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4 5권
그녀의 말을 들으며 한백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그럼 일단 소개는 시켰으니까 제 방에 좀 데리고 가서 이야기를 해도 되겠죠? 가족에게 인사는 우선은 여기까지요!”
한백우가 앉아 있는 태성의 손목을 잡고 이끌었다.
태성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시, 실례하겠습니다.”
손목이 잡힌 채 태성은 한백우의 방으로 직행했다. 두 사람이 사라지고나자 한백우의 부모들이 말했다.
“생각보다 좋은 눈빛을 가지고 있군.”
“그러게요. 아주 착해 보이는군요. 백설이를 행복하게 해줄 것 같은데요?”
그녀를 바라보며 말하고 있는 부모님의 말에 한백설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갔다.
“저, 저도 일어나 볼게요.”
그녀는 부끄러운 마음에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2층으로 올라갔다.
모두가 떠나고 자리에 남은 부모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담소를 나누어 갔다.
***
“긴장했냐?”
“말도 마라… 내가 무슨 범죄자 같은 생각이 들더라.”
“후후, 그래도 어때? 막상 마주하고 나니 좋은 분들이시지?”
끄덕끄덕!
태성의 고개가 강하게 긍정을 표했다.
“응! 두 분 다 너무 괜찮은 분들이 신 것 같아. 처음에는 괜히 나만 긴장을 하고 있다보
니 잘 몰랐는데,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좋은 분들이라는 것을 알겠더라.”
“후후, 네가 알아줄 줄 알았다. 자~! 여기가 내방이다. 별거 없지?”
“응. 정말 별거 없다. 우리 집의 반 정도에 해당하는 크기라는 것만 빼면 말이야.”
“그렇지? 난 좀 수수한 편이거든. 이래저래 꾸미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말이야.”
자신의 말의 의도를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은 한백우를 보며 태성은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아참! 우리 공부님 방 보러 갈래? 아주 볼게 많을 텐데 말이야.”
“그으래~?”
“가자!”
내심 한백설의 방을 구경할 수 있다는 생각에 태성도 궁금증이 일었다.
방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한백설의 방 문을 연 순간. 한백설이 계단위로 올라왔다.
“오빠! 지금 뭐하는 거야?”
“이크! 들켰다. 어서 들어가자!”
한백우는 태성을 그대로 밀어 넣으며 한백설의 방으로 들어섰다.
“큭큭, 어때? 볼 것 정말 많지?”
그녀의 방은 한백우의 방과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화사해 보였다.
여성의 방답게 향긋한 향기가 났고, 곳곳에는 핑크색의 물건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또한 침대에는 레이스까지 달려 잇는 것이 완벽한 공부님의 방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어? 그런데 여기는 캡슐이 있네?”
“응. 여동생은 친구가 별로 없다보니 캡슐을 한 대 사서 주로 생활을 하고 있지.”
뒤늦게 자신의 방으로 들어온 한백설.
“남의 방에 함부로 들어오면 어떻게 해!”
“에이~? 함부로라니? 장차 신랑이 될 사람에게 아내의 방을 구경시켜 준 게 뭐가 대수라고? 그리고 난 먼저 빠질테니 재밌게들 놀라고. 난 갑자기 일처리 할 게 생각이 나서 말이야.”
“헉? 야, 그렇다고 그렇게 나가버리면?”
쾅!
태성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한백우는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순간 정적이 흐르는 방안.
“바, 방 좋네…….”
“고, 고마워요.”
또다시 두 사람의 대화가 끊겼다. 그러다가 문득 태성의 시야에 들어오는 물건이 있었다.
“어?”
태성이 다가가자 한백설이 그 물건을 알아보고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물건을 낚아챘다.
“왜 그래? 구경 좀 하자.”
“아, 안 돼요!”
“뭐 어때? 어차피 같이 찍은 사진이잖아?”
한백설이 감춘 사진은 얼마 전 그들끼리 휴가를 갔을 때 찍은 사진이었다. 그리고 사진 액자에는 두 종류의 사진이 있었다. 세 사람이 나란히 찍은 사진과 태성과 한백설 둘만이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던 것이다.
“이 사진 혹시 또 있어?”
