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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결자
<좋지 않아요, 개서스라는 픽이 안 쓰이는데는 역시 이유가.…>
"낄낄낄. 역시 깠구만."
종말전 첫 번째 경기가 끝난 이후.
나는 내 방송의 시청자들과 함께 녹화된 종말전의 해설을 감상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내 개서스 픽을 해설자가 문제 삼았던 모양이다.
<개서스는 솔직히 민폐죠. 절대 대회에서는 꺼낼 픽이 아닌데…>
-ㅋㅋㅋㅋㅋ저 해설자 올마스터가 퍼블 땄을 때 눈 휘둥그레짐ㅋㅋ
-드래곤 스틸할 때는 얼굴 뻘개졌더라ㅋㅋㅋㅋ
-흑역사 추가욬ㅋㅋㅋㅋㅋㅋㅋ
사실 해설자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성장형 챔피언인 개서스는 팀게임인 AOS게임의 취지에 다소 어긋난 감이 있다.
팀원들 열심히 치고 박고 싸우는데 혼자서 RPG 레벨업을 하는 꼴.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그 RPG를 한 보상이 엄청나다.
향후 미래에서는 여러 차례에 걸친 칼질에 칼질 너프를 받았을 정도다.
<어? 어? 이건 그.. 상대팀이 무리를 했나 봅니다..>
뻘쭘한 나머지 변명을 늘여 놓는 해설자.
하지만 당연히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드래곤을.. 개서스가 먹었는데요?>
<아니, 하아.. 뭐이리 세.. 개서스 좋네요. 인정해야겠습니다.>
인정하지 않고 서야 그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다.
해설자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그 후에 나마 개서스가 새로운 대세 챔피언이 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러저러한 장점이 있다는 등.
개서스 찬양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진 두 번째 게임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띄었다.
러이갓팀의 보이스 채팅을 듣고 있자니 개서스를 밴해야 하지 않냐.
그런 이야기가 오갔지만 결과적으로 자존심 매치가 됐다.
개서스도, 말카림도 밴이 되지 않고 게임이 시작하고 말았다.
해설자의 곤욕과, 개서스의 신들린 하드 캐리.
라고 하기엔 피지컬적인 요소라곤 존재하지 않는다.
왕귀한 개서스가 괴물처럼 뚜까 패고 다니는 장면은 그저 일방적인 학살이다.
이를 시청자들과 한참이나 낄낄대며 감상했다.
일부러 빠르게 넘기며 재밌는 구간만 골라봤다.
잠시 후 두 번째 종말전 매치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아재BJ 팡우 대 기모노 컨셉의 여BJ 별쏘냐.
두 팀의 혈투를 나는 참가자가 아닌 한 명의 BJ로서 관전 겸 해설을 하기로 했다.
"허허, 또 말카림이 나오네."
말카림은 흔히 픽되는 챔프가 아니다.
내가 픽한 개서스는 물론이고 현재 탑주류 챔프인 네네톤한테도 약하다.
게다가 이전 경기에서 BJ그마카림이 말카림을 잡고 지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픽한다는 건 잘할 자신이 충만하다는 의미다.
-CGVMAXIM도 말카림 잘해요, 방장님.
-BJ그마카림보다 잘하나?
-비슷비슷할 걸?
탑의 구도는 CGVMXIM의 말카림 대 BJ대망신의 리픈이었다.
BJ대망신은 쿨통통이 사라진 멸종에 가까워진 천상계 리픈 유저 중 한 사람이었다.
물론 내가 더 잘하지만.
-리픈 대 말카림 ㄷㄷ 장인대전 오졌구요.
-캬 꿀잼 예약! 롤챔스에선 이런 거 절대 안 나옴.
-ㅇㅇ노잼톤 같은 거나 겁나 나오지ㅋㅋ
노잼톤이란?
스킬 구조가 워낙 재미없는 네네톤에게 붙어버린 별명이다.
그런 네네톤을 이 종말전에서 꺼낸다면?
BJ가 재미없는 게임을 한다고 욕먹을 수도 있다.
실력파BJ들은 차후 인지도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만큼 재미없는 픽은 알아서 자중했다.
"솔직히 리픈은 내가 더 잘하지. 인정?"
-방장 도발 보소ㅋㅋㅋ BJ대망신 무시 발언 캡쳐했습니다.
