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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저스 리그
씨지맥에게서 답장이 왔다.
지체할 것도 없이 바로 다음 날 오후 4시에 약속을 잡았다.
서울의 강남역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강남역은 오랜만이네.'
분당 미금역에 사는 내가 강남역까지 와버렸다.
씨지맥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당연히 아니다.
난 애초에 그가 어디 사는지조차 모르니까.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어.'
로드 오브 로드의 게임사.
본사는 지구 건너편 미국에 있지만 서울에 지사가 있다.
한국 지사.
조금 전, 난 그곳에 방문하고 왔다.
문의 메일을 기다리는 건 성미가 안 맞았다.
서둘렀던 탓에 예약을 잡지 못했다.
때문에 조금 시간을 낭비하긴 했지만 상담실에서 담당 직원과 이야기를 마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결과물은 별 것 없었다.
'시간이 필요하다라.'
내 리픈의 평캔 영상에 대해서는 담당 직원도 모르지 않았다.
잉벤이 국내 최대 규모의 롤 커뮤니티인 만큼 로드 오브 로드 한국 지사에서도 체크를 하는 모양이다.
더욱이 그 내용이 게임 내적인 부분 버그라면 당연히 관심이 가지 않겠는가.
일단 간단하게 확인은 해보았다고 한다.
비인가 프로그램의 사용 여부는 보이지 않았지만 당장 공식 입장을 표명하기는 힘들단다.
본사에서 공문이 내려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며 양해를 구해왔다.
거기에 소요되는 시간이 약 3일.
최소 1주일은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빠르다.
그래도 결국 난 그 사흘 간을 참아야만 한다.
입지 않아도 될 피해를 입는 만큼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투덜투덜 대며 씨지맥과 약속을 잡은 카페에 도착했다.
위이잉.
플라스틱으로 된 버튼을 달칵 누르자 카페의 문이 열린다.
현재 시간은 오후 4시를 2분 정도 넘겨 있다.
아마 씨지맥은 카페 어딘가에 이미 앉아있을 터.
그를 찾기 위해 고개를 두리번 대기도 전에 먼저 반응해왔다.
"여깁니다. 시현씨."
혹시 올마스터라고 부르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 마디를 들었을 살짝 불안했지만 들려오는 건 본명이었다.
아무래도 BJ본명은 기본적으로 공개가 되긴 한다.
카페의 문에서 멀지 않은 창문 쪽의 테이블에 그가 있었다.
종말전 조추첨식에서 한 번 만났었던 CGVMAXIM.
본명 김만호씨가 말이다.
"이렇게 뵐 줄은 몰랐네요 만호씨."
어떤 사정이 있던 간에 일단 씨지맥은 대망신쪽의 사람이다.
설사 같이 LCL을 목표로 하고 싶다는 게 본심이라고는 해도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다.
때문에 난 쪽지로 답장을 보낼 때 제안을 했다.
입장을 확실히 하라고.
나를 엿 먹이려 하는 대망신쪽 인간들과 함께 하기는 힘들다.
중립이라 표방해도 마찬가지다.
말이 좋아 중립이지 박쥐나 다름이 없다.
언제 입 싹 닦고 다른 쪽에 붙을지 누가 안단 말인가.
수단에 대해서는 맡기기로 했다.
씨지맥이 과연 어떤 식으로 풀어나갈지.
유심히 지켜보면 그가 나에게 접근한 목적을 확실히 알 수 있을 터다.
물론 그동안 대망신과 지내온 시간이 있는만큼 마음먹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간은 넉넉히 주었다
그를 과소평가했는지도 모른다.
"혹시 잉벤 보셨습니까?"
"네? 당연히 봤습니다만."
의도가 이해되지 않는 물음이다.
화제글의 영상이라면 내가 보지 않았을 리 있을까.
혹시 그 부분부터 차례차례 짚어서 이야기를 꺼낼 생각이라면 참 굼뜬 사람이다.
"아뇨. 제가 올린 글 말입니다."
"그건 본 적이 없는데요..?"
로드 오브 로드 한국지사에 방문하기 위해 집을 나선 시간은 늦은 아침이다.
나서기 전만 해도 씨지맥이 올린 글은 없었다.
그렇다면 그 사이에 무언가가 있었다는 의미.
대체 무슨 짓을 했단 말인가.
"제 입장을 밝히라 하셨죠? 그래서 했습니다."
"제가 오늘 좀 바빴어서 아직 보지 못했는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지금 확인해보겠습니다."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는 노릇이다.
백문이 불여일견.
나는 마주 앉아 있는 씨지맥에게 양해를 구하고 스마트폰을 켜 잉벤 사이트에 들어갔다.
아침까지는 분명 존재하지 않았을 화제글이 눈에 띈다.
