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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삭빵
서울특별시 용산구에 위치한 오프게임넷 본부.
한 때, 전 세계 게이머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던 장소다.
갤럭시 크래프트의 대표 방송, 갤럭시 리그가 처음 만들어진 곳이다.
10년 이상의 역사를 가졌던 갤럭시 리그는 유명 스타들을 탄생시켰다.
인간 종족의 황제 임요한과 괴물들을 몰고 오는 폭풍 콩진호.
그러한 세계적인 프로게이머들이 오프게임넷의 손에서 태어났다.
물론 지금에 와선 다 옛날 이야기다.
갤럭시 크래프트는 E-스포츠로서 완전히 수명을 다했다.
일부 마니아층을 제외한다면 플레이하는 사람 거의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과거의 영광만큼은 기억이라는 형태로 게이머들의 가슴 속에 살아 숨쉬고 있다.
로드 오브 로드(Load Of Lord)로 유명해진 프로게이머들 또한 하나하나 잡고 물어보면 답이 나온다.
어릴 적 갤럭시 크래프트의 스타들을 보고 프로게이머를 지망한 경우가 거짓부렁 하나 없이 9할 5푼이다.
그만큼 프로게이머를 목표로 하는 자라면 가슴이 설레이지 않을 수가 없다.
미래의 내가 그토록 각혈하며 노력했음에도 절대로 닿을 수가 없었던 그곳.
이미 마음속에서 수백 번은 포기하고, 다시 도전하고를 반복했던 통한의 벽.
오프게임넷 본사에 오게 된 순간 두근거리는 가슴을 멈출 수 없었다.
뭐, 프로게이머로서 온 건 아니지만서도.
"어서오세요, 무슨 일로 오셨나요?"
회사의 간판이라 할 수 있는 로비의 여자 안내원.
내가 그녀의 앞을 서성이자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훗, 인기남의 숙명이란.
나는 어쩔 수 없이 대화에 응해줬다.
"제가 이런 사람입니다."
자신감 있게 당당하게 외친 건 좋다.
지갑을 꺼내서 신분을 증명하기만 하면 일사천리다.
그런데 나 명함 같은 거 판 적이 없었지.
그렇다고 여기서 민증을 꺼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
"말씀하세요..?"
이래 봬도 한 프로그램의 주연으로 온 입장이다.
말만 하면 될 텐데 차마 떨어지지 않는다.
장인 어르신 코너에 출연하러 왔습니다.
이게 좀 말하기가 많이 뭣하다.
"제가 오늘 진행되는 방송 때문에 오개 됐는데.."
"아, 혹시 장인 어르신 말씀하시나요?
다행스럽게도 안내원의 눈치가 빨랐다.
어지간한 사람, 어지간한 진상은 다 만나본 듯한 눈치다.
전화를 통해 관련 부서의 사람을 불러주겠다, 잠시 기다려 달라,
안내원은 정중하게 양해를 구해왔다.
이윽고 사람이 도착했다.
장인 어르신 홍보 부서의 대리, 이민철씨가 1층의 로비로 찾아왔다.
어제 전화를 통해 장인 어르신 프로그램의 약속을 잡았던 그 사람이다.
나는 이민철씨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그리고 오프게임넷 건물의 3층에 있는 장인 어르신의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뭐, 스튜디오라고는 해도 내가 사는 원룸의 2배 크기다.
조금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는 장소였다.
하루이틀 게임단에서 굴러먹은 게 아닌만큼 나도 이유는 알고 있다.
장인 어르신 코너가 찬밥 신세인 게 아니라
걍 까놓고 말해 이 이상의 크기가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쓸데없이 넓은 크기는 방콕 게임 폐인인 경우가 많은 게이머의 집중을 해칠 뿐이다.
넓은 방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은 채 게임을 하라니, 이거 완전 고문이 따로 없다.
대회 게임에서 프로게이머들이 좁은 방에 들어가 게임을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소리나 정보의 차단 목적도 크지만 집중력 향상이란 부분도 존재한다.
