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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맛 치킨
어제 저녁 조깅길에서 아주 오랜만에 질긴 인연을 만났다.
길고양이 예은.
나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 놓으니 의외로 관심이 있어 보였다.
겉으로는 언제나와 다를 바없이 시큰둥하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희한한 일이다.
어지간한 이야기는 대놓고 무시하던 그녀가 관심을 보인 셈이니까.
어쩌면 로드 오브 로드에 대해 꽤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정말 처음으로 이야기가 통한 날이었다.
나잇값 못하고 가슴이 설레이고 말았다.
잠을 설칠 것만 같았던 밤.
나는 지난 번 꽐라가 됐던 꼼장어를 먹은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셨다.
물론 지난번처럼 예은을 만나는 꿈을 꾸진 않았다.
지갑에서 돈이 따블로 나가는 일도 없었다.
술기운 덕에 푹 자고 일어난 나를 반겨주는 건 오직 숙취 뿐이었다.
조금 머리가 띵하긴 하지만 움직일 만은 하다.
나는 해장을 하기 위해 가스불을 켰다.
송송 썰은 고추와 콩나물로 해장 라면을 끓였다.
보글보글.
냄비를 올려놓고 자연스럽게 켜는 컴퓨터.
언제나의 아침 일과와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한 가지가 틀려졌다.
접속한 내 계정의 친구 창에 그렇게나 찾았던 아이디가 보인다.
'어? 이 자식, 접속해 있네.'
싸가지는 정말 없지만 마음을 터놓은 몇 안되는 친구.
리뮤 녀석이 오랜만에 게임을 접속해 있었다.
아마추어 리그 LCL에 함께 나가자 권유할 생각이었는데 좋은 타이밍이었다.
이 녀석이 성격은 좀 파난 났어도 실력 하나는 괜찮다.
단점을 찾자면 게임을 좀 대충하는 편이고, 팀원과 충돌하는 일이 잦다는 정도.
실질적인 실력은 결코 마스터 티어 정도가 아니다.
미래가 아닌 현재의 내가 보증한다.
-야.
혹시 또 나가서 들어오지 않기라도 하면 곤란해진다.
나에게 남은 시간은 겨우 나흘.
나흘 안에 LCL에 나갈 팀원을 전부 구해야만 한다.
라면이 보글보글 끓고 있음에도 서둘러 채팅을 쳤다.
녀석의 생각이 있뜬 없든 일단 물어볼 가치가 충만한 녀석이다.
-왜?
서로가 서로에게 성의없는 단답형이다.
그만큼 거릴 것 없는 사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롤뿐만 아니라 이전에 하던 게임부터 수년을 함께 해왔다.
본론을 꺼내는 데엔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끓여 놓았던 라면이 팅팅 부는 걸 눈뜨고 지켜봐야만 했다.
대놓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상황이 그럴 수가 없었다.
'이 녀석 프로하고 싶지 않아 보였었지.'
내가 아는 미래에서 리뮤는 그랜드 마스터를 밥 먹듯이 갔다.
그런 주제에 프로를 생각하는 눈치는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구태여 물은 적은 없다.
아니, 있었던 것도 같은데 대답은 듣지 못했다.
대회 권유를 거부할 가능성이 아마 농후할 테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하던가.
'어..? 사실 별 기대 안 했는데..'
리뮤에게서 긍정적인 단답이 들려왔다.
뾰로통한 어조이긴 하나 분명 하겠다는 의미다.
사전 설명도 충분히 했으니 착오가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파탄난 인성때문에 불안 요소가 있긴 하지만 일단 팀에 넣어도 괜찮을 것 같다.
'어차피 대체할 카드도 없으니까.'
리뮤만한 실력자라면 거부할 이유가 없다.
물론 리뮤 녀석이 문제아이긴 하다.
천상계 유저들 중에 사이가 안 좋은 이들이 상당히 많았으니까.
사이가 안 좋기를 넘어 이를 박박 갈고 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다.
하지만 아직 시즌2다.
업보를 쌓지 않으신 건 아니지만, 아직까지 크게 불거질만한 문제는 만들지 않았다.
더욱이 LCL, 로드 오브 로드 챌린저스 리그는 온라인으로 치러진다.
오프라인이 아니기에 시비때문에 골치 아플 가능성은 적을 것이다.
