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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삭빵
─소환자의 전장에 온 것을 환영해요.
회귀하기 전이든, 후든 하루에 열 번 이상 꾸준히 듣고 있다.
익숙한 여성 아나운서의 음성과 함께 게임이 시작되었다.
'확실히 만만치는 않을 거야.'
라인이 겹친 탓에 주포지션을 못 간 팀원들이 있다.
아군 미드와 원딜에겐 좋은 플레이를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솔킬이나 따이지 않길 바랄 뿐이다.
이럴 때는 역지사지 편하게 생각하는 게 좋다.
적팀이라고 사정이 마냥 좋을 수는 없을 테니까.
적팀도 한 명 이상은 분명 자신의 주포지션을 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 예상은 1분도 지나지 않아 회의적으로 변했다.
─퍼스트 블러드.
아군이 당했습니다.
-아니 그걸 왜 당해줌? 적 올 수 있다는 거 생각을 해둬야 하지 않나?
-쏘냐님 정줄 좀 잡고 게임하세요.
-ㅋㅋ ㅈㅅㅈㅅ~
미니언이 도착하기 전의 약 2분 간, 속칭 인베 단계에서 선취점을 내줘버렸다.
적 서포터가 인베에 특화된 풀리츠크랭커였다.
이를 모를 수가 없는 구간인 만큼 당연히 조심을 해야 했다.
하지만 가끔가다 꼭 한 명 있다.
멍 때리고 있다가 점멸도 못 쓰고 끌려 죽어주는 팀원이 말이다.
'게다가 하필 쏘냐라니.'
챔피언을 따지는 게 아니다.
시즌2의 쏘냐는 각광 받는 픽이다.
문제는 쏘냐 녀석이 주포지션을 고른 팀원이라는 것.
나머지 두 명이 자신의 주포지션을 포기해가며 양보를 해줬음에도 정신 상태가 영 글러 먹었다.
이제부터라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많이 곤란해진다.
-집중할게요ㅋ 전화 와서~
전화 받다가 죽은 게 뭐가 그리 떳떳한지.
그래도 일단 열심히 해보겠다는데 쏘아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우리 팀은 적에게 첫 킬과 어시를 내준 상태로 불리한 게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라인전의 흐름은 무난하지 않다.
주포지션을 가지 못한 미드와 원딜은 의외로 CS가 딸린다는 걸 제외하면 준수하다.
킬도 주지 않았고 갱킹에도 딱히 시달리지 않고 있다.
문제가 되는 건 또 쏘냐 녀석이었다.
-쏘냐님 걍 뒤에서 힐이나 주시지?
-ㅈㅅㅈㅅ 빡겜 감.
-ㅁㅊ 이제 와서 빡겜하신단다ㅋㅋㅋㅋㅋㅋㅋ
하필이면 퍼블도 적 원딜이 먹었다.
롱스워드에 포션까지 사온 상대 헤이클린.
그래도 라인전이 강한 쏘냐의 특성상 해볼 만한 수준이었다.
풀리츠크랭커의 그랩에 대놓고 끌려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한 번 끌려서 점멸 빠지고 두 번째 끌려서 결국 또 죽어줬다.
그것도 서폿이 주포지션인 주제에 말이다.
마스터 티어에서 쏘냐를 100판 이상 해놓고 이 실력이라니.
정말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심각하긴 했다.
'뭐, 가끔 게임이 안되는 날도 있는 법이지.'
저 쏘냐 녀석이야 말로 대리를 받은 게 아닌지.
진지하게 캐묻고 싶은 기분이지만 일단 참는다.
나라고 맨날 잘하는 판만 있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슬슬 쏘냐의 만행에 참다 못한 원딜도 징징대고 있다.
나라도 무언가 성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물론 봇라인은 갱킹 안 갈 거다.
망한 라인에 갱킹 가지 말라는 명언은 옳고 또 옳다.
물론 카정을 가진 않는다.
평소 개인 방송에서도 카운터 정글을 웬만하면 안 가고 있다.
