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언데드 군주-132화 (132/134)

00132  6권

다시 정신을 차린  태성. 이미 주변에는 몬스터도 존재하지 않았고, 그저 폐허가 된 마을만이 눈에 들어왔다.

“젠장! 대체 왜 이런 일을 겪는 거냐고!:

여기저기 파괴 된 건물들. 그리고 몬스터의 사체와 더불어 쓰러져 있는 마을 주민들의 시신들을 바라보며 그의 눈가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고독과 외로움. 그리고 예기치 못한 곳에 떨어져버렸다는 절망감.

그동안 살아온 나날들이 스쳐 지나가며 자신의 인생이 너무 한심스럽게만 느껴졌다.

또한 사람의 시신을 처음으로 본 그에게는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충격을 받았다고 해서 지금의 현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태성은 마을을 가라앉히며 애써 눈물을 닦았다.

“그래… 정신 차리자. 정신 차려야만 해. 아직 자매들의 시신을 확인도 못했다… 분명 어딘가에 무사히 있을지도 모르니까.”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알게 된 자매들이었기에, 그들의 생사를 확인하는 것은 그에게 의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가부좌를 틀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천인기공을 운기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다. 그렇다는 것은 기존에 자신이 배웠던 것을 이행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한때 천인기공을 집에서 꾸준하게 익히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면, 심신의 피로를 풀어주며 머리를 맑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물론 유의천의 말에 따르면 단전에 기가 모일 수 있게 도와준다고는 하지만, 그것을 체감하지는 못하고 있는 그였다.

그런데 지금까지 느끼지 못한 기운을 그는 느낄 수가 있었다.

‘이, 이게 무슨 느낌이지? 단 한 번도 느낀 적이 없는 기운이 몸속으로 흘러 들어오는 것 같아!’

온아한 느낌의 따뜻한 기운이 태성의 몸속으로 조금씩 모여들고 있었다. 마치 그를 살피기라도 하듯, 주변을 배회하며 하나 몸속으로 스며드는 기운들.

그 기운이 강대하진 않았지만,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기분에 설렘을 맛보는 태성이었다.

‘이런 건가? 기라는 것은 이런 느낌을 말하는 거였나?’

유의천이 알려주었던 것과는 약간 다른 기운을 맛보는 태성. 그는 자신도 모르게 정신없이 운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눈을 떠보니 어느덧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대체 얼마동안 이러고 있었던 거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 태성은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그리고 자매들이 살았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집 안은 난장판이었다.

집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충 감이 잡힐 지경이다.

‘하지만 핏자국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는 것은 여기에서는 죽지 않았다는 소린가? 아니면 혹시 어디에라도 끌려간 것일까?’

온갖 생각을 다해보던 태성은 밖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급히 뛰쳐 나갔다.

“뭐야?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이 있었던가?”

“다, 당신들은 누구?”

“우리들은 펠름 영지의 기사들이다. 이곳 마을이 습격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와본 거지. 그런데 넌 누구지?”

“아… 전 여행객입니다. 혹시 마을에서 살아난 사람들이 있나요?”

“물론 있지. 그러니까 우리들이 소식을 듣고 온 것이 아닌가?”

“저, 저기 혹시 그중에 17살, 10살. 그리고 6살 된 자매들도 섞여 있었나요?”

걱정스러운 마음에 자매들에 대한 것을 언급하며 물었다.

“그것까진 우리가 확인하지 않았지. 아마 살아 있다면 펠름 영지에 있겠지.”

“그렇군요…….”

고개를 숙이며 고심하고 있는 태성을 향해 기사 한 명이 물었다.

“그런데 넌 누구지? 어떻게 살아 있었던 거야? 대다수는 도망가거나 그렇지 않고 싸우다가 죽은 걸로 알고 있는데?”

“아… 저는 자매들에게 신세를 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몸이 아파 다른 곳에 있어서 마을의 상황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음… 그런가?”

태성은 그들에게 펠름 영지로 가는 길을 물었다. 그리고 기사들이 온 방향을 거꾸로 거슬러  자매들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펠름 영지로 향했다.

“그런데 대장님. 방금 저 녀석이 말한 그 자매들이라 하면… 바로 그 아이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뭐 그렇겠지.”

“하지만 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까? 괜히 사실을 알았다가는 난리가 날지도 모르는데요.”

“훗… 난리? 저런 보잘 것 없는 여행자 놈이 감히 영지에서 무슨 소란을 피우겠어?”

“후후, 그렇긴 합니다.”

그들은 태성이 알지 못하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 말을 타고 마을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한참을 걷고 또 걸었다.

허기가 너무나 밀려오고 있었고, 그때마다 태성은 숲으로 들어가 먹을 만한 것을 찾았다. 생각보다 여기저기 많은 과일과 같은 것이 열려 있었지만, 그것이 먹을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해서 아이들이 알려준 과일로만 간신히 허기를 채울 수가 있었다.

대로는 운기를 통해서 흐트러진 심신을 바로잡기도 하며, 3일이라는 시일을 거쳐서 드디어 펠름 영지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그곳은 카뎀 마을과는 다르게 상당히 발달되어 있었다. 전체적으로 영지를 지키는 경비들의 모습이 여기저기 보였다.

성벽은 없었지만, 거대한 울타리에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으며, 그 규모 또한 상당히 커 보였다.

그런 거대한 울타리에 있는 집들과 다르게 언덕에는 거대한 저택이 하나 지어져 있었다. 마치 성과 같다고 봐도 무방했다.

“드디어 왔구나.”

길다란 울타리가 쳐진 곳을 향해서 태성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어느 정도 들어가자, 입구처럼 보이는 곳에 경비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태성을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영지민이 아닌 것을 어렴풋이 알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행색을 이리저리 살피며 경비 중 하나가 물었다.

