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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멸망전(滅亡戰)
종말전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하루.
나는 마지막 하루까지 탑라인을 연습하는데 심력을 다했다.
물론 주챔피언은 개서스다.
"대가리를~ 찍어버려!"
한 번 하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농사꾼의 매력이다.
초반 라인전은 조금 고통스러울지 언정 수확의 기쁨은 모든 것을 잊게 해준다.
콰직!
─적을 처치했습니다.
내 딱밤을 맞고 너덜너덜해진 채 도망가던 적 탑라이너.
전기를 내뿜는 닌자 컨셉의 챔피언 전기쥐는 이어진 내 개서스의 E스킬, 불길의 장판에 숨통이 끊어졌다.
하지만 전기쥐를 도와주기 위해 갱킹을 왔던 콩머스가 아직 남아있다.
구오오오!
마치 콩벌레같은 모습의 단단한 등껍질을 가진 탱커 챔피언 콩머스.
전기쥐를 잡고 체력이 얼마남지 않은 나를 마무리하려 했다.
이를 반대로 역관광을 쳐버린다.
개서스의 궁극기, 불타는 격분이 발동되며 체력을 뻥튀기한다.
불타는 격분은 개서스의 체력을 올려주며 주위의 적을 흙구름으로 갉아먹는다.
아무리 순수 탱커인 콩머스라 할 지라도 무사할 수 없는 %뎀이다.
400스택을 넘게 쌓은 딱밤까지 더해지자 두꺼운 콩머스의 껍질이 슬금슬금 금이 갔다.
─더블 킬!
올마스터님이 학살 중입니다.
20분이 지나 괴물이 돼버린 날 잡기 위해 온 갱킹.
적 정글 콩머스는 내 뒤를 잡는데 성공은 했다.
하지만 결과는 이 모양 이 꼴.
나를 키운 시점에서 이미 이야기는 끝났다.
[전체]-전기쥐 이 자식이 개서스 겁나 키웠네ㅋㅋㅋㅋ
[전체]-난 할만큼 했어ㅋㅋㅋㅋㅋㅋ
적 탑라이너 전기쥐에게는 죄가 없다.
전기쥐는 정말 부단하게 내 개서스를 표창으로 후두려 팼다.
실제로 갱킹의 도움을 받아 한 번 따내기까지 했었다.
그럼에도 무식하게 쳐맞으며 버틴 내가 200스택이 넘은 순간.
빠각!
전기쥐의 작은 두개골이 쪼개졌다.,
아테나의 신발.
원래라면 아이우에오의 신발을 사와 스택을 하나라도 더 쌓아야 했지만 방향을 바꿨다.
저 요망한 쥐, 전기쥐를 따내기 위해서는 아테나의 신발을 갈 필요성이 있었다.
아테나의 신발은 마법저항력을 올려줌과 동시에 강인함이 붙어있다.
상대로부터 받는 CC기의 지속 시간을 줄여주는 효과.
스턴이 짜증나는 전기쥐를 따내기 위한 필수 아이템이다.
덕분에 킬각을 잡을 수 있었고 그 이후로는 청산유수다.
빠각! 빠각!
정말 집요하게 견제를 해왔던 전기쥐에게 되돌려준다.
평화 협정따위 내 쪽에서 사절이다.
스택을 쌓는 대신 녀석의 두개골을 볼 때마다 쪼갰다.
그 대가로 이번 게임에서 내가 모은 스택은 비교적 적다.
지난 번에는 30분동안 일천 스택을 모았다.
하지만 지금 게임은 25분에 600스택이 한계였다.
대신 전기쥐를 잡아내 얻은 골드가 있다.
그리고 방금 전 더블 킬까지 해낸 덕에 완성할 수 있었다.
로드 오브 로드(Load Of LORD)의 최종 아이템.
'역시 삼종신기지.'
공격력, 주문력, 공격 속도.
삼종신기는 각기 다른 성향의 세 아이템이 하나로 뭉쳐 만든다.
롤 게임 내에서 가장 값비싼 아이템이기도 하다.
비싼 만큼 돈값을 톡톡히 해냄은 물론이다.
-개서스님 제발 한타 참여 좀요.
-개서스형! 텔레포트 타시면 님 방송에 별풍쏘러 감!
딱히 별풍선을 받기 위해서는 아니다.
원래라면 30분 1천스택을 목표로 농사를 짓겠지만 이번 만큼은 다르다.
공격형 아이템 삼종신기를 완성했기 때문에 더 참을 필요가 없다.
용 앞에서 일어난 싸움판에 나는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3.5초간의 정신 집중 후, 원하는 위치로 자신의 챔프를 이동시켜주는 스펠이다.
