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23화 (23/803)

23====================

노려라, 마스터!

별풍이 내린다. 샤랄랄랄 랄랄라~

-'채팅창열어줘'님이 별풍선 1004개를 선물하였습니다. 당신은 나의 천사~

-'고만양학해'님이 별풍선 999개를 선물하였습니다. 비둘기야 밥먹자 구구구!

-'갓면무림'님이 별풍선 500개를 선물하였습니다.

.

.

.

열혈팬형님들이 두루루 별풍선들을 쏴주셨다.

오전 경에 성공한 내 마스터 승격을 축하해 주시고 계신다.

그리고 지금은 점심을 먹고 방송을 다시 켠 오후.

"형님들~~~!! 감사합니다! 정말 방송 열심히 할게요!"

리액션이 절로 터져 나온다.

본래라면 이보다 더 왁자지껄 난리를 펴야 할 텐데 왜 일까?

내 마음은 싱숭생숭하기 짝이 없다.

아조부에서 온 연습생 제의가 고민이 되기 때문이다.

'왜 하필 연습생이야 또..'

무려 5년이나 질리도록 연습생을 해왔다.

연습생이 아닌 입단이었다면 단칼에 물었을 것이다.

아조부는 차후 엄청나게 뜨게 될 게임단이니 당연하다.

얼밤과 불밤이 소속돼 있으며 두 팀 모두 잘 나간다.

내가 연습생으로 있었던 과거의 그 팀이기도 하다.

물론 그때와는 많이 다르다.

'스폰도 바뀌기 전이고, 그 디스 좋아하는 감독도 없다지.'

그 사이에 꼽사리만 끼더라도 스타 자리는 따놓은 당상.

나의 실력까지 더해지면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나는 고려해야 했다.

맛밤 게임단의 설거지 노릇을 했던 과거를 잊지 않았다.

아무리 현재는 다르다고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바뀔 것이다.

그 빌어먹을 감독 자식의 면상을 다시 봐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그 꼴을 어떻게 보라고?

그래도 타협해서 연습생이 되는 게 낫지 않을까.

잘해서 올라가면 되는 거 아닐까.

고민하던 나는 결국 결정을 내렸다.

'또 다시 설거지를 하게 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아.'

프로게이머를 하기 위해서는 실력만이 전부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맥이 더 중요하다.

내 기억에 있는 연습생 친구들 중 진짜로 잘하는데 뜨지 못한 녀석들이 적지 않다.

'옛날의 그랬다는 소린 아니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냥 못해서 못 뜬 게 맞다.

가장 잘했던 시기, 메타가 잘 맞았던 시기.

그런 거 다 따지면 어찌어찌 프로에 발을 들였을지도 가능성도 있었다.

가까스로 발만 걸친 어정쩡한 수준이었던 지라 불만까진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정말로 잘해서 100% 프로 되겠다, 그렇게 생각했던 이들 중에 기회를 못 받은 애들이 있다.

인맥이 부족해서 자리가 날 때가지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하루하루 시간만 죽이다가 결국 포기한다.

혹은 그 사이에 실력이 퇴보해 그만두는 케이스도 적지 않다.

물론 지금의 내 실력이라면 가능할 확률이 높다.

그러나 너무 긍정적으로만 생각할 수는 없다.

나는 아조부 관계자가 말했던 내용을 상기했다.

<제가 올마스터님 방송을 종종 보는데 플레이가 재밌고 신기하시더라구요.>

잘하는 게 아니라 재밌고 신기한 플레이.

그들은 내 게임을 그렇게 보았다.

단순히 실력만 보고 스카웃하기엔 애매하다 판단한 거다.

최근 좋은 모습을 보여주거 있다고는 해도 결국 다이아1이다.

판단할 근거가 부족하니 일단 찔러보고 보자는 생각일 터다.

물론 이렇게 이른 시점에서 스카웃을 해줬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과연 그들이 좋은 의도로만 연습생 제의를 해왔을까?

어쩌면 아이디어를 쪽쪽 빨아먹을 생각일지도 모른다.

내가 만약 순진무구한 20대 초반의 청년이라면 생각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프로게임단인데 설마 그런 짓까지 하겠어?

설사 누군가 조언을 했다 해도 고개를 저었을 게 분명하다.

그리고 아조부의 제의를 받아들였겠지.

'프로게임단이라고 착한 놈들만 있는 건 아니니까.'

프로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선하게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조금 과장하자면 벼룩의 피까지 빨아 먹을 놈들이다.

나는 이미 그러한 케이스들을 본 적이 있다.

내 기억에 똑똑히 남아있다.

그렇다고 아조부의 제의를 완전히 거절한 건 아니다.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니 만큼 일단 생각을 해보겠다.

