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BJ를 저격한다
양심은 조금 찔리나 스트레스 풀이에는 이만한 게 없다.
내가 첫 번째 사냥감으로 택한 대상은 미래의 유명BJ 러이갓이었다.
지금은 수백 명 뿐이지만, 미래에는 수만 명의 동시 시청자를 가지게 될 파프리카 롤BJ계의 거물 중 하나다.
─행님들. 여기서 알파 한번 슈욱-! 긁고 위이이이잉 명상. 어때요, 참 쉽죠잉?
나는 소스가 골고루 묻은 라면 부스러기를 깨작깨작 씹으며 러이갓의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한 시라도 빨리 천상계에 가야 하는 내가 어째서?
회귀를 하고 아직 실버 티어에 머무르고 있는 나지만 시간적인 여유는 충분하다.
늦장을 부리는 게 아닌 선에서 조금은 즐겨도 될 터이다.
더욱이 브실골로 대표되는 심해는 한 번 건너가면 다시 맛볼 수 없는 백미다.
무궁무진한 심해의 컨텐츠들을 놓쳐서야 섭한 노릇 아니겠는가?
그 많고 많은 컨텐츠들 중 하나가 바로 BJ저격이다.
아직 파프리카TV에 러이갓의 방송을 보는 이가 수백 명밖에 없는 시기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저격'이라는 것이 활성화되지 않아서 간단하게 가능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1, 2년만 지나도 BJ들이 저격을 방지하겠다며 화면을 가린 채 큐를 돌리고 난리가 난다.
BJ의 입장에서는 짜증이 날 수 있기에 이해하는 일이다.
채팅으로 도발하는 놈들도 있고 악질적인 플레이를 하는 놈들까지 존재한다.
그 탓에 BJ는 제대로 방송을 하지 못하게 될 때도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나는 망설임 없이 한다.
왜?
저격은 하는 사람 입장에선 엄청나게 재밌으니까!
재미 좀 보자는데 굳이 선악 따질 이유 있겠는가.
선을 넘는 행위라면 몰라도 일정 수준까지는 BJ입장에서도 컨텐츠다.
실제로 저격을 당하는 것이 컨텐츠인 BJ도 있다.
그리고 내가 뭐 악의를 가지고 고의 트롤링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모름지기 방송을 하는 BJ라면 같이 게임하고 싶어하는 시청자의 마음 정도는 이해해줘야 한다.
아무튼 그렇다.
그런데 여기서 저격이란 것이 대체 무엇일까?
저격은 MMR, 즉 서로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같은 게임을 한다는 것을 이용해 BJ와 같이 게임을 하는 것이다.
방송 화면을 실시간으로 보며 큐를 잡으면 높은 확률로 성공한다.
한 마디로 BJ를 좋아하는 시청자가 같이 게임을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저격의 본질이다.
그 의미가 많이 변질돼 의도적으로 게임을 방해하거나, 소위 웃기는 짓을 하려는 사람들도 생겼지만 난 찌질하게 그런 짓 안 한다.
'사나이라면 실력으로 보여줘야지.'
비매너로 관심 끄는 것은 사도[私道], 나는 정도[正道]를 걷는다.
내가 목표로 하는 건 초전박살.
BJ의 눈물방울을 찔끔 빼는 것이다.
쿠웅!
때마침 큐가 적절하게 잡혔다.
방송 화면을 확인하니 러이갓이 상대팀이다.
금지한 챔피언과 서로가 선택한 챔피언.
챔피언들의 밴픽을 비교해본 결과니 확실하다.
저격의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서 러이갓의 방송을 켜두긴 했지만, 이제는 꺼야 할 때다.
이 러이갓이라는 BJ는 어처구니 없는 트집 잡기로 유명하다.
상대가 방송으로 미니맵을 훔쳐 봣다면서 자신이 질 때마다 합리화를 해댄다.
당연하게도 나는 눈곱 만큼도 그럴 생각이 없다.
─소환자의 전장에 온 것을 환영해요.
익숙한 여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게임이 시작된다.
당연하게도 나와 러이갓은 같은 라인에서 마주친다.
바로 미드 라인에서 말이다.
러이갓은 자신의 주력 챔피언인 마검사를 들고 나왔다.
그는 이 마검사를 독특한 방식으로 플레이 한다.
일반적으로 AD챔피언이라 분류되는 마검사로 주문력을 올린다.
특이하다면 특이하지만 나름대로 효율은 나온다.
마검사에게는 주문력, AP계수가 일단은 존재한다.
물론 그 AP계수가 달린 공격 스킬은 Q스킬 하나밖에 없다.