-캡쳐가 아니라 녹화겠지ㅋㅋㅋㅋㅋ
-쿨통통 잡은 방장 리픈 ㅇㅈ
솔직히 난 BJ대망신을 싫어한다.
까놓고 말해 대망신은 도진기에게 버스받고 다이아5를 갔던 아재BJ 팡우랑 별 다를 바가 없다.
로드 오브 로드 시즌1에 있었던 사건.
혼돈이라는 오래된 AOS게임의 네임드 유저였던 대망신은 로드 오브 로드가 흥하자 게임을 바꿔 탔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예정된 그랜드 마스터라도 되는 마냥 기고만장했다.
'당연히 턱도 없었지만.'
물론 그도 자신이 있었을 것이다.
BJ대망신은 혼돈에서 상당한 인지도와 실력을 자랑했었다.
때문에 로드 오브 로드에서도 높은 티어에 올라갈 거라 자신감이 넘쳤을 터.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아 이거 게임 쓰레기네. 다시 혼돈으로 갑니다~
로드 오브 로드에서 제대로 망신을 당한 BJ대망신은 다시 자신의 본 게임 혼돈으로 도주하고 말았다.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 세 달 후.
대망신은 다시 로드 오브 로드로 돌아왔다.
그런데 전적이 조금 이상했다.
대리 게임까지는 아니었지만 같이 플레이한 유저들이 부캐들뿐이었다.
흔히 말하는 버스를 받고 강제로 천상계에 안착한 것이다.
자신의 부족한 실력과 재능을 팀빨로 메꿨다.
물론 잘하는 유저랑 듀오를 한다고 반드시 실력이 느는 건 아니다.
하지만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지 않던가.
솔랭 돌리다 지게 되면 다시 버스로 올라가고.
버스로 올린 점수를 또 솔랭으로 떨구고.
이 짓을 반년 가까이 반복한 BJ대망신은 결국 천상계의 게임에 어찌어찌 적응하게 되었다.
이것을 과연 노력이라 부를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BJ대망신이 한 행위는 금수저가 아버지의 부를 이용해 이리저리 갑질하고 다닌 것과 다를 게 없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니 돈과 권력의 힘을 사용해 강제로 끌어올린 셈이다.
그럼에도 BJ대망신은 혼돈이라는 게임에서 상당히 유명 인사였던 탓에 그를 맹목적으로 지지해주는 팬들이 많았다.
때문에 해당 사건은 유야무야 덮히게 되었고 시즌2에 중반에 있어서는 그 일을 문제 삼는 이들이 없었다.
나는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그 자신이 그 사실을 시인하고. 인정하고, 사과를 구하기 전까지는 내 시선을 고칠 생각이 없다.
막말로 대리를 받은 것과 하등 차이가 없는 짓이니까.
아니, 그것만이었다면 그래도 그러려니 했을지 모른다.
그런 치사한 방식으로 천상계에 적응한 대망신은 혼돈의 네임드가 로드 오브 로드를 정복한다!
어처구니 없는 컨셉으로 방송을 시작해 현재는 파프리카TV 베스트BJ자리까지 꿰차고 있다.
쿨통통처럼 설설기게 만들고 싶다, 까지는 아무래도 생각 안 하지만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퍼스트블러드!>
아니나 다를까, 퍼블이 나온 라인은 탑이었다.
CGVMAXIM의 말카림에게 BJ대망신의 리픈이 솔킬을 따였다.
"으이구.. 어?"
-ㅁㅊ 말카림 지렸다.
-씨지맥 겁나 잘 하네.
-이건 말카림이 잘한 부분 아니냐?
씨지맥이란 CGVMAXIM의 줄인 약칭.
기억을 되짚어 보니 확실히 대망신의 문제가 아니었다.
말카림의 플레이가 정말 깔끔했다.
군더더기 없는 솔킬각이었다.
'역시 젊은 씨지맥, 그랜드 마스터의 위용인가.'
내가 아는 미래에서의 씨지맥은 나이를 먹고 퇴물이 되었다.
지금 시즌2 시점에서도 20대 중반에 가까운 그다.
시즌4에 겨우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 그는 늦었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포기하게 된다.
내가 이전에 말했던 프로게이머 연습생이 힘들다는 부분이 바로 이거다.
실력이 뛰어나고, 뜰 가능성이 충만해도 인맥과 운이 없는 탓에 데뷔하지 못하고 묻혀버린 사람이 많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씨지맥.