물론 화제글이야 하루에 몇 번이고 바뀌지만 1위 글은 어지간해선 유지가 될 텐데.
내가 알지 못하는 글이 새로 올라와 있었다.
─BJ올마스터는 버그 유저가 아닙니다.
제목부터가 명백히 내 편을 들어주는 듯한 내용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라면 실망이다.
단순히 편을 들어주는 정도로 사람을 믿을 만큼 난 어리숙하지 않으니까.
찬찬히 내용을 살펴보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네, CGVMAXIM입니다.
저도 올마스터님과 종말전에서 라인전까지 치렀던 만큼 이번 사건에 대해 한 마디 해보려 합니다.
하지만 BJ로서가 아닙니다.
저는 그랜드 마스터 랭커로서 화제가 된 버그 영상을 분석해보겠습니다.
'분석?'
생각지도 못했다.
BJ가 아닌 랭커로서의 관점.
그것도 분석이라니.
자신의 실력에 어지간히 자부심이 있지 않다면 할 수 없는 발언이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방향성이 많이 다르다.
기껏해야 이 정도일 거라 생각했다.
아직 게임사의 공식 입장도 안 나왔는데 분쟁을 유도하는 것이 말이나 되나.
랭커로서 분석은 정말 신기한 생각이다.
과연 어떤 식으로 분석을 했을까.
나는 호기심을 가지고 스크롤을 쭉 내려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대망신, 그마카림 같은 분들이 티어가 낮잖아요.
그래서 잘 모르시나 본데 롤에는 평타캔슬이라는 게 있습니다.
제가 우콩장인이었다는 거 아시는 분들은 아시죠?
그 우콩을 할 때 평캔이 엄청나게 중요합니다.
평타 쓰고 Q스킬을 누르면 다음 평타가 빠르게 나가요.
요즘이야 당연히 하는데 시즌1 때만 해도 정말 획기적이었거든요?
리픈도 비슷한 케이스라 보고 있습니다.
'호오.'
우콩의 평타를 강화시켜주는 Q스킬, 여의봉 일격.
평타를 치고 여의봉 일결을 사용하면 후속 딜레이 없이 바로 내리칠 수 있다.동
즉, 평타의 모션을 캔슬한다.
약칭 평캔이다.
이 자체는 다이아정도 유저만 돼도 신경쓰는 부분이다.
하지만 리픈의 평캔은 우콩과 달리 스킬을 누른다고 나가는 게 아니다.
때문에 연관해 생각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시즌1에는 게임을 안 했어서 몰랐지. 당시에는 그랬었구나.'
사고의 구조가 얽매이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거미여왕과 애꾸사자라는 신챔프를 가장 먼저 발굴한 사람의 창의력인가.
씨지맥에 대한 평가가 조금, 아니 많이 올라갔다.
─제가 문제의 리픈 영상을 수십 번이나 돌려봤습니다.
확신을 가지기 위해 조금 더 돌려보긴 했습니다만.
사실 한 열 번쯤 봤을 때 알 수 있었죠.
물론 아래 티어 분들은 눈치 못 챌 만해요.
그러게 잘 모르면 입 함부로 놀리는 거 아닌데ㅋ
원래 아는 만큼 보이는 법 아니겠습니까?
중간에 있는 ㅋ이라는 자음.
사람의 신경을 건드린다.
다분 의도가 묻어나오는 멘트다.
대망신을 포함해 나를 까는 이들에 대한 명백한 도발이다.
─물론 그 리픈평캔 방법은 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저라 해도 하루이틀 수고해서 알아낼 방법이면 잉벤에 벌써 올라왔을 겁니다.
필살기는 원래 숨기는 법이니, 올마스터님 보고 밝히라 하는 것도 어불성설입니다.
자신의 밑천, 누가 공개하고 싶겠습니까?
그리고 솔직히 웃긴 게ㅋ
올마스터님은 직접 오프게임넷까지 가서 인증도 했고.
다루는 챔프도 한두 개가 아닌데.
언제까지 리픈으로 물고 빨고 늘어질 건지 참ㅋ
그럴 시간에 1점이라도 더 올려서 게임보는 눈 키웠으면 좋겠네요.
씨지맥이 올린 화제글에 수백 개나 달린 댓글들.
하나하나 볼 수는 없었지만 나쁜 내용은 아니었다.
그 중에서도 눈이 가는 댓글을 꼽자면.
-BJ대망신 마스터인데 게임보는 눈이 없데ㅋㅋㅋ 작성자 티어 어디냐?
-ㄴ그랜드 마스터요
-아 ㅈㅅ;
-ㅁㅊ 1초 아닥행. 정의구현 오졌다;
그랜드 마스터.
200명밖에 되지 않는 최상위 티어의 위용.
