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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도 식후경
새로운 인생의 10일 차다.
드디어 나의 삶에 특별한 변화가 찾아왔다!
는 개뿔이 아직 겜돌이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쩔 수 없잖아.'
적어도 마스터는 달성해야 프로게임단에 명함이라도 건네본다.
현재 내 티어는 다이아몬드4.
아무래도 천상계부터는 성장이 더뎌지기 때문이다.
낮은 티어에서는 쭉쭉 상승해놓고 설마 밑천이 바닥났나?
결코 실력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다.
단순하게 계단 하나하나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브론즈, 실버, 골드, 플레티넘에 비해 다이아 티어는 계단의 크기가 높다랗다.
CP.GG 같은 전적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mmr이라는 개념이 있다.
브실골플에서는 1단계가 끽해야 mmr100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에 비해 다이아 티어는 최소 200이상의 차이가 난다.
한 계단 올라가는데 2배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건 두말해서야 입만 아프다.
결정적으로 다른 하나가 크게 걸린다.
-니가 뭐라고 오더를 내림?
흔히들 다이아쯤 되면 트롤이 사라지겠지.
서로 오더도 하고 운영도 하면서 승리만을 지향하겠지!
게임다운 게임을 할 수 있을 거라 착각한다.
결단코 그렇지가 않다.
'조금만 빡겜하면 되는 거 말 진짜 드럽게들 안 듣네..'
한 판, 한 판이 짜증을 절로 불러일으킨다.
나름 다이아몬드, 천상계의 일원이라며 자존심이 세운다.
어려운 것도 아니고 간단한 몇 마디만 해도 반항심이 대단하다.
일단 참고는 있지만 혈압이 슬슬 상승할 지경이다.
물론 천상계가 전부 이 모양 이 꼴인 건 아니다.
극천상계, 마스터 티어 이상에 가면 가능하다.
그 지역에도 문제아는 많지만 비교적 청정하다.
나는 오늘도 극천상계에 다다르기 위해 열심히 노력 중이다.
-초가트의 얌얌쩝쩝 사수들.
다이아몬드5로 강등되셨습니다.
".....실화냐?"
다이아5 티어의 수문장들에게 발목을 잡혀버렸다.
속을 벅벅 긁어대며 말은 드럽게 안 듣는다.
다이아몬드5는 정말 예나 지금이나.
아니, 미래나 지금이나 트롤 천국이다.
이 구간만 어떻게 벗어나면 수직 상승이 가능하다.
어떻게 쉼호흡 크게 내리쉬며 멘탈 잡고 해야 한다.
알고 있지만 말처럼 쉽지가 않다.
당연히 리뮤와 듀오도 해봤다.
-니가 뭔데 오더를 내림?
-ㅇㅋ 박아줌.
이 멘탈쓰레기 자식과는 될 것도 안된다.
올라가긴 커녕 다이아5에서 허구헌날 헤매게 될지 모른다.
나는 지금 다이아5 승급전이고 리뮤는 다이아2다.
이 잠재적 트롤러를 끼고 듀오를 계속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잠시나마 리뮤와 헤어지고 솔로큐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 지옥헬 다이아5 구간에서 이 녀석까지 난동을 피우면 게임을 이기는 게 곱절은 힘들어진다.
그렇다고 평생 갈라서는 건 아니고 잠시동안만.
실력도 재능도 모자란 녀석이 아닌지라 도움은 된다.
적어도 사람이랑 게임할 수 있는데 까지는 올라간 이후에 말이다.
'이 자식이 자기 성격 참을 놈도 아니니까.'
더욱이 다음 게임은 더없이 중요한 승급전이다.
절대로 미끄러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다시 한 번 다이아4에 올라가 그보다 위를 목표로 한다.
컨디션은 충분히 괜찮다.
픽순위도 세 번째이니 미드나 정글을 할 수 있어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큰 문제.
내가 승급전이라는 사실은 비밀이 될 수 없었다.
-5픽 승급전이네?ㅋㅋ
단순한게 팀이 트롤해서, 못해서만 진 게 아니다.
이런 자식들이 한 다스인 곳이 다이아5다.
눈물이 나지만 참고, 인내해서 빛볼 날을 기다려야 한다..
.
.
.
* * *
그날 결국 승급전을 훼방한 녀석때문에 1패로 흉흉한 시작을 해야 했다.
다행히 이후의 게임에서 내리 2연승을 해 다이아4에 안착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 1패가 빡겜의 도화선이 되어 제법 연승을 챙겼다.
리그 포인트, LP도 꽤나 모였으니 결과만 놀고 보자면 나쁘지 않다.