'뭐, 딱히 알 바는 아니지만.'
내가 그와 친분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사정이 조금 딱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어쩌면 이번 생에서 그와 연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지만.
적어도 아직까진 씨지맥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다.
-씨지맥 이걸 져야 하네ㅋㅋ
-말카림이 리픈 3번 솔킬 땄는데 BJ쏘냐땜에 밑에서 터짐ㅋ
-BJ별쏘냐 완전 트롤ㅋㅋㅋ
-별쏘냐님 예쁩니다 시비걸지 마시죠ㅡㅡ
이러한 부분이 씨지맥의 발목을 잡는다.
운이 상당히 없다는 것.
BJ인 탓에 이름을 알릴 기회는 있었지만.
그리고 실제로 자신의 플레이는 잘 해냈지만.
결국 로드 오브 로드는 혼자하는 게임이 아니다.
그랜드 마스터라는 티어를 쭉 유지했음에도 프로게임단에서는 씨지맥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프로게이머 연습생 제의를 받게 된 것도 지금으로부터 약 2년 후.
나이 문제 때문에 프로게이머의 길을 포기하고 다시 BJ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다른 실력파BJ들과 달리 진심으로 프로게이머를 목표했던 그였기에 조금은 측은하게 생각하는 바이다.
두 번째 게임 또한 상황은 비슷했다.
BJ별쏘냐가 감성센도로 역캐리를 한 덕분에 씨지맥이 속한 팀은 지고 말았다.
.
.
.
* * *
'후, 또 팀 차이로 져버렸네.'
사실 씨지맥은 이번 종말전에서 BJ의 인지도를 목표하지 않았다.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
얼핏 떠돌고 있는, 하지만 상당히 신빙성이 높은 소문.
프로게임단에서 이번 종말전 이벤트를 상당히 유심하게 지켜보고 있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헛소문일 수도 있겠지만 프로게이머 클끼리가 종말전에 참가한 것을 보면 틀림없다고 여겼다.
"고생하셨어요~다들 들어가 보시고 별쏘냐님도 마음 쓰지 마세요."
-헤헤, 씨지맥님도 고생했어요. 그런데 오늘 제가 많이 못했지요..?
BJ별쏘냐가 울먹울먹 애교를 부려왔다.
스물 중반에 가까운 나이라고는 생각되기 힘든 앳된 목소리였다.
미안하다고 하는 사람에게 어찌 화를 내겠는가.
씨지맥은 오히려 괜찮다고 타일러주었다.
"그럼 들어가 보세요. 저도 이만 볼 일이 있어서.."
-넹, 씨지맥님 편히 쉬세요~ 일 봬요! 내일은 꼭 잘할게요!
보이스 채팅이 끊어지자마자 씨지맥은 자신의 침대에 몸을 던지듯 누웠다.
그리고 생각했다.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내 인생,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스물 넷이나 먹은 나이.
군대를 전역하고 게임에 올인했기에 특기라고 할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게 바로 로드 오브 로드, 롤실력만이 유일한 버팀목이다.
하지만 이 실력도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지.
한 달, 한 달이 지날수록 무거워지는 팔목.
피지컬이 굼뗘지는 것이 느껴진다.
최소한 올해 내에는 반드시 기회를 잡고 싶었다.
'이번 종말전도 종쳤구나..'
러이갓의 팀에 속한다면 최상, 못해도 철꾸라지나 팡우팀에 속하고 싶은 게 본심이었다.
솔직히 말해 BJ별쏘냐는 조금 지나칠 정도로 못한다.
1등은 커녕 꼴찌 신세나 면하면 다행인 수준이다.
프로게임단의 눈에 들기는 사실상 글렀다.
결국 BJ라도 해먹으며 밥벌이라도 하는 게 최상일까.
절대로 싫었다.
씨지맥은 다른BJ들과 달리 개인 방송에 연연따위 하지 않았다.
BJ는 그저 자신의 실력을 뽐내기 위한, 프로게이머를 하기 위한 발판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면..'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시작했던 BJ지만 조금은 달라졌다.
이 상태 그대로라면 BJ가 평생 직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지도 모른다.
침대에 누운 씨지맥의 머릿속은 자꾸만 복잡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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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작과 추천 부탁드려요~!
부족한 작가 힘내라고 쿠폰 보내주신 독자님들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