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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컷, 예쁘게 잘라드려요
올마스터 계정으로 브론즈와 듀오를 하기엔 너무 걸리는 게 많다.
때문에 배치를 망쳐서 쳐박아둔 브론즈 아이디를 꺼냈다.
내 기억에 의하면 배치고사에서 하도 트롤만 만나 브론즈1티어에 배정 받았다.
접속해 보니 오랫동안 게임을 안 해 강등이 되어 브론즈5였다.
'결과적으로는 다행이네..'
그렇게 브론즈5 아이디로 손님과 듀오를 한다.
귀찮아 하긴 했지만 같이 게임을 하다 보면 실력이 는다고 설명해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목표는 실버, 은발컷이다.
[전체]-님들 우리팀 마검사 AP임ㅋㅋ
[전체]-ㅋㅋ 트롤인가? 꽁승 ㄳ
낮은 티어의 심해에서 AP마검사가 있으면 대부분 이런 느낌이다.
그나마 일정 이상 점수대부터는 AP마검사에 대한 기본 지식은 있다.
싫어할지언정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심해에서 AP마검사는 단순한 트롤의 상징이다.
알기라도 하면 다행이지만 모른다.
가끔 가다 아는 녀석들조차 트롤이라고 치부해버린다.
왜?
AP마검사는 플레이하기 엄청나게 어려운 챔피언이다.
공격 스킬이 Q밖에 없으니 쉬울 거라 착각하는 애들이 종종 있다.
러이갓 방송에서 펜타킬 한두 번 본 애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따라하곤 한다.
어째서 난이도가 높은 챔피언인지는 정말 해봐야 안다.
1:1상황에서 폭딜도 안 나오고.
미드 챔프에게 가장 중요한 생존기가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근접 챔피언이라 CS를 챙기기조차 힘들다.
체력을 회복시켜 주는 W스킬 명상은 물론 좋지만 스킬 쿨타임이 상당히 길다.
이외에도 기타 등등 껄끄러운 요소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가장 실수가 잦은 부분이 바로 궁킬딸.
마검사는 마지막 전사를 발동하고 적을 처치하면 스킬 쿨타임이 리셋된다.
그러다 보니 잘못된 킬각을 보고 뛰어 드는 일이 생기고 만다.
딜계산을 실수해 적을 마무리 못하거나, CC기 연계에 순삭 당하는 일이 다반사.
대체 왜 들어갔나 물어보고 싶을 정도의 타이밍에 들어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3대 충(蟲)챔프이라 명명된 데에는 이러한 사정이 숨어있다.
이러한 AP마검사의 노골적인 트롤링을 본 브실골 친구들은 AP마검사를 극혐하게 됐다.
팀에 있으면 무조건 지는 쓰레기 챔프.
하지만 내가 잡은 AP마검사는 당연히 다르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발화의 막틱까지 생각한 정확한 딜계산이다.
라인전에서 알파 슬래쉬로 체력을 야금야금 깎다가,킬각이 나올 때 달려가서 발화로 마무리 한다.
이것의 AP마검사의 솔킬 포인트.
그 전까지 어쩔 수 없는 라인전의 고통은 적절한 물약과 회복으로 커버해낸다.
찰칵!
킬을 따고 귀환한 나는 상점에서 겁나 쓸데없는 지팡이를 구입했다.
주문력을 80이나 올려주는 아이템이다.
이제 게임은 끝났다고 말할 수 있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더블 킬!
학살 중입니다!
갱킹을 온 적 정글러까지 킬리셋의 효과를 응용해 따버렸다.
방송을 켜고서 학살 장면을 보여주자 양학을 구경하러 온 시청자들이 제법 많아졌다.
그래봤자 열 명.
얼마 안되는 것 같지만 오늘로 방송 1일차다.
충분 이상의 성과라고 생각한다.
슈우우웅!
시간이 지나 5:5 용한타에서 5킬이나 먹은 내 마검사의 알파 슬래쉬가 네 명의 적을 스쳤다.