그렇게 하루의 게임을 마무리하고 시계를 보니 오후 6시.
날씨가 선선해지며 조깅하기에 알맞은 시간대다.
지난번 그 까칠한 길고양이와 마주쳤던 시간대이기도 하다.
요즘 나는 항상 이 시간때쯤 되면 조깅을 나선다.
아직 며칠되지 않은 습관이다.
길고양이 본인을 다시 만난 적은 아직 없다.
그래도 이 시간대에 내 몸을 절로 움직이는 동기가 되어주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괜찮다.
원래 꿈보다 해석 아니겠는가?
'후.. 여섯 시인데도 후줄근 하네.'
낮에 비하면 선선해졌음에도 운동을 하니 몸이 후끈해졌다.
하지만 탄천로를 일주해냈으니 보람은 차고 넘친다.
조금 숨이 가빠진 나는 벤치에 앉아 쉬기로 했다.
그런데 아무런 생각없이 앉은 벤치에 선객이 있었다.
"꺼져."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벤치에 있던 선객을 쳐다봤다.
후드티를 뒤집어 쓴 보기만 해도 더워 보이는 옷차림.
입은 옷은 달라졌지만 얼마 전에 만났던 길고양이가 맞았다.
'대체 왜 이런 옷을 입고 다니는 거야.. 사람 헷갈리게.'
후드를 깊게 눌러 쓴 탓에 턱 일부를 제외하면 얼굴이 보이지도 않는다.
그간 한 번도 길고양이를 찾지 못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어쨌든 간에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들어본 목소리.
느껴본 싸가지.
일란성 쌍둥이가 아닌 이상 틀림없다.
"땀냄새나. 저리 가."
아무래도 싸가지 어린 성격은 본성인 듯싶다.
세상 살다 보면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난다고 하지만 심히 당황스럽다.
외모는 반듯한데 어쩌다 이런 성격이 된 건지 실로 유감스럽다.
젊은 처자가 어쩌다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을까.
'내 알 바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을 수 있겠지.'
내가 성격이 좋아서 이해해주는 건 아니다.
그저 조금 관심이 있을 뿐이다.
한 번 봤기에 알고는 있었지만 외모가 정말로 괜찮다.
외모만 따지자면 솔직히 스트라이크존 한 가운데다.
어쩔 수 없는 남자의 본능이라 치자.
"가기 싫은데?"
그렇다 해도 내가 여기서 밀당하거나 호구처럼 당해주기는 또 싫다.
여자들 나쁜 남자 좋아한다고 하지 않던가.
대수롭지 않은 듯 받아쳤다.
돌아온 대답은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내 알바 아니고 꺼져. 여기 내 자리야."
아무래도 벤치를 전세로 계약하셨나 보다.
돈 좀 있으신 부잣집 아가씨신 모양이네.
만에 하나 전세를 놨다 쳐도 말이 너무 험하시네.
그런데 우리 초면인 거 맞나?
그냥 할 짓 없어서 하는 추측이지만 혹시 악연이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 거라면 지금의 무례가 다소나마 이해가 간다.
어쩌면 잊고 있는 내가 역으로 실수를 한 걸 수도 있다.
"꺼지라고."
당연히 아니었다.
애초부터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다.
나한테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이쯤 되면 여자고 나발이고 뒤집어엎어도 무죄 아닐까.
조금 더 곰곰이 곱씹어 봤다.
이윽고 결론이 나왔다.
"연락처라도 교환하지 않을래?"
"..미쳤니?"
내가 생각해도 미친 결론이다.
하지만 자꾸 저렇게 나오니까 오히려 관심이 간다.
매몰차게 딱 끊어서 말을 했으면 진작에 꺼져 줬을 거다.
그런데 저렇게 불특정 다수한테 말하듯이 하니 궁금증만 더해진다.
핸드폰에 연락처 추가 페이지를 띄워 길고양이에게 건넸다.
"잠깐, 접근하지 마."
역시 불발인 듯하다.
반 재미삼아 걸어본 건데 당연히 안됐다.
초면부터 꺼져 소리가 입에 나오는 처자인데 오죽할까.
정말로 의외가 아닐 수 없었다.
"..닥치고 거기 두고 가라고."
표정이 썩 좋지 않아 보인다.
펑퍼짐한 후드티 때문에 하관밖에 보이지 않음에도 불쾌함이 뚜렷이 보인다.
그럼에도 허락을 하기는 했다?
"그리고 꺼져."
"너도 참 초지일관이다.."