어중간한 반박은 한 마디로 닥치게 만든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이 화제글을 클릭하는 것도 아닐 테고.
자신이 좋아하는 BJ를 따라 나를 욕하는 사람은 남아있을 터다.
하지만 이 정도라면 기대를 가뿐히 넘었다.
사실상 대망신과는 척을 졌다고 볼 수 있을 정도다.
'조금 더 지켜 보긴 해야겠지만.'
의심병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그래도 신중해서 나쁠 건 없다는 게 내 가치관이다.
일단 이 자리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데엔 부족함이 없는 듯하다.
"LCL, 함께 하고 싶다고 하셨죠? 어디 이야기나 한 번 들어봅시다."
.
.
.
* * *
씨지맥과는 꽤 오랜 시간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결과는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집에 도착한 나는 바로 키보드를 두들겨 작업을 시작해야 했다.
'설마 그런 사람이었을 줄이야.'
고작 그 정도밖에 안되는 사람이었다니.
실망을 금치 않을 수가 없다.
그랜드 마스터씩이나 되는 주제에.
'영입할만한 팀원이 아무도 없다는 게 말이 돼?'
내가 알고 있는 미래에서 그가 프로를 하지 못한 이유.
그리고 어제 나에게 쪽지를 보냈던 이유.
알 것만도 같다.
눈이 드럽게 높다.
엄밀히 말해서 씨지맥의 인맥은 넓은 편이다.
같이 할 사람도 차고 넘친다.
대망신과 척을 지는 발언을 했음에도 그를 따르는 사람이 한가득이었다.
그것도 대부분이 다이아 이상의 고티어 유저들.
<근데 솔직히 제 친창 중에 대회나갈 수준으로 쓸만한 애들은 거의 없어서요.>
너무 지나치게 솔직했다.
다이아는 그렇다 쳐도 그랜드 마스터의 친구들도 분명 있을 텐데.
아니면 혹시 자신의 티어대 사람들하고는 접점이 없는 것일까.
여기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다른 팀에 속해있는 애들이 대부분이기도 하고. 사실 걔네들 포함해도 딱 감이 오는 사람은 없네요.>
눈이 정말 더럽게 높았다.
하지만 반대로 해석하면 나에게는 감이 왔다는 뜻.
그는 실제로도 나를 고평가 해주고 있었다.
조금 부담이 될 정도로 말이다.
'딱히 싫은 기분은 아니지만.'
타인이 나를 인정해주고 높게 평가해준다는 사실.
쑥스럽기는 하지만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것도 다름아닌 그랜드 마스터다.
내가 수년 간 노력해도 단 한 번도 이루지 못했던 영역의 사람이다.
회귀를 한 이후로 내내 걱정스러웠다.
분명히 성공 가도를 걷고 있지만.
실패도 한 적도 없지만.
몸은 편안해졌어도 마음이 불편한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꼬이고 꼬였던 인생이 갑자기 잘되니 내심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더욱이 내가 가지고 있는 장점.
챔프폭이 넓다는 것과 꿀챔프를 미리 알고 있다는 것.
이말인 즉, 나라는 사람 자체는 얕잡아 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전에 아조부에서 연습생 제의가 왔을 때도 그랬지 않았던가.
아조부가 향후 엄청난 성세를 이룰 프로게임단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거절했다.
단순히 연습생이 하기 싫어서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기분이 상했다.
그리고 가슴을 졸였다.
혹시 나는 꿀챔프를 알고 있다는 것 이외엔 별 볼 일 없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게 아닐까.
오늘 씨지맥과 대화를 나누고 안심하게 되었다.
그는 내가 탑소리커같은 특이한 챔프를 하고 있다는 것자체도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진짜는 내 라인전 실력이나 운영.
특히나 판단력 부분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렸다.
그것도 빈 말이 아닌 조목조목 이유를 짚어가면서 말이다.
본인인 나로서는 알 수 없었던 부분까지 이야기해줬다.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관조하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확실히 성장하고 있다.
피지컬도 판단력도, 그리고 나라는 인간 자체도.
회귀한 이후 내내 불안했다.
그 불안의 이유는 실력도, 돈도, 기반도 아니었다.
바로 자신감이었다.
쿨통통이나 대망신처럼 나를 욕하는 이들.
지나치게 신경 썼을지도 모른다.
만약 내 실력에 대해 확고한 자신이 있었다면 분명 웃어 넘겼을 것이다.
순수하게 실력으로 맞받아쳤겠지.
'더 이상 주저하지 않는다.'
그 누가 덤벼와도 철저하게 실력으로 깔아뭉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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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작과 추천 부탁드려요~!
부족한 작가 힘내라고 쿠폰 보내주시는 독자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작품 공지에 팬아트 올라왔습니다!
뿔테님이 그려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