"녹화는 언제 시작되나요?"
"전화로 말씀 드렸던 사항인데, 4시부터입니다."
물론 기억은 나지만.
태어나서 방송을 타는 게 처음이라 살짝 긴장해서 물었다.
그런 주제에 일천 명이 넘는 개인 방송 시청자 앞에서 당당하게 장인 어르신 출연을 약속을 하긴 했지만 말이다.
현재 시각은 3시 20분.
조금 일찍 오게 된 셈이긴 해도 예의라는 차원에서 나쁘진 않다.
"아, 죄송합니다. 잠시 혼자 있어주셔야 할 것 같은데 괜찮으신지요?"
나와 함께 스튜디오 안에 들어왔던 이민철씨.
그가 갑자기 급한 볼 일이 생겼다며 양해를 구하고 허겁지겁 나갔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아마 정말일 것이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그의 갑자기 안색이 돌연 바뀌었다.
방송에 관련된 중대한 사항일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뭐,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니까.
그로 인해 나는 스튜디오 방 안에 혼자 남게 되었다.
혹시 시간을 때울 게 없나 둘러보자 게스트들을 위한 다과가 준비되어 있었다.
역시 사회인들의 준비성.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과자와 주스에 손을 뻗었다.
우물우물.
꼭 이런 장소에 준비된 과자는 텁텁한 맛이 나는 쿠키다.
그것도 출시된지 2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어머니손파이 같은 것들.
도착하는 길에 얼핏 본. 일하는 직원들의 나이는 그렇게 삭아보이지 않았는데 왜일까.
반드시 이런 류의 과자를 사야 한다고 가르침이 사수에서 부사수로 대물림되는 걸지도 모를 일이다.
이전 생에서 27살의 나이를 먹고도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추측이 전부다.
그렇게 과자를 깨작거리길 20분쯤 지났을까.
잠시 볼 일을 보기 위해나갔던 그가 되돌아왔다.
홍보 부서의 대리 이민철씨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입을 열었다.
"시현씨, 이거 또 죄송한 일이 생겨버렸는데.. 예정이 조금 변경되고 말았습니다."
정확히는 방송의 내용을 조금 변경해도 되겠냐.
진중한 표정으로 양해를 구해왔다.
대체 무슨 일이 생겼길래?
내가 어제 들었던 스케줄에는 딱히 문제가 없었다.
먼저 내 계정이 내 것이라는 사실을 민증 등을 통해 증명하고.
오해라 생각하는 내용에 대해서도 직접 해명을 한다.
그리고 생방송으로 내 실력을 랭크게임에서 입증한 후.
화제가 되었던 리심의 플레이도 게임을 통해 생방송으로 보여준다.
여기까지는 고정된 내용이고 나머지는 서비스.
리심 장인으로서 흔히 말하는 입롤 플레이를 실현해낸다.
장인 어르신 방송의 시청자들이 오프게임넷 게시판에 올린 기발한 플레이들을 내가 해버린다.
그렇게 리심 장인으로서의 방송을 마치게 되면 진짜가 시작된다.
쿨통통과의 1:1 이벤트 매치.
오프게임넷 측에서 자리를 마련해주겠다며 큰소리를 떵떵 쳤다.
혹시 그 부분에서 문제가 생긴 것일까.
오히려 그 반대였다.
"쿨통통씨가 스튜디오에 오셨습니다."
"호오.. 저야 반가운 일이죠."
현실에서 쿨통통과 대면을 하게 되다니.
걔도 나도 캠을 키고 방송하는 만큼 서로의 얼굴을 모르지 않다.
쫄릴 것도, 긴장될 것도 없는 일이다.
민철씨에게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략 감이 잡힌다.
쿨통통 녀석이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인지한 모양.
직접 움직이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판단한 듯하다.
생각보다 행동력이 있었다.
일단 표면 상으로는 내 방송 진행을 도우는 일종의 도우미 역할을 한다고 한다.
까놓고 말해 어이가 없는 노릇인데.
