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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飛上)의 비상
천상계 게임에 익숙해지자 올라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벌써 다이아2티어를 거의 지나왔다.
다이아1로 가는 승급전에 도착했다.
승급전이라고 긴장된다는 느낌은 전혀 없지만 말이다.
이곳의 공기는 나를 긴장케 할만한 수준이 되지 못한다.
겨우 다이아정도로 넘볼 수 있는 나의 그릇이 아니다.
다름아닌 결과가 완벽하게 증명하고 있다.
다이아3에서 다이아1 승급전까지 승률 75%.
약간 승률이 깎이긴 했지만 압도적이다.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의 수도 날로 늘어난다.
-방장 다1 승급 성공하면 별풍 1천 개 간다.
-응 팬클럽 가입이나 해
-네 다음 건빵~
-다시는 건빵을 무시하지 마라..
승급전을 맞이해 채팅창은 축제 분위기다.
별풍선 천 개는 기대도 안 한다.
축하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족하다.
쿠웅!
큐가 잡혔다는 신호음, 누르는 건 당연히 수락이다.
들어간 픽창에서 팀원들끼리 서로의 라인을 확인한다.
확인 결과 다행히도 크게 겹치는 라인은 없었다.
간혹 가다가 이런 경우가 생긴다.
서폿만 하는 놈이 세 명씩 걸린다 거나
개나 소나 정글 가겠다고 빽빽대 거나.
다행히 지금 걸린 팀은 큰 문제가 없다.
서로 알맞게 라인을 조율해냈다.
하나 문제가 있다면 내가 미드가 아닌 탑이라는 사실.
팀원 중에 미드밖에 못 하는 플레이어가 있었다.
내가 그 녀석보다 픽순위는 높았지만 어쩔 수 없다.
미드 안 준다고 억지를 부리거나 탑을 너무 못하면 곤란해진다.
게다가 난 전 라인을 전부 잘한다.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기 전까지는 캐리력 좋은 미드만 하고 싶었지만 가끔은 괜찮을 테다.
방송 컨셉인 AP마검사를 못하는 건 아쉽지만 말이다.
'올라갈수록 미드를 못하게 될 확률이 높아질 테니 슬슬 다른 라인도 해둬야겠지.'
전반적으로 미드가 가장 캐리하기 좋은 라인이다.
그래서인지 올라갈수록 미드 유저의 비율이 많아진다.
언제나 이상적인 구도로만 시작할 수는 없는 노릇.
이대로 닷지만 안 나고 시작한다면 만족이다.
그런데, 다른 문제가 생겨버렸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부딪혔다.
어처구니 없게도 프로게이머를 만나버렸다.
-상대팀 핫숏이야ㅋㅋㅋㅋ
-방장 제대로 참교육 당하는 각이네ㅋㅋ
-타인의 불행은 나의 행복^^
-심지어 탑미달리! 핫숏 상대면 당연히 밴해야지!
핫숏디디.
시즌의 절대 최강자 중 한 사람이다.
그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이름 높은 북미의 프로게이머다.
그가 한국 솔로랭크를 돌리고 있었다.
'핫숏은 그랜드 마스터일 텐데 어째서?'
하지만 나와 그는 만나기에 너무 점수 차가 많이 난다.
한국 계정도 분명 그랜드 마스터에 이름을 올렸을 것이다.
채팅창에서 그에 대한 이야기가 올라왔다.
-핫숏 투위치TV에서 부캐로 양학 방송 중임ㅋㅋㅋ
-ㅇㄱㄹㅇ 내가 방송 둘 다 보고 있음 꿀잼ㅋㅋ
-ㅇㅇ 서로 밴픽 똑같다ㅋㅋ 빼박캔트!
방송을 하다 궁금한 점이 생겼을 때 시청자들이 알려주는 건 좋다.
문제는 결과가 나빠도 너무 나빴다.
핫숏이라니?
그것도 미달리를 하다니?
시즌3만 돼도 핫숏은 흔히 말하는 퇴물이 된다.
메타에 적응하지 못하고 프로게이머로서 하향세를 걷는다.
대신 게임단의 구단주로 출세를 하게 된다..
그 본인에게는 더 없이 좋은 일이다.
하지만 현재 시즌2의 그는 완전한 전성기다.
테이커처럼 적수가 없는 수준은 아니지만 그에 준한다.
주포지션인 미드가 아닌 탑이라 해도 굉장히 위협적이다.
다른 챔프였으면 모르되 미달리면 즐겜도 아니다.
사실상 빡겜 모드라고 해도 무방한 상황.
그는 미드라이너긴 하지만 과거에는 탑으로도 유명했다.
특히 탑 미달리의 까다로움은 정평이 나있다.
