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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저스 리그
대망신, 그마카림, 그리고 팡우.
악의가 다분한 흑색선전.
그들이 끝이 아니었다.
알게 모르게 나를 헐뜯는 무리들이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깨진 유리창 이론이라고 하던가.
실제로 행해졌던 실험이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 뒀을 때.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된다는 증명된 이론이다.
내가 리픈버그를 썼다는 명분.
이에 숟가락을 얹으려는 인간들이 적지 않다.
아예 혼자서 선전포고를 하고 배수진을 친 쿨통통과는 다르다.
머리를 썼다.
증거를 올린 이가 본인이 아닌 데다 선동을 할 뿐 직접적으로 헐뜯지는 않는다.
설사 게임사에서 버그가 아니라 밝힌다 한들 그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유야무야 넘어갈 것이다.
'로드 오브 로드, 한국 본사에 찾아가야 하려나.'
문의 메일을 보내 놓긴 했지만 답장이 언제가 될지 모르니 조급해진다.
물론 아직까지는 딱히 위기랄 건 없다.
그저 짜증이 나고 신경이 쓰일 뿐이다.
이미 장인 어르신 코너에서 한 번의 증명을 했다.
직접 게임사에 문의를 했다고 잉벤에 글까지 올렸다.
아무리 잉벤이 다른 사람 물어 뜯기 좋아하는 사이트더라도.
게임사의 공식적인 답변이 있기 전에는 상황을 봐야 한다는 입장이 다수다.
하지만 내 기분이 나쁘다.
'제길, 드러운 자식들.'
너무 한 번에 확 잘나가버린 탓일까.
나를 어떻게든 깎아내리려 하는 이들이 생기고 있다.
만약 이번 사건이 흐지부지 끝난다 해도 다음이 없을 거란 보장이 없다.
어떻게 대처하는 게 최선일지.
골치가 썩는 와중에 한 통의 쪽지까지 와버렸다.
'CGVMAXIM..!'
쪽지를 보낸 이는 다름 아닌 종말전에서 내 탑소리커에 탈탈 털린 씨지맥이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모르지 않는다.
지금 뿐만 아니라 미래의 일까지 말이다.
씨지맥은 나를 적대한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씨지맥은 이번 사건의 원흉, 대망신과 절친한 사이니까.
내가 아무리 BJ를 시작한지 얼마 안됐어도 그쯤은 알고 있다.
더욱이 미래에서도 그는 대망신과 인연이 깊었다.
파프리카 TV의 BJ들간에는 친목 라인이라는 게 있다.
같은 라인의 BJ들끼리 방송 컨텐츠를 같이 열기에 티가 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씨지맥이라는 사람 자체가 문제 있었다는 기억은 없었다.
대망신을 싫어하는 나지만 씨지맥에 대해 나쁜 감정이 들진 않는다.
게다가 그는 현재 내 버그 혐의 사건에 대해서도 말을 아끼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궁금한 노릇.
어떤 목적으로 나에게 연락을 해온 것일까.
나는 일단 그가 보낸 쪽지의 내용을 정독하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올마스터님.
종말전에서 한 번 뵜었던 CGVMAXIM입니다.
피차 아는 사이니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빙빙 둘러 말하지 않는다면 환영하는 바다.
아무리 품격있는 조사를 붙인다 한들 중요한 건 내용의 본질이다.
적대하는 사이에서 가식따위 의미가 없다.
묵묵히 읽어본 내용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권유..?'
씨지맥이 나에게 제안한 내용.
적대적이긴 커녕 호의적이기까지 하다.
호의를 넘어 나를 도와주겠다고까지 한다.
도대체 왜?
설명해온 이유가 아예 납득이 가지 않는 건 아니지만 알쏭달쏭한 노릇이다.
그래도 덕분에 하나 기억할 수 있었다.
'LCL.. 확실히 놓치고 있었어.'
그럴 수밖에 없다.
앞만 보고 뛰어온 나는 빙 둘러가는 길을 생각하지 못했다.
프로를 목표하는 길은 솔랭의 성적뿐만이 아니었다.
미래의 롤챔스와 현재의 롤챔스.