여기에 당연 꿍꿍이가 있다.

이제 겨우 마스터 티어에 승격했는데도 제의가 왔다.

이말인 즉, 꾸준히 실력을 보인다면 재협상이 가능하다는 소리다.

더욱 좋은 조건을 들고 와서 나를 꼬드겨올 가능성이 크다.

'단기적으로 생각할 것 없어. 조금 더 큰 그림을 그리자.'

나는 싱숭생숭한 마음을 접어두고 게임을 시작했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푹 자면서 모든 것을 잊고 싶다.

하지만 일단 방송도 켰고 올라가야 더 좋은 조건을 제시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별풍선을 엄청나게 받았으니까!

밥값은, 아니 별풍값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몇 판 진행된 게임에서 내 승률은 정확히 5할이 나왔다.

이상하게 잘 게임이 안된다.

분명히 더 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중간중간 실수를 했고 그게 안 좋게 맞아 떨어졌다.

'컨디션이 저조해졌네. 마음이 흔들려서 그런가.'

그렇게 쭉 게임을 하다 6시가 되자마자 방송을 마쳤다.

지금 이 시간은 원래 방송을 끝마치는 시간이기도 하다.

또 오늘 만큼은 있는 힘껏 달리고 싶었다.

나는 대충 운동복을 걸치고 조깅화를 신은 후 현관문을 나섰다.

탄천로를 거슬러 올라가는 언제나의 조깅길.

별 거 없는 일상의 마무리를 하기 위함이다.

타박타박.

오늘은 왠지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다.

여과없이 표현하자면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기분이다.

이렇게 줄곧 뛰다 보면 만날 수 있을까.

그 메로나에 환장하는 길고양이를 찾을 수 있을까.

탄천로를 뛴다고 그녀를 꼭 만나게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꼭 만나고 싶은 기분일 때면 이상하게 만나게 된다.

그러한 징크스가 있었는데 오늘은 아니었다.

그저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가라앉지 않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조깅은 평소보다 길었다.

날이 제법 어둑해져서야 오늘의 조깅은 끝이 났다.

'술이라도 한 잔 할까.'

집으로 그냥 돌아가 봤자 마음만 어지러울 것 같다.

간만에 소주라도 한 잔 빨기 위해 나는 근처 포장마차 골목에 들어갔다.

지갑도 두둑해져서 궁상 맞게 떡볶이를 술안주로 삼지 않아도 된다.

과감하게 포장마차 메뉴 중 가장 비싸다고 할 수 있는 꼼장어를 시켰다.

"여기 꼼장어 하나요."

"네에~ 곧 갑니다!"

늦은 저녁 시간대라 그런지 사람이 꽤나 북적이고 있다.

혼자 먹는 꼼장어.

미래에 유행하게 될 유행어, 혼밥이 되긴 했지만 상관없다.

남 눈치 보는 타입도 아니고 어차피 같이 먹을 친구도 없다.

'근데 이런 유행어 만들어서 퍼트리는 것만으로도 나 대박나는 거 아니야?'

엉뚱한 생각이 일고 말았다.

그 혼밥 만화로 유명한 작가의 그림체.

솔직히 그림판으로 어떻게 끄적일 수 있는 수준이다.

조금만 시간을 투자한다면 어찌저찌 따라할 수 있다.

얄밉기 그지없는 생생한 표정까진 따라하기 힘들지도.

하지만 중요한 건 내용이고 한다면 할 수는 있을 텐데.

이런 실없는 생각이 떠오르는 밤이다.

위장에 알코올이 들어가니 정말 별 생각이 다 난다.

타악!

소주 잔이 플라스틱 테이블에 내려쳐 졌다.

그런데 그 경쾌한 소리는 나의 잔에서 난 게 아니었다.

"네가 여기 왜 여깄냐?"

이미 한 병 정도 술이 넘어갔다.

시야가 살짝 뱅뱅 돈다.

내 앞에 앉아 있는 한 사람, 다름아닌 길고양이 예은이다.

"나도 여기 단골이거든..'

술에 취한 탓일까?

길고양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평소 까톡으로만 말을 하는 탓에 까먹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이 녀석 말도 할 줄 알았지.

어쩌면 전부 착각일지 모른다.

정말로 말이 들려오는 건지.

아니면 환청인지, 까톡인지 잘 모르겠다.

애초에 이 상황 자체가 꿈일 수도 있다.

나는 지금 술주정을 부리는 것이고.

내 눈앞의 길고양이는 상상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그러니까 조금 정도 막말해도 상관없을 터다.

"너는 왜 그렇게 성격이 더럽냐?"

