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종결자
종말전 둘째 날.
내가 속한 철꾸라지 팀과 BJ별쏘냐팀의 경기가 있는 날이다.
어김없이 꺼내는 개서스.
개서스로 무난히 스택을 쌓으면 질래야 질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두 가지 변수에 의해 게임은 막상막하를 이루게 되었다.
첫 번째는 어제 BJ대망신을 내리 세 번이나 솔킬 따냈던 CGVMAXIM.
그리고 두 번째는 우리팀의 자랑스러운 원딜러 철꾸라지 때문이었다.
─마!!! 집중해라!
─형님만 집중하면 된다니까요..
─형님, 제발 이번에는 애씨 궁극기 막 날리지마요. 호응하기 힘들어요.
팀원들간의 사이가 가까웠는지 연장자인 철꾸자리를 형이라고 부른다.
문제는 그 형이란 분께서 오더를 너무 맛깔나게 내리고 있다.
거창하게 말해서 오더지.
사실 한 것이라곤 하나밖에 없다.
─미드! 미드! 애씨궁! 백발백중이다, 집중해라 마!
─형님.. 나로호인데요?
나로호.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였음에도, 두 번의 발사 실패를 기록한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발사선이다.
현재는 로드 오브 로드를 플레이하는 유저들 사이에서 은어로 활용되기에 이르렀다.
소환자의 전장 전역을 가로 지르는 통칭 글로벌 궁극기가 빗맞았을 때 비유하는 단어다.
현재 철꾸라지가 하고 있는 애씨는 그 글로벌 궁극기를 보유하고 있다.
사거리가 엄청나게 긴 덕에 탑라인에서 봇라인까지 어디든 쏘는 게 가능하다.
당연하게도 그만큼 맞히기가 엄청 힘들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애씨궁을 멀리서 맞히면 마법 피해와 함께 3초간 적을 기절시킨다.
그 대박을 노리고 멀리서 저격, 흔히 말하는 입롤플레이를 좋아하는 애씨충들이 많다.
그리고 그 애씨충 중 하나에 하필이면 저 철꾸라지가 포함된다.
철꾸라지가 로드 오브 로드라는 게임을 좋아하는 이유임과 동시에 수많은 챔피언 다 버려두고 애씨만 하는 까닭이다.
어떻게든 뽀록으로 애씨궁을 저격한 후 입 한 번 털어보려는 속셈이다.
철꾸라지의 본캐 티어인 실버에서야 가능할 수 있는 일이다.
안타깝게도 지금 진행되는 종말전의 게임 수준은 실버가 아니다.
─상대 마스텁니다 마스터! 형님 궁극기가 맞아 주겠습니까?
─마아아!!! 다음에 잘하면 되지..
철꾸라지가 궁극기를 낭비한 개수가 어제부터 따지면 벌써 10번째였다.
단 한 번도 적 챔피언을 맞힌 이력이 없는 철꾸라지.
물론 실력 차이가 크다고는 하지만 정말 신기할 정도로 낮은 정확도다.
그러한 믿지 못할 실력을 자랑하면서도 안면에 철판 깔고 꿋꿋이 나로호를 날려대고 있다.
같은 팀원으로서는 한심할지 언정 방송인으로서는 존경심이 든다.
결국 철꾸라지의 연이은 실패가 겹쳐 3전 2선승제의 경기는 1승 1패가 될 예정이다.
그나마도 1승은 내가 첫 번째 세트에서 CGVMAXIM의 말카림을 잡고 캐리한 판이었다.
물론 두 번째 게임도 캐리를 시도했지만 실패.
씨지맥은 나이에 걸맞는 노련함을 자랑하며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았다.
'설마 로밍을 갈 줄이야.'
개서스의 유일한 약점이다.
상대가 로밍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텔레포트가 있다고는 해도 아직 스택을 쌓아야 하는 이른 타이밍에는 따라가기 힘들다.
아군이 사려준다면 괜찮은 일이지만,우리 봇라인의 원딜러는 하필 철꾸라지다.
로밍에 특화돼있는 말카림이란 챔피언.
그리고 항상 나로호를 쏘는 탓에 궁극기가 없는 우리팀 애씨.
쿠워어어어!
엄청난 사거리를 자랑하는 말카림의 궁극기, 그림자 습격이 당도할 때마다 철꾸라지가 목숨을 잃는다.
한 마디로 대주고 있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아군이 또 당했습니다.
아군이 또 또 당해줍니다.
말카림의 궁극기에 사정없이 당해주는 철꾸라지의 애씨.
