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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만이 마스터다-14화 (14/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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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만큼 벌었다

오늘도 나는 방송을 하고 있다.

브론즈 회장아재의 점수를 올려주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오늘 만큼은 각별히 다르다.

정말 이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려온 보람이 차고 넘친다.

-'채팅창열어줘'님이 별풍선 10000개를 선물하였습니다. 마니 머겅!

"으허어어어엉!"

입술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임팩트가 어마어마하다.

0이 무려 네 개 붙어 있다.

내 방송의 팬클럽 회장님이 이렇게나 별풍선을 쏜 데는 당연 이유가 있다.

브론즈5였던 회장형님의 아이디가 목표인 다이아5에 도달했다.

길고 길었던 여정의 종지부를 드디어 찍었다.

물론 그만한 수고를 하기는 했지만 생각 이상의 이상이다.

사실 1천 개쯤 받을 거라 생각했는데 무려 그 열 배다.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온다.

"형니이이이이임!!! 평생 모시겠습니다!"

파프리카 방송을 꽤나 오래 시청해왔다.

그렇지만 줄곧 하나 이해되지 않은 것이 있었다.

별풍선 리액션이 지나칠 정도로 과도하다.

눈살이 찌푸려진 적이 정말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저걸 굳이 저 정도까지 해야 하나?

해야 한다.

직접 경험해보니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그 쾌감이 이루어 표현할 수 없을 지경이다.

결코 과도한 리액션이 아니었다.

굳이 표현하면 몸이 먼저 움직이는 듯한 기분.

한두 푼도 아니고 무려 별풍선 일만 개다.

결제 금액만 따지면 110만원.

빌어먹을 파프리카 환전시스템 때문이다.

나에게 돌아오는 액수는 6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마음을, 성의를 어찌 무시할 수 있겠는가!

세상사 돈이 전부는 아니다.

별풍선 하나 쏘지 않은 사람들 중에도 내 방송과 플레이를 입이 닳도록 칭찬해주고 좋아해주는 이들이 분명 있다.

그들의 닉네임들은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별풍선으로 성의를 표현하면 와닿는 정도가 다르다.

눈 앞에 현찰다발을 살랑살랑 흔드는데 혹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속물적이라기 보단 인간의 본성 그 자체다.

너무나도 가시적이라 모를 수가 없다는 느낌이다.

-아그야~. 형님이 오늘 서울가니까. 준비하고 기다려라~.

물론 잊지 않고 있다.

회장아재가 밥 한 번 거하게 사주기로 약속을 하셨다.

정확한 날짜까진 말해주지 않았어서 문제지.

그런데 그 날이 바로 오늘이라니?

나조차도 방금 들은 사실이다.

당황하지 않고 마이크를 통해 대답했다.

"그, 그럼 저도 준비를 해야 하니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방송을 켠지 채 두 시간이 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

시청자들에게 다소 미안하긴 하다.

안타깝게도 내 꼬라지가 말이 아니라 시간이 필요하다.

후줄근한 츄리닝.

대충 넘긴 머리카락.

기본 외모가 중간 이상은 간다고 자부하기에 일단 방송으로 내보낼 수는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기왕지사 사람 만날 거 좋은 인상을 주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뭐야 방송 벌써 꺼?

-건빵은 사람 아니냐! 방송 이제 들어왔는데 끄는 게 어딨어?

-꼬우면 별풍 쏘고 회장 하던가..

-방장은 시청자와의 약속도 지켜라!

매일매일 열 시간 이상 방송을 하는 것이 당연하게 돼버렸다.

시청자들이 아우성치는 것도 이해는 간다.

그래도 솔직히 가끔 가다 하루 쉴 수도 있는 거지?

근무 시간으로 따지면 주 70시간인데 한 번쯤 봐줘야 인지상정이다.

회장아재는 이미 방송을 나가신 상태다.

아무래도 부산과 서울과의 거리가 장난 아니다.

도착하는 시간은 문자로 연락 주신다고 하셨다.

늦기 전에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 한다.

나는 미련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지갑을 챙기고 미용실을 향했다.

일단 이 더벅머리부터 어떻게 정리하는 것이 옳다.

옷도 사야 하긴 하지만 헤어스타일에 따라 어울리는 것이 달라지니까.

나는 시내에 나갔다.

다행스럽게도 번거롭게 버스나 지하철을 탈 필요는 없다.

조금 걸어야 하긴 하지만 멀지는 않다.

이윽고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번화가인 미금역에 도착했다.

'머리는 그냥 파랑클럽에서 대충 자르는 게 짜세인데.'

일반 미용실들은 가격이 부쩍 올라서 부담된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럴 수 없다.

