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언데드 군주-133화 (133/134)

00133  6권

‘여기서 잡혀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어!’

태성은 병사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나 얼른 도망을 쳤다. 마을 밖으로 도주하기 위해 입구 쪽으로 달려가는 태성. 그러나 이미 입구에는 병사들이 그를 향해서 창을 겨누고 있었다.

‘잘될까?’

그는 곧장 스킬을 외쳤다.

“스컬 실드!”

지금 상황에서 좀비를 꺼내봐야 괜한 살상만 일어날 뿐만 아니라, 느린 좀비가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기에,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스컬 실드를 전개한 것이다.

슈르르르르~!

그의 주변에 흰색 해골들이 떠다니기 시작했다.

“흑마법사가 온다! 생포하지 못하면 죽여도 된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병사들은 태성을 향해 창을 찔렀다.

파카칵!

스컬 실드에 막힌 창들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가거나 그 자리에서 파괴되고 말았다.

“어, 어떻게 저런?”

“정말 흑마법사였단 말이야? 저런 어린 녀석이?”

창이 파괴되는 모습을 보며 경비들은 넋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그때쯤 태성은 이미 마을 밖으로 도주에 성공한 상태였다.

펠름 영지에서 2킬로미터 정도 ㄸ떨어진 곳에서 태성은 몸을 숨겼다.

‘휴… 다행이다. 그런데 처음 스컬 실드를 네이피라에게 보여줄 때하고는 사뭇 달랐어. 정신력이 흐트러지지는 않았으니까.’

처음 스킬을 시전 했을 때 마나의 부족을 심각하게 느꼈던 태성. 허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가 있었다.

‘왜 그럴까? 레벨업? 그딴 게 이런 상황에서 있을 리가 없잖아? 마나가 몸속에 채워져 있는 느낌이었는데… 설마?’

그 순간 천인기공을 운기해서 효과를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해답은 바로 천인기공.

‘기를 체내에 축적시킬 수가 있다더니… 혹시 마나와 기는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단 말이야? 마나는 그저 허황된 게임에서 만들어 낸 것이 아니었어?’

태성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됨과 동시에, 천인기공을 자주 연마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이제부터 어쩌지?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무작정 저택으로 쳐들어가야 하는 건가?’

다행이라면 저택은 펠름 영지와는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성벽이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쉽사리 접근은 할 수가 있을 것 같았다.

‘우선은 계획을 좀 세워야겠어. 네이피라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니까 말이야.’

태성은 며칠간 안전한 곳에 머물면서 영주의 저택을 관찰했다.

영주의 저택에는 작은 울타리만 있었기에, 얼마든지 접근이 가능은 했지만, 영주라는 이름에 걸맞게 많은 기사와 병사들이 순찰을 돌고 있는 광경을 볼 수가 있었다.

‘기회는 단 한 번뿐인 것 같군. 병사들이 아닌 기사들이 순찰을 돌 때 들어가야겠어.’

병사들에 비해서 기사들은 약간 허술한 면이 많았다. 순찰을 도는 시간도 일정치 않았고, 한곳에 모여서 노닥거리는 것이 일쑤였다.

그렇다보니 태성은 허술하기 짝이 없는 기사들이 순찰할 때를 택한 것이다.

병사들의 경우 1시간 정도 저택을 교대로 순찰했지만, 기사들은 30분 정도만 순찰에 임했다. 물론 그 순찰은 주변을 경계하는 것이 아닌 수다를 떨며 노닥거리는 것이 전부였다. 또한 며칠간 생활하면서 알게 된 것. 바로 게임에서 사용하던 모든 스킬들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ㅇ이었다.

문제는 프로그램의 명령어들은 일체 응답도 하지 않는다는 것.

어떻게 게임 속의 능력을 현실에서까지 사용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에 그는 만족해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 흑마법사의 힘이 그에게 득이 될지, 아니면 해가 될지는 아직 미지수였다. 그리고 왜 자신이 이런 세상으로 와 있는지도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태성은 병사와 기사가 교대하고, 기사들이 한곳에서 노닥거리는 것을 목격했다.

‘최대한 숨어서 가야 해. 나에게 은신 같은 스킬은 없으니까 말이야.’