알파 슬래쉬는 타겟팅 스킬이지만 최대 네 명까지 같은 피해를 가한다.
그 막대한 데미지에 적들의 체력 바가 썰려 나간다.
결정적으로 적 한 명이 죽어버리고 말았다.
"한번 더."
슈우우웅!
어떻게 한 명 따내기만 하면 나머지는 도미노다.
와르르르 무너지며 한타가 쉽게 종결난다.
AP마검사는 한마디로 한타 종결자다.
'네 명, 세 명, 두 명, 마지막 한 명
4, 3, 2, 1 제로!
제로가 의미하는 바는 간단하다.
─펜타 킬!
전설의 출현!
"캬아아!"
만약 채팅창을 녹인다면 환호가 터져 나왔을 것이다.
정말 보고 싶지만 안된다.
이 고물 컴퓨터로는 채팅이 우르르 올라갔다간 렉 때문에 멈춰버릴 지도 모른다.
최악의 경우 어디 한 군데 맛이 가버릴 수도 있다.
아쉽지만 참아야 한다.
무참한 학살을 자행하며 쭉쭉 올라간다.
그럼에도 대리 듀오를 해주고 있는 손님의 아이디는 아직 브론즈2다.
오늘 안에 실버가 가능은 하겠지만 진짜 어지간히도 안타깝다.
그렇게 펜타킬만 열 번 쯤 했을까.
10시간이나 브론즈를 양학한 끝에 브론즈 손님을 실버 티어에 입성시킬 수 있었다.
방송이 끝날 때가 되니 시청자가 30명 가까이 늘어나 있었다.
나는 BJ나 매니저만 칠 수 있는 채팅으로 방송의 종료를 알렸다.
-시청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채팅창을 풀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소통을 한다.
그 말을 끝으로 방송을 끄려던 찰나 일이 있었다.
아니, 백이 있었다.
-'채팅창열어줘' 님이 별풍선 100개를 선물하였습니다!
별풍선은 파프리카 고유의 시스템이다.
한 개당 100원의 가치를 가지며 맘에 드는 BJ에게 선물할 수 있다.
그 별풍선이 내 방에 터지고 말았다.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100개면 만원의 값어치.
파프리카TV가 BJ의 골수를 빨아먹는 탓에 이것저것 빼면 5천원 안팎밖에 남지 않는다.
그럼에도 내 플레이를 인정해줬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
게임도 종료했으니 렉도 적을 테고.
나는 별풍선을 받은 기념으로 채팅창을 풀었다.
풀자마자 채팅창을 가득 채우는 시청자들의 메세지들.
-오오! 채팅창 드디어 열렸다.
-아니, 시X! 대체 채팅창을 왜 얼리는 거야? 답답해 주겠네.
-방장님 실력쩌네요ㄷㄷ 즐겨찾기하고 갑니다.
-펜타킬을 밥먹 듯이 하네. 러이갓도 이렇게는 못할 듯ㄷㄷ
흐뭇한 광경이다.
처음으로 팬이 생긴 듯한 기분이다.
나는 먼저 감사 인사부터 하기로 했다.
-채팅창열어줘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기회만 있다면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대사다.
가능하면 별풍이 내린다 샤랄랄랄라~
BGM도 틀고 싶었지만 준비하지 못했다.
게다가 어차피 마이크도 없다.
-채팅창열어줘 : 방장님 채팅창 좀 풀어주시면 안돼? 답답해 뒈지겄네~
휴먼아재체 채팅창에 작렬한다.
채팅 끝에 ~를 붙이는 듯 단어 사용이 둔탁하다.
물론 기분이 나쁘거나 웃기다는 로기 아니다.
어쩌면 큰손이 왔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인다.
-방송컨셉입니다 ㅎㅎ
-채팅창열어줘 : 에이.. 난 푸는 게 좋은데~
파프리카TV에는 간장으로 샤워하는 BJ도 있다.
온갖 이상한 짓도 BJ컨셉이라는 한 마디에 넘어가 준다.