“네? 아… 다시 현상하면 되긴 한데…….”
“그래? 그럼 나도 한 장 부탁하면 안 될까? 사실 나도 누군가와 찍은 사진이 거의 없거든.”
“네. 물론이죠.”
태성은 사진을 보자 문득 그녀의 어린 모습이 보고 싶어졌다.
“어릴 때 사진은 없어?”
“이, 있어요.”
“좀 보여주면 안 될까?”
그녀는 잠시 고민을 하다 조심스럽게 한쪽에서 자신의 앨범을 꺼내었다. 그리고 그것을 태성에게 건넸다.
앨범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그녀의 어릴 때 모습들이 고스란히 녹아든 사진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릴 때의 그녀는 너무나 앙증맞고 귀여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태성은 말문을 열지 못했다.
아주 어린 나이에 학사모를 쓰고 있었으며, 주변에는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많았다. 그런 생각을 하니 한백설이 얼마나 외롭게 생활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후 태성은 그녀와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는 동안 어느 덧 세 시간이 훌쩍 지나갔고, 시간이 늦었다며 한백우의 부모님은 태성을 자고 가게 만들었다.
다음날 아침식사까지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이루어졌고, 그들의 가족이 얼마나 화목한지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 태성이었다.
‘정말 내가 이 가족들 사이에 낄 수는 있긴 한 걸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꿈이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한순간에 돈이 왕창 들어오잖아?’
아직 성의 세금이 거둬지지는 않았지만, 들어올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인벤토리가 호강
할 듯한 생각이 들었다.
다른 길드들이야 길드원 전원에게 거둬들인 세금을 다시금 재투자하여, 함께 공성을 치른
연합에도 금액을 지불해야 하지만, 태성은 오로지 혼자였다. 혼자서 그 모든 금액을 꿀꺽해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행복한 순간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공성전이 있은 이후, 태성의 리벤지 길드로 엄청난 가입 신청이 쇄도하고 있었다.
지금의 태성이라면 가입을 받아도 큰 문제는 없을 듯 했다.
자신이 강하니까 싸우더라도 스스로 나서서 해결을 하면 되는 문제였다.
그런데 왠지 길드에 유저들을 들이고 싶지 않은 생각에 태성은 그들의 가입을 모두 거절해버렸다.
태성은 성의 성주로 있는 동안 얼마든지 성에 들락날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성에 올 이유는 단 하나도 없었다.
공성 때에만 오면 되는 것이다. 다른 유저들이야 모임 장소로 성을 택하지만, 그는 모임을 가질 길드원 또한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바삐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서 다니던 중, 태성의 눈앞에 낯익은 인물이 나타났다.
“이게 누구야? 그 말로만 듣던 리벤지 길드 마스터님이 아니신가?”
“이진호……,”
우연치 않게도 워랜시아 마을에 이진호가 나타나 있었던 것이다.
“그래. 소문은 잘 들었다. 아주 최강이었다지? 3차 전직은 하셨나?”
“물론이지. 네놈은 3차 전직을 했나?”
“큭큭, 당연한 것 아니냐? 이미 오래 전에 3차 전직을 마쳤지. 레벨은 이미 112다.”
이진호는 자랑스러운 듯 자신의 레벨을 입에 올렸고, 생각보다 높은 그의 레벨에 태성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레벨을 올릴 수가 있었던 거지? 나 역시도 엄청나게 고생을 했었는데 말이야…….’
그동안 집에서 줄 곳 레벨 업을 한 자신과 비교해서 큰 폭의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레벨의 차이는 크게 나지 않았지만, 3차 전직을 한 이후의 10레벨 이상의 차이는 엄청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나한테 그렇게 복수를 한다고 떠벌리고 다녔다면서?”
“그래. 내가 당한 만큼 너 역시도 당하게 만들어주고 싶었으니까.”
“큭큭, 그래? 그럼 한 가지만 물어보자. 내가 게임에서 네놈에게 패하게 되면 뭐가 달라지지?”
“많이 달라지겠지. 자존심 강한 네놈이 나에게 진다면 애초부터 패배의 쓴맛을 보게 될 테니까. 하지만 난 그런 패배의 쓴맛으로만 끝내게 하고 싶진 않거든.”