최대한 몸을 낮추며 저택을 기웃거리기 시작하는 태성.

거대한 저택인 만큼, 방의 개수도 상당히 많아 보였다. 수십 개의 창문이 달린 저택에 과연 네이피라가 어디에 있을지 알 순 없었다.

하지만 흑마법사를 감춘 죄로 끌려간 네이피라가 몸편하게 방에 감금 되어 있지는 않다는 것을 잘 아는 태성은 그녀가 저택의 감옥에 갇혀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었다.

며칠 간 확인을 해 본 결과 거대한 저택외에 한쪽에 떨어진 또 다른 건물이 하나가 있었다. 그리고 그곳을 주로 병사들이 간간히 드나드는 것을 목격했다. 병사들의 행동으로 봐서는 그곳이 병사들이 기거하는 장소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태성은 그곳이 감옥이라고 직감했다.

한산한 틈을 타 건물 앞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간 태성. 하지만 그곳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었다.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없는 건가?’

주변을 둘러보던 중, 지하 감옥의 쇠창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람이 드나들 수 없게 된 쇠창살 속으로 한 여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네이피라?”

지하 감옥에 단 한 명의 여인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녀는 태성의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네, 네이피라 맞지? 맞는 거지?”

네이피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것 같지 않게, 고급스런 옷을 입고 있었다. 태성이 아는 그녀는 그런 옷을 입을만한 처지가 되지 못했다.

그리고 네이피라는 예전의 따뜻했던 눈빛이 아닌,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태성을 노려보았다.

“죽지 않은 건가? 하늘도 무심하시군. 네놈이 살아 있다니 말이야.”

살얼음이 잔뜩 낀 것 같은 차가운 목소리에 태성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네, 네이피라. 왜 그런 말을?”

그녀는 두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그때 네놈을 숨기지 않고 그냥 병사들이 끌고 가게 놔둘 걸 그랬어. 그랬다면 내 동생들도… 흑흑.”

네이피라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영문을 모르는 태성은 그런 그녀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네이피라. 동생들은 어디 있지?”

“흑흑! 내 동생들은 네놈 때문에 몬스터들에게 끌려갔다. 그거야 네놈이 더 잘 알 텐데? 네놈이 몬스터들을 불러들인 거니까!”

“무, 무슨 소리야? 너도 알잖아? 난 그런 능력 따윈 없다는 걸.”

“웃기지마! 네놈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았어. 하지만 네놈이 나타나고 내 동생들까지 몬스터들에게 납치를 당했단 말이야!”

몬스터에 의한 납치.

태성은 앞이 깜깜해져 왔다. 죽었다면 차라리 마음이야 아프고 말겠지만, 납치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네이피라! 정신 차려! 내가 동생들을 구해줄 테니까.”

“흥! 웃기는 소리! 어차피 펠름 영지도 이제 여기서 끝이군. 흑마법사가 나타났으니 머지않아 몬스터들이 공격해 올 테니까 말이야.”

그녀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고개를 돌려버렸다.

“걱정마. 반드시 내가 넬리와 넨시를 데리고 올 테니까.”

태성은 더 이상 자신의 말에 대답하지 않는 네이피라를 그곳에 놔두고 홀로 사라졌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태성이 사라진 그때, 누군가 감옥 문을 열었다.

“나와라. 영주님이 찾으신다.”

네이피라는 힘없이 그가 이끄는 대로 끌려갈 뿐이었다.

“반드시 찾는다! 넬리와 넨시!”

네이피라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 그것은 아마도 자신을 비롯해서 두 동생이 위험한 일을 겪었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처음으로 이곳으로 와 고마움을 느낀 자매들. 또한 당시 네이피라가 자신을 믿어주고, 베푼 은혜에 대한 점은 반드시 갚고 싶었다.

‘몬스터가 사람을 죽이지 않고 납치를 했다라…….’

아직 이곳 세상의 사정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납치를 했다는 것은 분명 목적이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리고 그 해답을 줄 수 있는 인물을 태성은 조심스럽게 만났다.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니 정말 감회가 새롭군요.”

마을로 잠입한 태성.

그는 피난민이 모여 있는 곳에서 더프의 등에 뾰족한 것을 가져다 대었다.