데미지 효율이 너무나도 낮다는 이유로 AP마검사는 당연히 쓰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러이갓이 AP마검사를 주챔프로 삼는 데는 당연 이유가 있다.
바로 한타가 좋기 때문이다.
AP마검사의 궁극기, 마지막 전사는 적 챔피언을 죽이면 모든 스킬의 쿨타임을 리셋시킨다.
주 공격기인 Q스킬, 알파 슬래쉬를 한 번 더 사용할 수 있게 된다.
Q스킬에는 AP계수가 1이나 붙어 있어, 주문력을 올린 마검사의 알파 슬래쉬는 엄청나게 강력하다.
그 알파 슬래쉬를 한타 중에 연속해서 쓸 수 있다면 흔히 말하는 싹쓸이가 가능하다.
다섯 명의 챔피언들 중에서 한 명, 딱 한 명만 죽이면 끝이다.
나머지 네 명의 적을 하나하나 도미노처럼 무너뜨릴 수 있다.
그런데 결국 그 첫 단추가 문제다.
나머지 팀원들이 판을 짜주면 좋겠지만 안 해준다.
누구나 킬딸하고 싶지, 양념을 치긴 싫은 법이다.
더군다나 AP마검사의 몸은 물렁하다.
방어 아이템을 올리지 않는 탓에 체력이 허약해 잘못 들어가면 바로 점사 당해 죽는다.
'플레이 난이도가 진짜 높긴 해.'
이러한 이유가 있어 절대로 안 쓰인다는 AP마검사를 유일하게 사용하는 사람이 저 러이갓이다.
나는 그 녀석의 면상에 저격이라는 행위로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게임은 이미 시작했고 나와 러이갓은 미드 라인에서 라인전을 진행하게 됐다.
슈우우우웅!
러이갓은 알파 슬래쉬만으로 미니언을 야금야금 갉아 먹고 있다.
근접 공격, 평타로도 먹고 싶을 테지만 그럴 수는 없다.
미니언의 근처라도 갔다간 내 지옥같은 견제를 맛봐야만 한다.
'AP마검사한텐 초가트가 약이지.'
러이갓의 본래 티어는 다이아1이다.
실버 티어의 현지인이라 방심한 그는 당연하게도 마검사를 먼저 선픽 박았다.
그것을 확인한 내가 초가트를 후픽해 카운터 쳤다.
불꽃이 결코 마그마를 이길 수 없듯이 나와 그의 챔피언은 완전한 상하관계에 있다.
그 사실을 게임의 내용을 통해 여실히 증명하고 있는 와중이다.
쿠어엉!
초가트의 W스킬, 용맹한 울부짖음으로 마검사의 체력을 깎아낸다.
광역 피해와 함께 스킬을 못 쓰게는 침묵의 효과가 달렸다.
러이갓은 곤욕스럽게도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다.
마이크를 통해 이렇게 찌질대고 있을 게 분명하다.
<행님들, 이거 상성이라서 어쩔 수 없는 거 아시죠? 어차피 한타 가면 제가 다 쓸어담습니다잉.>
이런 식으로 변명을 했을 게 뻔할 뻔자다.
그 찌질한 변명까지 전부 틀어 막아주마.
솔로킬을 당하고도 입이 살아있을 수 있나 궁금하다.
이윽고 찬스는 왔다.
휘몰아치듯 견제를 우겨 넣자 필연적인 결과가 나온다.
체력이 깎이고 깎인 러이갓이 W스킬, 명상으로 회복하고 있다.
명상을 시전하면 5초 동안 마검사는 움직일 수 없지만 대신 빠른 속도로 체력을 차오른다.
하지만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
눈 앞의 떡을, 퍼스트 블러드를 이 내가 놓아줄 리가 없다.
쿵!
초가트의 Q스킬, 파멸을 시전한다.
아직 체력을 회복 중인 러이갓의 발 밑에 말이다.
파멸은 1초 후 상대 챔피언의 발 밑에 가시를 튀어나오게 해 데미지를 주고, 공중에 띄워 기절 상태로 만든다.
발동시간이 1초나 된다는 패널티때문에 초가트는 안 좋은 챔피언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마검사를 상대할 땐 아니다.
회복을 하고 있는 마검사는 움직일 수 없는 무방비 상태.
반항도 못하고 파멸의 효과에 적나라하게 노출된다.
파멸을 제대로 맞은 러이갓의 마검사는 약간의 데미지와 함께 기절했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앞점멸을 사용해 킬각을 잡았다.
소환자 스펠 점멸.
대부분의 AOS게임에 존재하고 로드 오브 로드에도 마찬가지로 있다.
