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헤어컷, 예쁘게 잘라드려요
별풍이 내린다.
샤랄 랄라랄랄라~.
나는 어제 사온 순대를 먹으며 러이갓의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이 노래는 정말로 익숙하다.
이전에 내가 그를 저격하긴 했어도 러이갓 본인에게 악감정은 없다.
오히려 종종 러이갓의 방송을 볼 정도로 사실 좋아하는 편이다.
러이갓을 보고 있자면 상당히 밉상이다.
나만 이리 생각하는 게 아니라 로드 오브 로드 커뮤니티에서도 엄청나게 까인다.
그럼에도 그는 늘 인기가 많고 시청자 수는 놀라울 정도다.
그렇게 까이고 있음에도 인기가 유지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 마디로 재밌으니까.
라면같은 인스턴트 식품이 몸에 안 좋은 걸 알면서도 사 먹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다.
그러한 싸구려 라면과도 같은 매력이 러이갓의 방송에는 있다.
'비유를 해놓고 보니 욕에 가깝긴 하지만.. 어쨌든 1위 할 만은 해.'
이루 형용하지 못할 매력덕분인지 그의 방송은 날로 급상승한다.
지금으로부터 2년 후에는 그 밉상인 이미지로도 파프리카TV 1위 BJ를 차지했다.
아직 한참 남은 미래의 일이고 내가 마음 쓸 부분도 아니겠지만 말이다.
나는 순대를 마지막 한 조각까지 싹싹 비우고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로드 오브 로드(Load Of Lord)를 실행해 랭크게임을 시작한다.
그런데 첫 판부터 안 풀린다.
식사를 하자마자 바로 게임을 했기 때문일까 집중이 조금 안된다.
-마검사님 지금이라도 AD가면 안돼요?
-안 사요 안 사! 가 아니라 제대로 할 게요ㅎ..
러이갓 방송 보다가 내 실력까지 하향 평준화 됐다.
농담이고, 아무리 나라도 가끔은 망할 때가 있는 법이다.
AP마검사의 치명적인 단점.
정글러의 갱킹에 엄청나게 약하다.
무리하지 않고 사리는 거야 기본적인 라이너의 소양이다.
하지만 간간히 말리는 판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이 로드 오브 로드라는 게임이 운빨 타는 건 누구나가 인정한다.
물론 고통 받는 것은 잠깐이다.
한타에 들어가면 당연히 캐리한다.
-아군 님들 AP마검사 1킬 먹으면 싹쓸이 가능한 거 아시죠?
-하아; 왜 항상 우리팀엔 충챔프가 있지….
투덜투덜 거리면서도 이야기는 들어주는 아군이 조금 고맙다.
그러고 보니 충 챔피언이라는 게 있었다.
3대 충[蟲] 챔피언은 롤 유저라면 모를 수가 없다.
티몽, 배인. 마지막으로 마검사.
이 세 챔피언은 악명이 높다.
픽창부터 팀원들이 질색을 표한다.
그런 충 챔피언을 고르고 게임에서 말려버리면 벌레라는 오명과 함께 온갖 욕을 먹게 된다.
알고는 있지만 억울하다.
사람이 살다 보면 가끔 실수할 수도 법이지!
지금까지 쭈욱 캐리하며 올라왔는데 한 번 가지고 너무하네 진짜.
그렇게 말린다 해도 기본 실력의 차이라는 게 있다.
꾸역꾸역 버텨서 한타 페이스까지 가면 캐리각이 나온다.
5:5로 용 앞에서 한타가 벌어졌다.
팀원이 실낱 같은 찬스를 만들어 주었다.
다이아 티어 유저라면 놓쳤겠지만 나는 놓치지 않고 알아봤다.
슈우우웅!
알파 슬래쉬를 정확히 타겟팅 해 적 원딜을 죽인다.
라인전에서 말린 탓에 데미지가 다소 부족하다.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 공격 스펠 발화를 사용했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딸피인 적 한 명을 따낼 수 있었지만 삽시간에 적들이 나에게 달라붙었다.
하지만 나에겐 W스킬 회복이 남아있다.
그 효과는 체력을 빠른 속도로 회복시키며 방어력과 마법저항력까지 추가시켜 준다.
적들의 공격을 최대한 버텨낸다.
위이이이잉.
이 정도면 충분하다.
내가 적에게 집중 포화를 받는 사이 아군들이 적을 포위했다.
나는 궁극기 마지막 전사의 효과로 쿨타임이 돌아온 알파 슬래쉬를 재차 갈겼다.
─더블 킬!
적을 죽이자 알파 슬래쉬의 쿨타임이 또 다시 돌아온다.
상대의 입장에선 어이가 없겠지만 실화다.
다음 사냥감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트리플 킬!
올마스터님이 학살 중입니다.