내 컴이 구리다는 잡설명을 안 해도 되니 편하다.
솔직히 말 꺼내기 쪽팔리다..
-채팅창열어줘 : 나도 대리 듀오가 가능하겠니 방장아~?
물고기가 낚시대를 물었다.
과연 대어일지는 아닐지는 아직 모를 이다.
그래도 일단 받아들이는 게 인지상정.
-물론이죠. 금발컷, 은발컷, 갈색컷. 마음에 드는 헤어스타일 말씀만 하세요.
-허허 방장이 유우머 센스가 끝내주네~!
역시 아재가 맞다.
매니저 채팅을 통해 나와 아재는 연락처를 교환했다.
나는 방송을 끈 후에 전화를 걸어 이야기를 나눴다.
'브론즈5...역시 아재답다.'
심지어 MMR도 헬게이트다.
헬게이트란 적정 MMR보다 낮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아이디를 다이아까지 올려 달라는 게 이 아재의 부탁.
-학상. 입금은 바로 해줄게. 계좌번호만 불러~
감사하여라.
이렇게 오래 걸리는 매물을 속칭 장기 운행이라고 한다.
대리도 어찌 보면 버스의 일종인지라 비유하는 사람이 많다.
브론즈 아재는 입금을 칼같이 해줬다.
그런데 입금된 금액이 이상하다.
내가 요구한 것보다 너무 많은 금액이었다.
무려 따블이다.
"140만원..!"
나도 모르게 입에서 흘러나왔다.
혹시 몰라 전화를 걸어 잘못 보낸 게 아닌가 물어봤지만 아니었다.
-학상, 한참 고생 많을 시기인데 열심히 혀~ 방송도 계속 해주고~
애들아 손님 맞아라.
제대로 된 대박 손님이 오셨다.
.
.
.
* * *
날이 저물어 저녁 시간대가 왔다.
돈을 버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초심을 잊지 않고 조깅에 나섰다.
습관을 유지하지 않으면 언제 어느 때 생활 패턴이 망가질지 모른다.
특히나 운동은 하루라도 빼먹으면 다음 날 하기 엄청 싫어진다.
타닥타닥.
뛰어가는 길은 언제나의 조깅 코스다.
탄천을 한 바퀴 빙 돌아서 원점으로 되돌아 온다.
이러다 보면 간혹 가다 만나게 된다.
길고양이 같은 그녀가 보였다.
"오늘은 안녕하니?"
그녀는 오늘도 후드티를 뒤집어 쓰고 벤치에 앉아 휴대폰을 두들기고 있었다.
이 처자는 덥지도 않은 걸까.
냉혈동물이라도 되는 걸까.
이쁜 얼굴이 안 보여서 다소 아쉽다.
얽혀서 좋은 꼴은 본 적 없지만 일단 웃으면서 인사했다.
웃는 낯에 침뱉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지 않던가?
어쩌면 친해지고 나서는 살가워지는 새침데기일지도 모른다.
"널찍이 떨어져."
안면이 쌓인 덕일까.
적어도 꺼져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들은 말을 생각한다면 정말 비약적인 발전이다.
까똑!
이제 막 대화의 물꼬를 트려던 참인데 뻘쭘하게 까톡음이 울렸다.
지금 나한테 연락을 할 만한 이가 거의 없을 텐데 누구일까.
까톡을 보낸 이는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
-할 말 있으면 톡으로 말해. 땀냄새 나니까 가까이 오지 마.
누가 봐도 내 눈앞의 길고양이 본인이다.
문자를 보내봤을 때는 분명 답신이 없었다.
그런데 이런 용도로 사용하려 했다니.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참 요즘 애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가면 어떻게 할 건데?
반은 궁금해서고, 나머지 반은 괘씸해서다.
사람이 운동하다 보면 땀냄새 좀 날 수도 있지.
내가 일단은 아저씨 냄새날 나이도 아닌데 너무해도 너무하다.