방송 화면을 보고 내 위치를 파악하는 상대 유저가 존재하면 곤란하다.
시청자 수의 단위가 다른 장인 어르신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카정은 지양한다.
정글을 정확히 다섯 캠프를 돌자 4레벨을 찍었다.
레드 버프가 아슬아슬하게 남아있는 시점이다.
엇박자의 첫 갱을 시도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정글러들은 3레벨 갱킹을 처음으로 시도한다.
육식 정글러인 리심이라면 더더욱이다.
그렇기에 일부러 한 번 꼬았고 방심한 상대를 노리기 좋다.
적이 슬슬 방심의 끈을 풀고 있을 타이밍에 예리한 갱각을 노린다.
아군 탑라이너는 쇈.
적 탑라이너는 나이즈.
호응만 제대로 해준다면 갱각이 나오고도 남는다.
'점멸 도발을 할 줄 알면 좋겠지만.'
시즌2에 그런 난이도 있는 플레이를 소화하는 사람이 그리 많을 리가 없다.
탑이 주포지션이라고는 해도 솔랭에선 아군을 안 믿는 게 좋다.
나는 적 레드 지역을 뺑 돌아 적 탑이 절대로 눈치채지 못하도록 서서히 접근했다.
탑에서 원거리 챔프 하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나이즈 녀석도 신이 나서 쇈에게 평타와 스킬을 우겨 넣는다.
아직 아이템이 안 갖춰진 시점에서 별 다른 대응책이 없는 쇈은 속수무책으로 맞는다.
어찌저찌 버티며 라인전을 이어가고만 있는 수준이다.
견제를 하다 신이 난 나머지 라인의 반을 넘어서 버린 나이즈.
나는 녀석이 결코 피할 수 없는 타이밍에 지척까지 다가갔다.
뒤늦게 나를 알아챈 나이즈가 부쉬 안으로 도망갔다.
하아!
포킹 리심 클끼리와 달리 빗나갈 리가 음파를 던진다.
스킬을 먼저 던진 데는 다 목적이 있다.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역갱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그 설마가 맞아 떨어졌다.
'무빙이 조금 수상하다 했는데 아모모가 대기하고 있었구만.'
리심의 주력 스킬인 음파에는 한 가지 특별한 효과가 존재한다.
바로 음파를 맞은 상대의 시야를 일부 공유하는 것.
나이즈가 부쉬 안에 들어간 탓에 역갱을 준비하던 아모모가 보이게 됐다.
'그런데 이 타이밍에 역갱이라니?'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다.
만약 쇈이 나이즈와 처절한 사투를 하고 있었다면 모른다
탑라인의 균형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라도 아모모가 갱각을 노렸을 터다.
하지만 쇈은 대놓고 사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분명하게 내 갱 타이밍을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우연도 정도껏이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실버, 골드처럼 아무 생각없이 자신의 감을 믿고 행동하는 점수대가 아니다.
이곳은 천상계 중에서도 극히 높은 마스터 티어.
아모모가 그러한 선택을 했다면 분명한 상응하는 이유가 있을 수밖에 없다.
솔직하게 나는 방플을 의심하고 있다.
방플, 방송을 보고 하는 플레이의 약자.
송출되고 있는 내 화면을 통해 갱킹 갈 위치를 미리 예상하는 악의적인 유저들이 종종 보인다.
나는 굳이 발차기로 나이즈에게 날아가지 않고 놓아주었다.
견제를 많이 받은 탓에 아군 탑인 쇈은 체력이 꽤 깎여 있는 상태다.
반대로 견제를 하는 쪽인 나이즈는 널널한 편이다.
그렇게 첫 번째 갱킹이 무효타로 돌아가고 말았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이 있다면 레벨.
아모모가 방송을 신경 쓰면서 게임을 한 탓에 정글링을 제대로 못 돌았다.
나보다 1레벨이 낮은 3레벨이었다.
'방플도, 컨닝도 머리가 나쁘면 못해 이 놈아.'
첫 번째 갱킹을 막는데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도로아미타불이다.
제 풀에 지쳐 나가 떨어질 게 분명하다.
