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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삭빵
"리픈을.. 하신다고요?"
나의 제안은 쿨통통에게 있어 파격적이고, 놀랄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눈을 휘둥그레 뜰 일.
바로 내가 리픈으로 1:1 승부를 하겠다는 부분이었다.
"설마.. 리픈으로 저한테 덤비.. 아니 1:1을 하자는 말씀이십니까? 진심이신지.."
쿨통통으로선 어이가 털릴 노릇일 테다.
내 리심의 플레이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쳐도 리픈은 아닐 것이다.
방송에서 지금껏 리픈을 한 적이 없으니 당연한 소리
게다가 쿨통통이 아무리 나보다 한참은 못해도 명실상부한 리픈 장인이다.
그것도 내가 지금 출연하고 있는 장인 어르신에서 당당하게 실력을 증명해내기까지 했다.
당황스러운 표정의 쿨통통은 고민하는 듯 보인다.
결코 이를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다.
지금 내가 자신을 무시하는 처사로 한 발언인지.
아니면 혹시 자신에게 일부러 기회를 주는 건지.
'당연히 아니지.'
어느 쪽도 아니다.
회귀하기 전의 미래에서 나는 롤에 존재하는 모든 챔프를 마스터급으로 다뤘다.
그리고 그 모든 챔프에는 당연히 리픈도 포함돼 있다.
내 리픈실력은 당시에도 쿨통통보다 앞서지는 못 할 망정 절대 뒤쳐지지는 않았다.
물론 1:1이라는 게 운적인 요소가 크게 포함되는 만큼.
삼세판이라는 조건을 걸면 녀석이 운 좋게 한 번 이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자신감 있게 1:1이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확신.
무조건 찢어발길 자신감이 있다.
게임뿐만 아니라 장인으로서의 자존감까지 깡그리 모두 말이다.
"저야 당연히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됐지만.. 그런데 올마스터씨는 리픈을 한 적이 없는 걸로 아는데.."
나에 대해 꽤나 면밀히 조사한 모양이다.
내 올마스터 계정에는 리픈을 플레이한 전적이 단 하나도 없으니까.
과거의 기록도 CP.GG 사이트의 올마스터 전적창을 보면 나올 일이다.
물론 그냥 찍어 맞춘 걸지도 모를 일이지만.
"부캐로 연습했습니다만, 문제됩니까?"
어쩌라고?
내가 갑이지, 니가 갑이냐.
뭘 꼬치꼬치 캐묻고 난리야.
"알겠.. 습니다. 당연히.. 받아드려야죠."
어차피 쿨통통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답이 없다.
주제파악 못하고 무슨 말대꾸인지.
꼴에 자존심은 있는 모양이다.
"두 분이서 합의를 보셨으니 진행자인 저로서는 다행이네요. 올마스터씨도 참 유쾌하신 분입니다, 하하."
나와 쿨통통의 대화가 마무리 지어지자.
진행자인 호루스씨가 우리 둘 사이를 조율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취해왔다.
아마 조금 전의 내 언행과 쿨통통을 향한 제안을 그에 대한 자비로 생각하는 듯하다.
그렇게 착각을 하는 것도 그럴 만한 노릇이다.
호루스씨의 입장에서야 훈훈하게 마무리를 원한다.
이미 방송 어그로는 끌 만큼 끌었으니 말이다.
쿨통통이 매장 당하는 편이 웃기기야 하겠지만 일부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회의적인 반응이 나올 수 있다.
너무 잔인한 거 아니냐.
그 정도까지 해야 하냐는 의문이 분명 제기될 것이다.
난 물론 그 정도까지 해야 속이 풀리는 입장이다.
꿈도 희망도 모두 빼앗아줄 생각이다.
그를 위해 1:1라인전, 속칭 미러전을 제안했다.
호루스씨는 그걸 조금 다르게 해석한 것 같다.
미러전을 진행하기 위해선 일단 자리를 옮겨야 한다.
지금 나와 쿨통통이 있는 스튜디오는 어디까지나 1인용.
한 명의 챔프 장인을 데리고 게임을 진행하기 위한 장소다.
불필요한 다른 컴퓨터와 모니터는 존재하지 않았다.
"준비해 뒀습니다. 자, 이쪽으로 오시죠."
하지만 여기가 어디던가.
대한민국 게임문화를 책임지는 총본산.
바로 서울 용산에 있는 오프게임넷의 본사다.