-방장 간사한 거 보소ㅋㅋㅋ 별풍쏜다니까 바로 타네ㅋㅋㅋ
-별풍 안 쏘면 지난 번 항상한심 티몽처럼 갱킹 후벼팔 기세.
텔레포트로 도착한 자리가 조금 안 좋았다.
CC기가 쏟아지며 안티탱커, 배인이 내 개서스를 마구마구 쏴재낀다.
그러나 나에겐 CC기의 지속 시간을 줄여주는 아테나의 신발이 있다.
우우웅!
꽈드득!
먼저 불길의 장판을 사용한 후에 점멸로 거리를 순식간에 좁힌다.
그삼종신기에 의해 더욱 강력해진 개서스의 뿅망치가 사정없이 내리쳐졌다.
CC기가 그렇게 금방 풀릴지 몰랐다는 듯 적 배인은 깜짝 놀랐지만 늦었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전체]-아니...나 풀피였는데? 개서스 머임?
고작 한 방에 적원딜의 대가리가 쪼개졌다.
궁극기인 은신 구르기도 쓰지 못한 배인충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전체 채팅으로 하소연을 해왔다.
대체, 탱커 주제에 어떻게 이런 데미지를?
그건 모르니까 할 수 있는 소리다.
엄청나게 쌓은 스택에 삼종신기가 더해진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오직 개서스만이 가능한 천재지변의 한 방이다.
600스택에 삼종신기의 데미지가 더해진 개서스의 뿅망치는 더 이상 딱밤이 아니다.
한 방, 한방의 위력이 핵폭탄에 가깝다.
상대는 더 이상 게임을 진행할 힘이 빠지고 만다.
[전체]-ㅈㅈ 전기쥐 리폿 좀.
[전체]-내가 뭘 잘못했다고;;
[전체]-응 다음에 너 만나면 똑같이 해줌. 키워도 적당히 키워야지.
마스터쯤 되면 매너가 좋고, 한 게임 한 게임에 목숨걸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마스터도 다 사람 사는 곳이다.
프로게이머를 할 정도는 아니지만 상당히 잘한다고 할 수 있는 유저들이 상주하는 점수대.
일 천 명에 가까운 마스터들 사이에서 그랜드 마스터를 갈 수 있는 소수다.
올라가기 위해서 한 판, 한 판이 치열하기 그지없다.
이는 아군을 향해서도 마찬가지다.
[전체]-응 니네 부모님 만수무강~
[전체]-배인충 집안에 평안 가득해라ㅡㅡ
이렇게 탑차이로 승패가 어이없이 갈려버렸을 때 입터는 건 브론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는다.
물론 정말 프로게이머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말을 아끼지만 대부분의 아마추어들은 감정 컨트롤 못 하는 이들이 많다.
저렇게 훈훈한 채팅이 오고 가는 광경은 막장으로 치닫는 게임에서 상당히 흔하게 볼 수 있다.
─승리!
서로를 물어 뜯던 적팀은 결국 서렌을 쳤다.
게임은 더 볼 것도 없이 마무리 되었다.
-ㅁㅊ 올마스터 농사꾼 다 됐네.
-근데 뭔가 일반 개서스랑 다르지 않냐?
-ㅇㅇ 스택 겁나 잘 모음.
내가 종말전에서 쓸 챔프 중 하나로 개서스를 선택한 이유.
지금 시즌2의 개서스는 엄청난 스펙을 자랑한다.
사실 개서스가 농사꾼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다고는 해도 500스택, 1천스택씩 모으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 정도까지 아군을 내팽겨치고 파밍만 한다는 생각은 떠올리기 힘든 법이다.
'이게 다 러이갓 때문이지.'
파프리카BJ 러이갓으로 인해 농사꾼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AP마검사와 더불어 1천스택 개서스의 창시자.
처음 러이갓이 개서스를 했을 때 모든 사람은 돌았다고 생각했다.
-아니, 하루 종일 스택만 쌓다가 게임 끝나는 거 아니야?
어느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러이갓이 보여준 개서스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따악!
빠직!
꽈드득!
스택이 모일수록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진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로지 스택에만 전념한 개서스의 딱밤은 어마어마한 위력을 내뿜었다.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플레이 방식.
진정한 왕의 귀환, 왕귀(王歸)가 되는 챔피언이란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말도 안되는 위력때문에 결국 개서스는 조금씩 너프가 됐고.
시즌 6쯤에 이르서는 완전 이빨 빠진 똥강아지가 됐다.
하지만 현재는 시즌2, 스택만 잘 모은다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종말전 비장의 카드 그 첫 번째가 된 개서스.