알게 모르게 계속 정글링 차이가 쌓이고 쌓인다.
시간이 갈수록 성장 격차가 나게 된다.
'그래도 방심할 수는 없겠지.'
아모모는 한타가 좋은 챔프이다.
쏘냐가 또 멍 때려주기라도 한다면 큰일나는 수가 있다.
붕대로 들어와 아군이 대거 밀집해 있는 공간에 아모모의 궁극기가 펼쳐진다면?
참사도 이런 참사가 아닐 수 없다.
안 그래도 답답하기 그지 없는 상황인데 쿨통통이 빈정대기 시작했다.
"참으로 뻔~한 갱킹이었네요. 아모모의 역갱만 눈부실 따름입니다."
내가 게임을 하고 있는 사이 나머지 두 사람.
쿨통통과 진행자인 호루스씨는 게임 내용에 대해 대화를 주고 받고 있다.
호루스씨가 쿨통통의 말에 가볍게 반박을 던졌다.
"그래도 제법 노릴만한 갱각이 아니었나요?"
"이래 봬도 제가 마스터지 않습니까? 제 리픈이었다면.. 저런 갱각에 절대 당하지 않습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말을 당당히 해댄다.
방송이라고 똥폼 잡는 것도 적당히 해야지.
'이 자식 제정신으로 하는 소린가.'
혹시 나를 웃겨서 실수를 유도하려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다.
내 갱킹에 도합 스무 번 가까이 당한 주제에 뭐가 그리 떳떳할까.
물론 지금 방송을 보는 시청자 중엔 그러한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일 테다.
그들 앞에서 폼이라도 한 번 잡아보려는 속셈이길 바랄 뿐이다.
어쨌든 의도 자체는 격장지계일 것이다.
비방을 통해 집중력을 떨어뜨리기 위한 작전.
나는 둘의 대화에 가능한 신경쓰지 않으며 레벨링 했다.
궁극기인 범의 일격고 두 번째 갱킹을 준비했다.
'이번에도 분명 아모모가 따라올 거야.'
녀석은 아주 높은 확률로 방플이다.
모르긴 몰라도 역갱을 준비하고 있을 터.
그렇기에 지금이 타이밍이다.
아모모 녀석은 나보다 레벨이 하나 낮았다.
그말인 즉 아직 궁극기를 배우지 못했다는 사실.
아무리 방플을 하면서 난리부르스를 쳐대도 극복하지 못하는 벽이다.
라이너를 포함한 동수의 싸움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이번 갱킹은 봇라인이 됐다.
헤이클린과 풀츠의 조합에 사정없이 두들겨 맞고 있는 아군.
위태위태 라인전을 이어나가고 있는 봇에는 솔직히 가고싶지 않은 노릇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가도 괜찮다.
내 화면 왼쪽에 들어오는 초록불.
아군 탑쇈의 궁극기가 준비되어 있다는 알림이다.
쇈은 대량의 실드로 아군을 보호하며 텔레포트처럼 지원을 올 수 있다.
쇈이 있는 이상 봇라인이 조금 모자라다 하더라도 숫자의 차이로 이기는 게 가능하다.
더욱이 갱각도 확연하게 보인다.
나는 아군이 받아먹지 못할래야 못할 수 없는 각도로 적 헤이클린을 노렸다.
상대 입장에서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위치.
적 봇라인의 1차 포탑 그 옆에 있는 벽을.
와드방로로 과감히 넘어 배달해버린다.
이~쿠우!
경쾌한 소리와 함께 헤이클린의 궁둥이가 걷어차였다.
아군 쏘냐와 테러스티나를 향해 직선으로 날아갔다.
테러스티나는 올타쿠나 킬을 받아먹기 위해 앞점프로 호응했다.
그리고 평타를 우겨 넣는다.
원딜이 이렇게 대놓고 위험에 노출됐을 때 풀리츠크랭커는 효율적이지 못한 서포터다.
그런 이유 때문에 고철 깡통이라는 별명까지 가졌을 정도다.