“생각 같아서는 당신을 병신이라도 만들어 놓고 싶지만, 지금 당장은 급해서 그러지 않겠습니다. 하나만 묻죠. 몬스터들이 왜 아이들을 납치해 간 거죠?”

더프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 나는 모르네.”

“모른다라? 너무 식상한 대답 같군요. 그럼 다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몬스터들이 마을에 종종 나타났다고 들었는데, 그런 몬스터들이 몰려 있는 곳이 있나요? 예를 들어 은신처 같은 곳 말이죠.”

“몬스터의 땅은 우리 마을과 크게 떨어져 있지 않아. 그리고 우리들 역시 숲속 깊숙이 들어가지 않아서 자세히는 모른다네.”

도움도 되지 않는 대답으로 태성은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몬스터에게 납치된 다른 사람들도 있나요?”

“그, 그렇다네. 죽은 사람은 물론 싸우다가 부상을 당한 사람들도 몇 명 끌려갔다네.”

죽은 사람까지 끌고 갔다면 몬스터들은 분명 사람이 필요해서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앞으로 네이피라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감옥에 갇힌 네이피라. 그녀의 안위가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영주의 노리개 감이 되겠지. 그리고 싫증이 나면 죽일 테고 말이야. 자네와 내통했다는 이유로…….”

“뭐라고요? 정황이 드러나지도 않은 상태고, 하물며 죄를 지었다고 영주의 노리개 감이 된 단 말입니까? 싫증이 나면 죽인다니?”

“뭘 잘 모르나보군. 힘은 곧 법이네. 하물며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라면 더욱 심하지. 우리는 그의 말 한 마디에 죽고 살 수밖에 없네. 네이피라는 얼굴이 예뻐서 그나마 지금까지 목숨이 붙어 있다고 보면 되네. 영주가 눈독 들이기에는 그만이란 말이네.”

태성은 주먹을 꾹 쥐었다.

‘젠장…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노리개 감이 되는 네이피라를 먼저 구하는 것이 우선인지, 그것도 아니면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을지도 모르는 넬리와 넨시를 먼저 찾는 것이 급선무인지 선택을 해야만 했다.

‘좋아. 우선은 넬리와 넨시를 먼저 찾자. 하루 빨리!’

태성은 그대로 더프를 풀어주었다.

“자, 자네… 정말 흑마법사가 아닌 건가?”

더프는 조심스럽게 태성을 보며 물었다.

“아뇨. 흑마법사 맞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흑마법사는 아닐 겁니다.”

태성은 손에 든 나무꼬챙이를 그대로 바닥에 떨어뜨리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더프는 그런 태성의 뒷모습을 보며 자신으로 인해서 네이피라가 이 같은 상황에 처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낄 뿐이었다.

쉬지 않고 달려온 곳. 그곳은 바로 폐허가 된 카뎀 마을이었다.

인기척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곳.

‘몬스터의 땅이라고 했지?’

거대한 산 너머 몬스터들의 땅이 존재한다. 만약 끌려간 사람들이 있다면 저곳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문제.

태성은 자신이 처음 눈을 뜬 장소를 향해 발걸음을 재차 옮겼다.

“좀비 소환! 스켈레톤 소환!”

며칠간 운기를 통해서 체내에 마나가 어느 정도 쌓인 상태였다. 유의천이 말한 것과 다르게 천인진기를 운용하니 마나가 생각보다 빠르게 쌓여가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그는 좀비 50마리와 스켈레톤 30마리까지도 부릴 수가 있었다.

게임과 다른 점은 미친 듯이 소환을 하게 되면 정신력의 한계를 느끼고 그대로 쓰러지는 경우도 있다는 것. 물론 상황에 따라서 바로 깨어나기도 했지만 ,시간을 두고 깨어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래서 최대한 자신의 마나가 완전히 소모되지 않게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또 하나 깨우친 것은 소환된 언데드들은 예전 게임에서 말을 주고받던 언데드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은 그저 그의 말에 복종만 하는 존재들일 뿐이었다.

‘예전이 그립군. 말상대라도 해주고 그랬는데 말이야…….’

언데드들과 함께 숲속을 거닐고 있을 때, 어디선가 인기척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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