"그 사람 입장에서야 하고 싶겠지만 저는 별로 마음이 없는데요."
나는 직설적으로 따졌다.
서로 간에 좋은 감정은 커녕 얼굴도 보기 싫은 사이다.
가만히 있는 사람한테 솔랭 몇 판 털렸다고 시비를 걸어온 꼴 아닌가.
방금 이야기가 진행돼서 좋은 것은 쿨통통 뿐.
굳이 같은 스튜디오 내에서 방송을 진행할 이유가 없다.
"서로 오해가 있을 수도 있는 노릇이고.. 하하, 만나보면 또 다르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남자 사이라는 게..."
아니, 무슨 학창시절 애들 사이라도 생각하는 건가.
한참 싸우고도 다음날 만나서 화해하는 그런 훈훈한 분위기라도 바란단 말인가.
물론 그러고 싶어하는 이유는 이해가 간다.
이번 방송은 한 마디로 흥행이 보증된 수표.
이미 이에 대한 이야기가 올라가 있는 잉벤의 화제글들은 적게는 수만에서 많으면 수십 만까지의 조회수를 자랑한다.
중복으로 클릭한 사람이 많기야 하겠지만 단 하루만에 그렇게 됐다는 걸 생각하면 엄청난 반응이다.
오프게임넷 입장에서는 두 당사자 중 하나인 쿨통통도 출연시켜. 시청자 수를 올려보려는 목적이 빤히 보인다.
정말 돈이나 밝히는 속물적인 생각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거, 별로 싫어하진 않는다.
'하지만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지.'
상황이 유지된다면 내키지 않는 게 당연하다.
일부러 표정에 드러나도록 내비쳤다.
슬슬 눈치를 챘는지 밑밥을 깔아온다.
"시현씨가 내키지 않으시다면, 당연히 강요하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강요를 할 수는 없으나 가능하면 양해를 해주었으면 한다.
자신들이 약속할 수 있는 건 심심한 사과의 메시지와 함께 소정의 보상금.
생각보다 오프게임넷은 통이 컸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세 배, 어떻습니까?"
민철씨의 오른손에 손가락 세 개가 펼쳐졌다.
아니, 사람을 어떻게 보고 돈으로 회유하려 하다니.
지금이 무슨 촌지나 주고 받던 쌍팔년도인가.
내가 지금껏 알아온 오프게임넷이라는 방송사의 이미지가 180도 바뀌었다.
"네 배."
"세 배 반.. 어떻습니까? 이 이상은 저희도 힘든데.."
"콜, 계좌는 말씀드렸던 곳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돈에 장사없는 법이고, 자존심따위 세우지 않는다는 게 내 지론이다.
본래 장인 어르신 방송의 출연을 대가로 약속 받은 액수는 30만원.
반드시 무죄를 입증해야 한다는 내 입장을 알고 여러가지 이유를 대가며 오프게임넷 측이 제시한 낮은 액수의 출연료였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이제 파프리카TV의 BJ로 인지도가 있는 편 아닌가?
겨우 30만원을 받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내 앞으로의 미래가 걸려있는 캐삭빵을 진행하라니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나오기는 했지만 속상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는데..
그것이 세 배 반이라면 오늘 저녁부터가 달라진다.
'오늘 저녁은 업진살이다..!'
살살 녹는 업진살을 다시 한 번 정도가 아니다.
내일 아침, 점심, 저녁 풀코스로 먹을 수 있다.
배때지에 고급 기름칠을 제대로 하고도 돈이 남는다.
'오프게임넷, 생각보다 통이 커. 내가 그동안 오해를 좀 많이 했었네.'
30만원의 3배면 100만원에 가깝다.
그만한 액수의 출연료를 올리는 걸 10분남짓만에 결정하다니.
갤럭시크래프트부터 시작한 케케묵은 게임회사라는 이미지가 박혀있었는데 아니었다.
잘 나가는 회사가 괜히 잘 나가는 게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일처리가 정말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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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작과 추천 부탁드려요~!
항상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