그것을 유저들에게 알리는 역할만을 할 뿐이었다.
태성은 공성전이 있은 이후, 스폰서 계약을 그대로 명시하고 동영상도 올렸다. 성을 먹었지만, 당장 그에게 목적은 없었기 때문에 오늘 하루 게임을 쉬기로 했다.
태성의 집에서도 그가 성을 먹은 것을 알고는 한 바탕 축제가 벌어졌다. 그리고 그의 집으로 한백우와 한백설이 찾아왔다.
“이야~! 너 완전 계약직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데?”
“큭큭, 그러냐? 정말 우연치 않게 성을 먹게 됐다. 그냥 팀장님이 말대로 공성전에만 참여를 하러 갔다가 이꼴이 됐지 뭐냐?”
“이거 너무 잘해주고 있어서 계약 연장이라도 해야겠는 걸?”
“나야 바라든 바지!”
한백우는 태성을 보자마자 일이야기를 먼저 꺼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곱게 차려 입은 한백설이 말했다.
“오빠 정말 축하드려요.”
“이게 뭐가 축하 받을 일이라고…….”
“에이? 그런 말씀 마세요. 레전드 오브 판타지에서 성을 먹는 것은 정말 하늘의 별따기에요. 수많은 유저들이 도와주지 않는 이상 그걸 해낼 수 있는 유저는 몇 없어요. 그런데 오빠는 그걸 혼자 해내신 거라고요.”
“그래? 그렇게 칭찬해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는 걸?”
두 사람에 비해서 태성의 부모는 앞으로 태성이 거둬들이게 될 세금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러니까… 한 달에 천만 원이 넘어간다 이거지?”
어머니의 말에 한백우가 대답했다.
“아마 더 될 겁니다. 천만 원? 그걸로 몇 천에 해당하는 길드원들과 동맹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마을을 오가는 유저를 생각하면… 몇 천은 우스울 겁니다.”
“그, 그 정도야?”
“후후, 아마 태성이 때문에 중산층이 되실지도 모르는 일이세요.”
파격적인 이야기 앞에 태성의 부모님은 정신이 혼미해졌다.
“크~!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계속 게임을 하는 거였는데 말이야.”
“아버지. 그런 소리마세요. 그래도 집안의 가장이신데 안정적인 직장에는 계셔야죠.”
“이 놈아. 농담으로 한 소리다. 하지만 조금 아쉽기도 하지. 조금 더 열심히 해서 나도 공성전 같은 거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었거든.”
“호호, 저도요. 태성이의 동영상을 보니까 저도 가슴이 확 닳아 오르던걸요.”
그들은 모두가 태성이의 공성전 성공에 크게 기뻐하고 있었다. 또다시 술 파티가 벌어지고 한백우와 신유광은 술에 취해 잠이 들어버렸다. 그날 태성의 어머니까지도 술을 마시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정신이 멀쩡한 두 사람.
그들은 집을 나와 바깥에 있는 놀이터로 향했다.
“오랜만이다. 그치?”
“호호… 네. 전에 합격 이후 처음이죠?”
“응… 많이 바빴나봐?”
“아, 아뇨. 전혀…….”
“그렇구나…….”
한백설과 함께 있는 태성은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고 있었다.
“오빠는 저 안 보고 싶었어요?”
“음… 당연히 보고 싶었지.”
“그런데 왜 연락 한통 안하셨어요?”
“그, 그게 말이야… 사실…….”
태성은 어떠한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한백설을 보고 반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녀와의 사이는 많은 일들이 일어날 것을 예고하는 것은 뻔했다.
“오빠 솔직히 제가 부담스러운 거죠?”
“음… 정확하게 말하면 좀 그렇지?”
태성은 검지와 엄지를 작게 오므리며 눈을 찡긋거렸다.
“안되겠다. 이러다가 오빠가 저랑 더 멀어질 것 같네요. 나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오빠만 그렇게 마음고생을 하니까.”
“안되겠다니? 뭐가?”
“내일 우리 집에 와요.”
“헉? 너희 집에?”
한백우와 알게 되었지만 아직 그의 집으로 가본 적이 없는 태성이었다. 그리고 만약 그녀의 집으로 가게 된다면 그녀의 부모님을 봐야 할 것은 자명한 사실.
“저, 저기… 천천히 가면 안 될까?”
“아뇨. 내일 당장 준비하도록 해요. 시간이 늦었으니 전 이만 돌아가 볼게요. 저희 오빠는 신세 좀 지도록 할게요. 저 상태로는 집에 못 데리고 가겠네요.”
“어… 그래.”
“그럼 내일 꼭 연락드릴게요.”
한백설은 대기하고 있던 차에 타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터벅거리는 걸음으로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태성. 내일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앞이 깜깜해져 오고 있었다.
‘어떤 옷을 입고가야하지? 그래도 처음인데 선물이라도 사야하나? 어떤 인사를 해야 하지? 한백우의 친구로 부모님처럼 대해야 하는 건가? 아니면 한백설의 남자로써 장인, 장모 모시듯… 으음…….’
그는 온갖 생각을 하면서 그날을 지새웠다.
다음날 어느 날과 다름없이 북어 국이 끓고 있었다. 하지만 국을 끓이고 있는 것은 태성의 어머니가 아니라, 바로 태성이었다.
세 사람 모두가 정신을 잃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음… 역시 술 먹은 다음 날은 푹 자고 일어나는 게 가장 좋겠지?’
태성은 곤히 자고 있는 세 사람을 깨우지 않았다. 한 사람이라도 일어나면 함께 식사를 하려는 참이었다.