여자들이 흔히 쓰는 가짜 번호일 가능성이 높다.
딱히 큰 기대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도 만에 하나 진짜일 수도 있지 않은가?
어느 쪽이든 간에 흥미가 이는 일이다.
무료하던 일상에 자극제가 되었다.
어째서 맨날 표정이 썩어있는 것일까.
그리고 왜 그렇게 성격이 더러운 걸까.
여러가지 생각을 하며 나는 발길을 돌렸다.
'술이라도 한 잔 하고 싶은 기분이네. 같이 마실 사람은 없지만.'
길고양이에게 유난히 관심이 가는 이유가 그것일지 모른다.
돈도 없고 친구도 없다.
연락을 하면 옛날 친구 두엇 만나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인생에 정말 고민이 많았던 스물 일곱 살의 나.
한정했던 스물 한 살의 과거로 돌아오자 백수한량이 된 기분이다.
실제로 백수가 맞기도 하다.
물론 지금 시점의 나는 백수 생활이 길지는 않으니 할 말은 있다.
결과적으로 기분 문제다.
아직 친구와 연락을 하고 싶진 않다.
최소한 조금만 더, 내가 프로게이머로서 자리를 잡고 첫월급을 받은 후면 모른다.
출세까지는 아니더라도 직업이 없는 채로는 아무래도 꺼려지는 법이다.
다른 준비를 하는 거면 몰라도 하고 있는 게 줄창 게임 뿐이니 더더욱이다.
'뭐 네깟놈들도 사정은 비슷할 테지.'
그래도 내가 너희들보단 조금은 난 놈이다.
피차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게 뻔하다.
옛날 생각을 하니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나는 편의점에 들러 맥주와 안주거리를 살까 하다가 그만뒀다.
안에 들어가서 찬찬히 살펴 봤지만 딱히 먹을만한 거리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6년 후의 미래에만 해도 편의점에 먹거리, 안주거리가 즐비해진다.
하지만 현재의 편의점은 정말 슈퍼 하위호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내 기억에 따르면 편의점이 괜찮은 수준으로 부상하는 건 최소 5년 후다.
'지금 편의점 수준은 고작해야 창열푸드니까.'
포장 음식계의 노양심을 자처하는 창열푸드.
이놈은 대체 어떻게 파생됐는지 몰라도 소비자 입장에서 골칫거리였다.
가성비가 정말 이토록 창열스러울 수가 없다.
질소를 사면 감자칩을 덤으로 주는 과자 업계와 열심히 경쟁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자 변하긴 변했다.
헤자 도시락이라는 창열푸드와 정반대되는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편의점 음식은 헤자 도시락 이전과 후로 갈린다는 평이 있을 정도다.
아직 그 헤자 도시락이 출시되지 않은 과거의 이때.
편의점에서 파는 창열푸드나 질소과자따위에 돈을 소비하긴 아까웠다.
주머니 속 땡전 한 푼 아쉬운 상황이다.
이럴 때 웃어주는 서민의 음식이 하나 보였다.
길거리에 포장 마차가 즐비해있다.
떡볶이, 순대, 튀김으로 대표되며 괜찮은 곳은 족발까지 싸게 판다.
가격 대비 성능비가 장난아니게 좋았던 길거리 음식들이다.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6년 후의 미래에는 길거리 음식 가격마저 엄청나게 올랐다는 점이다.
헤자 도시락에 의해 편의점 음식은 사정이 나아졌지만, 엽기 라볶이라는 요상한 음식이 유행을 탔다.
그 엽기 라볶이를 시작으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다른 떡볶이 가게들, 심지어 포장마차들조차 가격을 덩달아 올렸다.
떡볶이라는 음식에 거품이 끼기 시작했다.
'그냥 떡볶이에 불닭소스랑 치즈 넣은 거잖아. 근데 왜 가격이 치킨이랑 같냐고.'
그러고 보면 지금 이 시기에는 불닭면도 없었다.
라면계에 큰 획을 그었던 진짜 맵기만 한 라면.
은근히 땡겨서 배 아파가서도 가끔 먹어댔다.
어쩄든 간에 현재는 편의점이 창열이 대신 떡볶이와 순대, 튀김 등을 싼 값에 마음껏 먹을 수 있다.
순대는 냉장고에 보관해 놨다가 매콤하게 볶아서 밥이랑 먹고.
떡볶이와 튀김은 바로 술안주 행이다.
나는 근처 슈퍼에서 맥주 두 캔을 사고 집에 도착해 조촐한 술파티를 벌였다.
까칠한 길고양이에게 연락이 오길 두근두근 기다리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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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