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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결자
어두운 방안의 내부.
요란한 조명이 테이블 위를 비춘다.
값비싸 보이는 양주병들이 유리잔이 늘여져 있다.
다섯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성이 술상에 둘러앉아 음주를 즐기고 있었다.
방안에 모여있는 이들은 파프리카 종말전의 주역 중 하나인 BJ팡우와 그 팀원들이었따.
남정네들 사이의 유일한 여성은 이 술집, 룸살롱에서 일하는 아가씨다.
여자 욕심이 유난히 많은 팡우가 술자리의 흥을 돋구기 위함이란 명분으로 불러왔다.
야시시하게 차려 입은 여성은 비어버린 팡우의 술잔을 보며 다음 잔을 따를 준비를 했다.
잠시 후 술을 따르려는 그녀를 만류하며 한 남자가 팡우의 곁에 바싹 붙었다.
"크아! 달달하구만. 다음 잔 따라봐!"
"팡우 형님, 이번엔 제가 한 잔 올리겠습니다."
자신이 술을 따르겠다며 자처한 남자는 팡우팀의 탑라이너 BJ대망신.
조금 흥이 깨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팡우는 개의치 않았다.
대망신을 깍듯한 동생이라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래, 구래 우리 대망신이. 어디 한번 달달하게 따라봐."
"여부가 있겠습니까, 형님."
대망신은 팡우의 술잔에 값비싼 양주를 가득히 채워 넣었다.
술잔을 따르겠다 자처한 이유, 당연히 목적이 있었다.
흡족하게 양주를 마시는 팡우를 보며 대망신은 입을 열었다.
"그런데 팡우 형님. 혹시 올마스터 녀석에 대한 소문 들으셨습니까?"
"어허! 달달한 술자리에서 어딜! 내가 그 자식을 얼마나 싫어하는데."
BJ대망신의 조심스런 물음에 아재BJ 팡우가 정색을 표했다.
하지만 속내는 따로 놀았다.
'아, 그 놈한테 아무 생각없는데..'
일단 입장이 있어 과장된 반응을 보였을 뿐이다.
실력파BJ들 중 상당수가 올마스터를 싫어한다는 건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사실 팡우는 올마스터에 대해 별반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그나마 생각을 가지게 된 이유도 자신의 방송을 꾸준히 보아온 충신들 때문.
타 방송에 비해 유난히 충성도가 높은 팬들이 이야기를 해왔다.
올마스터가 우두루로 자신을 저격한 악질 유저라는 사실을 말이다.
─팡우 형님! 형님이 그러고도 사람 새끼를 자처하십니까?
이전에 우두루로 형님을 잘근잘근 토막 살인한 천하의 못 돼먹은 자식.
그 철천지 웬수가 바로 BJ올마스터입니다.
그런데도 형님은 두 눈을 말똥말똥 뜨고 그 자식 잘 되는 꼬라지를 보고만 있으니..
죽은 동태 눈깔도 형님보다는 생기가 있을 겁니다.
부디 이 충언을 가벼이 여기지 마십시오.
짐승 팡우에서 벗어나 사람 새끼로 제발 탈피하십시오.
형님의 방송을 언제나 응원하는 충신이 감히 간언을 올리옵나이다.
─형님! 저희 집 개새끼 좀 본받으시지 말입니다.
제가 키우는 똥개 새끼도 은원은 구분할 줄 압니다.
그런데 형님은 어떻게 40줄을 쳐먹고…
BJ팡우의 충신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올마스터를 숙청해야 한다는 쪽지를 마구마구 보내왔다.
그런 사정이 있어 팡우는 올마스터에 대해 시큰둥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근데 결과적으로 내 방송을 도와준 셈이잖아?'
아니, 이 우두루 쒸펄 색히는 뭔데 왜 나만 따라다니면서 죽이는 거야!!
하는 유튜부 영상덕에 팡우는 BJ로서 급부상하게 되었다.
때문에 속마음으로는 올마스터와 딱히 적대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일단 충신들의 간언을 모른 척 할 수는 없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올마스터 자식이 사실 말이죠.."
"그래, 그 자식이 또 뭔가 저질렀어?"
대망신은 떠올렸다.
BJ팡우가 올마스터를 싫어한다는 소문.
더욱이 내일 종말전의 상대가 바로 철꾸라지팀이었다.
그 철꾸라지 팀의 주역이 올마스터 아닌가?