컴퓨터 한두 대따위가 문제가 되는 곳이 아니다.
더군다나 생각 이상으로 퀄리티도 좋았다.
게이밍 컴퓨터와 마우스, 키보드까지!
비싸디 비싼 기계식 키보드 등도 자연스럽게 구비돼 있었다.
'그러고보니 나는 아직도 8천원짜리 쓰고 있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채팅창을 얼려야만 방송이 겨우겨우 돌아갔던 컴퓨터.
그 덜덜거리는 고물 컴퓨터를 구매했던 당시에 사은품으로 온 시가 8천원 스티커가 떡 하고 붙어 있는 키보드를 아직까지도 쓰고 있다.
현재 그 키보드는 내 손에서 묻어 나왔을 기름기에 윤기가 좌르르르 하다.
게임을 하면서 간간히 입에 대는 포테이토칩의 가루까지 사이사이 파고든 상태다.
가끔 게임을 하다 보면 키보드 씹힌 채 올라오지 않을 때가 있을 정도다.
그 정도에 불편해서야 씨불얼 게임단에서 몇 년간 눈치밥 먹으며 설거지 생활 못한다.
불편따위 당연하게 안고 살아온 만큼 딱히 큰 신경을 쓰고 있진 않았다.
그런데 진짜를 써보니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오늘 오프게임넷에서 방송을 진행하면 타다다닥 눌러본 키보드의 손맛이 잊혀지지 않을 것만 같다.
손가락이 촥촥 감겨 들어 스킬도 스펠도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정확히 나가는 느낌.
다시 집에 가서 그 케케묵은 키보드로 타자를 친다면 어떤 기분일까.
'키보드를 바꾸고 완전히 적응하면 전투력이 20%는 상승하겠는데?'
실없는 생각을 하며 스튜디오 밖으로 나왔다.
호루스씨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장소.
장인 어르신 스튜디오와 같은 층에 있는 별로 크지 않은 방이었다.
실제로 도착하는데도 채 스무 걸음이 필요하지 않았다.
'에이, 김빠지네.'
솔직히 말해서 조금 기대했다.
갤럭시 크래프트의 프로게이머들 활약했던 무대.
온갖 조명을 받으며 경기를 펼쳤던 부스 안이 있지 않던가.
팀 게임인 로드 오브 로드가 주류 게임이 된 지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1인용의 조그만 부스.
옛날의 프로게이머들과 같은 상황을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1:1 경기를 치룰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조금이 아니라 엄청나게 기대하고 있었다.
나의 기대에 호루스씨가 찬물을 끼얹었다.
"아, 거기? 롤 경기장으로 개조됐습니다."
현실은 냉혹했다.
아무리 전설과 역사가 녹아있는 게임 경기장이라 할지라도 쓸 일이 사라지자 철거되고 말았다.
유적 같은 게 아니니만큼 당연하다면 당연한 노릇이지만 아쉽다.
나와 쿨통통이 도착한 장소는 방송을 위한 또 다른 스튜디오였다.
컴퓨터가 대여섯 대 주루륵 있는 걸로 보아하니 여기서 종종 팀랭도 하는 듯하다.
얼핏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는 떠오를 것 같기도 하다.
"저희 장인 어르신 코너에서 가끔 팀랭도 하는 거 아시죠? 그때 사용하는 스튜디오입니다."
실제로 쓰이는 스튜디오방인만큼 방송 세팅도 완벽하게 돼있는 모양이었다.
애시당총 1:1을 여기서 진행할 예정이었으니 두 말하면 잔소리인 일이다.
지체할 것없이 바로 진검 승부를 시작한다.
"저는 이 쪽에 앉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 쪽에."
나와 쿨통통은 양쪽 사이드의 컴퓨터에 갈라지듯 앉았다.
그리고 각자의 로드 오브 로드 계정에 접속했다.
시원한 로딩 속도.
집에 있는 컴퓨터보다 눈에 띄게 빠르다.
이곳 컴퓨터가 압도적으로 좋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매끄러운 스피드다.
"곧 광고가 끝나갑니다. 다시 방송에 들어가니, 두분 다 준비 마쳐주세요."
스튜디오를 이동하는 사이의 잠깐의 공백.
자연스럽게 광고로 대처한 듯 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새삼 놀란다.
내가 지금 그 오프게임넷의 방송에 출연하고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어떤 반응일지 몸이 근질근질하네.'