아니, 시비라는 표현은 정정해야 한다.
정당한 사유.
사실 리뮤 자식이 솔랭에서 한 꼬라지를 보면 인과응보다.
픽창에서 팀원과 싸우다 부활과 텔레포트 스펠을 드는 건 다반사.
지 마음에 안 드는 플레이를 한 녀석을 만나면 잠자코 트롤을 해버리기도 일쑤다.
그것도 정상적인 픽을 한 채 게임을 시작하는 악랄한 방법까지 취해댄다.
왜?
대놓고 트롤픽을 박으면 닷지 될 수 있으니까.
픽창에서는 정상적으로 하는 척 연기하다가 게임이 시작하면 태도가 돌변.
적에게 고의적으로 죽어준다.
채팅창으로 나쁜 말을 내뱉는 건 설명이 필요없다.
그런 일을 한 번 겪으면 누구라도 철천지원수가 되기 마련이다.
만약 대회가 오프라인 리그였다면 큰일 났을 터다.
악연이 쌓인 사람들이, 아니 피해자분들께서 정당하게 하소연을 해올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리뮤 얼굴 한 번 보기 위해 따지러 올 가능성이 높다.
다행히도 LCL은 온라인 리그이기에 그런 짓은 못할 것이다.
있다고 해도 내 선에서 어찌어찌 무마시키는 게 가능하다.
아마도 말이다.
'어쨌든 한 명은 구한 셈이고.'
이제 두 명만 더 구하면 팀이 완성된다.
게다가 나만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내가 이렇게 수고한 만큼 씨지맥도 분명 결과를 만들어 올 테니까.
-올마스터님. 찾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반응이 왔다.
불어버린 콩나물 라면을 어거지로 먹던 와중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괜찮은 팀원을 구했다며 씨지맥이 자랑스럽게 이야기해왔다.
일이 상당히 잘 풀려가는 듯 하다.
그런데 어째서 일까?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말을 꺼내기 조심스러워 한다.
'설마 하지만..'
혹시 리뮤 같은 막장 유저를 구한 건 아닐런지.
다행스럽게도 그건 내 지레짐작이었다.
씨지맥이 찾아왔다는 팀원의 아이디를 듣자마자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어떻게 데려와도 그런 새.. 아니, 분을.
그랜드 마스터.
심지어 몇 달전에는 상위권까지 기록한 유저였다.
현재는 다소 폼이 하락한 탓에 그마와 마스터를 왔다리갔다리 한다고 한다.
실력만큼은 걸고 넘어질 부분이 없다.
더욱이 리뮤녀석처럼 인성이 문제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니 그래도.. 하아, 알겠습니다. 일단 넣기로 하죠.
내가 이렇게까지 고민해야 하는 이유.
도저히 못 미더워서다.
인성도, 실력 때문도 아니다.
씨지맥이 구해온 팀원이 하는 주챔프들이 이상하다.
'타임끝.. 미포 정글이랑 탑콩머스하는 애잖아.'
리뮤와 방향성은 다르지만 제대로 미친놈.
문제아를 한 분 더 뫼시게 된 셈인데 어떻게 관리를 해야 할까.
정말 웃긴 건 그럼에도 고려를 해볼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거다.
팀원에 목이 말라서가 아닌, 정말 순수하게 잘하기 때문이다.
미스터 포텐, 약칭 미포라는 챔피언은 당연히 원딜이다.
하지만 타임끝은 그 챔프로 정글을 돈다.
미드나 탑이면 그나마 이해라도 하겠는데 정글을 말이다.
당연히 미포 정글 따위가 될 리가 없다.
챔프가 재발견되는 경우는 종종 생긴다.
내가 종말전에서 꺼냈던 소리커처럼 다른 라인에서 오히려 더 좋게 사용될 때가 있다.
하지만 미포 정글은 내가 아는 미래에서조차 단 한번도 주류픽은 커녕 트롤픽을 면한 적도 없다.
그러한 미포 정글이 타임끝의 주챔피언 중 하나.
단순한 트롤러였다면 속편한 문제일 터다.
무려 캐리를 하신다.
그것도 다른 사람들은 개빡겜을 해도 가지 못한다는 그랜드 마스터에서 미포 정글로 캐리를 한다.
'아, 눈물 나네.'
