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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결자
철꾸라지팀 대 팡우팀의 멸망전.
3전 2세트의 경기에서 1패를 기록한 팡우팀.
패배의 요인이 돼버린 대망신은 고심 끝에 도박수를 두기로 했다.
도박이라고는 하지만 철저한 계산.
제임스를 뺏어오기로 마음먹었다.
-확실한 거 맞나요?
-그냥 밴을 하는 게..
3전 2선승제인 이상 막다른 골목에 몰린 게 맞다.
연이어 패배를 하게 된다면 그대로 끝.
급박한 상황이니만큼.제임스를 밴하는 게 안정적이다.
하지만 그걸론 안된다.
'분통이 안 풀려.'
신챔프 제임스가 리픈의 카운터였다니.
그 사실을 몰랐던 자신은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했다.
녀석은 테스트 서버에서 신챔프를 연습해온 게 분명하다.
정말 버그를 쓴다는 소문만큼이나 치사한 자식이 아닐 수 없었다.
이대로 어이없게 끝나버렸다간 뒤집어진 속이 안 풀린다.
제임스를 뺏어서 그대로 돌려줘야 한다.
신챔프 제임스는 한 마디로 사기다.
맞라인까지 경험한 자신의 생각이니 틀림없다.
포킹도 말이 안되는데 근접 형태는 맞딜마저 강력하다.
단점이 존재하지 않는 듯한 챔피언.
대망신은 제임스에 대해 그렇게 결론지었다.
결정적으로 스킬의 개수가 많다.
무기 변환을 제외하더라도 다른 챔프보다 스킬이 두 개는 더 있는 셈이다.
미달리처럼 6레벨 이후부터 변신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
1레벨부터 스킬을 두 개 쓴다.
상식에 근거해 생각해봐도 밸런스가 말이 안된다.
올마스터 녀석이 잘하는 게 아니라 챔프 자체가 좋은 거다.
'이번 판은 우리 팀이 선픽이야.'
대망신은 팀원들을 설득해 제임스 밴을 풀고 싶었다.
밴이 안됐다고 룰루랄라 신나 하는 상대팀에게서 제임스를 뺏어온다.
그야말로 완벽한 계획이 아닌가?
-일단 믿어 볼게요. 사기라는 말씀엔 저도 동의하니까.
-구슬 뻥뻥 날려대던데 어휴.. 범위 너프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무사히 팀원들의 동의를 얻어낼 수 있었다.
신챔프 제임스의 연습도 커스텀 게임을 파 간단히 끝냈다.
직접 다뤄보니 조금 복잡하긴 했지만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
혼돈의 네임드 유저 이 대망신이라면 못할 것은 없다.
'고맙게 써주마.'
올마스터 녀석이 잔머리가 참 잘 돌아간다.
제임스가 본서버에 나오기 전에 테스트 서버에서 어지간히 굴려본 모양이다.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는 법.
챔프를 쓰는 법도 아이템을 올리는 법도 모두 깨우쳤다.
실전에서 녹여내기만 하면 그만인 일이다.
약간 부족한 점은 있을 수 있겠지만 상관없다.
제임스는 개사기가 맞으니까.
대망신은 그렇게 확신했다.
'크큭, 포킹을 하다가 돌진해오는 놈은 밀어내고 망치로 때려 팬다. 좋아 좋아.'
머릿속에서 이미지 트레이닝도 완벽하다.
녀석이 자신에게 안겨준 고통.
똑같이 되돌려준다.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자신이 제임스를 가져가버린 순간.
올마스터 녀석은 과연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놀란 녀석이 허겁지겁 제임스를 대신 할 챔프를 찾을 광경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계획은 착착 진행됐다.
아니나 다를까, 상대는 예상대로 움직여줬다.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역시 제임스를 살려두었다.
대망신은 가벼운 마음으로 제임스를 뺏어왔다.
'크큭.'
분명 깜짝 놀랐겠지.
멘탈 수습이 안될 거다.
제임스로 대활약해 올마스터 녀석의 멘탈을 붕괴시킨다.