가장 변화된 것이 바로 승강전의 방식이다.
미래의 롤챔스는 정규팀들의 대회다.
정규팀들은 유명 기업들의 막대한 후원을 받고 있기에 오프게임넷도 무시하기 곤란하다.
때문에 성적이 안 좋더라도 2부 리그 밑으로는 떨어뜨리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2부 리그의 아래는 어마어마하게 중요하다.
아마추어 리그, 로드 오브 로드 챌린저스 리그(Load Of Lord Challengers League).
약칭 LCL은 프로 리그인 롤챔스를 가기 위한 관문이다.
여기서 우승한다면 롤챔스의 일각이 될 수 있다.
그 사실 자체는 예나 지금이나 같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미래의 LCL은 오프라인으로 치러진다.
대회 울렁증.
온라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팀이 정작 롤챔스에 나가서는 기를 피지 못하는 경우 때문에 만들어진 규칙이다.
얼핏 합리적인 규칙 같지만 단점도 존재한다.
인맥의 필요성이 급증하게 된다.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마주해야 하기에 사람을 가려 받으려 한다.
더군다나 미래에 주류 게임이 되어버린 로드 오브 로드는 아마추어 리그라 하더라도 그 수준이 만만치 않다.
보편적인 실력의 차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차이.
솔랭과 대회 경기의 차이.
웬만큼 뛰어난 아마추어라 할지라도 이 벽을 넘기가 녹록치 않다.
사실상 바늘 구멍에 가깝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온라인 대회.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를 스카웃한다.'
예선전부터 결승까지 온라인으로 치러지기에 대회를 치르는 선수의 입장에서 부담이 적다.
아직 로드 오브 로드가 알려지지 않은 만큼 평균 실력도 당연히 낮을 수박에 없다.
무엇보다 프로의 길이 활짝 열려있다.
시즌2는 프로게임단이 서서히 발을 넓히는 시기다.
서서히 구성을 갖춰가는 프로게임단들은 뛰어난 선수에 목이 마르다.
물론 롤챔스 참가 자격은 우승팀에게만 주어지지만 낭중지추라는 말이 있다.
못하는 팀일지라도 빼어난 자는 법.
각 프로게임단들이 그런 선수들을 스카웃하려 한다.
솔랭에서 날고 기는 사람들을 스카웃하는 게 일순위지만 로드 오브 로드는 팀게임이다.
가진 바 실력에 비해 솔랭에서의 성적이 낮은 사람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클끼리.
유명한 프로임에도 솔랭에서는 그랜드 마스터조차 달지 못했다.
컨디션이 안 좋을 땐 다이아1로 떨어지는 경우까지 있었다.
초식 정글러만 하기 때문에 솔랭 캐리력이 부족하다.
하지만 팀게임에서는 전혀 달랐다.
'한 마디로 계산기 같은 정글러지.'
피지컬의 부족을 팀플레이와 칼같은 운영으로 극복해낸다.
더욱이 클끼리는 다른 포지션이 아닌 정글러다.
아군의 상황을 읽고, 오더를 하며, 적재적소의 타이밍에 나타난다.
그것이 바로 프로 레벨에서 원하는 정글러.
클끼리처럼 솔랭 점수는 낮지만 대회에서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LCL이라는 아마추어 대회에 뛰어든다.
물론 올라갔을 때의 이야기다.
프로게임단이 주목하는 건 오직 상위 몇 개의 팀.
그 안에 들지 못한다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때문에 프로가 되고 싶다는 씨지맥이 나같이 실력 좋은 팀원을 원한다는 건 이해가 되는 노릇이지만.
'하필이면 왜 나한테?'
내 실력이 뛰어난 건 두 말할 것도 없이 사실이다.
종말전에서 씨지맥을 이기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씨지맥은 인맥이 있다.
아직 그랜드 마스터에도 들지 못한 나에게 목을 맬 이유가 없다.
그랜드 마스터 팀원이 구하기 힘들다는 이유라면 마스터라 한정해도 상관없을 터다.
나보다 점수가 높은 유저 중에 LCL에 관심을 보이는 이는 찾아보면 분명히 있을 테니까.