드넓은 바다와도 같은 아량으로 참아주긴 했다.

하지만 참아줬을 뿐이지 마음이 안 상한 건 아니다.

평소라면 턱 끝까지 와도 결국을 내뱉지 않았을 말.

술에 취했다는 억지를 구실로 지껄여본다.

"..딱히?"

딱히라니?

이 여자 참 사상이 위험하다.

막무가내 욕하고 내 성격이 원래 그래요.

아, 그러네 이쁘니까 용서 받고 살았겠네.

"나 원래 그랬잖아?"

아하, 원래 그러신 분이구나.

이거 참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사과라도 거하게 하나 깎아 드려야 하나?

"너까지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왜인지 오늘따라 소심하다.

누가 보면 내가 생뚱 맞은 사람 갈구는 줄 알겠다.

혹시 그건가?

술 먹으면 울고 불고 난리가 나는 타입 같은 거.

지금 이 현실이 꿈이 아니고, 방금 내가 떠올린 발상이 사실이라면 정말 재밌지 않을 수가 없다.

어차피 모두가 환상, 꿈이겠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조금 더 질러본다.

"야, 나랑 사귈래?"

"으엑.. 미쳤냐?"

단칼에 거절 당했다.

응, 나도 원래 이런 사람이야.

딱히 너 좋아해서 한 말은 아니었어.

이런 식으로 말하면 되려나.

쟤도 그랬으니 나도 그러지 말란 법은 없겠지.

이후로는 서로 말이 오가지 않았다.

그보다 술을 마시는 데 초점이 집중됐다.

그렇게 한 잔, 한 잔 술이 넘어간다.

쭉, 쭉쭉쭉, 쭉, 쭉쭉쭉.

제정신이 아니었을 텐데 어떻게 잘도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 사실을 내가 인지할 수 있었던 건 다음날의 늦은 아침이었다.

나는 침대에 누운 상태 그대로 기억을 곱씺었다.

"꼼장어.."

맛있었다.

이 동네 포장마차는 정말 진국이다.

그러고 보면 떡볶이, 튀김, 순대도 수준이 높았다.

어젯밤 먹은 꼼장어도 하나도 비리지 않고 가격대도 합리적이었다.

헤자스럽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어제의 일이 정말 현실에서 일어난 일일까.

아니면 내 망상에 불과할까.

적어도 나로서는 확정지을 수 없다.

물어보지 않는 이상 대답을 내기 힘들다.

대답해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물어볼까.'

대화의 내용으로 떠볼 수도 있는 노릇이다.

어제처럼 일단 지르고 본다.

술은 깼어도, 아직 숙취는 안 깼으니까 말이다.

되도 않는 억지다.

-어제 잘 들어갔니?

어떻게 대답해도 떠볼 수 있도록 던졌다.

어렴풋하게 남아있는 대화의 기억까지는 케묻기 힘들다.

그래도 같이 있었는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凸

꺼져나 닥쳐라도 아닌 대놓고 욕지거리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이다.

이렇게 되면 특정하기가 힘들다.

만에 하나 의도한 것일지도 있겠지만.

'역시 개꿈이겠지..?'

하도 마음이 싱숭생숭 하다 보니 별 같잖은 술주정을 다 부렸다.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 하필 길고양이라니.

나도 참 외롭기는 했던 모양이다.

'내가 이렇게나 여자가 고팠나..'

술 먹고 여자 상상이라니 참 꼴불견이 아닐 수 없다.

누구에게 말이라도 했다간 쪽팔려서 죽을 일이다.

구태여 더 이상은 캐묻지 말기로 하자.

나는 핸드폰을 내려두고 해장 라면을 끓였다.

숙취에는 역시 칼칼한 라면.

콩나물까지 듬뿍 넣는다면 이상적이다.

보글보글.

'근데 나 어제 이렇게나 많이 썼나?'

컴퓨터 책상 위에 지갑이 열려있었다.

혹시 하고 안을 들여다 봤는데 초록색 지폐가 네 장이나 사라졌다.

아무리 술도 마셨다지만 두 장 반이면 충분했을 텐데?

'혹시 누가 슬쩍.. 아니 바가지라도 씌운 건 아니겠지..?'

내가 술 마시고 정신머리 없다고 바가리를 팍팍!

순하게 생겼던 포장마차 아저씨 속은 음흉할지도 모르겠다.

사람 참 그러는 거 아닌데 섭섭한 노릇이다.

기억도 애매한 상태인지라 따지기도 뭣하다.

억울하지만 참는 수밖에 없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콩나물 라면을 젓가락으로 휘저었다.

============================ 작품 후기 ============================

선작과 추천 부탁드려요~!

항상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수정본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