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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삭빵
"하지만 그 영화, 승부를 건 쪽이 크게 잘못 됐던 걸로 아는데요.."
호루스씨가 말꼬리를 흐리며 혀로 입술을 훑었다.
내가 생각치도 못한 조건을 내걸자 입 안이 바싹바싹 타들어가는 모양이다.
순수하게 내가 자비를 베풀었다고만 생각했던 그로선 갈피를 못 잡을 만하다.
놀라는 건 당연한 결과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법 아니겠습니까? 바로 시작하죠."
시간을 질질 끌 이유따위 있을까.
배수진의 조건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결국 이기면 만사 오케이다.
그리고 난 100% 이긴다.
그럴만한 자신 이전에 근거가 있었으니까.
'그걸 사용하면 질 수가 없으니까.'
게임을 시작하자고 말을 건네고 나서야 호루스씨의 머리가 굴러갔다.
그는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상황을 받아들이고 다시 방송을 진행하기로 했다.
"자아! 그럼.. 올마스터씨가 엄청난 조건을 내거셨는데요.. 과연 무리수는 아닐지. 그리고 어느 쪽이 이길지. 시작~ 하겠습니다!"
나와 쿨통통은 픽창에 들어섰다.
선택하는 챔프는 당연히 리픈이다.
하지만 스펠에서 갈리게 된다.
보통 발화와 탈력(脫力), 실드 3개 중 두 가지를 선택한다.
랭크 게임처럼 점멸, 발화를 들고 시작하는 룰도 물론 있다.
딱히 그런 이야기가 오가지 않았다면 저 3개 중에서 선택하는 것이 옳다.
개인의 취향을 타기도 하는 문제.
내가 고른 건 발화와 실드였다.
1:1에서 이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소환자의 전장에 온 것을 환영해요.
여느때나 듣던 아나운서의 목소리지만 이번에는 게임의 내용이 다르다.
5:5 팀게임이 아닌, 1:1 매치.
당연히 게임을 이기는 방법부터가 궤를 달리한다.
세 가지 조건 중 하나를 달성하는 쪽이 승리한다.
먼저 CS를 100개 먹는다.
먼저 상대 포탑을 밀어버린다.
먼저 선취점을 거둬버린다.
근접 챔프인 특성상 두 번째 조건은 의미가 없다.
CS를 100개씩이나 먹을 기회는 당연히 주지 않는다.
사실상 세 번째 조건으로 승부가 결정지어진다.
그래야만 의미가 있기도 하다.
승부를 내는 라인은 당연 탑라인.
미드에서 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무래도 리픈은 탑챔프다.
탑에서 결판을 내는 게 순리라고 볼 수 있겠다.
미니언이 도착함과 함께 시작한다.
부쉬에 숨어있던 나와 쿨통통의 리픈.
두 리픈의 숨 막히는 혈전이 벌어진다.
서로가 사온 템은 똑같이 두란검이다.
1레벨에 찍은 스킬도 똑같이 Q스킬 파열된 날갯죽지다.
세 번의 도약과 함께 약간의 데미지를 가하는 효과.
마지막 타격으로 적을 밀쳐내는 리픈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스킬이다.
하지만 당연히 1레벨에는 싸울 일이 없다.
나도 쿨통통도 어중간한 고수는 아니니까.
의미 없는 교전은 피하고 파밍한다.
눈치를 살살 보며 CS의 막타만을 챙긴다.
나 뿐만 아니라 녀석도 알고 있을 것이다.
CS의 개수가 아닌 선취점.
사생결단으로 승부가 날 것이란 사실을 말이다.
첫 번째 교전이 이루어진 건 3레벨이었다.
아무래도 리픈은 3레벨부터 부쩍 경우의 수가 많아진다.
에어본과 스턴, 실드를 포함한 돌진.
유동성 좋은 각각의 스킬 덕에 현란한 플레이가 가능하다.
먼저 몸을 움직인 건 쿨통통이 됐다.
리픈의 전형적인 딜교환 방식.
에어본 효과가 있는 3번째 Q스킬과 W스킬 스턴을 연계하고 빠진다.
상대의 피를 조금씩 갉아먹는 속칭 짤짤이다.
그렇게 녀석은 섣부른 수작을 부렸다.
콰항!
에어본으로 들어오는 녀석을 돌진기인 E스킬, 용기로 맞받아준다.
현재 Q스킬 3타는 단순한 에어본이 아닌 밀쳐내는 판정이다.
내가 앞으로 들어가고 만다면 녀석의 뒤로 튕겨 나버린다.
쿨통통은 의도했던 대로 스턴을 넣은 후 빠지려 했다.
그런데 똑같이 스턴이 터지며 발목이 잡혔다.
모든 스킬이 빠진 쿨통통과 달리 나는 Q스킬 3타가 전부 남아있다.
하지만 적진 한가운데에서 평타를 쳤다간 미니언에 엄청 얻어 터지고 말 텐데?
그럼에도 모든 콤보를 사용했다.
그것도 2배속으로 말이다.
"어, 어? 어? 제가 방금 잘못 봤나요?"
나와 쿨통통의 1:1매치를 해설하고 있던 호루스씨.