이실직고 하자면 스물 일곱 살의 나는 조금 그러한 기미가 있었다.
-감방? 아니면 천 단위의 벌금? 말만 해.
-우아 무서워라~ 조심할게요?
젊은 처자가 참 패기가 넘친다.
그런데 법이라는 게 그리 쉽지가 않을 텐데?
무슨 죄, 무슨 죄 해서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코다친다.
그래도 일단은 맞춰주면서 한 마디 한다.
나 냄새 안 나니까 그렇게 멀찍이 떨어질 필요 없다고.
-못생겼어.
어처구니 없는 대답에 길고양이를 쳐다봤다.
그녀는 나를 신경도 쓰지 않으며 휴대폰을 두들기고 있었다.
정말 쉴 새 없이, 멈추지 않고 두들긴다.
게임을 하든 다른 이와 까톡을 하든 바쁜 일이 있는 듯하다.
할 일이 없으면 모르되 있으면 말 섞기 조금 그렇다.
딱히 미련이 있는 것도 아니니 오늘은 여기까지.
나는 가벼운 인사와 함께 걸음을 돌렸다.
굳이 까톡을 사용하지 않은 건 일단 남자로서의 자존심이다.
-어디 가냐, 찌질아.
그런데 역으로 그녀가 나를 잡아왔다.
동시에 이상한 예감이 든다.
설마 나의 호칭을 찌질이로 잡은 건 아닐까.
정말로 설마 했는데 맞아버렸다.
-야 찌질이. 가서 메로나 사와.
-내가 네 셔틀이니? 돈이나 주고 시켜라.
솔직히 사줄 수야 있는 노릇이다.
밥도 아니고 고작 막대 아이스크림 하나.
입금 받은 돈도 있으니 전혀 부담 안된다.
하지만 남자가 자존심이 있지 시킨다고 그걸 하면 쓰나.
-이거 받고 사오기나 해.
종이 비행기 하나가 날라 왔다.
무려 금빛으로 번쩍이는 빳빳한 종이였다.
신사임당이 그려진 금색 5만원권이다.
일단 사오기로 했다.
가까운 거리에 편의점이 있다.
그리고 이 5만원, 왠지 거스름돈 꿀꺽 해도 될 분위기다.
고작 5만원에 무너지는 남자의 자존심이라니 형편없지만 내 지갑 사정도 형편없다.
아무리 브론즈 아재에게 거금을 받았어도 차곡차곡 모아둬야 아쉬운 일 사라진다.
딸랑~♬
횡단보도를 건너 편의점에 들어갔다.
문을 열고 나온 나의 손에는 검은색 봉투가 들려있다.
그 내용물은 메로나 하나가 아니라 두 개.
뻘쭘하게 하나만 사갔다간 진짜 셔틀 같지 않은가.
나는 터벅터벅 길고양이가 있던 벤치로 돌아갔다.
"어..설마?"
그런데 심부름을 시킨 그 본인이 없다.
길고양이가 어느새 사라져있었다.
순간 멍 때려버린 나의 귀에 까톡의 알람음이 울렸다.
-나 바빠서 간다ㅂㅂ
이러면 내가 5만원은 먹을 텐데?
설마 골탕 한 번 먹이려고 허공에 돈을 뿌린 것일까.
아니면 정말 바쁜 일이 있어서 간 걸까.
어느 쪽이든 간에 좋은 쪽으로는 생각을 못하겠다.
슬슬 빡치기 시작하는데 욕지거리 내뱉고 인연 끊을까.
머리가 뜨거워지던 그때 또한 번 까톡음이 울렸다.
-너 항상 여기서 조깅 하지?
-어쩔.
짜증나서 단답으로 끊었다.
상대해주는 것도 참 정도가 있다.
또 빡치는 말 해올 텐데 미리 차단박는 게 옳을까.
하지만 이어진 그녀의 한 마디에 나는 참지못하고 실소를 지었다.
-올 때 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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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작과 추천 부탁드려요~!
항상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