실시간으로 채팅창을 볼 수 없다니 아쉬울 따름이다.
개인 방송을 하던 나로서는 살짝 답답함을 느낀다.
아직까지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이는 긴장감으로도 연결된다.
내가 지금 욕먹을 만한 짓을 한 건 아닌지.
혹시 실수라도 해버린 건지.
혹여 웃음을 사고 있는 건 아닌지.
반응을 모르는 채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방송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
겨우 단 한 번 경험하고 있음에도 장난이 아니었다.
프로 방송인들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치솟는다.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하네.'
시청자들은 오해를 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쿨통통과 화해를 하기 위해 질 가능성이 농후한 1:1을 해주고 있다고.
그런 훈훈한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을 가능성이 지극히 높다.
-오~ 올마스터 이자식. 대인배인데?
-ㅋㅋ 그냥 리심으로 못 이길까봐 그러는 거 아님?
-ㄴㄴ 용서해 준대잖아.
-저 솔직히 올마스터 대리라고 욕했는데 이 자리를 빌어 반성합니다.
-훈훈하긴 한데 일부러 지는 건 노잼ㅋㅋ
아프리카 창보다 조금 딱딱한 느낌의 반응.
오프게임넷 시청자 게시판에 이런 글들이 올라오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쿨통통을 찍어 누르면 어떻게 변할지.
지금이라도 져주는 걸 고려 해야 하나 고민이 인다.
생각하던 그 때.
나와 상당히 널찍한 자리까지 띄어져있는 쿨통통의 얼굴이 시야에 스쳤다.
아주 잠깐이지만 분명히 보였다.
마치 자신을 위한 퍼포먼스를 준비하는 듯한 비웃음을 짓고 있었다.
'역시 안될 놈이야.'
1티몽 미터정도 흔들렸던 마음이 제자리를 고수한다.
불구대천의 원수.
다 네 녀석이 자초한 일이다.
죄악감따위 느낄 필요도 없이 짓뭉개버린다.
"시청자님들! 깜짝 이벤트, 리심장인 올마스터와 리픈장인 쿨통통의 1:1 매치, 기대하셨죠? 그런데, 안타까운 소식이 있습니다."
광고가 끝나고 다시 카메라가 돌아간다.
완급조절부터 시작하는 호루스씨의 방송 멘트.
하루 이틀 방송을 진행한 게 아닌만큼 시청자를 쥐락펴락 장난이 아니다.
의도적으로 기대치를 높히고 다시 다운시켰다.
그리고 또 다시.
"리심장인 올마스터가 리픈을 플레이한다.. 사실 안타까운 부분이죠. 솔직히 개발릴 거 왜 봅니까?"
아니, 이 사람이 정말 막 던지시네.
그래도 듣고 있자니 흥이 절로 흥미진진하다.
"그런데 여기서 속보입니다. 올마스터가 리픈도 수준급으로 잘 한다고 하네요. 그렇죠?"
내가 부캐로 했다고 말하긴 했지만 잘한다는 말은 아직 한 적이 없는데
그래도 방송인 만큼 일단 받아친다.
지금의 방송은 앞으로 내 인기를 위한 발판이기도 하니까.
적당한 멘트로 넘길 생각은 없다.
"당연히 잘합니다."
너무나도 사무적인 멘트다.
호루스씨가 기껏 높힌 기대감을 다운시켰다.
하지만 이것 또한 의도.
호루스씨가 했던 것처럼 나도 다시 재도약한다.
"일부 시청자분들께서는 제가 의도적으로 져줄라고 그러는 게 아닌지, 그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렇기에 조건을 건다.
내가 진다면 다시는 리심을 하지 않겠다.
오늘 방송으로 리심장인의 이미지를 확고하게 굳힐 이 올마스터가.
쿨통통에게 리픈으로 진다면 리심을 더 이상 플레이하지 않겠다.
"아니... 그 정도까지 하실 이유가.."
노련한 진행자인 호루스씨가 당황한 나머지 받아칠 멘트를 놓쳐버렸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다.
지금 시청자들이 얼마나 가슴을 콩닥콩닥 방송을 보고 있을지.
"이러한 말이 있죠. 제가 좋아하는 영화의 대사입니다."
확실하지 않은 승부는 걸지 마라.
즉, 확실하면 걸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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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작과 추천 부탁드려요~!
항상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