지금까지는 별 사건이 없었던 만큼 말을 아끼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슬슬 입에 모터가 달릴 시즌이다.
모든 딜을 욱여넣은 나는 체력이 1/3정도 빠졌다.
그에 반해 쿨통통은 체력이 절반 가량 훌쩍 깎여버렸다.
미니언을 끼고 싸웠음에도 결과가 반대로 돼버린 이유가 뭘까?
"방금 Q스킬 콤보가 엄청 빠르게 나갔던 것 같은데.. 일단 계속해서 보겠습니다."
시즌2의 사람들은 절대 알 리가 없는 버그가 존재한다.
나는 그것을 사용했다.
녀석과 나의 결정적인 차이.
그리고 내가 승리를 확신할 수 밖에 없는 근거다.
'당한 장본인은 더 어처구니가 없으시겠지.'
쿨통통 리픈의 움직임에서 힘이 빠졌다.
마치 귀신에라도 홀린 듯한 기분일 테다.
리픈에 대해 잘 아는 만큼 방금의 딜교환이 얼마나 이상했는지도 더욱 잘 알 수밖에 없다.
한 번 호되게 당해버린 녀석은 딜교환을 사리게 됐다.
나와 쿨통통은 서서히 CS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이대로 계속해서 밀리다간 쿨통통은 허무한 결과를 맞게 된다.
CS가 100개가 되는 순간 승리가 결정되지 않던가.
때문에 쿨통통은 도박수를 던졌다.
서로가 6레벨을 찍게 된 순간에 먼저 움직였다.
역시 빡대가리같은 놈.
회귀하기 전에 솔랭에서 만날 때마다 들었던 생각이다.
정말 생각이라고는 없이 일단 딜교환 걸고 나중에서야 아차 싶어 미니맵을 본다.
그리고 뻔한 갱킹에 수없이 당해준다.
리픈밖에 안 하는 충인 것도 문제지만 성격.
무식하고 다혈질이라 팀원으로 꺼려진다.
녀석을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가 없는 이유다.
-탑 그거 왜 당해줌? 정글 가는 거 못 봤나?
-아, 킬각인 줄ㅈㅅㅋ
정말 금붕어 대가리 수준이다.
한두 번이면 그러려니 할 텐데 볼 때마다 그런다.
머리가 나쁜 게 죄는 아니라지만 학습 능력 없는 놈이랑 게임을 하면 성인군자도 빡치기 마련이다.
즐기기 위한 일반 게임도 아니고 솔로 랭크라면 더더욱이다.
그러한 낮은 IQ와 덜떨어진 기억력 탓일까.
내가 보여준 신기에 가까운 평캔을 금새 또 잊은 모양이다.
막무가내로 나에게 접근해 스킬을 쑤셔 박아왔다.
당연히 나도 반격을 한다.
두 리픈이 서로에게 풀딜을 박아 넣는 광경.
첫 번째 딜교환에 실패한 쿨통통이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만피에 가까워졌다.
귀환해서 아이템을 사온 것도 아니니 분명 승기는 반반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명백히 체력이 깎이는 속도가 다르다.
쿨통통의 체력이 압도적으로 빠르게 꺼져가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시즌2에는 아무도 평캔을 쓸 줄 몰랐으니까.'
리픈이 별 다른 패치가 되지 않았음에도 시즌3에 갑자기 확 뜨게 된 이유.
바로 3번이나 시전하는 Q스킬 중간중간에 욱여넣는 평타의 속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속칭 평캔 버그, Q스킬을 사용햇을 때 딜레이를 빠른 마우스 클릭 두어 번으로 취소시키는 기술이다.
이 버그를 사용하면 기존보다 약 두 배 되는 속도로 평타를 넣을 수 있다.
나와 쿨통통의 챔피언 스펙이 같다고 해도 넣을 수 있는 DPS가 다르다.
평캔에 의해 우두두두 엄청난 속도로 깎여나가는 녀석의 체력.
물론 평캔이 끝난 이후에는 나나 녀석이나 딜링 기대치는 같다.
그럼에도 충분하다.
리픈의 궁극기는 상대의 잃은 체력에 비례해 증대한다.
콰라랑!
궁극기, 숙청자의 칼이 넓게 퍼지며 바람을 가른다.
녀석의 체력바가 무진장 깎여나가며 실낱 만큼 남았다.
그나마도 나에게 탈력을 걸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안간힘을 내며 발악을 해왔지만 이미 승부는 결정지어졌다.
화륵..!
─퍼스트 블러드.
적을 처치했습니다.
발화의 막틱이 터지며 쿨통통의 생명이 다했다.
첫 번째 세트는 나의 완벽한 승리로 마감되었다.
"마, 말도 안돼.."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 듯, 쿨통통의 입에서 속에 담긴 말이 흘러 나왔다.
아차 싶어 입을 굳게 다물지만 이미 방송으로 다 나가버린 후다.
호루스씨가 진행 바톤을 이어나간다.
"첫 번째 승부. 정말 아슬아슬 했네요! 하지만 다음 판은 자신 있으시겠죠?"
"....."