올마스터에 대한 팡우의 적대 심리가 크게 작용할 터다.
계획을 실행하자면 이보다 더 적절한 타이밍이 있을 리가 없다.
"그게.. 올마스터 자식이 버그를 쓴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버그.. 버그 그거 엄청 안 좋은 거지. 그런데 증거는 있고?"
팡우는 사실 로드 오브 로드에 버그가 있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
그래도 일단 연장자로서 모르는 듯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지 않는가.
대망신의 말에 맞장구를 치는 동시에 은근슬쩍 물어보았다.
"저희 마스터, 그마 천상계 유저들 사이에서는 사실상 버그라고 확정을.."
"오호라, 그래 그래.. 계속 얘기해봐."
물증이라기 보단 심증.
그 말을 퍼트린 쿨통통은 어느 날을 기점으로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그와 친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믿는 사람이 늘어났다.
물론 전체 천상계 유저 중에서 본다면 동조하는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어떻게 소문을 퍼트리기는 배짱이 딸리는 상황이다.
그러나 소문대로 BJ팡우가 올마스터를 질색한다면?
대망신은 팡우를 구슬려 올마스터를 몰아낼 자신들의 계획에 힘을 보태고 싶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버그, 그런 거 쓰면 안돼. 사내 새끼가 실력으로 승부해야지, 안 그래?"
"하하, 팡우형님 말이 맞습니다. 그 자식 정말 안될 놈이죠. 그래서 말인데.. 이번 기회에 한번 싹 어떻습니까?'
손날을 세워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올마스터를 처리하고자 하는 계획을 행동으로 나타냈다.
"녀석이 요즘.. 좀 나대긴 하지? 그런데 말이야, 이 형님이 사나이잖아? 자잘하게 잔머리 쓰는 걸 안 좋아하는 거 알지?"
"물론입니다. 형님은 그저 필요할 때 저희 등을 확! 밀어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좋아, 좋아. 우리 대망신이! 충신 인정한다. 하하!"
사악한 음모처럼 보이는 대망신과 팡우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BJ팡우팀의 나머지 팀원들.
올마스터가 버그 유저라는 이유에 대해 납득할만한 근거도 없었고.
대체 왜 올마스터를 싫어하는지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잘 나가는 BJ 한 명이 고꾸라지면, 그의 시청자들은 자신들에게 넘어오게 된다.
더욱이 파프리카의 떠오르는 태양과도 같은 BJ팡우와 친하게 지내서 나쁠 것 없다는 생각.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생각에 술잔을 조용히 기울였다.
.
.
.
* * *
종말전의 마지막 날.
그 첫 번째 매치는 BJ러이갓팀 대 BJ별쏘냐팀이었다.
3전 2선승의 매치는 2 : 1로 러이갓팀의 승리가 확정되었다.
러이갓팀의 명실상부한 에이스, 클끼리가 크게 활약한 덕분이었다.
<역시 프로게이머입니다. 마지막 한타에서 아모모 4인궁이 대박이었어요!>
<씨지맥 선수의 말카림이 마지막까지 분전했는데 말이죠. 적 원딜러를 한 순간에 녹여버리고 변수를 만드나 싶었지만 아모모가 너무 잘했어요.>
그나마 BJ별쏘냐 팀에서 1승을 따낼 수 있었던 것도 탑솔러인 CGVMAXIM이 선전한 덕이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근본적인 실력 격차.
안 그래도 다른 팀의 대표BJ들과는 달리 러이갓은 다이아1까지 찍어본 경험이 있는 천상계 유저다.
게다가 러이갓팀의 정글러 클끼리는 잘나가는 현직 프로게이머다.
그러한 압도적인 전력을 바탕으로 러이갓팀은 철꾸라지팀을 제외한 모든 팀을 상대로 승리해 2승1패라는 성적을 거뒀다.
그리고 현재 철꾸라지팀은 2승0패의 상태.
금일 이어지는 철꾸라지팀 대 팡우팀의 경기의 승패는 더없이 중요해졌다.
팡우팀이 이기게 된다면 러이갓팀과 철꾸라지팀은 재경기로 1등을 가려야만 한다.
역으로 철꾸라지팀이 이긴다면 종말전의 마지막 경기가 되는 셈이다.
철꾸라지팀과 팡우팀의 첫 번째 경기가 밴픽창을 맞이했다.