만약 철꾸라지가 궁극기를 낭비라도 하지 않았다면 반 이상은 살 수 있었을 텐데.
철꾸라지 덕분에 씨지맥의 말카림이 날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내가 스택을 쌓고 차분히 왕귀하기 전에 완전히 터져 버린 봇라인.
대충 그러한 흐름으로 두 번째 세트는 패배하고 말았다.
하지만 첫 세트는 우리팀 쪽에서 챙겼기에 마지막 게임이 남아있다.
3전 2선승제의 승부 마지막 세 번째 세트에서 최후의 승자가 결정된다.
준비해두었던 카드를 꺼낼 시간이다.
나는 숨기고 있던 그 챔피언으로 마지막 세트를 가져오기로 마음 먹었다.
.
.
.
* * *
<자 이제 올마스터 선수가 픽을 할 차례인데요.. 이번에도 또 개서스를 보여줄까요?>
<확실히 올마스터 선수의 개서스는 일품이죠. 제가 어제 종말전 해설에서 개서스를 폄하했던 부분은 다시 한 번 정정하겠습니다.>
지난 방송에서 개서스라는 픽은 절대 무리라며 아군을 기다리게 만드는 민폐 챔피언이라 발언했던 해설자.
그는 올마스터가 어제와 오늘 종말전 경기에서 개서스로 보여준 엄청난 플레이에 혀를 내두렀다.
그리고 오늘 한 번 더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다음 진행되는 철꾸라지팀과 팡우팀의 마지막 3세트. 올마스터 선수가 이번에도 개서스를 꺼낼까요?>
<저는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번째 세트에서 CGVMAXIM 선수가 보여준 로밍을 똑같이 당할 우려가 있거든요.>
한 쪽의 연이은 승리로 허무하게 끝났던 어제의 경기와는 다르다.
1:1 무승부라는 숨 막히는 혈전이 펼쳐지는 중이다.
탑라인의 구도가 일방적으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 컸다.
마스터 티어의 BJ그마카림과 달리, CGVMAXIM은 말석이나마 그랜드 마스터.
어제 종말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을 뿐만이 아니라 오늘도 잘해내고 있다.
패배를 했던 첫 번째 세트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보였다.
라인전을 지게 됐음에도 팀의 발목을 붙잡지 않고 나름대로 선전했다.
더욱이 2세트에서는 개서스의 약점이자 말카림의 장점인 로밍을 적극적으로 활용.
철꾸라지팀의 구멍이라 할 수 있는 철꾸라지 본인을 사정없이 따내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철꾸라지 선수가 이번에 실수를 하지 않는다면 개서스를 픽해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전 한다에 한 표 던지겠습니다. 그만큼 범상치가 않은 분이시니까요.>
<저도 방송의 진행을 맡고 있는 게임 캐스터이긴 하지만, 그 이전에 한 명의 파프리카TV 시청자로서 솔직히 인정합니다.>
대회 해설과 달리 분위기가 자유로운 파프리카의 이벤트전이다.
게임을 재밌게 해설하는 게 목적이지 진지하게 해설하는 게 취지가 아니다.
가식이 아닌 본심이 묻어나는 드립으로 해설을 캐리한다.
그렇게 캐스터와 해설자가 입담을 주고받는 사이.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도 다음 게임의 양상에 대해 열띤 토론을 이뤘다.
-100% 리픈 꺼낸다니까?
-응, 어제 대망신이 리픈으로 씨지맥한테 쳐발렸어^^
-ㅁㅊ 대망신이랑 올마스터를 비교하냐?
-올마스터가 대망신보다 리픈 잘함?
채팅창에 올라오는 시청자들의 예상.
확실하게 리픈을 꺼내리라 굳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제부터 말이 많았던 해설자의 생각은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저는 무조건 리심이라 생각합니다.
─호오.. 무조건이라. 해설자께서 자신감이 충만하시네요. 이유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하하, 제가 조사를 좀 했거든요.
탑리심은 말카림에 준할 정도로 로밍이 뛰어나다.
더욱이 라인전까지 강력하다.
단 하나 문제되는 건 유통기한.
후반 갈수록 힘을 못 쓴다는 단점이 존재하지만 리심 장인 올마스터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일이다.
사실 이렇게 대회게임에서 밴픽을 단언하는 건, 해설자로서 하면 안되는 행위이긴 하다.
그러나 이벤트 전인 만큼,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서 편파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자, 역시나 리심.. 엉?>
<리심은 아니게 됐네요.. 그런데 저건, 대체 무슨 시츄에이션이죠?>
캐스터와 해설자가 말이 꼬일 정도로 당황한 것도 어쩔 수가 없는 부분이다.