제대로 멘탈을 수습하기도 전에 3세트에서 초전박살을 낸다.
완벽한 계획을 실천해냈다며 대망신은 자화자찬에 빠졌다.
환하게 웃고 있던 대망신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었다.
올마스터가 정말 말도 안되는 무리수를 던져왔다.
-어? 리픈 가져갔는데..?
-뭐야? 제임스가 리픈 카운터 아니었어?
-정글 리픈.. 이겠지?
정글 리픈은 일반적으로 쓰이진 않는다.
십중팔구 탑리픈일 터,
자존심이 상한 올마스터가 홧김에 저질렀을 것이 분명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진 몰라도 내가 반드시 이긴다.'
운빨이 좋고, 버그를 썼다고는 하나 쿨통통과 1:1매치를 아슬아슬하게 이겼던 올마스터다.
어느 정도 리픈을 다루기는 할 테다.
하지만 그것은 명백한 오만.
그 쿨통통조차 리픈에 대해 자신에게 딴지를 건 적이 없었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하지 않던가.
대망신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지어졌다.
.
.
.
* * *
'대망신 자식, 망신 당하려고 작정을 했나..'
사실 어제 한 번 생각해보긴 했다.
내가 신챔프로 하드캐리를 해버리면 상대가 혹해서 뺏어버린지 않을까?
사기 챔프라고 착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사기 챔프.
틀린 소리는 아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쓸 줄 알았을 때의 얘기다.
일반적으로 4개의 스킬을 가지는 로드 오브 로드의 챔피언들.
하지만 제임스는 무기 변환 스킬인 궁극기를 포함해 총 7개의 스킬을 가진다.
즉, 챔프 숙련도가 어마어마하게 필요하다.
하다 못해 미래에 세계 최고 미드라이너라 불리게 되는 테이커정도의 재능이면 모른다.
재능이 있다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물론 그건 테이커 이야기고 뱁새가 황새 따라 가다간 가랑이가 찢어진다.
대망신 자식이 제대로 주제 파악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상대팀이 제임스를 가져간 채 시작해버린 두 번째 세트.
나는 리픈을 픽하고 설렁설렁 탑라인에 도착했다.
'아이고, 아주 개판 납셨어?'
대망신은 아직 제임스의 스킬 파악도 하지 못한 듯 보였다.
무기변환을 껐다, 켰다 반복하고 있다.
이러면 더 볼 것도 없다.
일방적인 학살이지.
나름대로 원거리 챔프를 해본 적은 있는지 CS를 툭툭 챙겨 먹는다.
나도 천천히 미니언 막타를 치며 라인전을 진행했다.
그리고 2레벨에 도달하자마자 붙는다.
<가속!>
서로가 2레벨을 달성하는 순간에 녀석은 내가 한 것과 똑같이 스킬을 날렸다.
관문을 깔고 파란색의 번개 구슬을 쏘아냈다.
'느려.'
제임스는 관문을 자신의 바로 앞에 바짝 깔아야 구슬의 탄속을 최대치로 높힐 수 있다.
조금이라도 늦게 관문을 깔았다간 투사체 속도가 천지차이다.
하지만 당연히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는 대망신.
굳이 스킬을 사용할 필요도 없이 조금 비트는 것으로 간단히 피해냈다.
설마 피해 낼 줄을 몰랐다는 걸까.
또다시 번개 구슬을 뻥뻥 쏴재껴 왔다.
피할 수 있는 건 피하고, 피하지 못하는 건 리픈의 E스킬 용기의 실드로 상쇄했다.
별 다른 피해를 주지 못하자 다급해진 모양이다.
3레벨을 찍자마자 쳐들어왔다.
붉은 망치, 근접 형태로 변환해 치고 들어온다.
이를 가볍게 받아친다.
쿠훙!
먼저 용기를 사용해 실드 쿨을 돌린다.
그리고 W스킬, 에너지 폭발로 스턴을 건다.
약 1초도 되지 않는 찰나의 기절.
짧지만 평캔을 때려 박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빠른 평캔에 제임스의 체력이 삽시간에 깎여나간다.