'탑미달리라.. 라인전 겁나 센 챔피언이지.'
라인전에 모든 것을 거는 챔프들이 몇 가지 있다.
대표적으로 팡테온, 네네톤같은 부류들.
성장 기대치는 낮지만 라인전이 무척이나 강력하다.
미달리 또한 라인전에 올인 하는 챔프 중 하나다.
상대하는 입장에선 어지간히 까다롭다.
'부쉬 견제가 여간 고통스럽지 않을 텐데..'
물론 해법이 없는 건 아니다.
라인전에서 나대는 만큼 갱킹에도 노출되기 쉽다.
아군 정글이 칼같은 갱킹을 와준다면 분명 할 만할 것이다.
하지만 솔로랭크에서 아군 정글 잘하길 기대하는 건 멍청한 행위다.
더군다나 나는 BJ.
아무리 논리적인 변명을 해도 비웃음 거리가 될 뿐이다.
선택해야 한다.
탑미달리를 어떤 챔피언을 상대할지 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알고 있지만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는다.
모든 챔피언들은 준수하게 다루는 나지만 시즌2에는 아직 나오지 않는 챔피언들이 많다.
만약 탑끠즈를 할 수 있었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지금 시점에서는 패치가 되지 않아 탑피즈가 불가능하다.
현재 출시된 챔피언 중 과연 뭘 해야 미달리를 이길 수 있을까.
철컥!
이윽고 픽 시간이 끝나버렸다.
그 전에 가까스로 떠올릴 수 있었다.
나는 해당 챔피언을 선택한 후 게임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채팅창은 난리가 나버렸다.
-방장 게임하기 싫음?ㅋㅋㅋㅋㅋㅋㅋㅋ
-님들 우리 방장 트롤하네요ㅋㅋㅋㅋ 신고ㄱㄱ
-손가락 꼬인 듯ㅋㅋㅋㅋㅋㅋ 제대로 털리겠다
-지고 변명 하려고 일부러 고른 거 아니야?ㅋㅋ
-올마스터가 아니라 쫄마스터였네ㅋㅋ
이런 반응이 나올 거라고 예상했다.
당연하다면 너무나도 당연하다.
만약 내가 시즌2에 이 챔피언을 하는 BJ를 봤다면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게 내가 선택한 챔피언은.
'바로 피로라니까.'
지금으로부터 몇 년 후 피로라는 리메이크 된다.
스킬셋이 완벽에 가까워지면서 오랜 기간 1티어 탑솔러로 군림하다.
하지만 현재는 망캐도 이런 망캐가 없는 수준이다.
피로라가 어떤 챔피언인지는 여자 마검사를 단 한 마디로 정리가 가능하다.
3대 충 챔피언인 마검사 만큼이나 이미지가 좋지 못하다.
근접 챔피언인 주제에 물몸이고 자랑하는 스킬을 칼질이 전부다.
세간에서 그렇게나 평가가 낮은 피로라를 골라버렸다.
-방장님 마검사충이라 여자 마검사도 하는 거임?
-컨셉 지키는 건 좋은데 게임 던지진 마요ㅋㅋ
-핫숏한테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으려나..
-정상적인 챔피언 해도 힘들 텐데 피로라면.. 그냥 끝났지.
로딩이 끝나고 소환자의 전장에 들어섰다.
인베 단계는 유야무야 별 탈없이 넘어갔다.
나는 천천히 탑라인을 향해 올라갔다.
'어째서 피로라를 꺼냈는지 의문이 많을 거야.'
당연하게도 내가 피로라를 괜히 꺼낸 게 아니다.
마검사 컨셉 잡으려고 꺼낸 건 당연히 아니다.
현재 시점에서는 밝혀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차후 시즌4에 이르러 미달리는 리메이크가 된다.
그리고 탑미달리가 0티어 픽으로 군리하며 탑라인을 주름 잡는다.
티어를 막론하고 무조건 필밴, 어쩌다 밴 열리면 탑 터지고 시작한다.
그런 무자비한 탑미달리를 유일하게 카운터 치는 한 챔피언.
지금껏 관심을 받지 못했던 리메이커 전의 피로라였다.
정말 어처구니 없게도 스킬 메커니즘이 정확하게 맞물렸다.
하는 사람이 없다 보니 발견 시기는 조금 늦었다.
게다가 발견되고 나서도 플레이 하는 유저는 적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아무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윽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탑미달리 특유의 평타 짤짤이를 피로라는 스킬로 튕겨낼 수 있다.
결정적으로 미달리는 날렵한 대신 체력이 연약한 편이다.
딜템을 간 피로라의 풀콤보를 버텨낼 수 없다.
빠른 이동속도로 어떻게 피해보려고 해도 타겟팅 대쉬기가 무려 세 개다.