생각해보니 개빡겜을 해놓고 단 한 번도 그랜드 마스터를 못 간 사람이 바로 나였다.
아무리 트롤 챔프를 한다고 한들 티어가 증명한다.
타임끝의 실력은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래도 대회이니만큼 자제를 해주셨으면 하는데..
-제가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빡겜하는 타임끝이란 말 아시지 않습니까?
천상계의 오래된 소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잠자는 사자.
그들이 각성하면 롤판이 격변할 것이다.
방송 끈 씨지맥.
빡겜하는 타임끝.
전자는 씨지맥이 BJ로서 방송을 켜고 게임할 때 못하는 경우가 잦아 비꼬는 말이다.
그런데 방송을 끄고 조용히 솔랭한 땐 상당히 잘하더라.
이 때문에 방송 끈 씨지맥이란 별명이 생겼다.
그리고 빡겜하는 타임끝.
항상 미포 정글이나 탑콩머스처럼 이해할 수 없는 요상한 픽만 하는 그가 만약 정상적인 챔피언을 한다면?
그것도 주류 채피언 위주로 한다면 엄청 잘해지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가진 몇몇 유저들에 의해 만들어진 소문이다.
당연히 두 소문 다 증명된 사실은 아니다.
씨지맥은 프로 레벨에서 자신의 실력을 증명한 적이 없고.
타임끝은 트롤픽을 정말로 사랑하는 분이니까.
신빙성이 아예 없다고는 하지 않겠지만 우스갯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둘이 내 팀에 속하게 되었다.
'불안하기 짝이 없네.'
그래도 이만한 팀원 어디 가서 구하기 힘들다.
일단은 둘 다 그랜드 마스터 티어다.
팀에 들어온다면 목줄을 단단히 매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렇게 되면 남은 건 한 명.
아무래도 서포터를 구해야 한다.
'나도 서포터를 잘 하긴 하지만.'
LCL은 내 실력을 증명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
서포터를 하게 되면 좋은 성적을 거둔다 해도 버스를 탔다는 오명을 쓸지 모른다.
프로 지향의 목적이 가장 크긴 하지만 다른 한 마리의 토끼를 포기하고 싶진 않다.
물론 당연하게도 서포터는 어려운 라인이다.
어떻게 와드만 많이 깔면 된다거나.
원딜 옆에 붙어 있어서 보조만 하면 된다거나.
그런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실상은 상당히 까다롭다.
게임내에서 시야는 곧 정보.
정보가 많을수록 게임을 이기기 쉬워지는 건 당연한 지사다.
그렇게 아군이 캐리할 환경을 조성해주는 게 서포터다.
이는 결코 타 포지션에 비해 중요도가 떨어지는 역할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착각하는 사람도 종종 있긴 하다.
─원딜캐리ㅇㅈ?
드럽게 못하는 원딜에게 어거지로 킬 쑤셔 넣어 키워주면 듣게 되는 말이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유저들은 딜량과 KDA를 우선적으로 본다.
서포터의 희생따위 안중에도 없다.
때문에 나는 스포트라이트를 제대로 받는 라인을 맡으려고 한다.
'미드, 미드밖에 없어.'
다섯 라인 중에 가장 화려한 라인.
실력 증명에 안성맞춤이다.
최근에 들어 탑이나 정글로 유명해지긴 했지만 나는 원래 미드도 한다.
미드 AP마검사로 방송을 시작했다는 건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즉, 포지션을 바꾼다고 해도 이상할 일은 하나도 없다.
'앞으로 4일이나 남았으니 서포터 한 명 정도야 구할 수 있겠지.'
오늘 두 명을 구한 덕에 급한 불은 끄게 됐다.
조금 넉넉하게 잡고 생각해도 될 일이라고 생각해버렸다.
정말 바보같고 안이했다.
하나하나가 독특한 개성을 가진 친구들.
그 능력만큼은 인정해줄 만한 아이들이지만 그만큼 튄다.
하나의 팀을 이룬 그들은 상상을 뛰어넘었다.
상큼한 딸기와 바삭한 치킨.
따로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하지만 딸기맛 치킨은 도저히 먹고 싶지가 않다.
어쩌면 당연했을 사실을 나는 조금 늦게 눈치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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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작과 추천 부탁드려요~!
부족한 작가 힘내라고 쿠폰 보내주시는 독자님들 정말 감사합니다.