거실로 돌아온 태성은 그렇게 TV를 켰다. 그리고 방송에서 나오는 레전드 오브 판타지를 시청하기 시작했다.
물이 오를 대로 오른 레전드 오브 판타지는 하루 24시간을 방영하면서 유저들의 알권리와 정보를 널리 보급해주고 있었다.
게임을 못하지만 듣는 것만으로도 유용한 정보를 입수 할 수가 있고, 초보들은 그런 정보를 토대로 캐릭터를 육성해 나갈 수 있었다.
요즘 들어 태성의 흑마법사 직업이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서는 태성처럼 끝을 보자는 자도 있었겠지만, 대다수는 변변하지 못한 언데드들로 사냥에 힘겨움을 느낄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중앙 대륙의 패자에 대한 소식이 들려왔다.
중앙 대륙의 파자는 다름 아닌 마법사!
한 때 태성을 한방에 보냈던 붉은 망토의 마법사가 중앙 대륙의 패자로 알려지고 있었다. 그는 히든 클래스로 매그넘 위자드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히든 클래스답게 강력한 마법 앞에 대다수의 유저들이 쓰러져 나가는 실정. 그리고 중앙 대륙에서 유저들을 죽이며 얻게 되는 명성으로 그는 현재 백작의 작위에 올라 있다는 정보였다.
백작의 작위를 얻기 위해서는 포인트 2만점을 획득해야만 했다.
“헉? 2만점씩이나? 그럼 저놈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인거야? 2만 포인트면 명품 전시관의 아이템을 모조리 다 사고도 펑펑 남아돌겠구만! 완전 사람 죽이는 것에 맛 들린 놈아냐? 하긴… 그러니 저 정도로 강하겠지…….”
중앙대륙에서 유저를 죽이는 것은 몬스터를 죽이는 것보다도 경험치를 많이 얻을 수가 있었다. 또한 그와 동시에 포인트를 얻게 되다보니 중앙대륙에서는 사냥을 하지 않고, 유저들만 죽이는 부류들이 꽤나 많다는 실정이다.
“그런데 우리 남대륙은 언제 중앙 대륙으로 넘아가 보지? 이제 나도 3차 전직이 끝났으니 슬슬 중앙대륙으로 도전 할 때가 된 것 같은데…….”
한 때 사우스 엔드에 도전했다가 피만 봤던 태성은 3차 전직을 통해 강해진 자신을 시험하고 싶었다.
“이름은 모르지만… 다시 한 번 붙어봤으면 좋겠네. 그때까지 마법 저항력이 대폭 상승 해야 할 텐데 말이야…….”
워낙 강한 마법이었기에, 태성은 그때의 끔찍한 기억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가족들이 모두 일어나 식탁에 모여 앉았다. 푹 자고 일어나서인지 그들의 표정은 매우 몽롱해 보였다.
북어 국을 먹고 모두가 정신을 회복했을 때의 시간은 오후 3시였다.
“아, 오늘도 실례가 많았습니다.”
한백우는 머리를 긁적이며 부모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있었다.
‘아니다. 항상 네가 오면 즐거워서 말이지. 종종 이렇게 자주 오곤 해라.“
“네.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한백우가 인사를 건네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태성을 보며 물었다.
“나중에 올 거지?”
“응? 알고 있었어?”
“당연하지. 여동생에게 문자가 왔더라고. 같이 가고 싶지만 집에 가서 먼저 정리 좀 하고 나도 부모님께 네 이야기를 잘 해드려야지.”
“하하… 그래. 알았다. 나중에 갈게.”
한백우를 보내주고 태성은 어젯밤 했던 고민에 다시 빠져 들어야만 했다.
‘아… 미치겠다. 회장님과 검찰총장… 나와는 사는 세계가 다른 이분들 앞에 대체 무슨 옷을 입고 가야 하는 거야?’
자신의 옷장을 들여다보며 한숨만 길게 내쉬고 있는 태성.
제대로 된 옷조차 하나도 없었다. 대부분 10대 아이들이 입는 옷처럼 눈에 보이기 쉬웠고, 자신은 최소한 이번 만큼은 어른처럼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휴… 그렇다고 이런 일로 옷을 사달라고 할 수도 없고, 내가 무슨 상견레를 가는 것도 아니니 말이야.’
할 수 없이 옷에 대한 것은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가 현재 준비 할 수 있는 수준은 바로 헤어스타일.
미용실을 가지 못했기에 그의 머리는 매우 부스스한 상태였다.
‘미용실이나 갔다가 옷 챙겨 입고 준비나 해야겠다.’
그 길로 곧장 머리를 단정하게 하기 위해 미용실로 향하는 그였다.
미용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대다수 짝을 지어 들어온 상태였다. 혼자 덩그러니 잡지책을 뒤지면서 머리를 깎던 중인 태성. 그러다 거울 뒤로 보이는 낯익은 인물을 볼 수 있었다.
‘아?’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비록 왕따의 생활로 인해서 친하게 지내지 못한 학우였지만, 자신에게 나쁜 짓을 하거나 하지는 않은 친구였다.
“야, 동영상 봤냐? 태성이 완전 멋지더라.”
“그러게 말이야. 설마 학교를 그만두고 그렇게 게임에 열중을 하고 있을 줄은 누가 알았겠냐? 완전 게임 폐인이지 뭐.”
“아냐,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하더라고. 이미 검정고시까지 합격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우와? 진짜야? 하긴. 그 녀석 학교 다닐 때 성적은 꽤 좋았잖아. 이진호 일당에게 괴롭힘은 당하긴 했지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