나를 골탕 먹이려는 작전일지 모른다.
함정일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끌린다.'
LCL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내 실력의 증명.
프로게이머로서의 등용문.
그 두 가지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다.
나에게 있어 BJ는 발판에 지나지 않는다.
이래 봬도 철저한 프로 지망이다.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에서 인정 받는 스타가 되고 싶다.
확실히 지금까지의 나는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만 했다.
솔랭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프로게임단에서 컨택이 오기까지 하염없이 기다릴 작정이었다.
실제로 유명한 프로게이머들은 대부분 그렇게 스카웃됐다.
때문에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BJ를 한 덕에 금전적으로 여유도 있었고.
조금 천천히 가도 되지 않나 안이한 생각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현실에 안주할 수는 없다.
대회에 나가서 직접 실력을 증명해 프로가 된다.
끌리지 않을 수가 없는 노릇이다.
'뭣하면 씨지맥을 끼지 않아도 되니까.'
내가 직접 팀을 구성해도 된다.
당장 떠오르는 사람은 리뮤.
그 외에는.
'딱히 없네...'
생각해보니 인맥이 정말 없다.
굳이 따지자면 한 명은 더 있다.
스타일짱짱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다리웁트 장인.
하지만 이 녀석은 문제가 조금.
'결국 쿨통통 라인이야.'
평소라면 모르되 지금은 사실상 전시다.
나를 헐뜯는 이들이 있는 지금은 배신을 해도 이상하지 않다.
결정적으로.
'못해.'
끽해야 마스터.
객관적으로 보자면 다이아1이다.
챔프폭 또한 좁다.
다리웁트밖에 하지 못하는 장인충이다.
밴이라도 된다면 그나마의 기량조차 발휘하지 못한다.
씨지맥의 권유는 솔직하게 혹할 수밖에 없다.
그는 장인충도 아닐 뿐더러 그랜드 마스터의 실력을 가졌다.
게다가.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현재 씨지맥은 그랜드 마스터의 말석이다.
200명밖에 안되는 최상의 실력자 중 끄트머리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눈이 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씨지맥은 향후 그랜드 마스터 상위까지 올라간다.'
내가 알고 있는 미래에서 씨지맥의 절정기는 시즌3이었다.
신챔프 거미여왕, 애꾸사자가 출시되던 시기.
그 둘을 수준급으로 다루게 되는 몇 안되는 유저였다.
이는 CGVMAXIM의 아이디가 알려지게 되는 계기가 된다.
물론 신챔프의 꿀을 빨았던 만큼 챔프빨은 좀 있었다.
그럼에도 그랜드 마스터다.
현재의 실력과 성장 가능성.
두 가지르 고려한다면 눈 여겨 볼 만하다.
그가 진심으로 나에게 LCL팀을 꾸리자 권유한 것이라면 고려할 가치가 충분하다.
만약 정말 선의로 쪽지를 보낸 것이라면 큰 힘이 된다.
'아직 여유가 있어.'
대회 당일까지 시간이 있다.
접수가 마감되기까지 일주일 가량 남았다.
그 기간동안 씨지맥을 떠본다.
어떤 사람인지, 함께 할 가치가 있는지.
판단해보고 불확실하다 여겨지면 버리면 그만이다.
일단 그와 만나보는 쪽으로 마음이 움직였다.
당연히 온라인에서의 이야기가 아니다.
직접 만나서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를 나눠봐야 한다.
만난다고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 수 있는 노릇은 아니지만 사람의 눈은 마음의 창문이다.
악의적인 마음을 가지고 의도적인 접근을 한 것이라면 티가 나지 않을 수가 없다.
타닥.
타닥.
나는 씨지맥에게 답장을 보냈다.
내용은 이와 같다.
─올마스터입니다.
보내주신 쪽지의 내용을 고려해보려 합니다.
하지만 확답을 내리기 전에 당신과 만나 뵙고 싶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해주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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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작과 추천 부탁드려요~!
부족한 작가 힘내라고 쿠폰 보내주시는 독자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작품 공지에 팬아트 올라왔습니다.
뿔테님이 그려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