-오, 마검사충 한 건 하네.
-드디어 정신 차렸냐. 게임 좀 던지지 말고 똑띠 해라.
라인전에서의 실수를 한타로 만회해냈다.
트리플 킬을 먹고 천 골드 이상을 벌게 된 덕에 라둔의 죽음투구가 완성됐다.
레벨업의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성장 주문력룬을 들었기에 레벨이 오를수록 주문력이 어마어마하게 상승한다.
'캬~! 마검사는 역시 한 방이지!'
순식간에 강해지는 내 AP마검사.
이어지는 한타를 주도하게 될 사람이 나라는 건 입 아프게 설명이 필요있을까.
싹 다 쓸어담으며 게임을 마무리한다.
-쿼드라 킬!
전설의 출현!
한 번 발동만 걸리면 이후로는 도미노처럼 와르르르.
적의 서렌을 받아내자 분위기가 급속도로 훈훈해진다.
언제 나를 탓했냐는 듯 대전결과창의 분위기는 참으로 돈독하다.
-다음에 만났을 때 또 마검사 고르면 미드 박음.
-AP마검사 하지 말라면 좀 하지 마라.
안타깝게도 태도를 바꾸는 일은 없었다.
초반에 조금 실수를 했기로서니 너무하다.
한타에서 만회를 했을 텐데도 AP마검사의 선입견은 뿌리 깊이 박혀 있다.
확실히 AP마검사는 기형적인 미드 챔피언이다.
팀원들이 미드라이너에게 기대하는 플레이를 할 수 없을 때가 종종 있다.
혐오하는 수준으로 AP마검사를 지탄하는 건 일단 이해는 한다.
그럼에도 나는 꿋꿋하게 AP마검사를 한다.
다른 건 몰라도 킬리셋으로 이어지는 그 캐리력만큼은 인정사정이 없다.
말하자면 게임의 룰을 사정없이 파고든 이레귤러다.
연습해서 활용할 가치가 차고 넘친다.
내 인지도를 상승시켜 줄 챔피언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음 게임의 큐를 돌리며 나는 다시 러이갓의 방송을 시청했다.
생긴 것도 재수없고 말투도 싸가지 없고 키도 엄청 작아서 160은 될까 싶다.
이런 녀석이 말빨 하나로 떠버렸다.
어쩌면 나도 라는 생각이 들어버린다.
'바보 같은 생각 말자. 내가 원하는 건 돈만이 아니니까.'
BJ와 프로게이머는 병행할 수 없으니까.
어설프게 하다간 죽도 밥도 안된다.
시간을 잡아먹힐 수밖에 없다.
하나의 목표에만 집중해도 이룰까 말까다.
일단 내가 도달해야 하는 곳은 마스터 티어.
트롤도 많고 AP마검사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조금 지체되고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자면 순항이다.
지금 나의 티어는 다이아3.
마스터까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통장에 남은 100만원으로 두 달은 더 버틸 수 있으니 문제도 없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예상 외로 돈이 나갈 일이 생겨버렸다.
'월세가 밀려있다니 안 내면 방 빼라니! 이게 무슨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야.'
과거의 나, 이 자식.
꼬박꼬박 방세 안 내고 대체 뭐했냐?
밀린 방값을 내지 않으면 졸지에 쫓겨나게 생겼다.
70만원은 현재의 나에게 엄청난 거액이다.
통장에는 일주일 치의 식재료를 살 돈도 남지 않게 되었다.
어떻게든 돈을 당겨야 굶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다음 달의 방값도 낼 수 있다.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시간을 허비해서야 본말전도다.
다른 무언가, 롤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그런 일이 딱 하나 있었다.
'대리, 대리라..'
대리 게임.
타인의 계정을 잠시 양도받아 게임을 하고 티어를 올려주는 행위다.
미래에는 엄연한 불법이고 프로게이머가 이 짓을 했다간 오점이 남는다.
하지만 대리가 아니라 듀오로 해주는 거라면 괜찮다.
눈 가리고 아웅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된다.
한 마디로 사회가 허락하는 마지막 라인이다.
더욱이 시즌2에는 대리가 불법이 아니었다.
게임사에서 대리 제재를 시작한 건 시즌3.
고로 지금은 한다고 해도 켕기는 일이 없다.
그리고 당장 돈을 마련하는 게 급하다.
만약 내가 프로가 된다고 해도 당분간은 빈털털이로 신세다.
월급을 준다고 해봤자 아직 게임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았기에 쥐꼬리만 할 것이다.
'손님은 어떤 방식으로 구해야 할까.'
대리를 하기 위해선 홍보가 필요하다.
손님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장사다.
롤 과련 커뮤니티에 글을 올린다든지, 아니면 거래 사이트에 글을 올린다든지.