점에서 점으로 짧은 거리를 이동시켜 주는 말하자면 긴급 회피 수단이다.
유용한 만큼 쿨타임이 길어 5분에 한 번밖에 쓰지 못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챔피언이 필수적으로 들게 될 정도로 효율이 좋다.
일반적으로는 도망이나 회피의 용도로 사용하곤 한다.
앞점멸은 그 회피 수단인 점멸을 공격적으로 활용해 상대에게 접근하는 것.
적어도 현재 시즌2에는 천상계에서나 쓸 법한 고급 기술이었지만 나는 유감없이 발휘했다.
퍼스트 블러드, 선취점을 쟁취하기 위해서다.
퍼블의 짜릿함이야 말로 내가 롤이라는 게임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앞점멸을 한 나는 용맹한 울부짖음을 내뿜어 러이갓에게 침묵을 걸었다.
그러고 나서 발화까지 때려 박았다.
발화(發火)는 점멸과는 다른 효과를 가진 소환자 스펠.
적 챔피언을 활활 태워 데미지를 주는 공격적인 스펠이다.
상대의 치유력을 감소시키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
이미 내 Q스킬에 의해 마검사의 유일한 명상은 끊긴 참이라 딱히 상관은 없지만 말이다.
─퍼스트 블러드!
적을 처치했습니다!
마무리는 평타로 촥촥!
감칠맛 나게 뿜어져 나오는 초가트의 가시 평타는 강력하다.
이렇게 능욕을 해주면 라인전의 솔킬은 더욱 달게 느껴진다.
그렇게 죽음을 맞이한 러이갓이지만 아직 여유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곳은 심해고 한번의 실수 정도야 만회할 수 있을 테니.
여유로운 척 방송에서 고정멘트를 치고 있을 게 뻔하다.
<행님들 제가 죽은 이유 아직도 몰라요? PC분들은 추천 즐찾, 모바일분들은 우측 상단에 따봉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잉.>
이러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 여유는 끝이다.
나는 실버도 아닐 뿐더러 귀환해서 상점에 갔다 오면 아이템 차이가 확 벌어지게 된다.
퍼블은 인사에 불과하다.
게임 하는 시간보다 회색 화면의 시간이 더 길게 만들어줄 자신이 있다.
.
.
.
* * *
얌얌얌얌얌얌-!
-적을 처치했습니다!
'올마스터'님은 전설적입니다!
초가트의 궁극기 한입식사가 작렬한다.
한입식사는 어마어마한 양의 고정 데미지를 다이렉트로 입힌다.
러이갓의 마검사는 방금 전 다섯 번째 죽음을 맞이했다.
'나한테 죽은 것만 네 번, 꿀냄새를 맡고 찾아온 정글러에게 죽은 것이 한 번 더.'
게임의 총 스코어는 15:0이다.
미드가 무너지면서 다른 라인에까지 여파가 끼친 결과다.
사실상 끝난 것이나 다름없기에 나는 러이갓의 방송에 들어가 그가 무어라 찌질대고 있나 확인해보기로 했다
<초가트 저격이네. 인정하십니까, 행님들? 뭐? 아니라고?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추천 한 번씩 부탁 드립니다잉!>
러이갓은 여느 때처럼 여유로운 척 멘트를 내뱉고 있었다.
하지만 당황한 기색이 내 눈에는 보인다.
말하는 도중 몇 번이나 혀를 씹어댔다.
방송 화면으로 보이는 낯빛엔 불쾌감과 짜증이 엿보인다.
압도적인 실력 차로 BJ를 발라 버릴 때의 쾌감!
이것이야말로 BJ를 저격하는 그 본진이라 말할 수 있다.
충분히 만족하고 방송을 끄려던 나에게 러이갓의 한 마디가 더 들려왔다.
<아니, 진짜로~ 초가트 그마 부캐가 저격한 거라니까? 이 그랜드 마스터 러이갓을 못 믿어?>
시시각각 쏟아지는 변명들.
그중에서도 저 '아니'라는 말은 롤을 하는 유저라면 누구나 달고 사는 변명이다.
정말 구차하기 짝이 없음에도 하게 된다.
하지만 나를 기분 좋게 해주는 말은 따로 있었다.
'마스터도 아니고 그랜드 마스터라..'
다이아1에 지나지 않은, 개뻥 그마 러이갓의 칭찬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들뜨게 된다.
나는 난생 처음으로 그랜드 마스터의 실력이라 인정 받게 되었다.
============================ 작품 후기 ============================
선작과 추천 부탁드려요~!
항상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