깜짝 놀란 제임스가 황급히 망치를 휘둘러 나를 밀쳐낸다.
제법 아프지만 실드로 막아냈따.
현재 리픈의 실드는 2.5초간 유지된다.
내가 입은 피해는 거의 전무하다.
어째서?
제임스를 플레이하는 대망신의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일 것이다.
분명 자신은 리픈으로 제임스에게 졌는데.
어째서 제임스를 하니 리픈에게 발리는 것인가.
두 말할 것도 없이 실력의 차이다.
좋은 챔프를 잡는다고 안되는 놈이 되는 게 아니니까.
회심의 딜교환까지 실패하자 부들부들 포킹으로 나를 견제하려는 녀석.
하지만 제임스에겐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녀석은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초반부터 마나를 펑펑 써버린 탓에 마나통이 벌써 바닥났다.
더 이상 포킹을 남발할 수 없다.
제임스는 마나 관리가 생명인 챔피언이다.
초반 라인 주도권을 잡아내고 근접 공격으로 미니언을 때려 마나를 채워야 한다.
제임스의 근접 평타엔 마나를 채우는 효과가 붙어있다.
처음 제임스를 플레이하는 사람은 대부분 놓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그렇게 6레벨에 도달했다.
마나가 없는 탓에 집타이밍조차 잡지 못한 제임스.
녀석에게 남은 건 밀린 라인의 CS를 받아먹는 것 뿐이다.
그러나 전 판과 달리 우리팀의 정글러도 활약을 한다.
'필연이지.'
마나가 없는 탓에 제임스는 갱호응이 불가능하다.
적정글의 입장에서 탑을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타워를 끼고 CS를 먹는다면 그래도 죽지는 않을 테니까.
반은 맞고 나머지 절반은 틀린 소리.
이러한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다이브라는 게 존재한다.
물론 동레벨, 동아이템으로는 해서는 안될 판단이다.
그 균형을 무너뜨리기 위해 존재하는 게 정글러다.
아군의 정글러 설인 두두가 높은 체력을 바탕으로 몸을 대준다.
1차 포탑의 공격을 대신 맞아준다.
그리고 내가 들어간다.
제임스는 관문의 속도 증가로 황급히 도망가려 했지만 두두의 얼음 덩이가 발목을 잡는다.
느려진 이상 남은 선택지는 1:1로 나를 쓰러뜨리는 것 뿐.
하지만 리픈이다.
그것도 궁극기를 배운 리픈이다.
여건만 주어진다면 1:1에서 극강을 자랑한다.
딜교환의 실패와 두두의 눈덩이에 반쯤 깎인 제임스의 체력.
돌진해 들어오는 나를 망치로 밀어내려하지만 헛수고다.
이미 예견된 일.
기회를 주지 않는다.
점멸로 거리를 접히며 스턴을 박아 넣는다.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풀콤보와 발화.
콰라랑!
적의 잃은 체력에 비례해 피해량이 증가하는 숙청자의 칼이 바람을 가른다.
애초부터 절반 가량 깎여있던 제임스의 체력.
더 두고 볼 것도 없이 아작이 난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이미 봇 라인에서 한 번의 교전이 있었던 터라 퍼블은 아니다.
그럼에도 충분한 성과.
하드캐리를 넘어 슈퍼캐리가 가능한 챔피언이 바로 리픈.
1킬은 먹은 이상 이 게임에서 실현할 수 있다.
이미 적라이너와 레벨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개서스가 AOS게임에서 RPG를 한다면.
리픈은 AOS게임에서 무협 영화를 찍는다.
리픈무쌍.
로드 오브 로드를 하는 유저라면 모를 리가 없는 신조어다.
단순 AD템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실드량이 올라간다.
극딜 리픈의 데미지는 말해서야 입만 아프다.
혼자서 딜과 탱을 다해 먹으며 글자 그대로 무쌍을 찍는다.
내가 첫 코어아이템으로 선택한 아이템은 배고픈 하이드라.
몸이 종잇장같이 약한 챔피언을 녹여내기엔 더없이 좋은 아이템이었다.
.
.
.
* * *
'어째서?'