“오호라? 자신이 있는 말투인데?”
“아마 예전처럼 쉽게 당하진 않을 거라고 장담하지.”
태성은 이진호를 바라보며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기 시작했다.
“이거 왜 이래? 마을에서 결판을 지으려고?”
“어디든 상관없다. 네놈이 도망만 가지 않으면.”
“풉! 진짜 어이가 없군. 좋아. 이곳에서 네놈을 상대해주지. 어디 덤빌 수 있으면 덤벼봐.”
이진호가 태성에게 싸움을 걸었다. 하지만 이 싸움은 어디까지나 태성에게 불리한 현실. 그러니 지금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태성은 아공간을 열었다.
스르르륵~!
아공간이 열리자 이진호가 약간 주춤거렸다. 그 속에서 무엇이 나올지 몰랐기 때문이다.
“전원 전투태세로 나와라.”
태성의 말이 들리기가 무섭게 아공간에서 언데드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언데드들은 금방이라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공격이라도 하려는 듯 물밀 듯이 밀려나와 주변의 유저들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꺄악! 대체 이것들이 뭐야?”
“어, 언데드들이다! 마을에 언데드가 나타났다!”
수천에 달하는 언데드들이 마을에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이진호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도, 동영상으로 봤지만, 설마 이정도일 줄이야?”
“그랬어? 그 동영상으로 얼마나 자세히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패배의 고통까지도 감수해야 될 거다.”
“푸히히히. 아주 개그를 하는구나. 어디 할 수 있으면 해보시지.”
경각을 하던 표정은 온데간데 없이 이진호는 기가 막힌 듯 웃기 시작했다.
태성이 공격 명령을 내리자 언데드들이 이진호를 향해서 공격을 감행했다. 마을에서 대결이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두 사람의 공세가 시작되자, 그들의 스킬 능력으로 인해서 주변 여기저기가 파괴되기 시작했다.
“크하하하! 고작 이 정도냐? 이 정도로 큰소리 친 거였어?”
언데드들을 도륙 내면서 이진호는 크게 웃고 있었다. 아직 그는 제대로 된 능력을 발휘하지 않았으며, 단순한 스킬을 몇 개 사용했을 뿐이었다.
“조금 더 용을 써라. 언데드들아!”
태성은 언데드들에게 조금 더 힘을 불어넣어주고 있었다. 하지만 워낙 재빠른 몸놀림으로 공격과 방어를 하고 있는 이진호를 상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이다! 궁수들과 마법사들은 일제히 요격!”
퍼퍼펑! 파파팟!
이진호의 움직임을 간파한 태성이 화살과 마법을 한곳으로 폭사시켰다.
그러나 수천 발과 수백 발의 마법에 당했음에도 이진호의 체력은 크게 하락되지 않은 듯 보였고, 오히려 더 득의양양하게 태성에게 말했다.
“아~? 한 가지 말해줄까? 나 이래봬도 성기사라고.”
“서, 성기사?”
“그래. 언데드에게는 두 배의 공격력을 불어 넣을 수가 있고, 언데드의 공격은 70% 약화 시킨 상태로 타격을 입게 되지. 그러니 이런 장난 같은 공격들은 간지러울 뿐이야.”
“그, 그렇군. 성기사라… 내가 그 점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
“큭큭, 이제야 뭘 좀 알겠냐? 네놈은 나한테 안 돼. 학교에서나 게임에서나 언제나 네놈은 나의 발아래에 있을 분이야. 알겠냐? 큭큭큭.”
이진호가 비열한 웃음소리를 날릴 때 태성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네 놈이 이 많은 언데드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물며 고작 30%의 공격력만 허용이 된다지만, 과연 네놈이 얼마나 버틸 수가 있는걸까?”
그 말에 발끈한 이진호가 검을 빼들었다.
“어디 얼마나 살아남는지 한 번 볼까? 홀리 스파크!”
파사사삭~!
그의 검에서 흰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는 주변에 있던 언데드들을 향해서 덮쳤다.
삽시간에 이진호의 주변에 있던 100기 가량의 언데드들이 사라지고 말았다.
작품 후기
ㅠㅠ. 힘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