아무리 평소 대충 차려 입고 방송을 한다고 해도 현실에서까지 그러면 쓰겠는가.

어쩔 수 없이 터벅터벅 괜찮은 미용실 없나 찾아보는 중이다.

'솔직히 무섭네..'

미용실에 득실거리는 아줌마들도 무섭긴 하다.

문 열고 들어거면 어머, 총각 머리 깎으러 왔어? 호호호!

굉장히 부담스럽다만 진짜 무서운 건 가격이다.

대체 얼마나 후려칠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어머, 학생. 겨우 머리만 자르게? 파마도 해야 스타일이 살지.

-아니, 저 파마는..

-아냐 아냐. 싸게 해줄게. 하자, 응? 괜찮지?

-아...네에......

이런 식의 덤터기를 썼던 과거가 몇 번이고 있다.

가격은 할인을 해준 건지 모를 정도로 더럽게 비쌌다.

심지어 그 비싼 파마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두번 다시 당해줄 생각은 없다.

문제는 트라우마.

미용실 특유의 분위기는 아직까지도 껄끄럽게 느껴진다.

'그래도 일단 가긴 해야 하니 차악을 찾아보자.'

어느 미용실의 원장님이 가장 성격 원만하실까.

그리고 싸게 잘해주실까.

시내를 두리번거리며 찾고 물색하고 다녔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보고 파악할 수 있는 눈썰미가 있을 리 만문하다.

그냥 일단 아무 데나 눈에 띄는 곳으로 들어 가볼까.

발만 동동 굴리고 있던 그때 불현듯 핸드폰이 울렸다.

위이이잉!

주위가 하도 소란스러워 진동 모드로 해두었다.

혹시 회장아재가 벌써 도착해 문자를 보내기라도 한 걸까?

핸드폰이 울린 이유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 있었다.

-야, 찌질이.

싸나운 길고양이가 까톡을 보내왔다.

그런데 무슨 심정의 변화가 있어 먼저 말을 건단 말인가?

놀랄 노자지만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생각을 곱씹었다.

답장을 할까, 씹어야 할까.

일단 읽씹은 아니니 그대로 방관해도 되겠지.

결정을 내린 그때 한번 더 핸드폰이 울렸다.

-씹냐? 죽을래?

내가 씹는지 안 씹는 네가 어떻게 알아?

적당히 무시하려던 그때 또다시 핸드폰이 울렸다.

-당장 뒤 돈다, 실시.

무슨 유격훈련장 조교라도 되시나.

어이가 없어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려던 찰나.

정말로 설마 하는 생각에 뒤를 돌아보았다.

"..네가 왜 여기에 있냐.'

일단은 같은 동네에 살고 있으니 만나도 이상하진 않다.

따지고 보면 탄천로에서 만나는 것도 적당한 우연이 아니다.

하필 오늘이라는 게 떨떠름할 뿐이다.

위이이잉!

언제나처럼 말로 대답하지 않는다.

핸드폰이 울리며 또 하나 까톡이 도착했다.

-내 맘.

그래, 백 보 양보해서 네가 어딜 싸돌아다니든 네 맘이겠지.

그거까지는 나도 인정을 한다.

그런데 왜 길가던 사람을 멈춰 세우냐고.

-미용실 찾지?

되돌아온 답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미용실을 찾고 있는 건 맞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말을 한 적은 없다.

솔직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흘금흘금 기분 나쁘게 미용실 쳐다보고 있잖아?

"…."

맞히기는 했다만 말은 정말 걸쭉하다.

여자가 아니었다면 한참 전에 손찌검이 한 번 날라가지 않았을까.

뭘 믿고 이리 당당한지 궁금할 지경이다.

어쨌든 간에 말을 꺼냈다는 것은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뭐 설마 도와주기라도 하게? 그다지.. 믿음은 안 간다만."

물론 나도 지금껏 딱히 멋부리는데 집착한 적이 없다.

애시당초 집착할 여유도 없었다.

어찌저찌 하루를 살아가는 것만 해도 각박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너도 만만치는 않아 보이는데?

-따라와.

그 한 마디를 남긴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걷고 있다.

내가 무조건 따라가기라도 할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착각도 유분수지 네 도움 없어도 충분하다.

'그래도 한 번 가볼까..'

어차피 아무 데나 골라 들어가려고 하던 참이다.

정말로 만에 하나 도움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선택의 고민을 덜어주는 정도라면 기용할 만하다.

딱 한 번만 믿어주기로 마음 먹었다.

"안녕하세요."

미용실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 사람 안 따르는 길고양이가 무려 인사를 했다.

예의 바르다 하고는 거리가 멀지만 형식을 갖추었다.