<자, 드디어 첫 번째 밴픽이 시작됐는데요. 해설자께선 오늘도 예상하시는 챔프가 있으십니까?>
어제 BJ올마스터가 리심을 할 거라 호언장담을 했던 해설자.
하지만 결국 탑소리커라는 어이없는 픽에 의해 흑역사의 한 줄이 추가되었을 뿐이었다.
그는 굴하지 않고 한번 더 뻔뻔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하나는 장담할 수 있습니다. 탑소리커, 리픈, 개서스, 리심. 이 4개 중에 하나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어이없는 발언이다.
종말전 방송을 보고 있던 시청자들이 정색하고 따져댔다.
-그건 브론즈인 나도 알겠다.
-해설자님 파프리카TV에서 잘려도 먹고 살만 하신가 봐요?
-마! 해설자, 2번 연속으로 틀려서 자신감 팍 떨어진 거 안보이나?
-철꾸라지 흉내내지 마라ㅋㅋㅋㅋㅋㅋㅋㅋ
저렇게까지 경우의 수를 늘려버리면 이번에는 틀릴 일은 없겠지.
하지만 모두의 예상이 깨지고 올마스터는 또 한 번 보여주지 않은 픽을 꺼내왔다.
-해설자 또 틀렸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파프리카TV 해설자 구인광고 알바지옥가면 나오냐?
-해설자 실버쯤 되는 거 같은데 골드인 내가 지원한다ㄱㄱ
-그런데 저거 신챔프잖아? 진짜 하는 거야?
그 누구도 예상은 커녕 떠올리지도 못했다.
오늘 패치로 새로 나온 신챔프.
아직 이렇다 할 연구도 안됐을 뿐더러 챔프자체가 애매하기 짝이 없었다.
무려 궁극기가 없는 챔피언이다.
이걸 대체 어떻게 쓰란 말인가?
잉벤은 물론 천상계의 유저들조차 아직까지 이렇다 할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올마스터 선수가 또 특이한 픽을 꺼내고 말았네요..>
<하하... 정말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는 선수입니다.>
해설자는 얼굴에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급격히 말꼬리를 흐렸다.
하지만 채팅창에서도 더 이상 해설자를 따지려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올마스터가 어떤 생각으로 신챔프를 픽했는지.
그리고 과연 게임 내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에 대해 관심이 쏠렸다.
지난 번 소리커와 달리 다른 라인과 챔프 스왑의 여지조차 없었다.
만에 하나 실수로 픽한 게 아니라면 1세트에서 신챔프를 볼 수 있을 터.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되 올마스터라면 절대 예능으로 픽하지 않았을 거라는 기대감이 인다.
부디 제발, 올마스터가 신챔프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길.
모두가 조마조마하며 밴픽창의 카운트가 0이 되길 침을 꿀꺽 삼키며 기다렸다.
<게임.. 시작되었습니다.>
진행자조차 평소의 흐름을 살리지 못하고 말꼬리를 무겁게 흐려버렸다.
그러나 누구도 진행자의 말실수를 지적하지 않았다.
그만큼 신챔프의 첫 무대를 모두가 고대하고 있다.
개서스와 탑소리커라는 독특한 픽을 소화해낸 올마스터가 신챔프를 꺼냈다.
여기저기 로드 오브 로드 팬사이트에서 소문을 듣고 몰려온 시청자들로 인해 종말전의 시청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다.
이윽고 게임이 시작되었다.
<소환자의 협곡에 온 것을 환영해요.>
서로의 긴장이 바싹 달아오르는 인베 타이밍은 무사하게 끝났다.
미니언이 젠되면 각 라인 별 선수들이 라인전을 시작했다.
하지만 조명받는 곳은 오직 한 라인.
탑에서 신챔프를 플레이하는 올마스터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리픈을 꺼내 들고 온 BJ대망신의 대결이었다.
배는 늘어난 종말전의 시청자들이 숨을 죽이며 지켜보는 탑라인전을 지켜본다.
올마스터와 대망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동시에 마지막 미니언을 잡고 2레벨을 달성했다.
그리고 시작하는 두 BJ간의 자존심을 건 대격돌.
스킬을 찍는 그 찰나의 틈조차 흐름이 끊기지 않았다.
신호탄이 되는 파란 구슬 하나가 관문을 통과해 어마어마한 속도로 쏘아나갔다.
<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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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작과 추천 부탁드려요~!
부족한 작가 힘내라고 쿠폰 보내주신 독자님들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