가장 확실하게 매물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대리를 전문적으로 하는 팀에 소속되는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는 변변찮은 곳이 없겠지'
아직 시즌2 중반기를 갓 넘은 시점이니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다.
썩 내키지는 않지만 잠깐 정도는 감수한다.
'..방송을 하는 수밖에.'
프로게이머와는 병행할 수 없는 직업이지만 아주 잠깐이라면 괜찮을 터.
실제로 지금 내가 방송을 보고 있는 러이갓만 해도 대리로 유명해진 BJ다.
시청자들의 티어를 올려주며 양학을 해댄 끝에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현재 BJ들이 대리를 하는 것은 거의 일상에 가깝다.
물론 BJ로서 유명해지는 걸 목표하진 않지만 손님을 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그것을 해내기 위해 일단 파프리카TV의 가입부터 시작했다.
-액티브X를 깔아주세요.
액티브X의 액티브X와 액티브X의 액티브X를 깔고 공인 인증서 아이핀을 요구합니다.
꼬우면 방송하지 말던가?
"대체 몇 개를 깔아야 하는 거야!"
빌어먹을 놈의 액티브X.
향후 미래에는 삭제되고 만든 놈을 사직서까지 때리게 만든 쓰레기같은 시스템이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잘만 굴러가고 있다.
저 빌어먹을 액티브X랑 공인 인증서, 그리고 아이핀.
실질적인 보안에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참고로 전세계에서 우리나라만 채택한 방식이다.
선진국들이 안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당연하게도 효율성이 극악이라 폐기 처분된 거다.
그걸 꾸역꾸역 쳐만든 놈은 정말 머리가 비어도 한참은 제대로 비었다.
만든 놈이 사표를 써도 진작 썼어야 했는데 너무 늦어버렸다.
액티브X 위기를 어떻게든 넘긴 끝에 회원 가입을 완료했다.
안 그래도 달달 거리는 고물 컴퓨터가 숨 넘어 갈 뻔했지만 어찌저찌 방송을 할 수 있었다.
나는 BJ로서 방송을 켜고 시청자가 오기 만을 기다렸다.
내 방속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올마스터] 다이아3티어 대리 듀오 합니다. 가격 문의 010-XXXX-XXXX
채팅창은 얼려두었다.
이 빌어먹을 고물 컴퓨터에 걸리는 부담을 최대한 줄여야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정말 파삭! 전원이 나가버릴 지도 모른다.
시청자 몇 명이 들어오고 나가기를 반복한다.
안타깝게도 입질이 없다.
단 한통의 전화도 걸려오지 않는다.
천상계의 게임화면을 보여준 덕에 제법 어그로가 끌렸는데도 이 모양.
슬슬 무리가 가더라도 채팅창을 풀어야 할까 고민하던 그 때.
핸드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손님, 손님을 맞이하라!
"어떻게 잘라 드릴까요?"
-네? 대리하시는 분 아십니까? 내가 잘못 걸었나..
그러고 보니 지금 시점에서는 헤어샵이라는 은어가 없었다.
1년 후만 해도 대리가 불법이 되기에, 대리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언급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헤어샵(미장원)을 한다는 은어가 생기고, 대리를 받는 이든 하는 이든 기본적으로 숙지하는 상식이 됐다.
아직은 존재하지 않는 단어라는 사실을 깜빡하고 말았다.
미래와의 시간 차.
잠깐 실수를 해버렸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으며 물 흐르듯 대처했다.
"금발컷, 은발컷, 갈색컷, 어떤 컷으로 잘라 드릴까요?"
-유머 센스 넘치는 분이시네~ 은발 컷 부탁드립니다.
전화를 건 상대는 브론즈인 모양이다.
와, 사람이 브론즈라니, 어떻게 이럴 수가.
나는 지금 브론즈와 통화를 하고 있다.
하지만 브론즈라도 손님은 왕.
놀려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BJ인 데다 화면으로 내 천상계 게임을 보여준 덕에 의심 없이 입금을 하겠다고 확답을 들었다.
나는 계좌번호를 알려주고 핸드폰을 통해 입금을 확인한 후, 브론즈 손님의 아이디와 치구 추가를 했다.
불법이 아닌 확실한 장사.
그런데 브론즈 손님의 아이디를 CP.GG에서 검색해보니 전적이 말이 아니었다.
[220승 305패.]
'와..'
어처구니가 없어서 한 마디 튀어나오려는 걸 꿀꺽 삼켰다.
그러고서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첫 번째 헤어컷을 시작했다.
어쩌면 나 대리게임계의 레전설이 돼버리는 거 아닌가 몰라.
헤어샵 원장, 올마스터가 첫 번째 시동을 걸었다.
============================ 작품 후기 ============================
선작과 추천 부탁드려요~!
항상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