나머지 두 개의 카드를 어떻게 사용할지 곰곰히 머리를 굴리며 다가오는 종말전의 마지막 날을 보냈다.
.
.
.
* * *
드르르륵.
어린아이 주먹 만한 구슬들이 담겨있는 플라스틱 통.
한 남자가 그 안에 손을 넣어 구슬들을 뒤적뒤적 휘저었다.
고민이 되는지 잠시간 뜸을 들인다.
이윽고 마음을 정했는지 구슬 하나를 선택해 뽑아든다.
"마지막 경기는 철꾸라지~ 그리고 팡우! 두 팀의 대결이 되겠습니다!"
추첨 구슬을 뽑아든 남자.
그는 이곳 종말전의 조추첨식을 맡은 사회자였다.
파프리카TV를 통해 실시간으로 방송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남자는 우렁찬 목소리로 종말전의 마지막을 장식할 승부로 철꾸라지팀과 팡우팀의 매치가 성사됐음을 알렸다.
철꾸라지, 팡우, 러이갓, 별쏘냐.
각 팀의 주장을 맡게되는 네 명의 대표BJ들과 그들의 손발이 될 마스터, 그랜드 마스터의 실력파BJ들.
이미 각각의 팀은 꾸려진지 오래였기에 이제 남은 건 대전의 순서뿐이었다.
그마저도 방금 전 사회자가 뽑은 구슬에 의해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자아, 오늘 주초첨식의 마지막이자, 하이라이트! 벌칙을 정하겠습니다!"
종말전의 순서는 대략 이러하다.
각각의 팀들은 서로 3전 2선승제로 한 번씩 겨루게 된다.
좋은 성적을 거둔 1, 2등의 팀에겐 특별 상금을 받고.
꼴찌를 한 팀의 주장, 즉 대표BJ는 벌칙을 받게 된다.
그리고 벌칙의 내용은 지금 이 자리에서 정해진다.
어쩌면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올지도 모를 일임에도 일단 지르고 보는 거다.
"저 러이갓은 화끈하게 눈썹 밀기를 밀겠습니다."
종말전에서 가장 안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될 꼴찌BJ가 맞이할 벌칙.
최근 떠오르는 초신성, 러이갓은 패배자에게 눈썹 밀기를 제안했다.
"아니, 아니. 그게 아뉘지이~ 삭발정도는 돼야하지 않겠냐고오?"
삭발이라는 충격적인 발언을 해버린 BJ는 다름아닌 철꾸라지였다.
간장을 주스처럼 마신다는 막가파 BJ답게 정신나간 벌칙을 쑤셔 넣으려 했다.
"아뇨오.. 저는 여자라서 그런 거 안되는데.."
조금 소심함이 느껴지는 가는 목소리.
하지만 마이크에 의해 적절하게 증폭돼 모든 사람에게 울렸다.
이렇게 크게 들릴지는 몰랐다는 듯 놀란 표정을 짓게 된 그녀는 BJ별쏘냐였다.
로드 오브 로드하는 살짝 삭은 미소녀로 유명한 그녀는 항상 기모노를 입고 방송을 하는 컨셉 그대로, 종말전 조추첨식에도 정말 기모노를 입고 왔다.
"요즘 세상에 말이야, 어!? 남녀 구별이 어딨어, 남녀 구별이!"
상당히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기로 유명한 BJ팡우가 방금 전 별쏘냐의 발언에 대해 태클을 걸어왔다.
여자라고 봐줄 수 없다는 듯한 외침이었지만, 장난스런 어조.
─아니, 이 우두루 쒸펄 색히는 뭔데 왜 나만 따라다니면서 죽이는 거야!
약 두 달전, 이 유튜부 동영상 덕에 일약 스타가 된 아재BJ 팡우는 급부상했다.
러이갓만큼은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인기 몰이를 하며 파프리카 롤BJ의 일각이 되었다.
그러한 4명의 대표BJ들은 서로 수근수근 토의한 끝에 패자가 맞이할 최후를 결정지었다.
조금 잔인하지만 현실성 있는 벌칙으로 말이다.
"핑크 머리 어때? 여자라고 빼기 없기다?"
"머릿결 상하는데 히잉.."
BJ별쏘냐는 허리춤까지 기른 머리카락을 아까워하며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종말전의 내용을 알면서도 수락한 건 그녀 자신이었기에 어쩔 수가 없다.
4명의 대표BJ들과 각각을 보좌하는 수많은 실력파BJ들.
차후 파프리카를 대표하게 될 종말전 컨텐츠가 처음으로 개막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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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작과 추천 부탁드려요~!
부족한 작가 힘내라고 쿠폰 보내주신 독자님들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