분명 리심을 픽창에 올려놨던 올마스터가 마지막 순간에 다른 챔프로 바꿔버렸다.
그리고 그가 픽한 챔프는 누가 어떻게 봐도 탑챔프가 아니었다.
-설마 탑소리커?
-챔피언 스왑이겠지ㅋㅋㅋㅋㅋㅋ
-스왑 모르냐, 심해애들은?
-ㅋㅋ소리커가 탑을 가겠냐. 생각 좀 하고 말해라 어휴! 심해수준하고는.
올마스터가 픽한 챔프 소리커.
쏘냐와 함께 서포터의 상징과도 같은 챔프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챔피언 스왑이라는 결론밖에 나지 않는다.
아군의 서폿픽을 먼저 해주고, 서폿에게는 탑챔프를 고르게 한다.
그리고 게임의 시작 직전에 서로 픽한 챔피언을 바꾼다.
하지만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이변이 일어났다.
<인간조아라 선수가.. 조아라를 픽했는데요?>
<뭐죠? 설마 3단 스왑인가요?>
게임을 진행하는 열 명의 선수가 전부 픽을 마쳤음에도 불구.
올마스터가 있는 철꾸라지의 팀에서는 아무도 탑챔프를 픽하지 않았다.
챔피언 스왑을 할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다.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
방송을 보던 시청자들이 물음표로 채팅창을 도배했다.
-???????
-설마 픽실수야?
-이거 게임 시작하는 겨??
-시작하면 그냥 꽁패 아니냐?
혹시 올마스터 선수가 다른 챔피언을 고르려다 실수로 소리커를 픽한 게 아닐까.
실수라는 생각으로 밖에는 연결되지 않는 픽이었다.
당연히 재경기가 진행되겠지.
모두가 숨을 죽이며 캐스터의 말이 떨어지기 만을 기다렸다.
철꾸라지팀에선 아무런 제지가 없었고 결국 게임은 시작되고 말았다.
.
.
.
* * *
─마아아아아!!! 정신 안 차리나!!
내가 소리커를 픽했을 때.
팀원들 사이에서는 당연히 난리가 났다.
─정말 진지픽 맞아요?
─믿어도 되는 거죠, 올마스터님?
처음부터 소리커를 픽하려 했다면, 정색하고 만류했음이 당연하다.
몇 번이나 탑소리커 괜찮다고 설득한 끝에 허락을 얻어냈다.
그 허락을 받아내기 위한 개서스의 하드캐리이기도 했다.
수차례 실력을 증명한 만큼 불안을 내비치는 정도로 끝나게 되었다.
때문에 내가 챔피언을 바꾸는 일없이 게임은 시작됐다.
─소환자의 전장에 온 것을 환영해요.
내 소리커를 제외한다면 서로의 픽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양쪽 장인들의 주챔프가 밴에 의해 손발이 묶인 상태다.
이번 판에서도 탑라인의 구도에 의해 승패가 결정될 확률이 높다.
철꾸라지가 실수를 안 해준다면, 좀 더 손 쉽게 게임을 가져갈 지도 모를 일이다.
믿을 놈을 믿어야지.
적어도 BJ로서의 철꾸라지는 사람이 아니다.
한 마리의 짐승에 가깝다.
─마아아아아아! 집중해라.
─네, 형님도요.
─부디, 제발. 한 판만 참아주세요. 형님.
철꾸라지의 과도한 리액션 덕분일까.
팀원들끼리 꽤나 친근해졌다.
이런 자유분방한 성격 덕에 철꾸라지는 똘아이의 이미지임에도 인기가 많은걸지 모르겠다.
─미니언이 생성됩니다.
긴장이 되는 마지막 판의 인베가 별 일없이 끝났다.
나는 진격하는 미니언들과 함께 탑라인에 도착했다.
내 탑소리커와 CGVMAXIM의 말카림이 맞이하게 될 라인전.
촤라랑!
양쪽의 미니언이 맞붙게 되자마자 나는 스킬을 사동했다.
소리커의 Q스킬, 별똥별이 떨어지며 근방에 있는 모든 적들을 피해 입힌다.
미니언을 포함해 적탑챔피언 말카림까지 말이다.
혹시 잘못된 픽이 아닐까.
소리커로 라인전은 가능한 걸까.
그 의문도, 여름의 더위도 싸그리 날려버린다.
탑소리커의 시원한 폭격이 소환자의 전장에 쏟아졌다.
============================ 작품 후기 ============================
선작과 추천 부탁드려요~!
부족한 작가 힘내라고 쿠폰 보내주신 독자님들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