리픈 장인이 리픈 미러전에서 지고 말았다.
진행자인 호루스씨가 쿨통통의 멘탈을 위해 위로의 한 마디를 해주었다.
어쩌면 정말로 아슬아슬했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브론즈인만큼 정말로 내 평캔을 착각이라 생각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그의 위로에도 쿨통통은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
모든 스킬 스펠을 다 때려부은 녀석과 달리 나는 실드도 쓰지 않고 이겼다.
이것이 어느 정도 차이인지 그것조차 모를 바보는 아니다.
더욱이 내가 보여준 평캔.
리픈 장인을 칭하는 녀석에겐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나름대로 있던 장인이라는 프라이드가 짓뭉개졌다.
완전히 산산조각 형체조차 알아보지 못할 수준으로 말이다.
하나 다행인 건 그래도 개인 방송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시청자 반응이 보였다면 과연 어땠을까.
터진 멘탈을 채 수습하지도 못했을 테다.
그럼에도 방송은 진행되고 있고, 두 번째 게임을 해야만 한다.
그런데 과연 게임이 되기는 할까?
멘탈이 깨진 상태에서 제대로 게임이 나올 리가 없다.
콰라랑!
일방적인 학살.
대놓고 패는 샌드백.
전판과 달리 반항도 못하고 내 리픈의 원콤에 순삭되며 게임이 끝났다.
3전 2선승제인 만큼 승부는 이것으로 끝이다.
"그.... 올마스터씨의 승리로 끝나게 됐네요. 쿨통통씨 혹시 하실 말씀은?"
이렇게까지 상대도 안되게 끝날 줄이야.
진행자인 호루스씨는 물론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조차도 당황스럽기 그지없는 상황.
다년 간의 방송 경력을 살려 가까스로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없...습니다."
쿨통통의 입에서 외마디 인정이 떨어졌다.
너무나도 깔끔한 패배.
이견따위 말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리고 약속을 이행한다.
쿨통통은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움직여 해야 할 말을 한 마디, 한 마디 발음해냈다.
"이 시간 부로 저 쿨통통은.. 다신 로드 오브 로드에 발을 디딜 일이 없을 겁니다.."
어떻게 보면 우울하다 할 수 있는 끝이 맺어졌다.
호루스씨가 수습하려 하긴 했지만 덮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진행자 입장에서는 골치 썩을 일이긴 해도 뭐 알 바겠는가.
내 목적을 달성했으니 그만이다.
두 가지 목적.
감히 나에게 이빨을 들이댔던 녀석을 숙청하고.
녀석에게 있던 마지막 자존심인 리픈 장인의 타이틀마저 빼앗는다.
1:1로 확실하게 쳐발렸으니 공식적인 리픈 장인은 이제 나다.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부족하다.
나는 뒷 주머니에 구겨 넣어왔던 각서를 꺼냈다.
방송은 이제 끝났으니 눈치 볼 게 없다.
내 사악한 미소 또한 송출될 일 없을 터.
이 금붕어 머리 쿨통통은 시간 지나면 입 싹 닫고 다시 방송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마무리는 확실하게 하는 것이 옳다.
"자, 쿨통통씨. 깔끔하게 사인하시죠."
.
.
.
* * *
"제길, 내가 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리픈 장인 쿨통통이라 불리던 과거의 자신은 사라졌다.
올마스터 자식이 사기를 쳐서 모든 것을 뺏어갔다.
녀석이 보여준 엄청난 속도의 콤보.
분명히 버그가 맞다.
하지만 그것을 현장에서 잡아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녀석이 사기를 친 게 분명함에도 자신은 각서에 사인해야 했다.
더 이상 로드 오브 로드를 플레이 하지 않겠다는 내용.
거기서 더 나아가 자신의 롤계정인 쿨통통도 탈퇴를 시켰다.
파프리카 아이디도 삭제하게 만들었다.
이제 남은 거라곤 아무것도 없다.
녀석에게 복수를 할 실낱 같은 희망도 남아있지 않다.
그에 대한 부분마저 각서에 명시되어 있었다.
뚜벅뚜벅.
한 캔의 맥주에 의지해 쿨통통은 길거리를 돌아다녔다.
주정만을 부리는 게 일상이 된 어느 날.
기회가, 검은 옷의 사내가 제안을 해왔다.
"쿨통통, 자네를 찾고 있었네."
어눌한 한국어.
우리나라 사람이 아님은 분명하다.
위험한 일에는 엮이고 싶지 않다.
대충 둘러대고 도망 가려고 했다.
그 직전, 사내는 자신에게 한 장의 서류를 내밀었다.
"혹시.. 이곳에서라면 나도."
검은 옷의 사내가 내민 계약서.
얼핏 훑어봤음에도 나쁜 조건이 아니었다.
오히려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사항이다.
혹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껏 롤에서 쌓아왔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한다니?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다른 길이 없었다.
이윽고 쿨통통의 입에서 확답이 나왔다.
검은 옷의 사내는 반갑게 맞아주었다.
"클클, 어서 오게나. 시공의 폭풍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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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작과 추천 부탁드려요~!
항상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악역 재활용 안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