하지만 적팀에게도 아직 카드가 남아있다.
아니나 다를까, 봇라인의 부쉬에서 아모모가 튀어나왔다.
5레벨밖에 되지 않는 주제에 무슨 생각일까.
내가 헤이클린을 걷어 차버린 이상 게임 셋이다.
일단 원딜러는 무조건 죽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상황이 조금 요상하게 흘러간다.
'쏘냐 이 자식 뭐하는 거지?'
나와 테러스티나가 열심히 헤이클린을 패재끼는 사이.
어이없게도 쏘냐는 풀리츠크랭커를 쳐대고 있다.
마스터 티어라면 할 수가 없는 트롤링.
쏘냐 녀석이 노리는 바를 확신할 수 있었다.
'고의적으로 게임을 던지고 있었구나.'
이제 와서 따진다 한들 엎질러진 물이다.
앞점프를 한 테러스티나는 풀츠와 아모모의 공격에 노출됐다.
탑에서 쇈이 궁극기를 사용해 실드를 준 덕에 어떻게 목숨만 부지했다.
게다가 궁극기가 끊기기 해버렸다.
속박을 포함한 나이즈의 풀콤보.
쇈은 딱 죽지 않을 만큼만 얻어 맞았다.
쏘냐 한 명의 트롤링때문에 피해가 어마어마하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헤이클린을 따내긴 했지만 속이 썩 개운치 않다.
사용하지 않아도 될 점멸을 낭비해야만 했다.
나는 쏘냐 녀석의 의중을 암에도 구태여 캐물었다.
-쏘냐님, 왜 헤이클린 점사 안 하셨어요?
-ㄷㄷ ㅈㅅㅋ
아까부터 은근히 ㅋ을 붙이는 게 심삼치 않다 싶더니만..
어뷰징, 고의적으로 게임을 지는 행위.
쏘냐는 일부러 게임을 질 작정이다.
적 정글은 방플을 하고, 쏘냐는 어뷰징을 해대고.
엎친데 덮친 격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그나마 서폿이라는 게 다행일까.
방송 시청자의 눈도 있어, 더 이상 대놓고 킬을 주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쏘냐의 트롤링은 상상을 뛰어 넘었다.
.
.
.
* * *
첫 번째 게임이 마무리됐다.
그 결과는 썩 웃어주지 못하는 흐름이다.
"안타깝게 됐습니다. 운이 안 좋았네요, 올마스터씨."
쿨통통이 벌어지려는 입술을 매만지며 마음에 있지도 않을 위로를 해댄다.
명백히 방송을 인식한 멘트.
다른 사람의 상황이 안 좋을 때 사람 좋은 모습을 보여줘 시청자들에겐 호감을 사기 위함일 테다.
"그래도 팀내에서는 가장 선전을 했었죠? 충분히 리심 장인다운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호루스씨가 진정 나를 위로해주기 위한 말을 던졌다.
게임을 본 사람이라면 알 수밖에 없겠지만.
나를 제외한 4명 중에서 내 반이라도 한 놈은 쇈밖에 없었다.
이에 질새라 쿨통통이 빈정거려 왔다.
"으음.. 4킬3데스5어시네요. 썩 좋지는 않습니다만?"
치사하게 KDA를 따지다니.
나의 갖은 노력으로 어찌저찌 한타까지 갈 수 있었을 뿐 게임의 상황은 언제나 불리했다.
당연한 듯 트롤링을 해댄 쏘냐때문에 죽지 않아도 될 데스가 두 번이나 쌓였다.
쏘냐가 궁극기만 잘 써줬어도 충분히 해볼 만한 그림을 그려줬다.
하지만 쏘냐는 감성센도로 화답했다.
궁극기를 허공에 쓰기도 하고, 한 번은 뒤로 쓰기까지 했다.
그러고서 하는 말이 고작 세 글자.
-ㅈㅅㅋ
죄송한 마음.
단 한 올도 느껴지지 않음은 물론이었다.
그렇게 한 번의 패배를 안은 채 두 번째 게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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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작과 추천 부탁드려요~!
항상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