아니, 혹시 하지만 나한테만 그래왔던 건 아닐까.

어처구니 없게도 그럴 가능성도 분명히 있다.

"어머, 예은이 왔구나? 뒤에 오신 손님은.. 혹시 남친?"

의외의 수확을 하나 거뒀다.

길고양이의 본명이 예은이었던 듯하다.

나를 데려온 예은의 표정이 살짝 구겨진 것도 재밌었다.

"그럴 리가요."

"호호, 역시 그렇지?"

단칼에 끊은 예은과 맞장구치는 원장 아주머니.

짝짜꿍이 정말 잘 맞는 게 하루이틀 지내온 사이는 아닌 듯 보인다.

전혀 알고 싶지 않은 정도지만 그래도 단골 미용실인 건 확실하다.

약간 기분은 상하긴 하다만 예은 덕에 무려 할인까지 받을 수 있었다.

곰곰이 곱씹어봐도 상당히 합리적인 가격.

내가 비록 방송을 하면서 제법 돈을 모으긴 했지만 부족하다.

애초에 내 금전감각부터가 쪼잔한 편인 데다 돈은 아낄수록 좋다.

사각사각.

내 검은 머리카락들이 뭉텅뭉텅 바닥으로 떨어진다.

덥수룩했던 머리카락이 깔끔하게 정리된다.

문외한인 내가 봐도 실력이 좋으시다.

'그런데 쟤는 실내에서도 후드티를 쓰고 있네..'

그냥 쿨하게 갈 줄 알았는데 의외로 기다리고 있다.

미용실 쇼파에 앉아 꼼지락꼼지락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린다.

후드티를 쓴 그대로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확 통째로 벗겨버리고 싶을 정도로 답답하다.

"학생. 마음에 들어?"

"와, 정말 마음에 드네요. 감사합니다."

머리 따위 며칠 지나면 파랑클럽이나 미용실이나 비슷비슷하다 생각했다.

그런 나의 마음을 180도 바꿔버릴 정도로 원장 아주머니의 솜씨는 감탄을 금치 않을 수가 없었다.

만약 내 수익이 안정된다면 반드시 이곳의 단골이 되어주자.

계산을 마치고 나가기 전에 나는 잠깐 멈칫했다.

나를 이곳까지 데려와준 길고양이, 예은에게 해야 할 말이 있다.

이 녀석이 지금까지 한 짓을 보면 썩 내키지는 않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감사는 하는 것이 옳다.

"크흠! 일단 고맙다."

바가지도 안 쓰고 머리도 잘 정돈했다.

덕을 본 건 사실이니 솔직하게 감사를 표한다.

그 정도의 상식은 있는 사람이다.

-풋, 꺼져.

적어도 지금 듣는 꺼져는 그다지 싫은 느낌이 아니다.

계기가 무엇인지는 사실 감도 안 잡힌다.

과정이야 어찌 됐던 간에 조금은 가까워졌다는 사실이 딱히 싫지는 않다.

나는 대답 대신 피식 웃으며 미용실 밖을 나가려 했다.

그런데 또 핸드폰이 울려왔다.

-옷은?

까톡을 통해 또 말을 걸어왔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알겠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그 걸레짝 계속 입고 다니게?

무슨 뒷조사라도 하셨나.

누가 보면 스토커라도 되는 줄 알겠다.

소름이 끼치는 상황이지만 일단은 맞는 말이다.

어쩌면 옷도 괜찮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마음 비우고 될 대로 돼라, 마음대로 하라고 한 마디 했다.

결과적으로 예은 덕에 옷도 깔쌈하게 맞출 수 있었다.

예산을 조금 초월하긴 했지만 만족한다.

어차피 옷도 사려고 했던 마당이니 아깝진 않다.

길고양이와 시내를 돌아다닌 건 딱 거기까지 였다.

지금은 이미 헤어져 제 갈 길로 흩어졌다.

'대체 무슨 심정의 변화일까?'

아직까지도 알쏭달쏭하다.

조금 고민을 해봤지만 포기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정상인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이제 와서 이해를 하라니 오히려 무리다.

어쨌든 덕분에 준비를 수월하게 맞출 수 있었다.

나는 회장아재를 만나기 위해 지하철에 올라탔다.

그 순간 또 핸드폰이 지르르 울리며 까톡이 하나 왔다.

'보답은 메로나라. 이 녀석 메로나 겁나 좋아하네.'

고마우면 오늘 조깅할 때 아이스크림이나 하나 사달란다.

적어도 오늘 만큼은 흔쾌히 사줄 수 있는 기분이다.

============================ 작품 후기 ============================

선작과 추천 부탁드려요~!

항상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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