대망신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분명 제임스로 하드캐리를 할 작정이었다.
리픈따위.
자신도 장인급에 든다고 자처하지만 솔직히 말해 좋은 챔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리픈이 이렇게 괜찮은 챔피언이었단 말인가?
이해가 안되는 순간 폭딜.
그리고 믿었던 제임스는 뭐 이리 약한지 모르겠다.
'마나도 부족하고.. 무엇보다 손가락이 꼬여.'
스킬이 많아도 너무 많다.
검을 하나만 사용하던 사람에게 한 자루를 더 들려준 꼴이다.
이도류가 일도류보다 세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 단순한 사실을 직접 당해보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처음 다뤄본다는 점이 생각 이상으로 크게 작용했다.
마스터 이상의 실력을 가진 상대에게 시험 삼아 뽑을 픽이 아니었다.
-그냥 하던 거나 하시지..
-근데 올마스터 잘하긴 잘해요. 진 거 같은데 그냥 마음 비우죠.
게임 스코어는 15 : 7
얼핏 해볼 만한 것 같은 상황이지만 아니다.
리픈이 잘 커도 너무 잘 컸다.
막말로 상황만 조금 받쳐주면 혼자서 5:1 매드무비를 찍을 정도다.
방금 전 한타에서도 점멸을 활용해 아군 원딜을 1초만에 찢어버렸다.
자신도 리픈을 하는 사람이지만 의아했다.
웬만큼 잘 성장해도 한타페이즈에 가면 별 활약을 할 수 없는 게 리픈이다.
그런데 녀석은 리픈으로 한타도 잘하고 있다.
잘하기를 넘어서 혼자 다 해먹는다.
슬슬 죽는다 싶으면 실드쿨이 돌아오고.
갑자기 Q스킬로 아군을 패버린다 싶더니 체력이 쭉쭉 찬다.
이윽고 대망신은 녀석과 자신의 결정적인 차이를 알아챘다.
Q스킬 중간중간 들어가는 평타의 속도가 격이 다르다.
직접 당해보니 확신할 수 있었다.
절대 눈의 착각이 아니었다.
'제길, 역시 버그다.'
버그가 아니라면 설명이 안된다.
하지만 오히려 이것은 전화위복일지 모른다.
부족 했던 버그 영상의 표본.
기록이 하나하나 남는 종말전 경기의 영상으로 보충한다.
이미 쿨통통과의 1:1 매치에서 제기되었던 의문이다.
녀석이 리픈으로 버그를 쓴다는 사실.
한 번이면 우연이나 영상 미스로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몇 번씩이나 보여주면 빼도 박도 못한다.
'버그가 아니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
지난 밤, 팡우 형님까지 꼬셔 준비했던 계획의 성공 확률이 더욱 더 올라간다.
아니, 100%에 수렴하다.
명명백백한 증거 앞에서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쿨통통은 심증만 가지고 녀석에게 승부를 걸었다가 로드 오브 로드를 접어야 했다.
하지만 자신은 다르다.
확실한 증거.
그를 뒷받침 해줄 인맥.
빠져나갈 구멍따위 만들지 않는다.
저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올마스터를 땅바닥에 떨어뜨린다.
그리고 자신의 인지도를, 이전에 활약했던 AOS게임 혼돈만큼이나 끌어올린다.
단점으로 지적돼오던 조금 안 좋은 이미지.
인성에 관한 부분도 해결이 되는 셈이다.
올마스터 녀석의 버그 유저란 사실을 밝혀내면 늘 정의를 부르짖는 잉벤에서 칭송 받는다.
한국 최고의 로드 오브 로드 커뮤니티 잉벤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확고히 굳힐 수 있다.
정의의 사자.
해결사.
온갖 좋은 수식어는 다 붙게 된다.
생각되로 되기만 한다면.
'한 마디로 인생이 활짝 피는 거지.'
게임은 패배하지만 역으로 마음은 널널하다.
대망신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올마스터의 플레이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 작품 후기 ============================
선작과 추천 부탁드려요~!
부족한 작가 힘내라고 쿠폰 보내주신 독자님들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