“무슨 일로 온 거지?”

“여행자입니다. 사람을 찾기 위해 펠름 영지로 왔습니다.”

“여행자? 그럼 통행증은 있겠군?”

“토, 통행증이오?”

여행자들은 각 나라에서 발급해주는 통행증이 있어야 했다. 이 통행증만 있다면 어느 나라, 어느 마을이든지 쉽사리 출입을 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통행증이 없다면 범죄자나 첩자로 간주하고 나라에서 구류하는 경우도 많았다.

“죄, 죄송합니다만 통행증이 없습니다.”

경비들은 순간 눈빛이 달라졌다. 통행증이 없다는 것에서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경비가 또다시 물었다.

“지금 어디서 오는 길이지?”

“카뎀 마을에서 오는 길입니다.”

“카뎀? 그곳은 몬스터에게 공격을 받아 폐허가 된 곳이 아닌가?”

그러면서 다시 한 번 태성의 몸을 두루 살펴보는 경비가 한마디 했다.

“사람을 찾으러 왔다고?”

“그렇습니다. 카뎀 마을에서 신세를 지고 있던 자매들이 있었는데, 마을에 있던 기사 분들이 생존해 있다면 펠름 영지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오게 된 것입니다.”

“음… 그렇군. 카뎀 마을의 생존자라… 통행증도 없으니 이거야 원…….”

경비는 귀찮은 눈빛으로 태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만약 태성이 범죄가 아니며 순수한 여행자 신분이라면, 괜히 자신들의 일거리만 늘어날 뿐이다.

“좋아. 들어가봐. 하지만 사고는 치지 말라고. 괜히 통행증 확인도 하지 않고 들여보내줬다는 걸 알면 우리도 골치 아파 지니까.”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내며 태성은 마을로 들어섰다. 그리고 마을 사람 한 명을 붙잡아 물었다.

“죄송한데 혹시 카뎀 마을에서 피신 온 사람들이 어디에 있나요?”

“카뎀 마을? 그 사람들이라면 저쪽 마을 광장으로 가보시오.”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그의 말대로 그곳에는 피난 온 마을 주민들이 여럿 모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 피난민들에게 태성이 물었다.

“혹시 네이피라 자매들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태성의 말에 그를 한 번 쭉 훑어본 중년인이 말했다.

“네이피라? 네이피라라면 얼마 전 영주의 저택으로 끌려가지 않았었나?”

“그러게. 안됐지. 저 악독한 영주 놈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쯧쯧…….”

그 자리에 있던 마을 주민들 대다수는 네이피라의 상황을 알고 있는 듯 했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끌려갔다는 말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한 태성.

“아니, 마을에 흑마법사가 들어왔는데 그걸 네이피라가 감춰줬다지 뭔가? 그 흑마법사가 몬스터를 끌고 와서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말이야. 그거 때문에 네이피라가 영주의 저택으로 끌려갔지.”

“예? 흑마법사가 몬스터들을 마을로 끌고 왔다고요?”

“그럼! 당연히 흑마법사가 아니고 누구 때문이겠어? 흑마법사가 마을에 오기 전에는 이런 일이 전혀 없었다고. 쳇! 그냥 흑마법사가 병사들에게 잡히게 놔둘 것이지. 왜 그놈을 숨겨서 이런 참사를 만드냔 말이야! 지금 생각해보면 네이피라가 불쌍한 게 아니라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까지 드는군. 제기랄.”

피난 온 이들은 하나같이 가족과 자신들의 터전을 잃었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영주에게 끌려간 네이피라가 가진 고문을 당할 것에 대해서 불쌍히 여겼지만, 현실을 직시한 이후에는 그녀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그녀를 저주하고 있었다.

‘아냐! 아니라고! 그건 네이피라 탓도 아니고, 내가 그런 것도 아니란 말이야!’

태성은 이를 갈며 그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그녀의 동생들은 어찌 되었나요?”

“동생? 넬리와 넨시 말인가? 그러고 보니 통 보질 못했군. 피난 올 때부터 못 봤는데?”

“예? 그게 정말인가요?”

“그래. 어쩌면 마을에서 죽었을지도? 한두 명 죽은 것도 아닌데, 일일이 내가 그걸 세고 있을 수는 없잖아? 정 궁금하면 네이피라한테 가서 직접 물어보든지.”

그는 태성이 귀찮은 듯,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려버렸다.

‘여기는 피난민 조사반도 없나? 젠장! 뭐 하나 제대로 갖춰진 게 없어? 빌어먹을!’

혹시 모르는 마음에 다른 이들에게도 네이피라의 동생들에 대해서 물었지만, 그녀 외에 동생들에 대한 정보를 아는 이는 없었다.

‘어떻게 되었든 무조건 네이피라를 만나야 한다는 건가? 끌려갔다고 했는데 어떻게 만나지?

그는 멀리 보이는 영주의 저택을 바라보고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가진 것도 하나 없고… 완전 거지꼴로 대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이야?’

피난민들 속에 섞여 자신의 신세를 한탄만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한 무리의 병사들이 피난민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때 더프가 소리쳤다.

“저기! 저깁니다! 흑마법사 놈이 저기 있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병사가 소리쳤다.

“잡아라! 저놈이다! 흑마법사가 영지까지 들어왔다. 반드시 잡아야 한다!”

이미 한차례 태성의 얼굴을 본 적이 있는 더프는 이곳 피난민 속에서 네이피라 자매에 대한 소식을 묻고 다니는 태성을 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를 보자마자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곧장 마을의 경비들에게 신고를 하게 되었다.

어찌 되었건 흑마법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병사들은 그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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