Q스킬 이연격으로 두 번, 궁극기로 한 번 더.
우주 끝까지 따라가서 숨통을 끊어버린다.
리메이크 되고 한참 날뛰던 미달리도 속수무책이었다.
그런데 현재는 리메이크 되기 이전의 미달리다.
더욱 더 손 쉽게 쫙쫙! 찢어 죽이는 게 가능하다.
타악!
타악!
라인전은 이미 시작해 서로 CS를 받아 먹는 중인다.
핫숏의 미달리는 물만난 물고기처럼 부쉬에 숨어 평타를 날리고 있다.
짤짤이 한 방, 한 방이 짜증을 절로 유발한다.
하지만 아직은 참아야 할 때다.
W스킬, 반격으로 데미지를 최소화하며 버텨낸다.
-ㅋㅋㅋ 방장 개털리네
-그러게 왜 피로라를 하냐ㅋㅋㅋㅋ
-미달리 상대로는 라인전 버티다 한타력으로 승부하는 게 짜세인데~
역시 상대는 만만치 않다.
시즌2의 최강자, 핫숏디디라는 이름은 허명이 아니다.
부쉬를 들락거리며 매섭게 견제해온다.
지금은 참아야 하지만 언제가 빛 볼날이 온다.
쇠는 두들길수록 단단해진다고 하지 않던가?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들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다.
티링!
버티고 버텨 6레벨을 달성했다.
귀환 타이밍도 한 번 잡아 체력도 많이 회복하고 왔다.
지금까지는 어쩔 수 없이 당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나의 차례다.
'미안하지만 게임 끝이야 핫숏.'
촤악!
다시 라인에 귀환한 핫숏의 미달리가 또다시 평타 짤잘이를 시도한다.
그 순간, Q스킬 이연격을 사용해 쏘아진다.
미달리는 퓨마로 변신해 펄쩍 뛰어 도망가지만 무르다.
이연격은 글자 그대로 두 번의 공격이 가능하다.
한 번 더 쏘아지며 미다리를 따라 잡는다.
E스킬, 속검술까지 사용해 미달리의 체력바를 썰어낸다.
그럼에도 미달리는 악착같이 도망간다.
부쉬 안에서 이동속도가 빨라지는 패시브를 믿은 것이다.
거리를 벌린 후 스킬이 빠진 나를 농락할 생각이다.
그 생각대로 되어준다면 나도 힘이 빠지겠지만 안된다.
궁극기인 검의 댄스가 발동되며 미달리를 갈갈이 찢어버린다.
타겟팅으로 발동되며 회피는 당연히 불가능하다.
촹! 촹! 촹!
미달리는 심지어 반격조차 할 수 없다.
검의 댄스는 발동시 맵에서 잠깐 사라지는 무적 판정이다.
마치 마검사의 알파 슬래쉬와 비슷하다.
'괜히 여자 마검사라 불리는 게 아니야.'
이 상태에서 피로라는 적을 다섯 번 가격한다.
당연하게도 모든 공격이 미달리를 향해 쏟아진다.
그 막대한 공격을 전부 받고도 핫숏의 미달리는 버텨냈다.
지속적으로 초반 견제를 우겨 넣은 탓에 미달리는 템이 잘 나왔다.
롱스워드 한 자루와 체력 수정, 그리고 두란검까지 사왔다.
추가된 체력 덕분에 가까스로 살 수 있었다.
생존했다는 기쁨에 미달리는 내 궁극기가 끝나자마자 점멸을 사용한다.
당황하지 않고 침착한 판단,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내가 아직 한 발 남았다는 사실이다.
화르르륵!
시즌4에 들어서부터는 텔레포트가 주류 스펠이 된다.
하지만 현재 시즌2에는 발화가 대세 스펠이다.
나는 도망가는 핫숏을 점멸로 똑같이 따라가 평타로 한 번 썰어버린 후 발화를 걸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뒤를 돌아보지 않고 걸어 나온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이걸 올마스터가..?
-피로라 들고 라인전을 이겼어?
-와, 이거 잉벤 화제글감이다. 누가 스샷 찍어서 올려!
-ㅇㅇ나 잉벤 고레벨인데 찍고 있다.
최강의 프로게이머라는 핫숏이 솔킬을 당해버렸다?
채팅창에서 난리가 나서 떠드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다.
그 이상으로 화제가 될 게 분명하다.
일어난 이변.
무너진 왕좌[王座].
그리고 그 왕위에 오를 사람은 정해져 있다.
'왕위를 계승하는 중입니다, 핫숏디디.'
어떻게 보면 설레발이다.
고작 솔로랭크에서 유명 프로게이머 한 번 혼찌검을 내줬을 뿐이다.
그 설레발을 내가 현실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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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